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 불청객(3)
* * *
어둠 달팽이의 입이 쩍 벌어졌다. 어둠 속에서 날카로운 톱날 같은 이빨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세미야가 빠르게 방패를 세우고 앞으로 달려갔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아공간 팔찌에서 단검을 꺼냈다. 그리고 가면을 쓰고 어검을 발동한다.
지잉
단검이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셋으로 복사된다. 은빛의 궤적을 뿌리며 적에게 쏘아졌다. 마력을 최대한 아끼며 적을 붙잡는 것에 집중했다. 어차피 김하린이 있으니 힘을 미리 뺄 필요가 없다.
번쩍.
한순간 동굴에 환한 빛이 뿜어졌다. 거대한 황금빛을 뿜어내는 날개가 동굴을 환하게 비추더니 이내 거기서 깃털 다섯 장이 살랑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직후. 살랑거리는 다섯 장의 깃털이 쾅! 하는 폭발음과 함께 화살처럼 쏘아지며 금빛의 궤적을 그리며 달팽이 두 마리를 한 번에 꿰뚫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생각보다 보여주는 게 많네.’
조금 숨길 줄 알고 포메이션을 짰는데. 괜히 짠 것 같다. 나는 무안함을 감추며 주변을 보았다. 아야네랑 세미야가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정한서는 당황했지만 김하린이 어느 정도 힘을 숨기는 걸 예측했는지 금방 표정을 원래대로 돌렸다.
“헐, 하린이 뭐야. 장난 아니잖아~. 이번 던전은 하린이만 있어도 쉽게 가겠는데.”
정한서가 특유의 유들유들한 말투로 분위기를 환기했다.
“어, 엄청 강하시네요.”
“그러게요”
우리는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고 보니 이제 슬슬 나올 때가 됐는데. 어느 정도 길을 걷자 갈림길이 보였다. 정한서가 앞으로 나가려고 하자 나는 정한서를 막았다.
“잠시만.”
“응? 왜…….”
나는 주변에 돌멩이를 하나 주웠다. 오른쪽 길로 향하는 곳에 아주 미세하게 툭 튀어나온 곳을 향해 굴렸다. 돌멩이가 데구루루 구르자, 미세하게 튀어나온 곳이랑 부딪쳤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
정한서가 나를 놀란 얼굴로 바라보았다.
“어떻게 알았어?”
“그냥 이쯤 되면 슬슬 이런 게 있을까 해서 굴려봤지.”
나는 벽에 튕겨 나온 화살을 챙기러 걸어갔다. 마비 독이 발라져 있었다. 이것에 맞으면 학생 정도의 수준이나 신체 능력이 약한 마법사들은 꽤 효과가 좋다.
나는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어검을 이용해 보았다. 그러나 화살은 미동하지 않았다. 됐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아쉬워하며 아공간 팔찌에 화살을 넣었다.
“그럼 이제 갈까.”
“그러자.”
이후에 이따금 나오는 괴물들을 해치우며 우리는 앞으로 나아갔다.
***
은수아는 조에서 가장 앞에서 길을 걸었다.
보통 마법사는 중위에 서고, 사방에 전사를 두어 마법사를 집중적으로 보호하지만, 은수아는 그런 걸 필요로 하지 않는다.
동급의 무인보다 무예가 낮다지만, 그건 상대적일 뿐이다.
은수아는 무예 하나만으로도 어지간한 아카데미 학생들의 절반은 씹어먹을 수 있다.
‘적색하고 갈색이라.’
은수아는 아까 전, 이시우가 남긴 전언을 떠올려보았다. 적색하고 갈색이 상징하는 것은 불꽃과 대지. 그들은 각각 다른 이들을 밀고 있었다.
자신이 상아탑의 후계자가 되기 전에 후계자에 가까웠던, 달의 마력을 가진 소녀와 만능의 마력을 가진 소년을 떠올렸다. 재능도 있고, 배경도 좋았으며, 상위층에서 자라 예의도 있었던 후계자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압도적인 재능에 패배했다.
달의 마력을 가진 소녀, 루나는 일찌감치 자신과 겨루는 것을 포기했지만……만능의 마력을 가진 소년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번 일이 끝나면 그것부터 알아봐야지. 은수아는 아까 전 이시우가 전해준 쪽지를 보았다.
번호만 달랑 쓰여 있는 쪽지. 그러나 그녀는 회귀자인 이시우를 믿었다. 증거는 없다고는 했지만……이 번호에는 그와 관련된 게 있을 거다.
은수아는 정면을 바라보았다. 앞에 기척이 느껴졌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없었다. 은신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은수아는 칠색의 이능을 사용했다. ‘붉은색’의 색을 눈에 덧씌우자 형체가 보였다. 도마뱀 같은 것들이 세 마리.
“수아야, 갑자기 왜 멈춰?”
얼굴만 아는 남학생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무시하고 은수아는 전투를 준비했다.
파지직.
