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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나에게 최면어플을 사용한다-99화 (99/298)

〈 99화 〉 서바이벌(3)

* * *

서바이벌이 막바지에 돌입하였다. 시간은 대충 3시 언저리.

벌써 떨어질 놈들은 다 떨어졌다. 이외라면은 윤채린은 무분별한 공격을 하다가 다른 학생들의 합공에 중간에 떨어진 게 흠일까. 그래도 걔 손에 떨어진 학생들이 50명쯤 되었으니 오히려 지금 떨어진 게 이상한 거지.

은수아와 윤승하도 지금 꽤 몰려있다.

임나연과 이지아, 김하린, 한종우가 주축으로 모인 팀들이 그 둘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임나연이 무식하리만치 큰 기갑을 만들어서 전방에 세웠다. 이지아가 각종 마법으로 보조하면서 은수아의 칠색을 버티고 있었고, 김하린과 한종우와 부하들이 모여서 윤승하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한종우의 갑옷 색이 바뀐 걸 보면 쟤도 슬슬 개화를 하는 것 같은데.

나는 조용히 그 광경을 보다가 저울질을 시작했다. 윤승하는 힘을 아껴서 어느 정도 여유는 있어 보이는데 은수아는 아니었다.

은수아는 단기전에 강한 편이니까. 윤채린을 몰아세울 때 1등으로 공훈을 세운 만큼 많이 지쳐있었다.

문득 뒤에서 인기척이 있었다.

“엇?”

뒤를 돌아보니 놀란 표정의 소년이 보였다. 검은색 머리의 쌀국수같이 새하얀 건치를 가진 소년이 보였다. 제대로 본적 없는 얼굴이지만 나는 이 소년을 알고 있다.

“응우옌 꾸억 응우옌 맞지?”

“어, 날 알아? 아니, 그것보다 태국말도 할 줄 알아?”

할 줄 모른다. 지식 열람의 힘을 살짝 이용했을 뿐이다.

나는 응우옌에 대해 떠올렸다.

마인의 손에 넘어가서 아카데미에서 사건 하나를 일으키는 인물. 안에서 학생을 제물로 바쳐서 마물을 소환하다가 우연에 우연에 우연이 겹쳐서 상격에 도달한 마물이 소환된다.

윤승하나 윤채린이 목숨을 걸고 막으려고 하는 도중 그녀가 와서 한방에 정리한다. 단편적으로나마 요정 여왕이 얼마나 강한지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인물이다.

그건 그거고.

나는 사슬낫을 아공간에서 빠르게 꺼냈다. 차르륵­사슬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리며 응우옌을 향해 날아갔다.

응우옌이 바로 숏소드로 막으려 했지만 소용없다. 극도로 활성화된 천수는 사슬을 내 마음대로 다룰 수 있게 해주니까. 사슬이 숏소드를 감싸며 뱀처럼 휘어 응우옌의 몸을 잡고 배리어에 낫이 박혔다.

“……항복.”

“응, 수고.”

손을 흔들어주자 그림자가 쑥 올라와서 응우옌을 삼켰다. 애초에 기습이 특화인 애가 앞으로 나오니까 이렇게 쉽게 탈락하는 거지.

저쪽에 있는 싸움도 슬슬 막바지에 이르렀다. 은수아가 탈락하고 윤승하랑 나머지가 싸우고 있었다. 나는 활을 들며 조용히 이동했다.

슬슬 득점을 올릴 때가 되었다.

***

“이시우 이 비겁한 녀석!”

정한서가 나를 보며 외쳤다.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게, 누가 윤승하를 노리랬나.

정한서와 그 일행은 지친 윤승하를 노리다가 나한테 역습당했다. 3명 정도 내가 쓰러트리고 나머지는 윤승하한테. 윤승하가 나를 보며 활짝 웃고 다가오고 있을 때 윤승하도 쓰러트렸다.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이지아와 임나연도 쓰러트렸다. 이지아와 임나연은 나를 보면서 반가워하며 걷다가 나에게 기습을 당해서 쓰러진 거지만.

1위. 이시우

2위. 윤승하

3위. 은수아

4위. 윤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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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나는 꽤 많은 득점을 할 수 있었다. 서바이벌 게임을 끝내자 강한자가 웃으면서 내 쪽으로 다가왔다.

“막바지에 꽤 재밌었다. 다들 오늘 서바이벌에서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했나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도록. 특히 윤채린. 가진바 무력을 믿는 것은 알겠지만, 너는 너무 성급했다. 다짜고짜 모든 학생을 습격하니까, 너를 노리는 애들이 많아졌다.”

“크읏…분하다, 정파 놈들. 실력이 달리니까 쪽수로 밀어붙이다니.”

“그리고 윤승하. 마지막에 방심한 거 아쉬웠지만, 전략을 수립하고 정령들을 효율적으로 이끈 점은 대단했다. 마치 전장을 조율하는 마에스트로를 보는 것 같았다.”

