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 불청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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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공간 팔찌를 허락받는 일은 매우 간단했다. 왜냐하면 아공간 능력을 제외하면 능력이 없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능력치를 올려주는 것도 아니고, 다른 특수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게 아공간 팔찌의 사용 여부의 허락을 맡고, 무기를 몇 개 챙겼다.
“단검만 너무 많이 가져가는 거 아니냐.”
옆에서 요정족이 눈치를 줬다. 나는 반쯤 단검을 덜었다. 어검이 있어서 생각만큼 많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많이 있으면 좋으니까.
그렇게 무기고를 나와서 집합 장소로 향했다. 조금 전, 오늘은 실습 훈련으로 대체하여 교실로 모이지 않는다는 문자가 왔었다. 집합장소로 향하니 애들이 우글우글 모여 있었다.
“야, 아침에 들었냐? 시몬이 사고 친 거?”
“시몬? 걔가 누군데?”
“그 안경만 쓴 음침한 애.”
“아 그 음침한 애?”
시몬의 인상이 음침하지는 않았는데.
“와, 걔는 완전히 끝났네.”
“듣자 하니 생도 정보를 기업에 빼돌리려 했다는데?”
“진짜 개새끼네. 그 새끼 사회에 나가면 진짜 반으로 접어버린다.”
여기저기서 시몬의 욕으로 시끌벅적했다. 욕을 많이 먹으면 오래 산다지만, 시몬은 오래 못 살 것 같은데.
나는 시선을 돌리며 은수아를 찾았다. 은수아가 껌을 씹으며 짝다리를 엉성하게 짚으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이번 던전은 ‘거대’등급의 던전을 탐사하는 것이다. 좌표에 따라 여러 개의 입구가 있지만, 결국 학생들은 한곳으로 모이게 된다.
으레 아카데미 물이나 게임에서 그러하듯 던전을 탐사하다가 갑작스레 마인 한 명이 튀어나온다.
상아탑에서 금지된 비술을 실험하다가 발각되어 상아탑에서 쫓겨나, 교단 쪽으로 투신한 마녀.
그리고 히어로 아카데미의 교수진 일부를 매수해서 이번 던전에 침입하게 된다. 상아탑주인 은수아를 암살하기 위해서다.
상아탑의 장로들이 만든 기회를 이용해서 장로들에게 얻은 아티팩트와 재물들을 일부 이용해 은수아를 암살하려고 하지만 윤승하가 그것을 저지하고 둘이 힘을 합쳐 마인을 끝내는 것이 이번 서브 스토리의 핵심이었다.
사실 교수들에게 말해서 교수들을 데리고 던전 내에서 죽이면 쉽게 갈 수 있지만, 뒤가 문제였다. 어떻게 알았냐고 물으면 얼버무리기 힘들었다.
‘그리고 이 기회에 은수아에게 점수도 따고.’
은수아가 나에게 호의를 보이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내 말 하나만을 믿고 은수아의 암살을 사주한 장로들을 숙청할 수 있냐고 물으면 그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상아탑의 썩은 물을 도려내며, 은수아의 호의를 산다.
“안녕, 무슨 일이야.”
은수아에게 다가가자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뭔가 기대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 던전에서 마인이 잠입할지 모른다는 정보가 있어서 말이야.”
“그래? 상대는?”
나는 당황했다. 어디서 얻은 정보냐고 묻지 않고 바로 누가 나올지에 관해서 물어보았다.
누가 나올지에 대해서 말해야 하기는 했다. 이걸 말해버리면 나를 수상하게 쳐다볼 게 분명했지만, 상대는 위험한 존재니까.
“이솔렛.”
“이솔렛이라고? 전 자색의 마녀?”
은수아가 놀란 표정을 하며 말했다. 송라희와 같은 자색의 색깔을 배치받은 마녀. 자색의 특징은 마법을 분석하여 파훼하는 것이 특징인 존재들이었다. 이솔렛은 은수아의 마법보다는 이능인 ‘칠색’으로 상대하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상아탑에서 받은 아티팩트로 어느 정도 상쇄가 가능하다.
“마법은 쓰지 말고…칠색도 조금 힘들 거야. 내가 들은 정보에 의하면 이솔렛이 이능 대비를 위해서 준비도 했다고 해.”
“내 이능에 대비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을 텐데 상아탑에도 환익과 일각수의 껍질 정도……설마 상아탑의 장로들이 사주했어?”
