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 축제(1)
* * *
광기 어린 섹스가 끝났다.
김하린은 침대에 널브러져 있었고, 이지아가 내 자지를 핥으며 청소를 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쌓여있지는 않았지만 한번 배출하니 차분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나는 침대에 앉아 차분하게 생각했다.
‘이거 어떻게 되는 거지.’
김하린은 침대 한쪽에서 거의 기절하다시피 쓰러져 있었다. 얼굴은 눈물과 침 자국으로 엉망이 된 지 오래. 그러나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으니 만족은 한 것 같았다.
이렇게 되면 이지아와 내 비밀을 지켜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임나연.
김하린이 임나연과 내 관계를 알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이렇게 같이 성행위까지 했으니 김하린이 이지아에게 말하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아니, 김하린이라면 말하지 않고 임나연에게 붙을 수도…….’
실제로 이게 더 가능성 있는 문제였다. 솔직하게 말해서 김하린은 엄연히 피해자니까. 그냥 부실 쪽을 지나다가 부실 앞에서 이지아에게 잡혀, 오나홀 취급받고, 도구 취급을 받고, 강제로 취해지고.
‘음…그런데 좋아한 다라…….’
일단, 뭐가 되었든 심각한 문제였다.
그리고 내가 정력과 관련된 특성을 지니고 있다지만, 이미 아카데미의 생활은 굉장히 힘들어지고 있다.
윤승하에 이지아에 임나연. 매일매일은 아니지만, 높은 빈도로 저 셋을 상대해야 했다. 임나연은 그래도 성욕이 적은 편이라 일주일에 4번 정도 밖에 없지만…….
‘성욕이 적은 건가……?’
아무튼 나한테는 중대한 고비였다. 뭐가 되었든 여기서 여자가 더 늘면 안 됐다. 거기다가 저 세 명이 아니라 이제는 남다윤도 상대하고 있다. 아무리 내 특성이 회복 쪽에 특화되어있다고 해도 슬슬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다.
“물 마실래?”
“네, 마마…….”
이지아가 준 냉수를 마셨다. 머리가 조금 시원해진 기분이었다. 이지아는 옆에서 내 자지를 조물조물 거리며 장난치고 있었다.
“한 번 더 할까?”
이지아가 다시 선 내 자지를 보며 눈웃음을 쳤다. 그리고 보지를 내밀며 말했다. 정액이 주르륵 흘렀다. 내 자지가 다시 서는 것을 느꼈다. 남자는 정말 슬픈 생명이었다.
‘피임약을 먹어서 다행이지.’
다행히도 이 세계엔 남성용 피임약이 있었다. 그게 아니었으면 나는 한동안 역최면을 피하러 다녔으리라.
나는 이지아를 침대로 밀었다.
“꺄악.”
이지아가 얕게 비명을 지르며 몸을 맡겼다.
***
기말고사까지 끝나서인지 교실 분위기가 붕 떠 있다.
“아, 이번 여름 방학엔 어디로 가지? 이번에 영국으로 가서 원탁 기사단이 주최하는 결투장이나 함 구경하러 가볼까.”
“와, 거기 VIP들만 갈 수 있다던데. 거기에서 예비 원탁들 고르는 거 보러 가는 거지? 부럽다. 난 호주 갈 건데.”
“호주? 거기 마왕과의 일전에서 거의 황폐해진 곳 아냐?”
“응, 봉사활동 차원에서 가보려고…….”
여기저기서 학생들이 해외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학생들이 해외여행이라니……난 전생에서 해외를 나가본 기억이 없는데. 진짜 부럽네.
“그러고 보니 너희 ‘체험’은 어떤 길드로 할지 정했어?”
“체험? 난 어지간하면 아빠 길드에서 때우려고 했는데.”
“아, 그러고 보니 넌 길드 이을 거라 했지. 부럽다.”
“부럽긴 뭘, 그냥 하청인데.”
그러고 보니 체험도 있었다. 체험은 문자 그대로 협회나 길드에 임의로 들어가서 그곳의 일을 체험하는 것을 말한다.
나는 아마도 협회에 들어갈 것 같다. 중간고사 때 김은정이 나에게 오라고 했었으니까.
“시우는 여름방학 때 계획 있어?”
임나연이 기대 어린 눈빛으로 나에게 물었다.
“체험 때문에? 난 아마 협회에 들어갈 것 같은데.”
“어? 진짜? 혀, 협회 말고 우리 길드는 어때? 우리 길드에 오면 딴 건 몰라도 시우 대우는 엄청나게 잘 해줄 수 있어. 아마 시우가 받을 수 있는 혜택 중 가장 좋게 줄 걸. 우리 아빠가 시우 관심 있게 보고 있거든.”
그건 너랑 친해서 그런 게 아닐까.
