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화 〉 방학(3)
* * *
시야 끝자락으로 가니 흐릿한 윤곽의 야구 모자를 쓴 소녀가 보였다.
모자 아래에 태극의 눈동자가 보였다. 푸른색과 붉은색의 오드아이인 여성이 풍선껌을 불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깐, 어디 좀 갔다 올게.”
“어어, 어디가!”
나를 잡으려는 정한서를 무시하고 다급하게 뛰어갔다.
한참을 뛰어가자 윤곽이 선명해졌다. 협회의 최상위권의 영웅. 일전에 중간고사에서 나를 협회로 끌어들이려고 했던 인물.
그리고 묘한 이끌림을 가진 사람은 한 명 뿐이었다. 나와 같은 신체를 보유했었던 인물. 음양체를 진화 시켜 태극지체를 얻은 존재.
김은정.
그녀가 나를 보며 차분히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야, 꼬맹이.”
나도 김은정에게 인사했다. 그러나 나는 김은정이 왜 여기에 있는지 의아했다. 게임 속에서 그녀는 단 한 번도 이곳에서 발견된 적이 없을 텐데.
사실 김은정이 이곳에 온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그녀는 돈보다는 명예와 의리로 협회에 남아있는 인물이니까. 길드에 들어갔으면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을 마다하고 협회에 남은 인물이었다.
무엇보다도 나에게 호의적인 인물이었다. 내가 이곳에서 어떤 루트를 타야 가장 강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힌트도 준 사람이고.
“그런데 여기는 왜…?”
“볼 일이 있어서 잠시 들렸다.”
거짓이다.
그녀가 여기 있다면 커뮤니티에서는 어마어마한 화제가 되었으니까. 내가 모를 리가 없다.
원작과 다른 점은 주인공인 용사가 두 명이 있는 것. 그리고 내가 개입한 것. 그렇다면 나 때문에 이곳에 온 건데.
설마 곧 시작될 체험 때문인가?
“그러고 보니 이번에 ‘체험’에서 나연이가 엄청 좋은 조건을 주었는데.”
“임가 놈들을 믿지 마라. 그놈들은 좋은 조건으로 유혹하고, 그 대가 이상으로 영웅들을 착취하는 놈들이다. 너도 그렇게 당할 위험이 있어. 잘 생각해라, 꼬맹이.”
기업 입장에서는 당연한 거 아닌가?
나는 얼떨떨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김은정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래, 내 비록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한가지 조언을 해 주자면, 꼬맹이……영웅이 된다면 부귀영화는 알아서 따라온다. 부귀영화를 뒤쫓다가 타락하거나 돈의 망령이 된 존재들을 많이 봐왔지.”
김은정은 100살을 넘었다.
“그러니 꼬맹이 넌, 자신의 실력을 정진하는 사람이 되어라. 부귀영화. 좋은 말이지. 있다면 좋고, 모자라면 간절하게 바라지만 그것에 매몰되면 안 된다.”
좋은 말이기는 한데, 나한테는 해당 사항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협회는 너에게 크나큰 기회를 줄 수 있다. 예를 들자면 네가 가지고 있는 특성의 페널티를 완화한다던가.”
미안하지만 내 능력에 페널티는 없다.
내 단점이 전투 지속력인데 이것도 특성으로 어느 정도 커버가 되고.
“확실히 정신력을 올리기는 해야 해요.”
내 말에 김은정의 표정이 묘해졌다.
“아무튼, 꼬맹이, 이번 체험에서 협회를 택해라. 협회에는 많은 유물과 영약이 있다.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협회는 인재에 관심이 많아.”
그래서 협회도 고민되었다. 돈은 부족하지만, 권력이 있고 우수한 영웅이 한 명 있으면 간판으로 세우기 위해서 지원을 해준다.
하지만 난 거절하려다가 멈칫했다. 김은정은 최상격의 영웅이다. 최상격 중에서도 강함 순으로 따지자면 아래보다는 위에서 새는 것이 빠른 존재. 살아있는 신화라고까지 불리는 인물이다.
“혹시 이것도 가능한가요?”
“어떤 거지?”
나는 내 계획에 대해서 말했다. 그러자 김은정이 조금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네 말대로라면 그놈은 굉장히 미친……하긴, 그놈들이 정상일 리가 없지.”
김은정은 그 말을 끝으로 휘적휘적 걸어갔다.
***
나는 한숨을 쉬며 해변으로 돌아왔다. 생각보다 심력을 많이 쏟아부었다.
하품하면서 바닷가로 향하자 이미 애들이 공놀이하고 있었다.
“오, 뭐야. 갑자기 어디로 획 가버리더니 생각보다 일찍 왔네.”
“아는 얼굴을 봐서 말이야.”
정한서에게 그렇게 대꾸하자 공이 획 날라왔다. 자연스럽게 손으로 막다가 당황했다. 공이 손에서 빠져나가려고 했기 때문이다. 변화구 같은걸 응용한 건가? 나는 자연스레 공의 중심으로 반대쪽 손을 대 그것을 막았다.
“우와 그걸 반응해? 진짜 기교 하난 예술이네.”
윤채린이 익살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공을 잠깐 바라봤다. 천수를 활성화했다. 손목의 스냅만 좀 주면 될 것 같은데.
“받아.”
