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화 〉 축제(4)
* * *
“정말……잘 어울리시는군요.”
그란데힐이 잠시 심호흡을 한 다음, 입을 열었다.
나는 당황했다. 이걸 어떻게 받아쳐야 되지? 남자에게 여장이 잘 어울린다는 말이었는데 나에게는 칭찬이 아니었다.
“…….”
나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화장실로 향했다. 이 자리가 불편해서였다.
그란데힐은 아마도……아니, 거의 확실하게 내가 역 최면에 걸리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요정 여왕이 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거의 확실했다.
그녀는 친한 사람도 없고, 거의 홀로 다니니까.
아카데미 내에서 문란한 생활을 하는 나를 이따금 못마땅하게 볼 때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불편했다.
그러나 그란데힐이 나를 잡았다.
“?”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홍조가 깃든 얼굴이 보였다.
“…….”
그란데힐이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조금 부담스러운데.
“하실 말이 있으신가요?”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했군요.”
그란데힐이 꾸벅 숙였다. 그러나 손은 놓지 않았다.
“……저,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
“혹시……실례가 안 된다면 사진 한 장만 찍어줄 수 있나요?”
사진? 갑자기?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별로 어려운 부탁도 아닌데 이런 거로 그란데힐에게 호감을 살 수 있다면 이득이었다.
찰칵.
“혹시 활짝 웃으면서 v자 가능하십니까.”
“……네.”
“그리고 조금 시크한듯한 모습도…….”
“…….”
“생각보다 훨씬…아니, 이건 상상 이상……아, 감사합니다.”
그렇게 약 10분간 붙잡혀서 촬영에 전념했다.
***
“뭐야, 우리 시아 왜이리 늦게 왔어. 언니가 걱정했잖아.”
“그럴 일이 좀 있다.”
“호옥시~장기자랑 준비하려고 몰래 준비 확인하고 온 거야?”
“…….”
“……뭐야, 진짜야?”
준비는 한 건 맞다. 아무리 나라도 그냥 여장만 한 채 밖으로 나가면 좋은 점수는 받지 못하니까. 축제는 반 대항전으로 이루어져 있고, 점수를 받으면 영약이나 여러 가지를 받을 수 있다.
탐나는 영약은 없지만, 그래도 팔면 돈을 얻을 수 있겠지. 하급 영약도 기본 천만 원은 훌쩍 넘으니까.
“뭔데, 뭔데. 뭐 준비했는데?”
윤채린이 호들갑을 떨며 내게 물어봤다.
“노래.”
“당연히 여자 노래겠지?”
“남자 노래인데. 내가 어떻게 여자 키를 불러.”
“아, 그건 좀 아쉽네.”
윤채린이 아쉬워했지만, 윤승하는 달랐다. 내 옆에 달라붙어서 나에게 물어봤다.
“무슨 노래 준비했는데?”
“좀 오래된 노래인데……사랑했나봐라고 알아?”
YB밴드가 부른 사랑했나봐를 고른 이유는 별거 아니었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노래였으니까.
“언제적 노래인데?”
“2005년.”
“와, 그럼 거의 50년 전 노래 아니야?
윤승하가 놀라워하며 말했다.
“50년 전 노래면 옛날 노래들 아니야? 막 트로트 같은 거.”
“발라드야.”
“그래?”
윤승하가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
하긴, 나 같아도 전생에 삶을 봐도 50년 전 노래라 하면 일단 낡았다는 편견이 있었으니까.
***
콘서트장을 연상시키는 홀.
최대 4천 명까지 수용 가능한 공간은 오늘따라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와, 사람 봐라. 진짜 어마어마하게 많네.”
“당연하지. 장기자랑인데 인기 있는 애들 엄청나게 나왔잖아. 한종우 노래에다가 강한남이 춤추고, 김하린이랑 임나연도 노래 부른다던데.”
“그러고 보니 이지아도 춤춘다고 하지 않았어? 걔 마법사 아냐?”
“걔 히어로 아카데미에서 전향한 거라 기본적인 육체 능력은 있을걸.”
사방에서 떠드는 소리로 가득했다.
당연했다.
반에는 노래 한종우랑 임나연, 김하린이 나가서 부르고 춤은 이지아가 나갔다.
그래서 장소는 거의 콘서트장을 방불 캐 했다.
한종우가 거들먹거린다고는 하지만, 외모 자체가 워낙 황태자처럼 생겨서 인기가 많았다. 임나연도 베이비 페이스에 글래머한 몸매를 가져서 인기가 장난 아니고.
김하린은 화려한 스타일이라 배우 같은 외모의 아이돌 느낌이라 인기가 많았다.
은수아는 전방을 주시했다. 은수아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을 기본적으로 싫어했지만, 오늘은 특별히 홀에 방문했다.
왜냐하면 회귀자인 이시우의 공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리주의자인 그 녀석이 이런 곳에 괜히 올리가 없지.’
남들이 멍을 때리다 여장을 하게 되었다지만, 은수아는 믿고 있다. 이시우가 그런 얼빠진 짓을 할 리가 없다는 것을.
