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 불청객(4)
* * *
이솔렛은 몰아치는 휘황찬란한 칠색 빛의 검을 막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은수아랑 같은 조 행동을 하던 애들이 내빼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결계 마법을 완성해서 가둬야 했지만…이것도 나쁘지 않다.
몸을 떨며 공포에 젖은 얼굴을 한 근육질의 소년이 보였다. 저건 건드릴 필요도 없겠다.
소란이 커지고 있다. 이곳에 오기 전에 몇 가지 주의사항을 들은 것이 있다. 이곳에는 이미 중격이라고봐도 손색이 없는 학생들이 있다고.
금발의 적안을 가진, 천아 윤채린. 은발에 청안을 지닌 정령사 윤승하. 그 둘은 눈앞에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은수아보다 더 뛰어나다고 했다. ‘싸우는 법’을 알고 나이답지 않게 노련하다고 하였다.
“쫄래쫄래 도망치지 말고 덤벼!”
은수아가 흑색 빛의 불꽃과 번개를 몸에 두르고 자신에게 돌격했다. 이솔렛은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지팡이에 적힌 술식이 발동된다. 파마의 술식. 보랏빛이 은은하게 퍼졌다.
그러나 은수아의 불꽃과 번개는 그것을 꿰뚫고 이솔렛을 향했다. 이솔렛은 다급한 표정을 지어 지팡이로 막았다. 지팡이에 새겨진 마법이 전개되며 반투명한 보호막을 만들어냈다.
이솔렛은 떨리는 눈빛으로 은수아를 바라보았다. 어째서 바로 앞에 마법이 파훼 되지 않은 거지?
“…뭔 짓을 한 거냐?”
“왜? 당황스러워?”
은수아가 입꼬리를 올렸다. 언제든지 자신을 죽일 수 있다는 듯, 여유로운 표정이 바뀌었다.
조금 다급한 표정.
그러나 은수아의 상황도 좋지 않았다. 파마의 마녀를 막기 위해 마법에 색깔을 입히는 게 아니라 색을 융합했다. 평소에 은수아가 쓰는 방식이 코팅이라면 지금 쓰는 것은 이능과 마법을 섞어서 이용한다. 그 결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파괴력도 뛰어났고, 투사체의 속도 역시 비교가 불허할 정도. 그렇지만 마냥 장점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생각보다 힘들어.’
생각보다 심력의 소모가 심했다. 머리가 조금 어지러웠다. 은수아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서 칠색 검을 높이 들어 올렸다.
우우웅!
칠색의 검이 부르르 떨었다. 칠색 검에 맞춰 공간이 일그러졌다. 공간조차도 뒤흔드는 파멸적인 힘. 은수아는 그것을 그대로 휘둘렀다. 위에서 아래로. 평범한 수직 베기. 그러나 결과는 평범하지 않았다.
참격이 공간 채로 격하며 칠색 찬란한 힘이 쏘아졌다.
그것을 본 이솔렛이 빠르게 품속에서 껍질을 꺼내고, 그것을 던졌다. 카아앙! 공간 전체가 흔들리는듯한 소리가 일어났다.
‘쯧.’
이솔렛은 속으로 혀를 차며 은수아를 보았다. 은수아를 상대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귀찮았다.…암살을 의뢰한 장로들이 하는 말보다 은수아는 좀 더 강했고, 까다로웠다.
아니, 어쩌면 힘을 숨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은수아는 그런 성격이니까. 어렸을 때부터 무언가 ‘숨기는’ 것을 좋아했고, 또래 여자애들이 좋아하는 분홍색, 하늘색 같은 색감보다는 검은색을 더 좋아하며, 이상한 일본 노래나 들으면서 ‘이 노래의 힘을 모르는 당신들이 불쌍해’라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 괴짜였으니까.