손에서 번개가 발광했다. 그녀가 새롭게 만든 마법식으로 번개를 붙잡았다. 새하얗게 발광하는 번개가 은수아의 한쪽 손에 머물렀다. 본래 은수아는 모든 속성에 암?속성의 힘을 더해 그것을 방출하지만, 이시우를 만난 기점으로 그녀는 좀 더 ‘효율’을 찾기 시작했다.
그녀의 칠색에서 ‘노란색’을 섞는다. 황금빛으로 번쩍거리는 번개가 방향성 없이 사방으로 날뛰는 것을 붙잡았다. 그리고 ‘색’과 완전히 융합된 황금빛의 번개가 방향성을 불어넣고, 연쇄적으로 폭발하는 원리를 불어 넣는다.
체인 라이트닝?
쿠르릉!
번개가 수십 갈래로 나뉘어 그물처럼 퍼져 나갔다. 번개처럼 퍼진 그물이 도마뱀들을 옥죄며 사방에서 둘러쌓듯이 도마뱀들을 덮쳤다.
“그그그극!”
“키에에엑!”
도마뱀들을 중점으로 번개가 쩍쩍 갈라지며 사방으로 퍼지고, 뭉치고, 연쇄작용으로 계속해서 데미지를 입힌다.
과연 나였다. 술식을 약간 개량해서 마법을 이렇게 효율적으로 다루다니.
은수아는 자화자찬을 하며 잔존 마나가 남지 않아 사라진 자리를 보았다.
“와…저 정도는 되어야 상아탑의 후계자가 될 수 있구나.”
“대, 대단하다, 수아야.”
자신을 바라보며 동경 어린 눈빛으로 보는 강한남. 은수아는 그를 잠깐 샐쭉하게 보다가 마음속으로 혀를 찼다.
‘쯧.’
자신은 원래 강한남과 이루고 싶지 않았다. 그냥 평소에 자신의 부하 중 하나를 시켜서 조를 짜게 만들었다. 실기 성적은 별로지만 눈치가 좋아 자주 애용하고 있었던 녀석인데 그 녀석이 냅뜸 조에 강한남을 들인 것이다.
확인하지 않는 것이 화근이었다. 알아서 잘하겠지. 하는 마인드도 있었고, 마법 실험을 하느라 귀찮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설마 강한남과 같은 조가 될 줄이야. 은수아는 개인적인 감정은 없지만, 학기 초반에 이시우를 괴롭히던 그가 떠올라서 꼴 보기도 싫었다.
“가자.”
짜증을 억누르고 앞으로 가다가 멈칫했다. 다른 조원 한 명이 앞장선 것이었다. 강한남의 꼬봉 중 하나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내가 앞장설게.”
“……길을 볼 줄 알아?”
“아, 아빠한테 어느 정도 배웠거든. 어느 정도는 볼 줄 알아.”
은수아는 조용히 조원의 아빠에 대한 설명을 떠올렸다. 탐색꾼으로 이름 높은 영웅이었다. 그 정도면 믿을만 하지. 은수아는 짜증을 억누르려고 조용히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후.
샥.
“억!”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며 조원 한 명이 엎어졌다. 방금 전 자기가 앞장서겠다고 나선 조원이었다.
‘아잇, 싯팔. 꼴 받게 하네.’
은수아는 화를 억누르며 상황을 살폈다. 회귀자의 동료는 냉철해야 하는 법. 은수아는 차가움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화를 가라앉혔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 무언가 날라와서 조원에게 꽂혔다. 아마도 화살. 주변을 훑어보니 끝이 뭉툭한 화살이 보였다. 힘없이 축 늘어진 조원의 꼬락서니를 보니 아마도 마비독이 발라져 있을 테고.
주변을 훑다가 멈칫했다.
동굴의 한구석에서 파문이 이는듯한 모습이 보인 탓이다. 아주 미세한 마나의 파동이 느껴졌다. 누군가 은신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과연 회귀자 다운 정보력이었다.
“나와.”
“어? 나, 나오라고? 상현이 응급처치를 해야 되는데?”
당황하는 조원을 뒤로하고 은수아는 오른손에 칠색을 ‘소환’했다. 공간이 일렁이며 칠색 찬란한 빛이 모이며 검의 형체를 이루었다.
“너희는 상현이 데리고 뒤로 물러나. 혹시 시우나 윤남매 정도 아니면 다들 물러나라고 전하고.”
당황해하는 조원들을 향해 말하며, 은수아는 칠색을 크게 휘둘렀다.
콰콰쾅!
칠색이 요동치며 파멸적인 빛을 뿜어내었다. 목표는 파문이 이는 동굴을 향해서. 휘황찬란한 빛이 쏘아지며 그곳으로 쏘아졌지만, 손맛이 없었다. 윤채린과 싸우면서 그녀가 내뿜은 멸겁륜을 친 감각.
상대가 자신의 공격을 막은 탓이었다. 색을 눈에 입혀 확인해보니 검은색의 껍질이 보였다. 일각수의 껍질. 역시 이시우의 말은 맞았다. 은수아는 입술을 비틀며 웃었다.
“자색의 색을 박탈당한 마녀가 이곳엔 웬일이야? 히어로 아카데미까지 와서 먹을 게 뭐 있다고.”