나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은수아는 기본적으로 머리가 좋긴 하다. 애가 좀 이상해서 그렇지.
‘그게 바보가 아닌가?’
떠오르는 생각을 저으며 나는 은수아에게주의를 당부했다.
“그래서 조심하라고.”
“혹시 누군지 알 수 있어?”
은수아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적색과 갈색.”
“아…역시나. 그놈들이네. 혹시 증거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게임 속 내용인데 증거가 있을 리가 없었다.
“알았어. 주의할게. 내가 마법과 칠색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중얼거리며 은수아를 보며 나는 당황했다. 은수아도 비중 있는 캐릭터인 만큼 스킬을 얻고 스펙업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은 윤승하나 윤채린과 겨루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고, 여름방학에 상아탑에 가서 상아탑주에게 수련을 받아 스펙업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걱정하지 말라고. 이번에는 널 실망하게 하지는 않을 테니까.”
은수아가 그렇게 말하며, 씩 웃어보았다. 나는 얼떨떨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이번에는’이 왜 붙는지 의아해했다.
그때 마침, 짝하고 손뼉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강한자 교수가 손뼉을 치자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 모습에 강한자 교수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오늘은 특별히 던전 실습을 하겠다.”
주변의 공기가 달라졌다. 다들 긴장하고 있는 표정이었다.
“던전이라고는 하지만 던전 내에 교사들이 여러 번 점검하였고, 교장님의 요정들이 안전을 몇 번 확인했다. 100% 안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최소한 죽지는 않을 거다.”
그 말이 더 무서운데. 주변의 애들 표정이 확연하게 굳었다. 일부로 노린 모양인지 강한자 교수는 정정하지 않았다.
“1학년 전체 수업이고 조원은 어제 짜두었던 조로 행동한다.”
강한자 교수가 리모컨 같은 것의 버튼을 꾹 누르자 빔이 방사되면서 허공에 조 이름과 푸른색의 좌표가 떴다.
“좌표로 이동해서 던전 안으로 들어가서 던전 탐사를 진행한다. 안에 있는 ‘마나’로 만들어진 괴수들을 처지하고 던전 끄트머리에 있는 표식을 가져오면 된다.”
강한자 교수가 손을 들어서 표식을 보여주었다.
“그럼 앞으로 30분 뒤에 출발하겠다. 다들 30분 동안 조원들과 상의하도록.”
강한자 교수의 말에 아이들이 빠르게 조장을 중심으로 모였다.
내 옆에는 어느새 다가온 김하린이 방긋하며 웃고 있었고, 정한서도 가볍게 인사하며 내 쪽으로 왔다.
김하린의 크기만 한 커다란 방패가 인상적인 세미야랑 같이 아야세도 내 쪽으로 왔다.
“다들 한자리에 모이는 건 처음이지? 일단 가볍게 포지션만 소개해볼까?”
“그럴까? 초면인 애들도 있으니까.”
“내가 말 꺼냈으니까, 나부터 소개할게. 나는 정한서. 주로 쓰는 건 활하고 단검. 1인분은 하지만 내 특기는 길잡이라서 무력은 기대하지 말아줘.”
정한서가 유들유들하게 웃으며 말했다.
무력으로 치면 정한서는 아카데미에서도 하위권에 놀지만, 필기 실력과 길잡이의 능력이 높아 순위가 제법 높은 편이었다.
“저는 아야네라고 해요. 주특기는 검. 특기는 일대일 대련이에요.”
“저는 세미야라고 합니다. 검과 방패를 다루고, 딜보다는 방어에 자신이 있습니다.”
“난 이시우. 여러 가지 무기를 다루고 중위, 근접 다 가능해.”
“김하린이고, 단검을 주로 써요. 능력으로 후위, 중위 다 가능해요.”
“그럼 세미야, 아야네, 시우, 하린이, 나 이렇게 하면 되는 건가?”
정한서가 포지션을 짜기 시작했다. 다들 정한서의 결정에 불만이 없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하린이가 단검을 들고 있으니까, 전위가 뚫리면 한서를 보호해주는 방향으로…….”
그리고 혹시 모를 변수들을 가정하에 여러 가지 대처 수단들을 인지시키니 30분은 훌쩍 지나갔다.
“30분이 지났다. 다들 던전으로 향하도록!”
강한자 교수의 말에 학생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
던전은 입구부터 달랐다. 거대한 뱀 같은 것이 입을 쩍벌리고 있는듯한 입구였다.
