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 암투
* * *
나를 제외하고 주말을 알차게 보낸 애들이 많은지 여기저기서 학교에 왔지만 어디 놀러 가고 싶다는 곡소리가 들려왔다.
“주말 잘 보냈어?”
정한서가 아는 척을 하며 말했다. 저번의 한종우와 대결하면서 약간의 대화를 나눈 후에 이렇게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고개를 적당히 끄덕이며 말했다.
“잘 보냈지. 주말에 혼자 훈련도 하고.”
“……주말에도 훈련 한 거야?”
정한서가 질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긴 그 정도 노력은 해야 저렇게 빠르게 오를 수 있는 건가.”
정한서 옆에 얼굴만 아는 남학생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귀찮으니까 친구 A라고 부르자.
사실 거기에 영약이 70&, 특성이 25%쯤 이바지했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 일단 정한서랑 친구 A가 나를 감탄 어린 표정으로 보는데 굳이 그걸 초칠 필요는 없으니까.
“암만 그래도 애들이랑은 가끔 놀지 않아? 쉬는 날 어떻게 종일 훈련만 해?”
친구 A가 물었다.
“나는 친구가 별로 없어서.”
“앗…아앗….”
내 말에 정한서가 과장되게 리액션을 했다. 친구 A가 떨떠름한 표정을 봤다.
“그럼 나랑 같이 가는 건 어때?”
옆에서 미성이 들려왔다.
임나연이 가슴을 책상 위에 올리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오, 저게 가능한 거였구나. 맘속으로 감탄하며 임나연의 가슴에 시선이 향하지 않도록 노력하며 입을 열었다.
“나연이 너랑?”
“응, 나 시우랑 밖에 다녀본 적 한 번도 없잖아. 그러니까 이 기회에 한번 같이 놀자.”
그럴까. 이 기회에 거기에 가보는 것도 괜찮겠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려던 참이었다.
“나연이랑 시우 어디 놀러 가?”
이지아가 대화에 난입했다. 살짝 불안이 섞인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응? 그냥 이야기가 나와서 하던 거야. 요즘 훈련 때문에 바빠서 시간도 잘 안 나는데 뭘.”
실제로도 사실이었다. 좀만 더하면 그 ‘오의’가 완성되니까.
하지만 슬슬 임나연을 강화할 때가 되었다.
‘빙정이 얻기 좀 까다롭고 은수아의 도움이 필수지만.’
나는 잠깐 불량한 복장의 은수아를 바라보았다. 츄파춥스를 입에 물고, 팬티가 보일 정도로 짧은 치마에 윗단추 2개를 푼 복장이었다.
은수아는 나에 대해서 엄청 호의적이라 잘만 꼬시면 될 것 같은데.
“그래도 맨날 훈련하면 힘들지 않아? 사람은 쉴 때 쉬어야 한다고.”
“맞아, 맞아. 그러고 보니 우리 회사에서 곧 개최하는 오션월드가 있는데 거기서 놀래? 거기서 우리끼리 놀 수 있는데.”
이건 좀 끌렸다.
이지아가 사람은 기계가 아니니 쉬어야 된다고 했었고, 임나연이 맞장구치며 오션월드로 놀러 가자고 나를 설득하고 있었다.
나도 조금 고민되었다.
나라고 놀 줄 몰라서 안 노는 게 아니었다.
‘요즘 쉰 적이 거의 없기는 해.’
가장 최근에 쉰 적이 중간고사 실기 시험 때 하루 쉰 것이었다. 거기다가 오션 월드면 수영복 차림의 임나연과 이지아도 있었고.
“뭐, 친구가 없다고? 하…….”
내가 한참 고민하고 있을 때, 친구 A가 허탈하게 한숨을 쉬곤, 나를 기만자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바뀌었다.
“역시 잘 생긴 애들은 다 얼굴값을 해.”
정한서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좀 억울한 누명인데. 정한서와 친구 A에게 뭐라 하려다가 말았다. 다른 누군가가 내 쪽으로 와서였다.
“시우, 어디 놀러 가?”
익숙한 미성이 들려왔다. 은은한 샴푸 향이 코끝을 스쳤다.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 연분홍빛의 찰랑거리는 김하린이 보였다.
김하린의 눈이 초승달 같은 눈웃음을 그렸다.
“나도 시우랑 같이 놀러 가고 싶은데.”
그렇게 운을 김하린이 운을 떼었다.
임나연과 이지아가 나랑 김하린을 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장한서랑 친구 A가 소곤거렸다.
역시 그 소문이 맞는다니까. 김하린하고 이시우가 사귄다는 소문. 등의 말이었다.
맞는 말이네. 처맞는 말.
“나중에 가자. 요즘은 수련 때문에 바쁘니까, 방학 때.”
“역시 시우는 엄청 성실하네~.”
김하린이 맞장구를 치자 이지아의 눈썹이 조금 올라갔다.
“그럼 시우가 이번 학기에는 힘드니까, 방학 때 나도 데려다줄 수 있어?”
김하린이 싱글싱글하고 웃으며 말했다. 분홍빛으로 반짝이는 립스틱. 얘 화장도 했네.
나는 얼떨떨해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임나연과 이지아도 얼떨떨해하며 자리로가는 김하린을 바라보았다.