“……날 눈치챈 것으로도 놀라 죽겠는데, 내 이름까지 안다고?”
당황해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연기가 흩어지고 짙은 검은빛의 머리색을 한 여성이 보였다. 이솔렛. 전 자색의 마녀.
“그럼 정보가 새어 나갔다는 뜻인데…설마 날 막을게 너 혼자니?”
“어. 혼잔데.”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은수아의 말투에 이솔렛은 황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돌하네, 상아탑주가 후계자로 정하고, 주변에서 치켜세우니 자신이 대단한 줄 아니? 너는 아직 애송이란다.”
“애송이라니. 이제 늙은 퇴물이 할 소리는 아닌데.”
은수아의 이죽거림을 시작으로 둘 사이에서 싸움이 일어났다. 조원들은 빠르게 상황을 대충 파악하고 장소에서 벗어났다.
그래서 강한남은 망설이고 있었다.
상대가 마인인걸 확인하자마자 강한남은 망설였다. 저 싸움에 끼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자신은 저 싸움에 낄 수준은 아니다.……하지만 자신이 영웅이 될 예비 영웅이라는 신분이 자신을 막고 있었다.
어쩌지. 도망치면 안전하겠지만, 아까 전 마인으로 추정되는 존재가 말했다. 전 자색의 마녀. 자색. 상아탑이 정한 색깔의 일원이라는 것이다. 그중 자색은 그것은 파마??를 뜻한다. 상아탑에서 가장 마법을 '잘 깨부순다'는 의미다.
그렇다는 것은 은수아의 천적이라는 뜻이기도 하였다. 은수아는 본디 칠색까지 다루지만……아까 전 은수아의 칠색이 막힌 것을 확인했다. 그렇다는 것은 상대는 은수아를 납치, 혹은 암살하기 위해서 철저하게 준비를 했다는 이야기였다.
강한남은 이를 악물었다. 저돌맹진. 자신의 특성을 사용했다. 육체가 강인해지고 활력이 샘솟는 것을 느꼈다.
달려가려는 그때, 흐릿한 잔상이 보였다. 마력으로 눈에 힘을 줘야 어렴풋이 보일까 말까 한 속도. 머리색은 보랏빛의 머리였다. 교수진도 학생도 아니었다. 아마도……새로운 적!
‘누구지!’
강한남은 당황해하며 몸을 움직였다. 빠르게 특성으로 적을 막았다. 하다못해 시간 끌기라도 하려는 속셈이었다.
“뭐야.”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손으로 자신의 무릎과 몸의 중심에 손을 대 정확하게 자신의 몸을 멈추었다. 적절하기 그지없는 속도와 힘의 배분. 소름 끼치도록 놀라운 솜씨였다.
강한남은 경악해 했다. 이 정도로 뛰어난 기교. 이시우에게서나 보았던 능력인데, 그럼 상대는 최소 상격…!
상대를 훑다가 강한남은 한 번 더 경악했다. 왜냐하면 미묘한 표정으로 보는 상대가 익숙한 얼굴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시우?”
빛나는 보랏빛의 머리카락과 뇌전이 이는 눈동자. 그것 때문에 긴가민가 했지만, 얼굴은 분명 이시우였다.
파지직!
보랏빛의 번개가 튀었다. 이시우의 머리카락 색과 눈동자는 다시 검은색 머리카락에 검은색 눈동자로 돌아왔었다.
***
이런.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뇌혼?의 지속시간이 끝났다. 생각 보다 마나를 많이 소진했다. 뇌령신공의 오의 중 하나다웠다. 뭐, 그래도 이솔렛한테 기습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숙달되지 않으니 괜찮지만.
나는 이솔렛을 바라보았다. 악몽의 마녀라 불리며 후에 최상격이 되어 인류를 가로막는 악당.
본래 여기서 이솔렛은 은수아를 암살하려고 하다가 윤승하나 윤채린의 도움을 받고 은수아에게 격퇴당해 후퇴하게 된다.
나는 미리 만들어둔 도핑 약을 꺼냈다. 그것을 씹어 삼켰다. 몸에 활력이 돋았다.
사실 도핑 약을 먹을 필요는 없다. 시간은 우리 편이니까. 시간을 끌면 끌수록 소음에 윤승하나 윤채린이 올지도 모른다. 김하린도 이쪽으로 오고 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유리하지만.
‘그렇게 되면 이솔렛은 살아남아.’
이솔렛은 감옥으로 후송될 것이다.
빌런들이 잡히는 감옥은 굉장히 견고하고 시설이 훌륭하며 악당들에게 고통스러운 시간이 되겠지만……거긴 중후반부에 파괴되어 악당들이 대거 풀려나게 된다.
이솔렛은 끈질기게 은수아의 앞을 가로막으며 일행을 귀찮게 군다.
마왕의 힘을 받으며 굉장히 성가신 능력까지 얻은 이솔렛은 후반부에서도 주인공들이 고전할 정도다.
그러니까 지금이 기회다.
‘오늘 여기서 이솔렛을 죽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