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화 〉 협회(2)
* * *
“김은정 님이 조금 늦으신다고 합니다. 대신이라긴 뭐하지만, 그 사이에 저희가 협회에 내부를 구경시켜드리겠습니다.”
비서 누나가 그리 말하며 우리를 이끌었다. 나는 잠자코 비서 누나를 따라갔고, 한가인이 옆에서 재잘거리고 있었고, 유키나가 동영상을 보면서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아니.’
저절로 아니를 외치게 되는 광경이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다행히도 한가인이나 비서는 그리 관심을 가지는 것 같지 않아서였다.
“저쪽이 연습실입니다. 협회의 연습실은 온갖 마법 도구가 걸려있음은 물론 가상현실까지 구현해서 실감 나는 전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기는…….”
“프로젝트실이지. 루키, 한 번 구경해볼래? 너도 이론 쪽에 빠삭하니까 저런 데에 관심이 있을 거 아냐?”
한가인이 권했다. 나도 흥미가 동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방 안에는 이것저것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종이 문서들이 여기저기 난장판으로 되어있었다. 이거 구분은 할 수 있으려나.
그런 의문을 가지면서 보다가 뭔가 수식이 난잡한 종이 하나가 보였다.
“그거에 관심 있어, 우리 루키?”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지식 열람을 이용해서 보니 처음 수식부터가 엉망인데.
“아, 저 친구가 이번에 김은정 님이 강력하게 데려오자고 주장했던 친굽니까?”
포마드로 머리를 올린 느끼한 미소의 남자가 이쪽으로 오며 말했다.
“어, 이번에 협회에 체험을 오게 된 루키야.”
“눈에 띄는 외모에 사람을 홀리는 분위기……저 소년이 바로 이시우군요.”
“하긴 우리 루키가 좀 유명하긴 해.”
“그런데 저 친구가 보고 있는 거 심판 프로젝트 아닙니까?”
“어, 맞아. 루키, 네가 보기엔 어때?”
한가인이 나에게 물었다. 머리를 올린 남성이 싱글거리며 내 쪽을 쳐다봤다. 어지간히 자신 있는 모습이었다.
“이해하지 못해도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이시우 학생만큼은 아니지만, 히어로 아카데미에서 이론으로 날고 기는 애들을 갈아서 넣은 프로젝트라 이해하지 못해도 이상할 건 없거든요.”
굉장히 재수 없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종이를 보면서 의아하긴 했는데, 말씀대로 수식이 처음부터 엉망이라 이해하기 좀 힘들었네요.”
“……뭐?”
포마드의 남성이 멍청하게 중얼거렸다.
“이 부분이요. 왜 굳이 가테라의 마력식을 이용하면서 하는 거예요?”
“그건 당연히 마력 작용 때문에…….”
나는 바로 옆에 있는 종이와 펜을 하나 가져왔다.
“가테라의 마력식 하나 때문에 처음부터 엄청나게 꼬여서 수식이 전부 빙빙 돌잖아요. 가테라가 마력식이 정리가 잘 되어있기는 하는데, 이것 때문에 퀼럼의 마력 방정식이랑 아칼라의 절대 저항식도 써야되잖아요.”
나는 펜으로 지식 열람이 가르쳐주는 몇 가지 수식을 쓱쓱 그려나갔다. 그럴 때마다 옆에서 헉! 이거나 맙소사라며 이마를 치는 연구원들이 몇몇 보였다.
“저기 루키야 궁금한 게 있는데.”
“네? 뭐가여?”
“이건 왜 이 값이 돌출되는 거야. 신입이 쓴 식이 틀렸다는 건 아닌데 뭔가 건너뛴 것 같아서.”
쓰기 귀찮아서 최대한 간략한 식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걸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지.
“……암산으로 안 되세요?”
“루키, 지금 종이 한 페이지 통째로 수식으로 쓰는 거 알고 있지?”
“이거 식까지 다 쓰면 5페이지 이상은 나와서. 그리고 다들 이 정도는 기본으로 하지 않나요. 요건, 켈라의 마력 저항식과 거의 흡사하기도 한대.”
“……우리 신입 많이 재수 없는 거 알아?”
루키에서 신입으로 바뀌었다.
한가인의 얼굴을 보았다. 재수 없다고는 했지만, 입술이 히죽거리고 눈이 반달을 그리며 웃고 있었다.
“그래서 싫으세요?”
