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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나에게 최면어플을 사용한다-68화 (68/298)

〈 68화 〉 불청객

* * *

뭐지.

나는 굉장히 당황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기말고사 때 거악에게 영혼을 팔아서 임나연의 목숨을 노리는 것이 시몬이다.

그래서 주의 깊게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리타이어 해버렸다. 주변에서 굉장히 당황스러워하는 감정들이 느껴졌다. 게리가 경악해 하는 것 역시 느껴진다.

나는 이지아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외형은 평범한 귀마개같이 생겼으나 저건 아티팩트다. 도청 능력이 뛰어나고 은밀하게 발동돼서 나도 노리고 있었던 건데. 물론 중격 이상부터는 얄짤없이 바로 탐지할 수 있다.

“아티팩트네.”

내가 입을 열자 주변의 시선이 쏠리는 게 느껴졌다.

“도청 능력을 갖춘 아티팩트야. 자동 기억 능력이라고 도청한 목소리의 주인을 특정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 보통 신문 기자나 파파라치들이 주로 가지고 있는 건데.”

말을 꺼내며 시몬을 바라보자 주변의 눈초리들이 날카로워졌다.

조금 이쁘장한 소녀인 이설의 눈초리는 거의 경멸 어린것에 가까워졌고, 게리는 경악과 두려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긴 게리가 임나연과 이지아한테 추천한 게 쟤니까.

“이, 이걸 왜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입니까.”

“그, 그게…….”

게리가 물었다. 시몬이 눈을 데구루루 굴리고 있었다.

“뻔하지, 아카데미 학생들 정보 하나하나가 돈이니까, 큰 건 하나 잡고 그걸 기업에 팔려는 속셈 아니야? 기업에 노예가 된 학생의 인생 따위는 알 바 아니고.……이거 완전 쓰레기네?”

“…….”

친구 A가 말했다. 정답이었다.

주변에서 시몬을 보는 눈초리가 더 심해졌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시몬을 추궁하고 있을 때 이지아와 김하린을 바라보았다.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지아와 김하린.

이지아를 바라보았다.

나는 굉장히 당황했다. 왜냐하면 이지아에게서 굉장히 질척질척하고 어두운 감정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하린에게도 비슷한 감정이 느껴지지만, 별로 새삼스럽지는 않다. 원래 그런 인간이니까.

도대체 시몬은 뭘 도청한 걸까. 내가 아티팩트에서 도청된 내용을 누르려고 하자, 무형의 힘이 느껴졌다. 이지아로부터 온 무형의 힘이 아티팩트를 파직­하고 부서졌다.

이지아가 행동한 거라 당황해서 반응하지 못했다.…그것보다 마법이 엄청 은밀해졌다. 라플라스를 깨운 건가.

“헐, 미안해 시우야! 괜찮아?!”

“어, 괜찮아.”

이지아가 경악해 하며 나에게 달려왔다. 그러나 특성으로 느껴지는 감정은 그것과는 다른 안도감이었다.

……도대체 뭘 녹음한 거지. 오히려 더 궁금해졌다.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지식열람을 여기에 사용할 수 있지 않나를 생각해보았다.

‘오.’

완벽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적용이 되었다. 아마도 이지아의 특성 때문에 제대로 기록은 되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대충은 볼 수 있었다.

드라마의 대본 보듯이 글자들이 눈앞에 나열되었다.

­시우한테 꼬리 치는 거 그만둘래?

이지아의 대사였다.

­꼬리를 치다니……. 나는 그냥 시우한테 호감을 표시하는 건데. 아,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던데 미안, 내가 배려하지 못했네.

­뭐 눈에는 뭐만 보인 다라. 그렇네. 내가 실수했네! 미안해, 하린아. 뒷골목에서 자란 하린이를 내가 좀 더 배려했었어야 했는데……하린이가 오산 외곽에서 자라났었지? 거긴 창녀촌으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창녀들만 보고 와서 자라서 그런 눈으로 볼 수 있지.

……대화가 좀 매운데. 나는 잠깐 지식열람으로 다음 부분을 봐야 하나 고민했다.

다행히도 내 고민은 얼마 안 갔다. 이지아가 나에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시우야 손 다치지 않았어? 어떻게……조금 빨간데 양호실에 갈까?”