반 대항전에 내걸린 상품에도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은수아는 궁금해했다. 항상 훈련에 온힘을 쏟아붓는 실리주의자이며 회귀자이자 자전뇌제??? 이시우가 왜 여장대회에 참가했는지.
은수아는 생각했다.
자전뇌제. 보랏빛 번개를 쓰는 제왕. 자신이 지었지만 참으로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이걸 염두에 두었다면 웨폰 마스터는 별로였을 거다.
‘잠깐만…그러고 보니 요즘 불꽃의 정령도 있다던데. 그럼 불꽃을 넣어서 자염뇌제? 뭔가 좀 이상한데……자전뇌염제도 괜찮은데, 다섯 글자는 좀 그렇고.’
은수아는 이시우의 칭호를 생각하며 자리에 앉았다. 주변에 그녀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없다. 인식저해 마법과 그것을 보조하는 마법 여덟 가지를 그녀에게 걸었기 때문이다.
학생들 수준으로 그것을 알아보기도 힘들고 어지간한 중격들 조차도 유심히 보지 않으면 그녀인 줄 모르리라.
그렇게 잠깐 있자니, MC가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히어로 아카데미의 학생 여러분.
MC가 앞에서 간략하게 일정을 말했다.
첫 번째로 한종우가 나왔다. 노래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묵직한 고음으로 노래를 잘 부른다는 느낌을 주는 곡이었다.
두 번째는 임나연과 김하린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두 명이 나가야 했지만, 임나연이 한종우와 조를 짜기 싫어서 김하린과 조를 짜, 듀엣으로 나갔다.
임나연과 김하린은 발랄한 사랑의 노래를 골랐다. 은수아가 듣기에도 두 명은 노래를 잘했다. 김하린이 고음을 담당하고 임나연이 살짝 낮은 저음을 담당했다.
은수아는 곡이 끝나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불헌 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시우가 여장을 해서 무대에 올랐어야만 했던 이유. 그것은 어쩌면 빌런들이 축제를 망치려고 했기 때문이 아닐까?
빌런입장에서야 굳이 어렵게 히어로 아카데미에 들어온다고 해도, 요정여왕이 주시하고 있는 축제를 건드리지는 않겠지만, 은수아는 생각을 이어갔다.
그렇다면. 과거의 세상에서는 축제에서 인명피해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 일부러 눈에 띄지 않고, 여장을 고른 것도 이해가 갔다.
눈에 띄지 않게, 빌런들의 속셈을 방해한다.
그것이 이시우의 목적이다!
은수아는 거기까지 돌출된 해답에 만족스럽게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회귀자답게 움직였다. 은수아는 그렇게 생각하며 두리번거리다가 문득, 눈에 익은 사람이 보였다.
온갖 인식 마법이 걸린 아티팩트를 착용한 푸른 단발머리의 여성이 사진기를 가지고 전방을 주시하는 것이 보였다.
그녀가 잠깐 보다가, 푸른 단발의 여성이 그녀의 시선에 뒤를 보았다.
‘거, 검의 주인?’
남다윤이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어째서 검의 주인이 여기에 있는 거지? 은수아는 침을 삼키고 그녀를 보았다.
이시우가 남다윤과 아는 사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우연히 이지아랑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서이지만……은수아는 침을 삼켰다. 축제에 침입하여 소란을 일으키는 빌런이 그 정도로 강하다는 건가? 상격의 영웅이 나서야 할 정도로?
그러다가 다른 한 사람도 눈에 보였다. 회색빛의 머리색이 눈에 띄는 요정여왕의 그림자, 그란데힐. 메이드 복을 입은 그녀가 보였다.
공간간섭이라는 희귀하기 그지없는 능력의 소유자로 그녀는 학교보다 외부에 더 유명했다. 지금은 얌전히 지낸다지만 과거, 마왕군과 싸울 때 나찰의 마녀라던가, 몰살의 그란데힐이라는 이명으로 더욱 유명하였다.
은수아가 그녀를 알고 관심을 두는 이유 중 하나였다.
나찰의 마녀.
몰살의 그란데힐.
그녀를 수식하는 이명들이 굉장히 멋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그란데힐은 마탑에서 주시하고 있는 인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삼속성이라고 모든 속성력 중 가장 뛰어난 힘을 자랑하는 속성이 있다.
공간, 시간, 별.
이능이든, 마법이든 저 세 가지 중 한 가지만 있어도 부귀영화를 누리는 건 매우 간단했다. 다만, 그만큼 빌런들에게 많이 노려지는 속성이기도 하였다.
저 속성을 가진 이들은 ‘제물’로서도 뛰어났기 때문이다.
잠깐 생각에 빠진 사이 MC가 앞에 나서서 반의 승리를 축하해주었다. 임나연과 김하린, 한종우가 나갔으니 당연하기는 했다.
그다음은 춤이었다.
춤은 이지아가 나갔지만, 아쉽게도 패배했다. 그리고 이벤트성으로 나온 여장 대결.
