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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나에게 최면어플을 사용한다-97화 (97/298)

〈 97화 〉 서바이벌

* * *

“아무튼, 싫습니다. 여장도 억지로 한 건데, 별로 흥미는 안가더군요.”

“그렇습니까…….”

그란힐데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봐도 절대 해주지 않을 거다. 안 그래도 저번에 여장 한번 했다고 윤채린에게 방학이 끝난 지금까지 놀림을 받는 이유뿐만이 아니다.

협회에서 유키나가 곤듀님, 곤듀님 거려서 내 별명이 곤듀님이 되어버린 것도 한몫했다. 여기저기서 은근히 나를 알아보는 시선도 많고.

그 경험을 또 겪고 싶지는 않다.

“어쨌든 저는 가보겠습니다. 슬슬 조회할 시간이라.”

“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붙잡았군요.”

그렇게 말을 하면서 그란힐데가 나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아무도 모르게 저 혼자 간직할 테니…….”

“싫습니다.”

질척거리는 그란힐데를 뿌리치고 나는 반으로 향했다. 반으로 향하는 중, 저 멀리서 치마 아래로 보이는 각선미가 인상적인 샤오메이가 보였다. 히어로 아카데미와 다른 교복이기에 눈에 금방 띄었다.

“어머, 이런 데서 만났네요. 오랜만이에요. 방학은 잘 보내셨나요. 들려오는 소식이 좀 심상치 않던데.”

“다들 절 좋게 봐주신 까닭이죠.”

“겸손하셔라. 그 정도가 아니던데요. 협회에서 엄청 유명하시던데. 뇌광 김은정 님한테 사랑을 독차지하신다고 말이에요. 저희 업계에서 엄청 화제가 됐어요. 덕분에 여기저기서 연락이 엄청나게 온답니다.”

샤오메이가 야릇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여기 부탁하신 블랙 마켓 입장권이에요. VIP로 특별히 준비해 드렸답니다. 이거 구하느라 꽤 힘들었어요.”

“아, 감사합니다.”

나는 놀랐다. VIP는 정말 구하기 힘들었을 텐데.

“소소하게 쓰시라고 카드에 30억 정도 넣어 드렸어요. 그리고 혹시 부탁하실 수 있으면 언제든 편하게 저한테 말해주시면 제가 해결해 드릴게요. 이번에 이시우 씨가 주신 물약 때문에 가문에서 입지가 꽤 커졌거든요.”

부탁이라.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검은 손이라 불리는 샤오메이가 부탁을 들어줄 수 있는 것은 많았다. 돈으로 해결이 가능한 것은 어지간하면 샤오메이의 손으로 가능하니까.

“지금은 생각나는 게 없네요. 나중에 말해도 될까요?”

“그럼요. 편하실 때 연락하세요. 아, 그리고 혹시 중국 영웅 자격을 획득하실 의향이 있으신가요?”

중국 영웅? 갑자기?

“네. 혹시나 해서요. 중국의 이미지가 나쁜 건 알지만, 대부분 옛것이 되었거든요. 공허족에 의해 풍족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하나둘 개선하고 있으니까요. 공화당의 흔적도 하나둘 지우고 있고. 아니면 중국에 오실 때 저한테 말해두세요. 저희 가문에서 특급 귀빈으로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나중에 가게 되면 말할게요.”

중국에 탐나는 영약이 별로 없지만, 혹시 몰라서 말했다.

***

샤오메이를 뒤로하고 반으로 왔다.

“야, 너 피부 엄청나게 탔다.”

“그렇게 티 나냐? 하, 하필 선크림 깜빡하고 해변에서 놀다가 완전히 망했네.”

여기저기서 학생들이 떠들고 있었다. 어디 놀러 갔다 왔느니, 호주로 가서 봉사활동을 하고 왔느니 하면서 말이다.

나는 자리를 찾아 앉았다. 임나연의 옆자리에 앉자 임나연이 싱글거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우, 요즘 엄청 유명하던데. 협회에서 완전 활약한다며?”

“너도 알아?”

“당연하지. 업계에서 완전 유명하다는데.”