“아니, 존나 좋아.”
***
시간이 지나고, 저 멀리서 야구모자와 검은색 후드티를 입은 김은정이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었다.
우리는 협회의 쉼터에서 다과랑 먹을 것을 마시며 쉬고 있었다.
“꼬맹이, 협회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큰 도움을 줬다면서?”
“언니! 말도 마. 신입이 이번에 정 과장 그 새끼한테 쪽을 제대로 줬다니까? 그 새끼 머리 좀 좋다고 잘난 척하는 거 재수 없었는데, 이번에 신입이 제대로 한 방 먹여줬어.”
한가인이 히죽거리며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 은정 언니가 뽑은 곤듀님 머리가 정말 좋은 것 같아요.”
“곤듀님? 유키나, 저렇게 잘생긴 애한테 아까부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그러게요.”
내가 조용히 맞장구치자 유키나라고 불리는 여성이 조용히 핸드폰을 꺼냈다.
“저기, 저 배고픈데 혹시 식당 같은데 있나요?”
“식당이라. 다 밥 먹자고 하는 짓이니, 좋은 데로 가지. 꼬맹이 먹고 싶은 거 있나?”
먹고 싶은 거라. 그냥 화제를 돌리고자 꺼낸 건데 딱히 먹고 싶다고 생각이 들만한 게 없었다.
“은정 언니! 언니가 점찍어둔 신입이 활약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오랜만에 회 콜?”
내가 고민하고 있자 한가인이 대신 자기가 먹고 싶은 메뉴를 말했다. 김은정이 헛웃음을 지었다. 한가인이 김은정을 올려다보자 김은정이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꼬맹이가 활약했으니까, 꼬맹이가 먹고 싶은걸 가야지.”
제일 최악의 패턴인데.
한가인이 나를 홱, 하고 고개를 돌려서 보았다. 굉장히 회가 먹고 싶다는 얼굴이었다.
나도 회은 좋아하니까 상관없기는 했다.
“저도 회 좋아해요.”
“야호, 언니 빨리 회 먹으러 가자!”
***
횟집은 안이 개별 방으로만 나누어져 있는 곳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이쪽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동경 어린 눈빛. 질시 어린 눈빛. 의아해하는 눈빛. 여러 가지 다양한 시선이 이쪽으로 꽂혔다.
나는 주변을 슬쩍슬쩍 둘러보았다. 저 사람은 뉴스에서 보았던 정치인이었다. 다른 한 사람은 아티팩트 공장의 효율을 무려 10%나 끌어 올렸다고 칭송받는 마법사도 보였다. 유명인들밖에 없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유명인들이 저 멀리서 이쪽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이쪽으로 다가오고 싶은데 뭔가 급이 딸려서 조심하게 되는 그런 감정들이 특성을 통해 읽혔다.
그리고 쟤는 뭔데 저기에 있을까 하는 그런 눈빛도 있었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횟집 옷을 입은 여성이 우리를 안쪽에 방으로 안내했다.
나는 메뉴판을 보았다. 코스 요리와 단품 메뉴로 나누어져 있었다.
“신입, 어떤 걸 먹고 싶어? 부담 없이 팍팍 시켜! 은정 언니 지갑 좀 거덜 내보자고.”
“은정 언니 지갑 거덜 내려면 이런 횟집 수백 개는 사야 좀 티가 나지 않을까요?”
한가인의 말에 유키나가 말했다.
“아, 말이 그렇다는 거지.”
“저는 여기 천해 코스 요리로 할게요.”
“현명한 선택의 표본이야, 신입! 그럼 우리는 뭐 먹지? 어차피 은정 언니는 천해 코스를 고를 테니까 그냥 천해 코스 요리로 통일하자. 여기 천해 코스로 다섯 개 주문할게요.”
“네, 알겠습니다.”
웨이트리스가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나갔다.
“꼬맹이. 아마 협회 내에서 따로 보상금이 나갈 거다. 그러니까 나중에 비서한테 계좌 번호를 적어줘. 그러면 비서가 돈을 입금해 줄 거다.”
김은정이 돈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잠깐 내 돈의 액수를 떠올렸었다. 얼마 전, 100억이 넘은 뒤에 세보지는 않았지만, 더 불어있을 거다.