그것 때문에 성장 속도를 올려주는 희귀한 노래인가, 하는 의심이 있어서, 상아탑 전체에서는 한동안 이상한 일본 노래가 울려 퍼졌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남들에게도 비밀이지만 이솔렛 역시 그 노래를 들으면서 학업에 매진한 적이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만…그 노래에는 아무런 힘도 없었다.
이솔렛은 잠시 거리를 벌리고 숨을 골랐다. 아쉽지만…이대로 도망쳐야겠다.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끌린다. 은수아를 이길 수 있겠지만, 그사이에 소음을 듣고 온 학생들이 올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긴 여왕의 영토야.’
요정족을 이끄는 요정여왕.
세계수의 분신인 그녀의 힘은 영토에서 극대화된다. 설사 도시를 한순간에 초토화하는 최상격의 일각일지라도 영역 안에서 어린애처럼 제압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요정의 여왕이다.
비록 모종의 사건으로 상처를 입어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지만, 그녀는 강하다. 자신쯤은 한 호흡에 수십번을 죽일 정도로.
‘어떻게 할까.’
이솔렛은 머리를 굴렸다. 이솔렛은 혹시나 싶어서 가져온 아티팩트들을 떠올렸다. 솔직히 말해서 일각수의 껍질 하나로도 충분하지만, 학생들의 전력이 강하다는 소식에 혹시나 싶어서 가져온것들이 있었다.
그것들을 꺼내려는 순간이었다.
아까 전, 육체파로 보이는 소년 대신, 다른 소년이 앞에 섰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온 소년. 그 속도는 굉장히 위험했지만…반동이 큰 기술인 탓일까. 소년은 손으로 무릎을 짚으며 힘들어했다.
저 소년의 상태를 보아하니 더 쓸 수는 없는 모양이다.
그리고 소년이 얼굴을 든 순간 이솔렛은 몸을 휘청거렸다.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한 얼굴. 위험했다.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다리에 힘이 풀릴 뻔했다.
‘아니, 무슨.’
얼굴을 바라보았다. 은은한 광채가 이는듯한 피부. 호수를 닮은 깊은 눈동자. 전 자색으로서 수많은 미남미녀를 봐온 이솔렛이지만…저 소년은 지금까지의 그녀가 쌓아온 미의 가치관을 부술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분위기가 미쳤다.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홀리는 것 같은 분위기. 그것이 소년에게 있었다.
상황만 아니었다면 납치해서 감금하고 자신만 볼 수 있게 박제했을지도 모른다.
‘납치해서 도망칠까.’
순간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 잠깐의 순간. 소년이 무언가를 씹어 삼켰다. 그리고 아공간에서 꺼낸 창을 왼손에 쥐고 그것을 던졌다. 보랏빛의 뇌광이 번뜩이는 창이 자신을 향했다.
챙! 반투명한 막으로 그것을 막았다. 이솔렛은 창을 바라보았다.
창에 담긴 보랏빛의 뇌광에서 느껴지는 힘이 심상치 않아서 중급의 방어막으로 막았는데…이건.
‘얘도 만만치 않네.’
파괴력이 상상 이상이다. 이솔렛은 소년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외견만큼은 아니지만 뛰어난 능력을 갖춘 소년.
‘갖고 싶다.’
이솔렛은 그를 바라보았다.
***
이솔렛이 혀를 날름거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기분 나빴다. 하지만 나를 욕심 내기 시작했다. 이솔렛은 아름다운 것에 환장한다.
금지된 비술에 손을 대었으나, 이솔렛은 기본적으로 마인이다.
취미는 미남이나 미녀를 납치해서 박제시키는 것. 그렇다. ‘박제’다. 납치하고, 기절시킨다. 그다음에 내부에 충격을 가해 외부는 상처 하나 없이, 시체를 그대로 박제시킨다.
……내 외모라면 이솔렛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나는 단검을 꺼냈다. 단검 3자루를 손가락 사이에 끼고 단검을 던졌다. 가면을 쓰고 어검을 발동했다. 단검이 7자루로 늘어나며 이솔렛에게 향했다.