도대체 김은정하고 한가인은 무슨 소리를 하고 다니는 거지. 침을 발라 놓는다고 했는데 너무 요란하게 바른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저번에 협회에서 권유를 받았다는 게 김은정 님이었어?”

“어. 저번에 중간고사 때 잠깐 만났는데, 내가 무슨 특이체질이라며 권유했었거든. 그런데 나연아. 혹시 이번 주말에 시간 있어?”

“시간? 시간이야 있지.”

임나연이 내 말에 반짝거렸다. 기대라는 감정이 크게 읽혔다.

지난 방학 때, 나는 남다윤 찬스를 이용해서 던전 하나를 털었다. 그 안에서 빙정하고 마력을 증폭시켜주는 귀걸이 하나를 얻었다.

‘시간을 봐서 넘겨야 하는데.’

귀걸이는 금방 끝난다. 그냥 이지아에게 건네주면 되니까. 다만, 빙정은 취급이 좀 힘들었다. 임나연이 어디서 얻었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굉장히 곤란하니까.

솔직히 임나연이라면 내가 빙정을 먹으라고 하면 알아서 잘 처리할 것 같은데.

“다들 반갑구나.”

교탁으로 올라온 강한자가 인사했다.

“다들 방학이라고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았을 거라 믿는다. 이제 슬슬 학교에서도 수업 강도를 높일 테니까. 우리 반에는 중간에 성적이 안 돼서 퇴학 되는 학생이 나올 거라고 걱정 안 해도 되겠지?”

“”네!””

“대답이 활기차서 좋구나. 다들 그런 의미에서 밖으로 가자꾸나. 개학을 맞이하여 너희를 위한 시험이 준비되어 있으니까.”

강한자가 사악하게 웃었다.

***

100m 높이의 우뚝 솟은 산 아래에 우리는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얼마 안 가 옆 반의 학생들을 이끌고 송라희 교수가 이쪽으로 왔다.

“와, 개학인데 무슨 실기야.”

“왜 이제야 좀 학교 같은데.”

정한서가 한숨을 내쉬고, 윤채린이 즐겁다는 듯 중얼거렸다.

“다들 앞으로 모여라. 10열로 모여서 이 물건들을 받아 가라.”

학생들이 10열로 모이자, 교수 옆에 있던 조교들이 팔찌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 팔찌는 너희의 안전을 책임져줄 팔찌다. 팔찌에는 약소하게 베리어가 걸려 있다. 그리고 만약 공격을 받아 베리어가 파괴되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라. 요정족들이 너희를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켜줄 테니까.”

강한자의 말에 다들 팔찌를 팔에 찼다.

“여기까지 말했으면 눈치 좋은 애들은 슬슬 감을 잡았을 거다. 오늘 할 실기는 서바이벌이다. 요정족들과 이 드론으로 산을 감시할 거다. 팀을 짜도 좋고, 서로 공격해도 좋다. 다만, 학생들이 한 모든 행위는 점수로 채점할 거다. 물론 팀을 안 짜고 혼자 다니면 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강한자의 말이 끝나자 송라희와 그란데힐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지금부터 바로 서바이벌을 시작하겠습니다. 여러분이 도착할 위치는 모두 랜덤이며, 끝나는 시간은 오후 4시. 지금이 8시니까 총 8시간 실습입니다.”

짝­. 손뼉을 치는 소리와 함께 공간이 뒤바뀌었다. 와, 설마 150명이 넘는 생도 모두에게 공간이동을 걸은 건가. 하루 이틀 준비한 게 아닌데. 나는 조용히 감탄하며 주변을 살폈다. 근처에 학생은 없는 것 같네.

나는 조용히 몸을 풀었다. 그리고 자세를 낮추었다. 나는 일대일에 굉장히 강한 편이지만, 다수의 대결에는 자신이 없다. 무엇보다 내 무공들은 마나 소모가 극심하기에 최대한 싸움은 회피하는 편이 좋다.

그러니까 지금 마주치지 말아야 할 것은 윤채린과 은수아. 다른 애들은 어떻게든 감당할 수 있지만, 둘은 아직 그렇게까지…….