“전장의 마에스트로!”

은수아가 윤승하를 부럽다는 듯이 보았다.

“그리고 이시우. 나무랄 점이 없다. 조용히 학생들을 한명 한명 쓰러트리고 마지막에 갑자기 확! 하고 움직이는 과감함까지. 마치 노련한 ‘사냥꾼’과 같은 모습이었다. 자, 그리고 공지하는 것을 잊어버렸지만, 이번 서바이벌에는 ‘교장님’이 내린 선물이 있다.”

이것 때문에 내가 윤승하와 이지아와 임나연을 쓰러트렸다. 나는 강한자가 꺼내는 세 개의 상자를 보았다.

“월광의 단이라고 한다. 이 단을 먹으면 회복력을 극도로 올려주는 특성을 얻게 된다. 그리고 마나가 조금 더 ‘신성’하게 변하는 효과를 지니는 단이지. 이 상품은 이시우 거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월광의 단을 품에 갈무리했다. 이건 나중에 엿 바꿔 먹을 거다. 아주 맛있는 엿으로.

“다음은 윤승하. 윤승하는…….”

그렇게 수여식이 끝났다.

“자, 다들 수고했다. 개학하자마자 갑작스러운 실기에 당황했겠지만, 이번 학기부터 히어로 아카데미는 이런 식으로 변할 거다. 실기를 위주로 올려서 ‘마인’에게 어떤 상황이 있더라도 대처할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될 것이다. 다들 현재 자신의 성취에 안주해 하지 말고 더욱 성장하라는 교장님의 의지다. 그럼 오늘은 피곤할 테니 다들 해산!”

개학하자마자 정말 피곤하네. 나는 하품을 나오는 것을 느끼며 조용히 숙소로 걸어갔다.

“시우야.”

나를 이글거리는 눈으로 보는 윤승하와 함께 말이다.

***

다음 날.

“혹시 요즘 이상한 걸 겪은 경험이 있어?”

복도에서 은수아가 나를 잡고 물었다. 이상한 일?

“예를 들어서 갑자기 막 피곤이 몰려온다던가. 시간이 너무 빠르게 간다든가 하는.”

갑자기 무슨 소리지. 나는 의아해하며 은수아를 바라보았다.

“아니면 혹시…핸드폰을 너에게 보여준다든가 하는 사람이 있어?”

이쯤 되면 바보라도 알 수 있다. 은수아가 최면 어플에 대해서 넌지시 물어보고 있다.

그런데 왜?

“예를 들어서 최…핫. 아, 아니야. 이건 꽤 위험하지. 적한테 정보가 들어갈 수 있으니까.”

은수아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말했다. 적? 설마 아카데미 기말고사 때 활개 치는 그 녀석을 말하는 건가. 도대체 어떻게 발견한 거지. 걔는…….

“걱정하지 마. 내가 도와줄 테니까. 흑염의 여제로서. 자염뇌제인 너를 도와줄 테니까.”

“…….”

소름이 돋았다.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제발 나한테 이런 말은 안 하면 안될까.

“시우야.”

조용하지만 묘하게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임나연이다. 그런데 왜 저렇지?

나는 당황해하며 임나연을 살폈다. 임나연은 싱글벙글한 표정인데 눈이 차가웠다. 내가 여자랑 대화할 때도 항상 싱글벙글했다. 김하린이 임나연의 별장에 난입한다고 했을 때도, 이지아랑 카페에 가다가 들켰을 때도.

임나연은 항상 싱글벙글 웃었는데 이렇게 차갑게 대한 적은 처음이었다.

‘그러고 보니.’

임나연이 게임 내에서 이랬던 적이 몇 번 있었다. 주인공인 윤승하로 플레이하면서 임나연을 거의 꼬시기 전까지 갔을 때, 은수아와 마탑에 제출할 논문을 도와주기 위해서 같이 밤을 새웠다고 했을 때.

단순하게 임나연이 은수아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은수아가 임나연에게 무언가 실수를 저질렀거나 결례를 저지른 것도 아니었다. 은수아는 친구가 몇 없기에 그 친구들을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하니까.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있다. 아카데미 내에서 임나연이 은수아에게 특히 격렬하게 반응하는 이유가. 생각을 이어가다가 은수아의 말에 상념에 깨었다.

“뭐, 뭐야. 나연이 너였어?”

“응. 근데 수아는 무슨 일이야? ‘시우’한테.”

“잠깐 볼일이 있어서. 믿을만한 소식통한테 들은 정보 때문에.”

“누군데?”

“다, 당연히 이런 건 비밀이지.”

“누군데?”

임나연이 차갑게 물었다. 은수아가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내가 뭐 잘못한 게 있나? 도움을 바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령군주.”

비밀이라며.

“누구라고?”

“정령군주.”

“정령군주…라면 윤승하? 승하가 뭐라고 했는데.”