나는 공을 윤채린에게 획 던졌다. 윤채린이 익살스럽게 웃다가 한순간 굳었다. 한 손으로 막으려다가 다급하게 양손을 동원해서 막았다.
“오. 한번 해봤는데, 진짜로 됐나 보네.”
“빌어먹을 재능충.”
윤채린의 반응에 정한서가 킬킬거렸다.
나는 자리에 다시 누워 블루 레모네이드를 마셨다. 역시 해변엔 블루 레모네이드지.
“그러고 보니 너희 그거 알아? 이 바닷가에는 말이야, 라미아가 살고 있었던 곳이라고 하더라고.”
“에이, 그걸 도대체 누가 믿어. 신화시대의 괴물이 나타나면 바로 여긴 폐쇄될걸.”
“맞아. 요즘 그런 걸 누가 믿어.”
정한서의 말에 윤채린과 윤승하가 반문했다.
“아니, 진짜라니까. 내가 들었는데…….”
“시우야, 나랑 잠깐 밖에 나가서 뭐 좀 사러 갔다 올까?”
임나연이 내게 다가와서 말했다.
“응? 왜?”
“저녁에 바비큐 해 먹을 건데 부족한 게 있어서.”
“…….”
여기 저택에 사용인이 많은데 임나연이 굳이 나한테 이야기한다고? 이건 틀림없이 야스 각이었다.
‘음…….’
착정 안 당한다고 다짐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17세의 신체로 돌아온 뒤로 성욕이 주체가 안 되었다. 거기다가 비키니가 워낙 잘 어울려서.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꼴렸다.
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다가 굳이 굴릴 필요가 없단 걸 깨달았다.
아까 전, 김은정과 이야기 하면서 그녀에게 거의 대부분을 맡기기로 했으니까. 혹시 몰라서 어느 정도 체력은 비축은 해야 되겠지만.
“그래, 가자.”
나는 임나연을 따라갔다. 솔직히 임나연이 도와달라는데 안 도와주는 게 더 이상했다.
임나연은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올라 2층으로 향하고, 3층을 넘어, 4층으로 향했다. 4층은 가족이랑 친척들이 쓴다고 하지 않았나? 생각하면서 올라가니 4층은 두 개의 방밖에 없었다.
고풍스러운 문을 열고 나가니 그곳에는 고풍스러운 문과 상반된 방이 있었다. 방 끄트머리에는 채찍이라던가, 안대라던가, 애널 비즈 같은 것들이 널려 있었다.
어……?
내가 뭐라 의문을 느끼기도 전에 임나연은 문을 닫았다. 찰칵.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 나는 임나연을 너무 가볍게 생각한 게 아닐까.
슬쩍 뒤돌아보니 임나연이 음흉한 미소를 걸치고 있었다. 그리고 가볍게 손뼉을 쳤다.
짝.
나는 가면을 썼다. 머리를 쓸어내렸다.
임나연은 어느새 엎드렸다. 일본에서 흔히 말하는 도게자의 자세. 수영복 도게자는 꽤 귀한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몸이 멋대로 움직였다. 발로 임나연의 머리 위에 올렸다. 아주 살짝, 압력을 가하면서.
그러자 임나연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희열이라는 감정이 진하게 느껴졌다.
“제법 좋은 집을 가지고 있네. 노예 주제에.”
“제, 제 전부는 주인님의 것입니다.”
“그 말은 맘에 드네.”
나는 자연스럽게 끄트머리에 목줄을 하나 집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져왔다.
“읏!”
임나연의 고개를 들추고, 목줄을 채웠다.
“괜찮네. 역시 임나연, 넌 개목걸이가 더 어울려.”
“가, 감사합니다…컥.”
나는 말 없이 목줄 당겼다.
“개목걸이가 가장 어울리는 건 개잖아?”
“……멍멍.”
“그래, 말 잘 듣네.”
개를 쓰다듬듯, 임나연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리고 몸을 일으켰다. 침대로 걸어가려고 하자 임나연도 일어나려고 했다. 목줄을 잡아당겼다.
“개처럼 기어야지, 나연아.”
“……멍멍.”
가면이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여러 번 해온 일이지만, 정말로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임나연의 감정에서 굴욕이라는 감정이 느껴졌지만, 기쁨과 희열이 더 컸으니, 이걸로 된 걸까.
속으로 한숨을 쉬며 침대로 향했다. 족히 킹사이즈는 될법한 분홍빛의 물침대가 보였다. 물침대에 걸터앉자 수상할 정도로 푹신함 감촉이 나를 반겼다.
“자, 핥아.”
발을 내밀었다. 그러자 임나연이 발에 키스를 핥고, 그것을 보물이라도 되는 듯이 천천히 핥기 시작했다.
이게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는 게 조금 어이가 없었다.
“쭈웁, 쪽, 쭈웁.”
임나연이 내 발을 맛있는 것을 먹듯 핥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무언가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 같았다.
나는 바지를 내렸다. 굳건하게 솟은 내 자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을 임나연히 황홀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빨아.”
“멍!”
임나연이 대답하며 내 자지를 입에 넣었다. 나는 그것을 잠시 보다가 다리를 벌린 다음 임나연의 목을 다리로 졸랐다.
“컥, 커흑.”
이건 좀 심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지만, 특성으로 감정을 느끼지 않아도……임나연의 표정은 황홀해 보였다. 굴욕과 이것저것 섞인 표정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진짜 정상이 없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