실제로도 맞기도 했다. 약 30년 전 나타났었던 A등급 몬스터의 유해를 이용해서 만든 던전이니까. A등급은 한 시간만 있으면 도시 단위를 폐허로 만들거나 지도에서 지울 수 있는 몬스터를 뜻한다.
던전의 입구는 음울한 분위기가 넘실거렸다.
“우와 분위기 진짜 장난 아니네.”
정한서가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다른 조원들은 말만 안 했을 뿐이지 얼굴에는 긴정어린 기색이 역력했다.
“엄청 음울해 보이네요.”
“자세히 보니 드레이크의 머리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맞아, 옛날 한국을 덮쳤던 흑아룡???의 두개골로 만든 던전이지. 그래서 괴물도 많이 나온 데.”
“아룡이요? 진짜 용이 아니라?”
“큰일 날 소리를. 진짜 용을 건들면 큰일 나지. 용들은 서로 죽으면 그것을 인지할 수 있어서 용이 죽이면 엄청 난리나! 미국에 있는 용왕의 패룡단이 바로 척살하러 달려올걸. 애초에 진짜 용이었으면 한국을 건드리지도 않았겠지만.”
아야네와 정한서의 대화를 들으며 우리는 던전으로 들어갔다.
아까 전, 회의하면서 정한 포지션대로 걸어갔다. 근접 전사 3명과 후위 궁수 한 명,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궁수를 보호하기 위해 빼둔 김하린.
“안으로 들어오니 엄청 으스스하네요.”
“그러게.”
옆에 있던 아야네가 나한테 말을 걸었다.
“혹시 시우는 여기 던전에 대해서 잘 아세요? 긴장한 것처럼 보이지 않아서.”
“그 정도는 아닌데. 우리한테 하린이가 있잖아.”
“어? 나 왜?”
내 말에 김하린이 배시시 웃으며 물었다.
“흑아룡은 어둠 속성인데, 하린이 능력이 빛 속성이니 정예 몬스터만 아니면 힘들지 않을걸.”
“맞아 맞아. 하린 누님, 저희를 이끌어주시옵소서.”
내 말에 정한서가 맞장구치며 익살스럽게 말했다.
그렇게 걷다 보니 갈림길이 나왔다. 우리는 자연스레 정한서를 바라보았다. 정한서가 통로 주위를 훑어봤다. 땅바닥이나 벽을 주의 깊게 보더니, 이야기했다.
“오른쪽으로 가자.”
우리는 오른쪽으로 향했다. 동굴을 걸으니 던전 지형이 머릿속에서 기억나기 시작했다. 여기 히든 피스는 없으니 그냥 사건 방지에 힘을 써야지.
혹시 몰라서 윤승하나 윤채린에게도 이야기해두었다. 어디서 폭음이 들리면 바로 와달라고. 다행히도 이유는 묻지 않았다.
그렇게 걷다가 정한서가 손을 들었다.
“앞에 괴수가 있어.”
정한서의 말에 순식간에 분위기가 바뀌며, 다들 무기를 꺼내 들었다.
나는 아공간 팔찌에서 검을 들었다.
“상대는?”
“어두워서 잘 안 보이지만, 크기는 대충 3m. 무언가 커다란 걸 매달고 있는데.”
“어둠 달팽이네.”
까다로운 상대였다. 등껍질의 방어는 단단하고, 일반적인 공격을 하면 분열해서 공격이 잘 먹히지도 않았다. 속성 공격을 하면 등껍질에 숨어들고, 설사 공격하더라고, 몸이 분열되는데 한 번 분열되면 수백 마리까지 분열되는데 거기까지 분열하면 진짜 답도 없다.
‘문제는 안 되지만.’
단단한 등껍질은 아야네의 단절로 뚫을 수 있다. 분열은 일반적인 공격으로 막는다지만, 김하린의 광익으로 깃털을 쏘아 날리면 순식간에 녹을 테니까.
“등껍질은 아야네가 부수고, 하린이가 광익으로 본체를 날리면 되겠다. 상대는 몇 마리야?”
“두 마리.”
“그럼 한 마리 빠르게 처리하자. 나랑 세미야가 한 마리 묶을 테니, 다른 한 마리는 빠르게 처리해줘. 한서는 혹시 다른 괴물이 난입하나 안 하나 확인해주고.”
그렇게 인원을 배분하고 우리는 적에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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