목구멍까지 나오는 말을 삼켰다.
그나저나 임나연의 아버지가 관심 있게 나를 보고 있다니. 엄청나게 부담스러운 관심이었다.
“그, 으래? 권유해준 건 고마워. 잘 생각해볼게. 근데 그분도 나 협회에 추천해준 거 무리하신 거라.”
무리하지 않았다. 세계를 뒤져도 100명도 채 안 되는 최상 격의 영웅이다.
한 명 한 명이 걸어 다니는 핵병기이며 한 시간이면 소도시를 폐허로 만들고, S급 임무를 단신으로 막아내는 괴물이다. 그 정도의 인물이 한 명 추천해준다고 협회에서 뭐라 하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임나연의 부탁을 아무것도 없이 거절하지 않아서 살짝 거짓말을 했다.
“하긴 지명권은 꽤 소중하니까.”
임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혹시 방학 때 시간 언제 괜찮아? 체험 시작하면 방학 시작하고 일주일 뒤에 있으니까 그사이에 같이 놀래?”
그러고 보니 저번에 바다에 가자고 했었지.
아마 바다에 간다면 해외 쪽으로 가는데 내 생각대로라면 이벤트로 갈 확률이 높았다.
“그게 좋을 것 같다. 방학 시작하고 수요일 어때? 평일이면 사람들도 적을 테니까.”
“그러자. 다른 애들한테도 말해 둘게!”
임나연을 물리 났다. 한숨 돌리려니 정한서가 교탁 앞으로 가는 것이 눈에 띄었다.
“자 다들 주목.”
손뼉을 치며 교탁 앞에서 정한서가 모두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다들 알다시피 이제 기말고사가 끝났고, ‘축제’가 남은 것은 알지? 반 대항전이니까 다들 무조건 한 가지씩 들어가야 해~.”
“아, 진짜?”
여기저기서 귀찮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정한서는 능글맞게 웃으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다들 너무 그러지 말고. 좋아하는 애들한테 어필도 될 수 있잖아. 그리고 교장 선생님이 상품도 걸었다 하더라고. 이거 잘하면 좋은 영약이나 아티팩트를 얻을 수 있다? 다들 기회라고.”
여기저기서 괜찮다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나도 영약은 좀 끌리기는 했다. 근데 영약이란 것은 좋다고 함부로 아무거나 섭취하면 탈 나기 좋았다.
모든 신체에는 잠재능력이란 것이 있다. 영약은 그것에 한계를 더해주지만, 영약 역시 한계가 있다.
그렇지 않았으면, 능력치를 세 자릿수까지 올려서 마신을 죽일 수 있었으니까.
아마 앞으로 잘해봐야 내 육체는 영약 3~4개가 한계일 거다. 내가 가지고 있는 육체, 음양체를 태극 지체로 올라가는 순간 1~2개로 끝날 거고.
“……노래는 임나연이하고 김하린, 한종우. 춤은 지아? 좀 이외긴 하네. 하긴, 지아는 육체 능력도 좋으니까. 그럼 이제 시우만 남았네?”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나는 정면을 바라보았다. 시선이 순간 나에게 쏠려 있었다. 기대감 어린 눈빛들이 느껴졌다. 어느새 다들 종목하고 장기자랑을 택했다. 나는 비어있는 칸을 보았다.
“……자, 잠깐만.”
목소리가 떨렸다. 윤승하로 플레이하면서 이벤트성으로 일부 악질 유저들이 하는 이벤트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당연히 그곳에 윤승하가 들어갈 거라 생각했는데…….
“크, 여자애들이 어쩐지 엄청 적극적으로 하더라. 다 시우 여장하는 거 보고 싶어서 그랬구나?”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지아나 임나연, 윤승하조차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심지어 은수아나 윤채린까지. 여자 쪽은 다 기대 어린 눈빛이 있었고, 남자 쪽은 통쾌하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허허.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한눈판 게 잘못인 건 맞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나이에 여장이라니.
***
“이야, 시우. 여장하게 된 소감이 어때? 아, 그러고 보니 시우는 여자 이름으로 조금 그렇지? 이 누나가 여자 이름이라도 지어줄까? 시아는 어때? 이시아. 크, 내가 생각했지만, 내가 작명 센스가 좀 있어.”
“…….”
윤채린이 악동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내 몸을 팔꿈치로 툭툭 두들기면서 이야기했다.
누가 누나지? 나보다 생일도 느린 주제에. 전생의 나이까지 합치면……후, 말을 말자.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윤채린을 무시했다. 원래 놀리는 것도 사람이 반응하지 않으면 재미없는 법이었다.
“야야, 이시아. 속 좁게 자꾸 나 무시하는 거야? 자꾸 그러면 언니는 슬퍼요.”
