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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나에게 최면어플을 사용한다-74화 (74/298)

〈 74화 〉 윤승하(3)

* * *

윤승하는 마음이 조금 들떴다. 그와 동시에 어두운 기분이 들었다. 질척질척한 감정이었다. 옛날에 사귄 ‘친구’였던 것과 이시우가 변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그럴 리는 없을걸. 걔 옆에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

“그렇게 많아?”

“이시우에게 확실히 호감을 표하는 애가 임나연에다가 이지아잖아. 요즘 김하린도 관심 있는 것 같던데. 세 명 다 능력 좋고, 엄청 이쁘고. 누구처럼 가슴 사이즈가 72도 아니고.”

“난 그런 거 없어도 인기 많아.”

“많겠지. 여자들한텐.”

윤채린과의 실랑이가 떠올랐다. 윤승하는 잠깐 한숨을 쉬었다. 윤채린의 민감한 발언에 욱해서 말한 것이지만, 그녀가 말한 것 중 틀린 것은 없었다.

이지아의 성장세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 성장세를 유지한다면 기말고사 때 즈음 자신과 겨룬다고 쳤을 때, 자신이라 해도 이지아와 마법 하나만을 겨루자면 무조건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상성의 문제도 컸다.

윤승하가 사용하는 마법은 안정성이 뛰어나다. 다른 말로 하자면 교과서적인 마법이었다. 윤채린의 말을 빌려보자면 틀에 박힌 마법이었다.

반면에 이지아의 마법은 어떤가.

윤승하는 이지아의 마나를 떠올렸다.

그토록 ‘흉악한 마나’는 처음 보았다. 그것은 마인들이 쓰는 마?나 윤채린이 사용하는 마의 힘과는 달랐다. 마인들이 쓰는 힘의 느낌은 지저분한 하수구였다. 윤채린이 사용하는 힘은 폭주하지만 정제된 힘이었다.

이지아의 마나는 다른 마법사들의 마나를 ‘잡아’먹는다. 흉포하게 날뛰는 마나는 마법사들의 천적이었다.

이지아를 마법으로 압도하려면, 은수아처럼 이능과 결합한 마법식을 창조하거나, 압도적인 마나로 찍어누르는 수밖에 없었다.

이지아의 배경 역시 만만치 않다. 이쪽 업계에 몸담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마도 명가의 딸 중 한 명.

임나연은 어떤가. 윤승하랑 임나연이 싸우면 수만 번을 싸운다고 할지라도, 임나연이 이길 확률은 없었다.

그러나 임나연의 진가는 무력이 아니었다. 히어로 아카데미의 인원 중 특출난 배경을 자랑하는 몇몇이 합쳐야, 비빌 수 있는 압도적인 배경이 진짜였다.

윤승하랑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어마어마한 배경이 있었다.

대한민국 재계 1위 회장의 유일한 외동딸. 그거 하나로도 윤승하와 윤채린이 합해도 대적하지 못할 배경이었다.

그에 반해 김하린은 꽤 만만했다. 무력 면에서 뛰어났지만, 가진바 배경이 별로였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이들에게 없는 유틸성을 가지고 있었다.

딴에는 힘을 숨긴다 했지만, 광익을 본 것만으로도 윤승하와 윤채린은 어느 정도 짐작했다. 저건, 적으로 만들면 까다로울 것 같다고.

제공권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은 그러한 의미였다. 무엇보다도 저건 속도가 너무 빨라서 대응하기도 힘들었다.

"주변에 저런 여자들이 널려있는데, 굳이 남자 같은 너를 택할까? 처신 잘하라고, 견제받지 않으면 다행이지."

"아 좀!"

윤채린의 설득 아닌 설득에 윤승하는 결국 설득당했다. 이시우는 괜찮을 것 같으니 이시우에게는 말하기로.

오히려 이시우에게 정체를 말하는 것은 히어로 아카데미에서 정체를 숨기기 용이하다는 것의 다른 의미일지도 모른다. 이시우 같은 선인이라면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숨겨줄 테니까.

윤승하는 거기까지 생각하니까, 가슴이 조금 두근거렸다.

