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 윤승하(2)
* * *
실로 우발적인 행동이었다.
그러나 윤승하는 당황하지 않았다.
아니, 당황했지만 당황하지 않은 척을 하였다. 이미 엎질러진 물. 이시우가 자신을 어처구니없는 눈빛으로 보고 있었지만, 윤승하는…!
‘나는 도대체 무슨 짓을!’
마음속으로 경악해 했다. 평소라면 결단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지만 너무나도 당황한 나머지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질러 버렸다.
전적으로 이시우의 잘못이었다. 9시에 온다고 했으면서 벌써 온 이시우의 잘못이었다.
윤승하는 침을 삼키며 이시우를 살폈다.
그러나 이시우는 어느새 다시 평온한 표정으로 TV 채널을 바꾸었다.
쇼오오오오오비이이이이!!!!
이번에는 게임 채널인지 해설자가 선수의 이름을 울부짖고 있었다. 윤승하는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이 복잡해졌다.
내가 매력이 없나…?
아무리 가슴 사이즈가 72라지만, 모든 여자가 부러워할 매끈한 피부에 새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다. 이따금 이지만, 빌런들을 상대할 때, 하급의 빌런들이 음흉한 시선으로 자신의 몸을 쳐다본 적이 있을 정도였다.
그때의 기억은 굉장히 혐오스럽고 불쾌해서 온몸을 가리는 옷들을 자주 입었다면, 이시우의 시선은...윤승하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윤승하 입장에서는 정말로 다행인 일이었다. 이시우는 자신을 남자로 생각하고 별 관심 없어 보였으니까. 하지만…하지만…!
윤승하는 뭐라 말하려는 걸 참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이시우는, 머리가 끔찍할 정도로 좋았다.
얼마자 좋냐고 묻는다면, 교수들 사이에서는 이미 세계 최고의 두뇌라고 칭송받고 있었고, 그것으로 인해 이시우가 있는 수업은 충실할 정도였다.
혹시 자신이 실수하면 학생들에게 비웃음당하지 않을까 봐, 하는 마음에.
그 덕분에 필기시험의 난이도가 평소 필기와는 다른 무시무시한 난이도로 나왔지만, 다르게 말하면 이시우의 도움을 받으면 다른 학생들과의 성적 차를 압도적으로 벌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윤승하는 이번에 룸메이트가 되면서 이시우와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실제로 던전을 같이 가고, 이시우가 맛있는 것을 사주고 자신은 여러 가지 잡다한 일을 맡으면서 호의적인 시선을 가끔 보내기도 했다.
그런 두뇌의 소유자니까 조금만 단서를 줘도 바로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을 거다.
윤승하는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웠다. 평소에 나른한 표정을 짓고, 옷을 갈아입었다.
***
다행히도 족발이 와서 어색한 분위기는 깨졌다. 평소처럼 상다리를 피고 윤승하가 행주를 가져와 상을 닦았다. 나는 그동안 족발 포장지를 뜯었다.
‘이제 어쩌지.’
식기를 가지러 부엌으로 향한 윤승하를 보며 생각했다. 의도치 않게 윤승하의 알몸을 봐버렸다.
아니, 봤다기보다는 윤승하 혼자 자폭해서 보여준 것 뿐이었다. 나는 잘못한 게 없지.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나는 쭈뼛거리며 나에게 오는 윤승하를 바라보았다. 사파이어를 닮은 푸른색의 눈동자가 흔들거렸다.
“빨리 와. 족발 식겠다. 식으면 맛없어.”
“으, 응.”
윤승하가 당황해하면서 근처에 앉았다. 나는 젓가락으로 딸려온 비빔국수를 비볐다.
나는 불족발을 하나 집어 먹었다. 맛있네. 잘하는 집이었다. 나중에 리뷰 5점을 줘야겠다.
그러면서 조용히 냠냠거리면서 족발을 학살하는 윤승하를 바라보았다.
윤승하가 여자라. 오늘부로 확신했다. 윤승하는 여자다. 만일을 대비해서 플랜 B를 만들어두기를 잘했다.
‘사실 일정에 하나가 더 추가되는 것 뿐이지만.’
내 계획을 전면적으로 수정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나 윤승하는 자기가 여자인 것을 숨기고 있다. 아마도 높은 확률로…아니, 확실하게 윤승하가 가진 특성의 페널티 일 것이다.
종류는 아마도 자신이 여자인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면 알수록 재능이 깎여나가는 종류의 것일 것이다.
내가 이것을 예상할 수 있는 이유는 겉으로 보기에는 페널티가 없어 보이지만, 장점이 너무 큰 경우가 그러했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윤승하가 여자인 시점에서 어떻게 해서든 그녀의 재능을 모방해야 했다.
그녀의 재능은 정령술에 특화되어있지만, 다른 재능을 상승시키는 것도 무시 못 할 재능이다. 정령술이 중점인 애가 은수아보다 마법을 조금 ‘못’하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된다.
윤채린의 천상의 마가 모든 특성과 어울리지 못하는 특성이라면 윤승하의 특성은 모든 특성과 두루두루 잘 어울리는 특성이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서든 친밀도를 높여야 했다.