“……아냐, 별거 아닌데 뭘.”

그렇게 말하며 이지아를 바라보았다. 뭐랄까, 마냥 착하지 않던 것은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일 줄 몰랐다. 뭐, 상관은 없다. 나한테만 착하면 됐지.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왜 향했는지는 모르지만…일단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일단 시몬은 교수님한테 넘기자. 우리가 해결하긴 사건이 좀 크다. 송라희 교수님은 학생들을 위하시니까 제대로 해결해주실 거야.”

“그러자. 송라희 교수님한테 맡기고……그렇게 되면 임나연 조는 어떻게 되지?”

“한 명 빼는 대신에 페널티 완화나 추가 점수를 줄 거야. 히어로 아카데미는 꽤 융통성 있게 굴러가니까.”

친구 A의 말을 덧붙이며 말했다. 내가 입을 열자 애들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누구 한 명은 시몬을 데려가야 했는데, 다들 하고 싶어 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제가 시몬을 데리고 가겠습니다. 시몬이 저희 조원이니까, 제가 해결하는 게 맞습니다.”

왠지 모르게 대학 생활을 하면서 조장을 맡은 친구의 모습이 겹쳐졌다. 나중에 맛있는 거라도 사줘야겠다.

“쟤는 왠지 사서 고생하는 타입일 것 같다. 나중에 조 짜면 쟤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떠맡기고 튀겠다는 얘기였다.

윤채린의 말에 윤승하가 조용히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

“이런 건 무협이 아니야!”

윤채린이 책상을 치며 말했다. 윤승하가 한심한 눈빛으로 윤채린을 바라보았다.

윤채린을 한심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윤승하가 윤채린의 핸드폰을 낚아챘다. 소설 제목은 망나니로 환생했다.였다.

“또 왜.”

“아니, 무협 소설에 대체 왜 개방에서 백팔나한진을 하냐고! 거기다가 화산파?山?가 대체 왜 화산火山이 터져서 멸문하는 건데! 화산이 그 화산이 아니라고!”

“나도 이거 봤는데.”

“너도 봤어? 그지? 말이 안되지!?”

어처구니없어 하면서 분개하는 윤채린을 보며 윤승하가 말을 이었다.

“이거 나중에 아미파???가 군대처럼 총으로 무장한 아미파Army?로 나오더라.”

“가아아아알!”

윤채린은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래서는 안 되었다. 무협은 이래서 안 되었다. 이딴 사도가 버젓이 책으로 팔리고 있다니. 마도의 종주로서 무림이 이런 식으로 변하는 건 참을 수 없었다.

“후..후후. 보, 본녀의 흑풍대를 소집할 때가 되었나. 마교의 이름으로 다시 무림을 우뚝 세워야…….”

“저번에 흑풍대가 귀찮다고 반쯤 죽여놔서 아직도 병원 신세잖아.”

“……아, 맞다.”

윤채린이 멍청한 소리를 내었다.

윤승하는 살짝 불안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천상의 마.

그것은 인간이 가질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그러나 윤채린은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나…천상의 마라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것의 부작용으로 그녀는 이따금 기억의 혼선을 둔다.

천상의 마가 가지는 부가 능력 중 하나인, 천마들의 기억.

단일 세력으로 정파와 사파를 위협하였던 마교의 교주들의 기억을 그녀는 가지고 있다. 지금은 봉인해놓고 있지만, 마왕이 되기 위해 도전했던 최상급 마족들의 기억과

자아가 확립되지 않은 시점에서 윤승하도 많은 사고를 쳤지만, 윤채린은 그보다 더 심했다.

초등학생 때는 천마신결을 몇 단계를 다운그레이드하여 수라신공을 만들고, 그것을 자신을 따르는 학생들에게 뿌려서 흑풍대라는 조직을 만들기도 하였다.

중학생 때는 검기를 슬슬 응용하더니 천마룡이라는 기술을 창조해서 숲 하나를 통째로 날린 것은 이제 와서 흑역사였다.

‘고등학생 때 엄청 잠잠한 편이었지만, 슬슬 터질 때가 됐긴 했지.’