살면서, 자신이 남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란 것을 말하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처음에는 자신이 ‘친구’라고 생각했었던 사람에게.

끝은 파국으로 끝났기에 지금은 생각만 해도 불쾌하고 힘들지만, 이시우는 다를 거다.

"정 불안하면 최면어플 쓰던가. 그거 짜가지만 시우한테 효과 있지 않나?"

"최면어플?"

불현듯 학기 초에 있던 일이 생각났다. 임나연이 장난스레 최면어플로 그에게 최면을 걸었을 때, 멍했던 눈동자가.

"걔 특성이 정신 쪽에도 취약하니까 걸릴 것 같은데. 함해볼까?"

장난스레 반짝이는 눈동자. 악동 같은 미소에 윤승하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최면은 좀…무엇보다 통한단 보장도 없고."

하지만. 윤승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단 다운로드를 받아보았다. 다운로드는 쉬웠다. 애초에 진짜가 아닌 장난으로 쓰이는 가짜 어플이니까.

"쩝, 재밌을 것 같은데."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저번에는 취향 아니라더니."

"외모가 말이 안 되잖아. 내 취향은 순애라서 취향이 아닐 뿐이지. 그리고 걘 주변에 여자가 너무 많아서 내가 계속 관리해야 할 것 같단 말이야. 너무 여리여리해서 밤일도 못할 것 같긴 해."

"……저번에 슬쩍 보니까 엄청나게 크던데."

"뭣, 봤어!?"

"……보지는 않았고, 슬쩍. 대충 이 정도?"

"파, 팔뚝의 삼 분의 이…?"

그렇게 소리의 정령으로 대화가 세어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자매들끼리의 음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을 때였다. 멀리서 기척이 느껴졌다.

조금 지친듯한 표정에 우수에 젖은 눈동자. 뒤에서 후광이 이는듯한 외모. 이시우였다.

****

비밀이라.

나도 궁금하던 참이었다. 나름 고인물이었지만, 윤승하의 비밀을 나름 안다고 자부했는데, 게임 속에서는 윤승하의 비밀을 이상할 정도로 숨겼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했다.

윤승하는 사실 여자라는 추측부터, 페널티가 사실 나중에 몰아서 받는 게 아니냐 하는 것까지. 그러나 게임 속에서는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아서 어디까지나 다 추측에 불과했었다.

‘애초에 엔딩부터가 거지 같아서.’

뜬금없이 여주인공들이 전부 정실 탈락하지를 않나, 그거 막겠다고 진 엔딩을 찾았더니 마신이 강림해 몰살하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기숙사 방 안으로 들어갔다. 윤승하가 소리의 정령으로 무슨 막 같은 것을 만들었다.

“혹시 모르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모르니 천수를 이용해서 방안을 살폈다. 도청 장치 같은 게 있을 리 없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10분 정도 방안을 살폈다. 다행히도 없었다.

“어떤 이야기를 할 건데?”

“음,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윤채린이 잠깐 고민하는 투로 이야기했다.

“여러 가지 말하고 싶은 건 있지만, 가장 핵심만을 말하자면 윤승하의 정체야.”

“승하?”

“응, 승하.”

윤채린이 윤승하를 잠깐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내, 내가 말할게.”

“네가? 음…….”

윤승하의 말에 윤채린이 나를 잠깐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난 밖에 있을게. 혹시 모르니까.”

그렇게 말하며 윤채린이 나갔다. 왜 온 거야. 아무튼 윤채린이 나가고 윤승하가 떨리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사실 그동안 숨겨왔던 사실이 있어.”

윤승하가 숨을 크게 들이쉬고, 말했다.

“혹시 여자인 거?”

“응, 내가 사실 여자……알고 있었어?”

윤승하가 떨리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지. 옷 갈아입을 때 얼굴 슬쩍 붉혀서 처음엔 부끄러움 많이 타는 줄 알았는데, 행동거지부터가 다르니까. 확신한 건 저번에 족발을 시켰을 때……””아아아악!!””

내가 무어라 말을 하려고 하자 윤승하가 비명을 질렀다.