“그, 시우를 노리는 흑막이 있다고 해서. 그거에 대해서 알려주려고.”

“뭐? 누가 시우를 위협해?”

임나연이 굉장히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 응. 그게 시우 약점이 정신력이 약한 거잖아. 그, 그것 때문에 말이야. 왜, 그 나연이 네가 학기 초반에 시우에게 장난 친 거 있잖아?”

“응?”

“그 최면 어플? 가짜 최면 어플인데도 시우한테 그게 먹혔잖아. 당연히 정신력이 약해진 시우에게 그게 정통으로 먹히지 않을까, 해서 누가 그걸로 시우를 조종하고 있다고 해서.”

“그그그그, 그, 그래?”

임나연이 눈에 띄게 동요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은수아가 눈을 좁히며 바라보았다. 수상한 것을 바라보는 표정이었다.

“뭐야. 너 왜 그렇게 동요해. 서, 설마 임나연 네가 배신자였어?!”

“무, 무슨 소리야?”

은수아가 빠르게 칠색을 만들었다. 일곱 빛깔의 휘황찬란한 색이 검으로 엮이며 모습을 드러내었다.

“너, 대체 무엇 때문에 마인들한테 넘어간 거야! 너는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난 마인쪽에 넘어간 적이 없어!”

“……미안 내가 너무 흥분했다.”

은수아가 선선히 사과하다가 멈칫했다. 눈을 굴리며 나를 잠깐 바라보았다.

마치 내 반응을 살피는 듯이. 그러다가 잠깐 안심하다가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임나연을 바라보았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혹시 학기 초에 반에서 시우한테 최면 어플을 사용하고 그 뒤에 쓴 적이 없어?”

“…….”

“너였구나! 아카데미에서 가장 큰 흑막이!”

은수아가 칠색을 임나연에게 겨뤘다.

“아, 아니야!”

“그럼 조금 전 침묵은 뭔데.”

“나는 그냥 옛날에 조금, 그걸 가지고 쪼금. 아주 쪼오금, 시우한테 장난을 친 거라.”

“장난? 무슨 장난인데?”

“그, 그냥 호기심에.”

나는 눈을 굴렸다. 이거 좀 위험한 거 아닌가.

"호기심에 뭐."

"호기심에 서, 성희롱을 쪼끔."

"이거 완전 변태 아니야? 성희롱이 얼마나 나쁜 건지 알기나 해? 당하는 처지에서 생각해봐. 아무도 모르는 애가 너를 성희롱한다고."

은수아가 일갈했다.

"그냥, 그냥 호, 호기심에."

"네가 모르는 애가 호기심에 너를 성희롱한다고 생각해봐. 네가 한 짓이 아직도 얼마나 끔찍한 짓인지 모르겠어?"

은수아의 논리적인 말에 임나연이 굉장히 당황했다. 그제야 내가 있단 걸 깨달았는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표정관리를 하려다가 말았다. 지금 표정관리 하는건 이상하니까.

나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어쨌든 임나연은 아닌 건가.”

은수아가 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며 말했다. 회중시계를 열어서 시간을 확인했다. 시계의 초침은 멈춰 있었다.

나는 슬쩍 회중시계를 보았다. 보기에는 그저 낡은 회중시계.

저건 옛 시대의 유물이나 뛰어난 마법사가 만든 아티팩트는 아니다.

진짜로 그냥 낡아 빠진 회중시계다.

저걸 가지고 다니는 이유는 그냥 멋있어서.

아마 지금쯤 홈즈를 읽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것을 떠올리고 있지 않을까.

"그럼 다른 용의자를 찾으러 가보자. 와ㅅ…시우, 가자."

"나도?"

"당연하지. 네 위험인데. 너는 조금 네 위치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회…앗, 미안. 실수로 말해서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될 뻔했군.

아카식 레코드가 도대체 뭔데.

"다음 용의자는 누군데."

"김하린."

은수아가 담담히 말했다.

"걔가 좀 수상하거든. 쌍둥이 동생이 김호동이랬나? 전뇌정령의 적성이 굉장히 뛰어나 초고교급의 해커 능력을 갖춘 애로 유명해서 관심이 있는 애라서 알게 된 사실인데 김하린 중학교 시절에 좀 수상한 정황이 있거든."

"……그래?"

"어. 김하린이 아카데미 초기에 그렇듯이 소심한 `척`을 하면서 그녀를 괴롭힌 애들이 어느 순간부터 하나, 둘 자퇴하거나 이사를 하는 등의 정황이 포착되었거든. 어쩌면 마에 반쯤 몸을 담고 있을지도 몰라."

은수아가 담담하게 말했다.

분명 조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텐데 그거까지 다 알아놨다고?

"본래 아카데미 초기에 번졌던 최면어플의 원본도 거악이 가담한 거라 생각하면…. 김하린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야."

그 용의자가 가짜 최면 어플 사용자중에서 가장 양심적인 애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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