“엄호해줘!”
단검을 내던지자 은수아가 칠색을 들고 뛰쳐나갔다. 나는 당황했다. 나는 엄호에 자신이 없는데. 나는 무인인데. 그래도 이지아의 특성을 모방한 가면이 있다.
가면을 쓰자 마력이 들끓는다. 마도의 업은 마력을 폭주 시켜 불안정한 마력을 마법으로 바꾸는 것. 파괴력이 강해지고, 투사체의 속도가 빨라지며, 마력이 폭주상태라 디스펠을 하기에도 까다롭다. 보라색의 색을 받은 마법사가 마법사의 천적이라면 마도의 업을 지닌 마도사는 보라색을 받은 마법사의 천적이다.
그러나 제어가 힘들다는 단점이 모든 것을 좀먹는다.
그러나 나는 괜찮았다. 지식열람으로 빠르게 좌표와 계산을 설정한다. 천수를 이용해서 거리를 잰다. 그리고 아직 가면의 레벨이 낮았다. 마력이 이지아처럼 불안정하지도 않다.
[화염구]
[풍인]
[천둥검]
하급 마법을 연달아 펼쳤다. 화염의 구와 바람의 칼날, 번개의 검이 이솔렛을 향해 날아갔다. 이솔렛이 지팡이로 마법들을 가리켰다. 그러나 살짝 불안정해질 뿐 해제되지 않았다. 이솔렛이 눈에 띄게 동요했다.
“나이스!”
은수아가 외치며 몸에 흑염과 흑뢰를 둘렀다. 흑염과 흑뢰를 한데 뭉쳐 합치더니 그것을 창의 형태로 만들었다. 그리고.
“흑염폭뢰창???雪?!”
……기술명을 외치며 던졌다.
기술명을 외친 건 은수아인데 내 얼굴이 다 화끈해졌다. 나는 절대로 기술명을 외치지 말아야지.
콰아앙!
마법이 부딪치자 폭음을 동반했다. 쉴드에 살짝 금이 갔다. 이솔렛이 쉴드를 다시 만드는 사이에 은수아의 흑염폭뢰가 쉴드를 꿰뚫었다. 그리고 있는 힘껏 칠색을 휘둘렀다. 이솔렛이 다급하게 일각수의 껍질을 꺼냈다. 카아앙!
날카로운 소리가 동굴에 퍼졌다. 칠색이 조금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그러나 일각수의 껍질도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잡을 수 있겠다.
“힘만 무식한 년이!”
“뭐라는 거야, 아줌마가!”
은수아가 접근하자 이솔렛이 품에서 다른 것을 꺼냈다. 푸른빛의 깃털. 빙조의 깃털이었다. 저게 왜? 라는 의문이 들기 전에 그것을 은수아에게 날렸다.
“막지 말고, 피해!”
“알았어!”
저건 막으면 안 되었다. 칠색같이 파괴력이 무식한 것들을 봉인하기 위한 아티팩트니까. 은수아의 움직임에 이솔렛이 혀를 찼다.
품에서 다른 아티팩트들을 꺼냈다. 화령의 팔찌, 대지의 묵주. 각각 불의 힘과 대지의 힘을 쓸 수 있게 도와주는 아티팩트였다.
가면을 바꿨다. 기린의 가면…은 쓰지 말고, 다른 거로. 아직은 폭주의 위험을 감수할 정도로 위험하지 않았다. 가면을 여러 겹 중첩해서 착용했다.
아공간에서 천변을 사슬 낫으로 바꾸고 그것을 던졌다. 어검을 이용해 세 자루의 검을 뇌광을 입혀서 던졌다. 세 자루의 검이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며 이솔렛에게 향했다. 이솔렛의 표정이 다급해졌다. 가장 위험한 건 은수아의 칠색이지만, 내 공격도 만만치 않다.