왜냐하면 지파의 도핑약을 파는 대가로 샤오메이에게 많은 돈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른 도핑약과는 다르게 상승치도 상승치지만, 마나 감응력이 올라가기 때문에 수련용으로도 굉장히 가치가 높았다고 했었다.
그래서 자기 가문에만 파는 조건으로 굉장히 비싼 값을 치렀다. 물론 나도 빌런들에게 이 영약이 넘어가는 걸 원치 않기 때문에 서로 윈윈이었지.
하지만 그래도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나중에 유물이나 영약을 살 수 있으니까.
“아, 지금 계좌번호 드릴까요?”
“네, 여기로…….”
계좌번호를 주니, 조용히 문이 열리면서 음식을 내왔다.
붕장어 튀김에 갑오징어 볶음, 피조개, 북방조개에 삶은 문어와 생새우, 갯가제, 멘보샤, 참치회 무침, 가리비구이, 해파리 냉채. 아직 메인 요리는 도착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및 반찬이 많네.
“잘 먹겠습니다.”
“은정 언니 잘 먹을게요!”
그렇게 인사를 하던 찰나에 갑자기 신호음이 들렸다.
삐리릭.
그러자 모두 한숨을 내쉬었다. 대충 사건이 일어났다는 표시인데.
“이럴 때 호출이라니. 아니, 오히려 다행인가. 아직 메인 요리가 없으니 좀 늦게 달라고 하지, 뭐. 신입, 준비해.”
한가인이 일어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김은정도 조금 시무룩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나영이 언니, 위치가 어디래요?”
“서울 외각 쪽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다행히 거리는 가깝네. 저희 잠깐 나갔다가 올 거니까 치우지 말아주세요. 메인은 좀 늦게 가져다주시고.”
“네.”
웨이트리스가 익숙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아하니 자주 있는 일인가보다.
바깥 건물로 나가자마자 한가인이 손뼉을 쳤다. 그러자 허공에서 소환진이 떠오르고, 10m의 거대한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문이 활짝 열리며 그곳에서 길쭉한 목에 매끈한 몸체를 자랑하는 아룡.
“신입, 이런 건 처음 보지? 비룡, 이라 불리는 내 애완 몬스터야. 별명은 용용이. 용용아, 신입한테 인사해야지.”
한가인이 그렇게 말하며 비룡을 툭 쳤다. 비룡이 조용히 나한테 고개를 숙였다. 말을 알아먹는 것을 보니 환수(??)였다.
“한가인 언니는 환수를 소환하는 소환사예요.”
유키나가 비룡에 올라타며 말했다. 한가인이 올라타고, 나도 올라타고 김은정에 비서까지 올라타자 꽤 좁았다.
“그럼 출발!”
비룡이 커다랗게 날갯짓을 했지만, 주변에 흩날리는 것은 없었다. 무슨 마법작용인가. 아니면 환수가 가지는 고유의 특징일지도 모른다.
비룡이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 제법 빠르게 날아가고 있었는데,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승차감이 어때, 신입아.”
“좋네요. 바람도 선선하고.”
“킥킥, 용용이가 가진 능력의 부가능력 중 하나야. 꽤 괜찮지?”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탐난다.
“아, 그러고 보니 유키나랑 은정이 언니 소개를 안 했네.”
“저는 버퍼에요. 문장사인데, 문장으로 한자를 쓰면, 그 형태에 따라 상대에게 버프를 줄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이렇게.”
유키나가 펜으로 빠를 속을 쓰자 문장의 형상이 허공에 뜨면서 그것이 비룡에게 달라붙었다. 그러자 비룡이 좀 더 빠르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나영이 언…비서님은 다중 분할 처리라고 전투에 유용하지 않지만, 일상생활에서 굉장히 유용한 초능력을 가지고 계세요. 그리고 은정이 언니는…….”
“아, 알고 있어요. 팬이거든요.”
내 말에 김은정의 어깨가 조금 올라갔다.
“자자, 그럼 대충 알았으니, 바로 전투에 들어간다. 우선 적은 흑귀갑이라고 꽤 귀찮은 상대거든. 방어막이 단단하고 거북이 주제에 이동속도가 굉장히 빠르지. 근데 그거 알아 신입? 흑귀갑의 고기는 정력에 굉장히 좋아서 비싸……신입, 눈이 왜 그리 초롱초롱해. 벌써부터 발랑 까진 거야?”
한가인이 어이없어하며 나를 바라봤다. 아니, 그게…이건 반사적인 거라 나도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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