“오, 우리 시아 여기 있었네.”

악동 같은 미소를 띤 윤채린이 보였다.

그와 동시에 윤채린의 손이 하얗게 물들었다.

망했네.

***

콰앙!

지면을 강타하는 소음과 함께 기파가 뿜어졌다. 멀리 있음에도 눈에 띄었다. 왜냐하면 그 기파와 폭음이 윤승하에게 굉장히 익숙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소수마공. 천마신결에서 나오는 천마의 독문 무공 중 하나였다. 마나 소모에 비해 파괴력이 극강해 간을 볼 때 쓰거나 약한 놈들과 싸울 때 자주 쓰는 무공.

윤승하는 고개를 돌렸다. 소음과 함께 여기저기서 소리가 들렸다. 별 무리가 머무는 눈이 주변에 마나를 모조리 감지하며 정령들이 윤승하의 주변에 머물렀다.

윤승하는 생각했다.

언제 부턴가.

아니, 어쩌면 윤승하가 이시우와 이어지기 이전부터 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임나연이 이시우에게 처음 반장난 삼아서 했던 최면 놀이.

그것을 이용하여 누군가 이시우를 조종하고 있었다.

“내 ‘시우’를 말이지.”

윤승하는 생각했다. 가끔 있었다. 이시우가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리지 않기 위해 주기적으로 섹스를 함에도 가끔 평소 같은 양이 나오지 않을 때가 있었다.

달에 두, 세 번 정도. 그것도 주기적으로 말이다.

잠깐 양다리라고 생각했었던 적이 있었다. 이시우의 외모는 미남미녀가 보인 이곳에서도 독보적이며, 사람을 홀리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으니까.

여자 친구나 섹스 프렌드쯤은 숨을 쉬듯이 만들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이시우는 아니다. 숙소에 있으면서 윤승하는 그의 성실함을 체감했다.

숙소에 있어도 훈련에 집중하며, 밖을 돌아다닐 때면, 공부하러 가거나 매번 훈련하러 돌아다니는 부지런하고 순수한 소년이니까.

가장 가까이서 지켜봐 왔기에 윤승하는 안다. 이시우는 양다리를 할 위인은 아니라고.

그렇다면 범인은 아카데미의 학생 중 하나. 아니, 하나라고 가정하는 것도 적을지도 모른다. 둘 이상으로 생각해야 했다.

‘임나연, 이지아, 김하린…….’

가장 수상한 사람들이었다. 바닷가로 놀러 갔을 때, 이시우가 없을 때 거희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셋 중의 한 명은 빠졌으니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임나연은 껄끄러웠다. 임나연은 산속에서 자랐던 윤승하도 자주 귀에 들리는 대기업의 외동딸이었으니까.

김하린은 가진 것이 무력밖에 없어 부담스럽지 않지만, 이지아도 문제였다. 너무나도 가파른 성장 속도. 그리고 마도 명가라 불리는 뒷배경.

‘적어도 세 명이라 가정하면.’

윤승하는 혼자서는 부족했다. 셋이 가진 배경만으로도 윤승하를 가볍게 억누를 테니까. 그 셋이 무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윤승하는 생각했다. 저울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추를 늘려서 맞추면 된다고.

다행스럽게도 윤승하 근처에는 임나연과 맞설 수 있는 배경의 소녀가 있다.

“무언가 이끌림에 왔는데 하필 너인가. 정령군주.”

오그라드는 말투.

그러나 눈앞에 있는 소녀는 윤승하가 이 학교에서 무시 못 하는 몇 안 되는 존재이다. 세계의 모든 마법사가 모인 상아탑. 그곳에서 후계자로 내정된 소녀.

교복의 와이셔츠 단추를 항상 한두 개를 풀고 다니며, 굉장히 걸레같이 보이는 외관이지만.

그녀의 특성은 ‘출력’ 하나로만 따지자면 1학년 중에서 상대가 없기에 무시할 수가 없다.

“마침 나도 만나고 싶었는데.”

윤승하가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주변에 정령들이 소환되었다. 기존에 있던 14체를 넘어 16체에 달하는 정령들이 그녀의 주변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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