“…….”
이런 여동생 같은 년이…!
“근데 넌 왜 자꾸 따라오냐.”
“따라가다니, 난 이쪽에 나름 볼 일이 있어서 온 거라고.”
윤채린이 킥킥거리며 말했다.
“무슨 볼일인데?”
“후, 들으면 놀랄걸? 이 언니가 도대체 뭘 구해왔냐면 말이야, 우리 시아는 정말 깜짝 놀라서 자빠질 그런 무시무시한 물건을 구해왔거든. 듣고 너무 놀라서 심장이 정지하면 안 되니까, 청심환 하나 먹고 들을래?”
“…….”
윤채린이 기다란 황금빛의 머리를 쓸곤, 한쪽 손으로 초대장 포장지를 들며, 우쭐거리는 표정으로 말했다.
“무려 검주님에게 1:1 대련을 받을 수 있는 초대권을 받아왔지. 이제 곧 방학이라, 우주최강천마님이 될 이 몸을 모시기 위해서 협회에서 ‘체험’으로 검주님과 대련 받을 수 있는 초대권을 받았다, 이 말이야. 그것도 뇌광님께서 주셨지.”
아, 그러셔.
어쩐지 오늘 손님이 한 명 더 있을 거라고 넌지시 얘기해주더니 다 그런 이유가 있었나.
“어때 부럽지? 부럽지? 갖고 싶겠지만, 이건 한 장에다가 1인용이라서……우리 시아 동생은 같이 못 가겠지만…이 몸이 검주님에게 한 번 찔러볼게. 너 정도면 진짜 엄청난 재능 충이니까 마음 넓으신 검주님이면 같이 훈련을 받을지도 몰라.”
윤채린이 우쭐거리며 말했다.
“뭐, 안되더라도 너무 걱정하지는 마. 이 몸은 먼 훗날 천상의 마를 개화해서 천마가 될 여자니까. 품 넓은 도량으로 검주님에게 배운 걸 너에게도 가르쳐 줄 수 있어.”
“아, 네…….”
“뭐야, 너 반응이 시큰둥하다? 검주님이 얼마나 대단한지 몰라서 그러는 거야? 수많은 마인들을 퇴치하고, 이번에 중국에서도 마인 연합 퇴치에 가장 크게 활약하신…….”
윤채린이 쫑알거리는 것을 무시하고 나는 근처에서 여성용품을 파는 곳으로 갔다.
“아, 맞다. 선물은 역시 여성용품이 좋으려나?”
윤채린도 따라서 왔다. 나는 선물을 고르기 위해 고심했다. 남다윤이 윤채린보다 못 가르친다지만, 그래도 그녀는 나에게 있어 소중한 인맥 중 하나였으니까. 그리고 그녀가 아예 못 가르치는 것도 아니었다.
“남다윤 님도 역시 여성이시니, 향수가 좋겠지. 아니, 그래도 향수는 너무 많으실 것 같은데…….”
고민하는 윤채린을 무시하며 나는 브로치 하나를 골랐다. 저번에 보니까 먹으라고 준 마카롱도 마법이 걸린 아티펙트에 고민하였으니, 그녀에겐 먹을거나 사용하는 것보다 이런 액세서리가 더 나을 거라는 계산이 있어서였다.
‘그러고 보니 김은정한테 구할 술도 사야 하는데.’
협회에서 일하는 뇌광은 술 중독자라 불릴 정도로 술을 좋아했다. 게임 팬아트 란에서도 그녀가 트레이닝 복을 입고 집 한쪽에서 술을 혼자 홀짝이는 팬아트가 많을 정도였다.
최상격의 영웅인 만큼 그녀는 온갖 술을 진상 받아 입이 까다롭지만, 상관없다. 나는 그녀가 좋아하는 술의 레시피를 알고 있고 희대의 사기 특성 천수를 가지고 있으니까.
“야, 야. 넌 검주님이 뭘 좋아할 것 같아?”
“저건 어때. 남자들이 좋아하는 여성 1위 향수.”
“하, 넌 검주님에 대해서 진짜 모르는구나. 검주님은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한 상품같은건 안쓰신다고.”
저번에 보니까 그건 또 아니던데.
남자를 유혹하는 관련 상품 한가득 쌓여있던것을 떠올렸다.
“검주님은 남자들이 쳐다봐도 그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고고한 한 마리의 학이시라고.”
그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나를 잡아먹을 것처럼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후, 어쩔 수 없지. 내가 나중에 톡으로 검주님에 대한 정보 다 줄 테니까. 잘 알아보렴. 보니까 머리도 좋은 것 같던데. 공부만 해서인지 영웅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구나.”
윤채린은 그렇게 말하면서 저번에 내가 사 갔었던 코랄 색 립스틱을 골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