사슬 낫을 쳐내려고 마법을 전개했다. 재빨리 사슬 낫을 검으로 바꾸었다. 이번에는 단검. 사슬 낫이 사라지자 이솔렛이 당황했다.
이솔렛이 당황한 틈을 타서 은수아가 공격했다. 흑염으로 지지고 흑뢰로 방어를 뚫고, 칠색을 휘두르고. 나도 달려가서 검을 휘둘렀다.
조금씩 이솔렛을 밀어붙이고 있을 즈음, 이솔렛이 이를 악물었다. 도망치려는 타이밍이었다. 나는 재빠르게 마도의 업을 모방한 가면을 썼다.
“내가 도주를 막을게, 수아 넌 공격해!”
“알았어!”
지식열람을 이용하여 마력을 방사했다. 폭주하는 듯한 마나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이솔렛이 나를 홱 돌아봤다.
“귀찮은 짓을!”
이솔렛이 지팡이에 마법을 걸었다. 지팡이가 공중에 둥둥 떠다니자, 지팡이 위에 엉덩이를 붙였다. 비행 마법을 이용해서 탈출할 속셈이었다. 이솔렛은 이게 귀찮았다. 다른 마인이라면 우릴 제거해서라도 도망치려 하겠지만, 이솔렛은 그딴 거 없이 냅다 도망친다.
“은수아, 바인드 마법 좀!”
“알았어! 흑암 봉인검!”
은수아가 이솔렛을 향해 팔을 내뻗었다. 검은색의 마력이 은수아의 손에 머물더니 기다란 세 자루의 검을 만들었다.
나는 마력을 주변에 방사하면서 빠르게 이솔렛에게 향했다. 이솔렛이 이를 문 표정으로 술식을 짰다. 은수아의 검보다 더 큰 다섯 자루의 봉인검이 나타났다.
두 자루가 나를 향해 쏘아졌고, 세자루가 은수아에게 날아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마법을 쓰는 듯, 얼음의 창과 덩어리가 그녀의 주변에 생겨나고 있다.
보랏빛의 뇌광을 검에 둘렀다. 하나의 흑암검을 피하며 피할 수 없는 위치로 쏘아지는 흑암검을 베었다.
흑암검을 벤 다음 마력을 검에 잔뜩 불어넣었다. 검이 웅웅거리며 보랏빛의 뇌광을 한계까지 머금었다.
“흡!”
능력치를 올려주는 온갖 가면을 쓰며 천수로 거리를 재었다. 그리고 검을 던졌다. 어검의 효과로 반듯하게 쏘아진 화살처럼 일직선으로 이솔렛을 향해 날아갔다.
내가 날린 검 옆에서 은수아가 온갖 마법들을 날렸다.
이솔렛이 마법을 외웠다. 그러자 반투명한 푸른색의 사각형이 생기고, 아래의 벽이 크그극하며 커다란 벽을 세웠다. 그것들이 은수아의 마법과 내 검을 막아내었다.
원작보다 이솔렛이 귀찮았다. 하지만 괜찮다. 보험은 있으니까. 나는 이솔렛이 도주하는 동굴의 끝에서 보이는 소녀를 보며 외쳤다.
“김하린, 저거 처리해!”
“어, 어?”
내 말에 김하린이 광익을 꺼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 마인인 이솔렛은 김하린의 광익과 상성이 좋지 않다. 만전의 상태라도 김하린을 이기기는 힘드니까.
나는 만신창이 된 이솔렛한테 다가갔다.
“사, 살려줘! 나는 의뢰를 받았을 뿐이야!”
이솔렛이 우리를 향해 애걸복걸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인이기도 하지.”
검을 뽑아 들어 이솔렛의 머리를 날렸다. 머리가 날아가자 잠시 후 이솔렛의 신체가 파스스 부서졌다. 이솔렛이 있는 자리에는 검은색의 가루만을 남겼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