윤승하는 말없이 윤채린을 주시했다. 저번에 시우와 함께 던전을 공략하면서 얻은 검덕분에 정령력이 올라서 폭주하는 윤채린을 교수들이 오기 전까지 묶어두는 건 할만했다.

“이상하단 말이지.”

“시우?”

느닷없이 중얼거린 윤채린의 말에 윤승하가 답했다. 역대 천마들의 기억으로 가끔 기억의 혼선을 야기하는 윤채린은 이런 때가 많았다.

윤승하의 말에 윤채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에 봤지? 내가 가르쳐주려는 잡기술을 순식간에 흡수하는 거.”

“어. 정말 순식간에 배우더라.”

“……배운다기보다는 너무 빨랐는데.”

윤채린이 고개를 괴며 중얼거렸다. 배운 다라. 그건 배운다는 수준이 아니었다. 잊던 걸 기억하는 수준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걔는 검을 누구한테 배우고 있는 거야? 교수님 중에 그런 버릇을 가진 사람은 없는데.”

“버릇?”

윤승하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윤채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버릇. 몹시 나쁜 버릇이 있더라고. 주로 정파의 늙은이들이나 할법한 버릇이 있지.”

“무슨 버릇인데.”

“정직한 거.”

“……그래?”

윤채린은 아침의 있던 일을 생각했다. 정직하게 자신을 향해 오는 검. 페이크는 나름 쓴다고 하지만 윤채린이 보기에는 한없이 정직했다. 검을 휘두르는 동작부터 해서 시선까지.

검을 휘두르지만, 윤채린 정도의 무인이라면 입으로 어디를 공격하겠다! 라고 말하고 공격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자신이 여러 가지를 가르쳐주기는 했지만…아직 멀었다.

그런 종류는 보통 실전을 겪어보지 않은 이론만을 내세운 검이었다.

‘혹은.’

이따금 그런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의 피로 물들어 혈검이라 불리는 검이. 극도로 실전적이며, 자신이 다치더라도 상대를 죽이겠다는 일념하에서 벼려진 검술.

확실히 그런 검이라면 가르치기 꺼려질 수 있지만…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가르칠 거면 제대로 가르쳐야지. 애매하게 덜 가르치다니.

“그런 놈들은 다 고리타분한 놈들이지. 쯧쯧. 강호의 도리도 모르는 것들.”

윤채린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알림이 울리는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핸드폰에는 인스타 사진이 올라왔다는 알림이 있었다.

“헉, 검후님의 사진!”

“검주님이 사진 올렸어?”

“어, 검후님이 중국에서 빌런 잡는다고 하셨는데 이제야 잡으셨네. 아, 악천귀놈인가.”

그렇게 말하면서 윤채린은 사진에 좋아요하고 댓글을 올렸다.

[Yoon천마 : 강호 무림의 평화를 지켜주셔서 오늘도 감사합니다!]

댓글을 올리고 댓글들 하나하나를 살폈다.

그리고 검후에게 악성 댓글을 다는 놈들에게 하나하나 댓글을 올리며 반박했다. 또 시작했네. 윤승하는 살짝 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저 상태의 윤채린은 어지간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계속 핸드폰을 만질거다. 뭐, 저편이 좋긴 하지만.

주변에서 얼쩡거리는 은수아를 보였다. 아까부터 거슬렸는데, 왜 자꾸 주변에서 얼쩡거리는 거야.

윤승하가 은수아를 바라보자 은수아가 헛기침을 하며 자랑하듯 얘기했다.

“아까 시우에 관해서 얘기했지?”

“응, 그런데.”

“시우는 말이야 배우는 게 아니라, 흡수하는 거야.”

“……응?”

뜬금없는 말이었다.

“아니, 흡수하는 것보다는 되찾아 가는 거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지.”

그 녀석은 회귀자니까 말이야. 은수아는 그 말을 삼켰다.

은수아는 굉장히 입이 근질거렸지만, 이런 곳에서 할 얘기는 아니었다. 만약 잘못 퍼지기라도 한다면 이시우의 십년대계는 무너질테니까.

그러니까 여기까지만 해야겠지.

은수아는 도도하게 그것을 말하고 지나갔다.

윤승하는 어처구니없는 눈으로 은수아를 바라보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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