“그, 그 그때부터 아, 아알고 있었다고?”

“그렇게 대놓고 보여줬는데, 누가 그걸…….”

“아아아악!!!!”

아직도 생각난다. 앙증맞은 가슴에 여리여리한 피부.

글래머가 취향이었지만, 가끔 그런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윤승하는 얼굴이 엄청 받쳐주기도 했고. 솔직히 은발에 청안은 좀 반칙이라고 생각한다.

“이, 잊어!”

“잊어버리라고 해도.”

그런 강렬한 기억을 잊기는 쉽지 않은데.

“이, 잊어잊어! 아무튼 잊으라고!”

나는 조금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윤승하가 저렇게 떼를 쓰는 장면은 본 적이 없는데, 처음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말하자면 미안하지만, 조금 귀여웠다.

“이, 잊을 수 없다면!”

윤승하가 홍시같이 벌게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설마.’

아무리 그래도 살인멸구는 아닐 거다. 윤승하가 용사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선함을 가진 윤승하는 게임 속에서 가끔 호구 짓을 할 때가 있을 정도로 착했다.

‘사실 게임을 하다 보면 퀘스트 때문에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호구가 되기는 하는데.’

예를 들어 단풍잎 이야기에서 세상을 구한 용사가 갑판 청소를 한다던가 말이다.

그러나 내 예상은 달랐었다. 그녀가 핸드폰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들이밀었다.

분홍빛과 보랏빛이 소용돌이치는 문양.

그렇다.

최면어플이었다.

***

‘걸린 건가.’

윤승하는 반신반의한 눈으로 이시우를 바라보았다.

호수같이 깊은 눈동자가 초점 없이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윤승하는 별 무리를 담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상한 점은 없었다. 호흡도 규칙적이었고, 근육이나 심장의 움직임 역시 그대로였다.

그러니까. 이시우는 최면에 걸린 것이다.

이시우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꿀꺽.

윤승하는 침을 삼키고 말했다. 최면에 걸린 것 같지만, 혹시 모르니까.

“이시우는 오른팔을 들어보세요.”

이시우가 오른쪽 팔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어, 언제부터 내가 여자라는 걸 의심한 거야?”

“옷 갈아입을 때…….”

이시우의 중얼거림에 윤승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이시우가 둘이서 있을 때, 옷을 슬쩍 벗을 때 부끄러워서 얼굴이 붉어진 적이 있었다.

“그리고 화장품을 따로 쓰고, 기초 화장품을 세 가지 이상 쓰는 거랑 샴푸랑 린스를 따로 쓰는 거에서”

윤승하는 경악했다.

남자들은 기초 화장품도 안 쓰고 샴푸랑 린스를 따로 쓰지도 않는 건가…?

아, 이런 것에 경악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지. 일단 뭐가 되었든, 이시우는 최면에 걸린 것 같았다.

“이, 이이시우는 제 알몸을 본 것을 잊어버립니다.”

“잊어버린다…….”

일단은 이걸로 한시름 놨다. 그러다가 윤승하는 이시우를 쳐다보았다.

너무 충격적인 사실에 이시우에게 최면을 걸어 윤승하의 비밀을 말하지 못했지만, 윤승하는 어렸을 때부터, 남장을 해왔다.

그녀가 사실 여자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늘을수록, 그녀의 수명이 깎여나가며, 재능마저 깎여나간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녀는 지금까지 여자임을 숨겨왔다. 방 안에 둘뿐인 상황. 그리고 최면에 걸린 이시우.

솔직히 말하자면 윤승하는 이시우에게 호감이 있었다.

조금 속물적일지 모르지만, 압도적으로 뛰어난 외모에 그에 뒤지지 않는 두뇌와 능력. 성장세도 매우 가파르며 무엇보다도 그녀를 굉장히 챙겨준다.

여자라고 해서 성욕이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윤승하는 다른 여자들보다 그동안 ‘억눌려’있었다.

꿀꺽.

윤승하는 침을 삼키곤. 열망 섞인 눈으로 이시우를 바라보았다.

'조, 조금만 만져도 될까?'

나도 내 가슴을 보였으니까, 그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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