‘어떻게 꼬셔야 할까.’
나는 윤승하를 어떻게 꼬실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이대로 천천히 꾀어도 되겠지만 아쉽게도 룸메이트 기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슬슬 반파되었던 건물이 다시 완공되어가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윤승하도 시간이 지나서 냉정해지면 의아함을 느낄 것이다. 바로 앞에 가슴을 보인 건 너무 흥분해서 그런 것이니까.
‘근데 이건 내가 눈치채면 좀 그런데.’
특성의 페널티 탓이다. 누군가에게 알리는 순간 바로 페널티가 가해진다.
그 페널티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어떤 때는 기절할 정도의 고통이 가해지기도 했다.
그러니까 우선.
“나도 좀 먹자.”
어느새 절반 이상 사라진 족발부터 입에 넣어야 했다.
***
훈련실에서 기숙사로 향하는 길,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임나연과 이지아였다.
쟤 내는 항상 달라붙어 있는 것 같네. 둘이 뭔가 심각하게 이야기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임나연과 이지아도 나를 발견한 모양인지 손을 흔들며 내 쪽으로 왔다.
“시우도 훈련하고 오는 길이야?”
“응, 너희도?”
“응. 요즘 마법 수련이 좀 막혀서, 기분전환 겸 체력 단련하러 왔지. 운동하면 상쾌하거든.”
마법사가 운동을 좋아하기는 힘들지만, 이지아는 아카데미에 들어오기 전까지 육체를 단련하여서 가능한 이야기였다. 실제로 무투에도 어느 정도 재능이 있어 최하위권과 무투로 싸워도 어느 정도 승률을 자랑한다.
나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나는 운동 후 상쾌하다던가 운동을 하지 않으면 뭔가 찌뿌둥한 것을 느낄 수 없었지만, 게임 속 세계로 떨어지면서 그게 어느 것인지 대충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까 끝내고, 잠깐 나갔다가 오는 길. 집에서 보내준 게 있어서. 시우는 이제 기숙사에 가는 거야?”
“아니, 잠깐 들를 때가 있어서.”
원래대로라면 기숙사에 가서 쉬거나 마력 연공을 했지만, 요즘은 윤승하랑 마주치기 어색해서 그렇다. 내가 말하기는 뭐 했고, 윤승하 쪽에서 말을 걸어주면 좋겠는데, 벌써 1주일째 말이 없었다.
그래서 기숙사에 있기가 굉장히 어색했다.
“아 참! 그러고 보니 그거 들었어? 남다윤님이 빌런을 퇴치하고 내일 인천 공항으로 한국에 귀국하시는 거?”
“어, 들었어. 원래 중국에서 의뢰받았다가 갑자기 백발마녀가 난입해서 백발마녀까지 같이 잡았다고 엄청 난리더라.”
남다윤한테 직접 들었다. 온갖 애교떠는 문자와 나를 보고 싶다는 문자와 뭐 갖고 싶은 거 없냐는 문자가 한가득 와서 좀 당황하기도 했다.
갖고 싶은 것도 별로 없고, 왠지 좀 꺼림직해서 빨리 보고 싶다고 문자 보냈다가 2시간가량 전화기를 붙잡았었던 기억이 있었다.
나를 생각하면서 여러 가지 기념품 등을 샀다는데 사기 같은 거나 안 당했으면 좋겠는데.
“이번에 백발마녀가 엄청 사상자를 냈다고 하더라고. 추정 사망자는 1천여 명이 넘고, 실종자는 그 다섯 배가 넘어간다던데.”
“그래서 이번에 훈장 같은 거 중국에서 잔뜩 받았다고 하더라고. 훈장하니까 떠올랐는데 리가에서……”
그렇게 이지아랑 임나연이랑 적당히 대화하고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
금빛으로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이 보였다. 아직은 자칭 천마, 윤채린이 있었다. 윤승하도 옆에 있었고. 이렇게 보니까 묘한 광경이기는 했다.
둘이 굉장히 심각한 것을 이야기하는 듯, 표정이 굳어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윤승하만 굳어 있었고, 윤채린은 웃음을 꾹 참으며 심각한 표정을 유지해서 얼굴이 망가져 있었다.
…아무래도 저번의 일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해서 제삼자 입장에서 보면 웃긴 일이기도 했다.
“이야,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승하야, 시우 왔다.”
윤채린이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 윤승하가 눈을 굴리고 있었고, 나는 살짝 어색하게 웃었다.
“무슨 일이야? 동생 보러 온 거야?”
“우리 승하 고민도 들어줄 겸 왔고, 네 얼굴도 보려고 왔지~.”
윤채린이 장난스레 답했다.
“시간 있어? 없으면 만들어. 지금부터 엄청 중요한 이야기를 할 거니까. 너에게도, 윤승하에게도 중요한 이야기야.”
장난스러운 목소리였지만, 표정은 진지했다. 내가 지금 안가면 두들겨 패서라도 데려가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진짜 그러지는 않겠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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