첫 번째는 덩치 큰 남자였다. 키는 2m 조금 넘으며 근육질의 학생이었다. 찢어질 듯 꽉 조이는 블라우스에 주름치마를 입었다. 남자들은 질색했지만, 여자들이 노출된 근육 부분에 눈을 힐끔거리며 보고 있었다.
덩치 큰 남학생은 근육을 강조하는 자세를 몇 개 취하고 들어갔다.
두 번째는 꽤 잘생긴 남학생이 나와서 여장을 했다. 생긴 게 자신 있는지 윙크를 하고 춤까지 추고 들어갔었다.
세 번째 학생은 이시우. 이시우의 이름이 호명되자 사방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여학생들의 악 지르는 소리와 비명이 들렸고, 남학생들조차도 크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무대 위.
절세의 가인이 있었다. 옛날 나라를 기울게 하였다는 달기가 저러할까. 분명 남자가 분명한데,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홀리는 외모를 자랑하는 가인?人이 그곳에 있었다.
이시우는 사방에서 몰려오는 소음에도 시큰둥하게 있었다. 보통 여장을 한 남자라면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있어야 하거늘, 이시우는 그런 것조차도 아주 적었다. 아니, 그 부분이 오히려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와, 이시우 학생은 굉장히 어울리시네요. 남자인 걸 알면서도 반할뻔했어요. 그렇죠, 여러분?
네에에에에에에!!!!!
MC의 말에 순간 귀가 찢어질 듯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 반응에 이시우가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반의 이시우입니다.
혹시 개인기 같은 거 준비하셨나요?
……네, 준비했습니다.
이시우가 영 마땅찮은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노래를 준비해왔습니다.
노래요? 목소리 들으시니 정말 잘 하실 것 같은데 어떤 곡을 준비해 오셨나요?
YB밴드의 사랑했나봐 입니다.
아! 그 노래 정말 좋죠. 근데 요즘 학생들이 알기 어려운 곡일 텐데. 사랑했나봐가 거의 50년이 되어가는 곡이거든요.
개인적으로 팬이라서…….
아, 그렇군요. 팬이라면 그럴 수 있죠.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잠시 기타 좀요.
이시우를 밝히는 조명을 제외한 모든 조명이 꺼졌다. 어둑한 공간. 은은한 불빛 아래에서 이시우가 기타를 쳤다. 기타를 치면서 소음이 점점 멎었다. 기타의 소리가 아름답게 울려 퍼졌다.
기타를 치면서 몸으로 리듬을 탔다. 그것조차도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이별은 만남보다 참 쉬운 건가 봐. 차갑기만 한 사람.
목소리는 좋았다.
음색이 특이하지 않았지만 편안한 느낌이었다. 특출나게 잘한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이시우가 부른다고 하니까 뭔가 색달랐다.
“씨발, 씨발. 진짜 존나 잘 생겼다! 하, 진짜 이시우랑 한 번만 사귀고 싶어!! 시우 오빠 사랑해요!!!!”
“너 쟤랑 동갑이야…….”
“몰라, 씨발. 잘 생기면 다 오빠야! 오빠아!!!”
옆에서 소리를 꽥꽥 지르는 여학생과 그를 말리는 남학생이 보였다. 그녀만이 아니라 주변의 대부분이 여성이 그러했다. 아니, 여자뿐만 아니라 남학생들도 어디선가 누나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랑했나 봐, 잊을 수 없나 봐. 자꾸 생각나, 견딜 수가 없어.
하이라이트 부분. 여성들이 소리 지르는 소리도 올라갔다.
이시우가 그 장면을 슬쩍 보더니 씩, 하고 웃었다.
그러자 비명이 거세졌다. 장기자랑을 하는 게 아니라 흡사 아이돌 콘서트장으로 변했다. 아니, 잠깐 그란힐데 저거, 코피 아니야?
은수아는 당황해서 그란힐데를 바라보았다. 코에서 피가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역시 그란힐데가 여기에 괜히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란힐데도 이시우를 도와 빌런의 계획을 저지했겠지.
그란힐데가 고작 여장한 이시우가 부르는 노래에, 그것도 씩 하고 웃는 장면에 코피를 흘렸지만, 그건 데미지가 누적되어서 그런 것이리라. 이시우의 외모는 은수아조차 인정하지만, 요정 여왕의 그림자, 나찰의 마녀가 코피를 뿜을 정도는 아닐 테니까!
노래는 어느새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애초에 여장 부분에서 개인기는 그냥 잠깐 맛보기에 불과했다. 노래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분 남짓이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네가 아니라서 왠지 슬플 것 같아. 잊을 수 없는 사람. 우~~
살짝 아련한 눈빛으로 정면을 바라보는 이시우.
무대가 끝나고 여기저기서 실신하는 여학생들이 생겼다.
그러다가 은수아는 보았다. 현기증이라도 난 듯 휘청거린 검주를.
맙소사, 최상격에 근접한 검주마저도 저러다니. 도대체 무슨 싸움이 있었던 거지?
은수아는 그 싸움에 참여하지 못한 걸 아쉬워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