“캬, 요즘 김하린 미모 장난 아니지 않냐? 안 그래도 요즘 남자애들 사이에서 말 많이 나오던데. 나 정도면 남자친구 입후보 가능?”
“응, 불가능.”
친구 A가 입을 열자, 정한서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친구 A는 얼굴을 슬쩍 들어 흔히 말하는 얼짱 각도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이지아가 어색하게 웃었고, 나랑 정한서는 못 볼 꼴을 본 표정을 하였다.
“그러고 보니 너희 그거 들었어?”
정한 서가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꺼내는 듯 조용하게 말했다.
“어떤 거?”
“떠도는 소문이긴 한데, 오늘부터 조별 과제를 진행할 거래.”
“벌써? 보통 2학기부터 시작하지 않아?”
이지아가 의아한 투로 이야기했다. 정한서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근데 그렇다고 하기엔 지금 소문이 묘하게 구체적이라서. 교수님들도 평소와는 다르게 좀 다르게 움직이시고.”
장한서가 잠시 입을 멈추었다.
“거의 추측이기는 한데…아마 이번 1학년들 수업은 다른 학년들하고 커리큘럼이 엄청 달라질 거래. 강한자 교수님이 부상으로 일선에서 은퇴하셨지만, 그래도 중격의 영웅인데 그 교수님을 부상 입게 만든 마인 세 명을 학생들이 잡았으니까.”
장한서의 말에 임나연하고 이지아가 조금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드르륵.
때마침 앞문이 열렸다. 한순간에 교실이 조용해지고 자리를 찾아 빠르게 앉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자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큰 덩치에 부상으로 새하얗게 변한 머리색이 인상적인 남자, 강한자 교수였다.
“다들 오랜만이구나. 내가 없는 동안 다들 송라희 교수님에게 실수 같은 건 안 했지?”
강한자 교수의 말에 학생들이 크게 네하고 말했다. 제법 큰 목소리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강한자가 말을 이었다.
“목소리가 크니까 좋구나. 그리고 오늘 공지할 것이 있다. 바로 조별 과제다. 5명으로 조를 짠다. 이번 학기가 2개월밖에 안 남았다고 대충 짜면 안 된다. 기말고사를 이 조로 볼 테니까. 실기는 물론 이론까지.”
이론. 강한자 교수가 말한 그 단어 하나에 수많은 시선들이 화살처럼 나에게 꽂힘을 느꼈다. 특히 내 옆자리에서. 슬쩍 보니 임나연이 결심한듯한 표정을 지으며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임나연뿐만 아니라, 이지아, 정한서, 한종우도 나를 바라보았고 은수아나 윤채린, 윤승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때 화면이 켜졌다. 톡이 왔다. 상단에 김하린의 카톡이 보였다. 내 말 맞지? 라는 톡부터 시작해서 같이 조를 짜자는 내용이었다.
김하린뿐만 아니라 내가 핸드폰을 만지고 있단 걸 알자마자 여기저기서 카톡을 보내왔다.
“당연한 말이지만 상위권 학생들끼리만 모이면 페널티가 있을 거다. 그러니 성적순으로 고루고루 조를 짜도록. 시간은 오늘 16시 전까지 조원을 정해서 제출하도록.”
“교수님 너무 빠듯해요!”
“맞아요, 최소한 내일까지!”
강한자 교수의 말에 여기저기서 한탄하는 소리가 나왔다.
“조용. 영웅이 되면 이것보다 더 이른 시간 안에 조를 짜야 하는 일이 많다. 너희들이 예비 영웅들이니까 그래도 시간을 이 정도나 주는 거야.”
그렇게 말하면서 강한자가 책을 폈다.
“자, 그럼 수업을 시작하겠다. 오늘은 복귀한 지 하루니까 가볍게 하겠다. 오늘은 던전에서 갇히게 되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강한자가 수업을 시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그것에 집중할 수 없었다. 아직 1분도 되지 않았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내 카톡하고 문자에 온갖 청탁이 들어오고 있었다.
[정민지]
시우야~나 민지인데 나 알지? 내가 이번 성적에서 150등을 받았는데 나랑 같이할까?
모르겠는데. 혹시 몰라서 정보열람까지 써봤지만 특출난 점은 없었다.
나는 김하린에게 같이 조를 하겠다고 답장한 다음 아야네를 찾았다. 특성 ‘단절’은 유용한 데다가 아야네의 성적은 100위권에서 놀았다. 아야네에게 문자로 물어봤다.
[아야네 혹시 조 있어?]
[아야네]
[시우에여?]
[저 아직 조 없어요!]
[기대하는 눈빛을 보내는 고양이 이모티콘]
[그럼 같이 조 만들까?]
[아야네]
[네!]
좋아, 한 명 확보했다.
나는 정한서에게도 문자를 보냈다. 정보에 능통한 만큼 쓸 구석이 많기 때문이다. 김하린을 이용해 김호동에게서 정보를 받아도 되지만, 김호동에게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한정되어있기 때문이다.
정한서에게 조를 만들자고 제안하니 정한서가 바로 답했다.
[정한서]
[진짜? 나야 좋지! 근데 혹시 조원 벌써 다 구했어?]
[아직 한 명 비어. 김하린이랑 아야네로했어.]
[정한서]
[좋은 선택이네. 하위권인 나랑 김하린, 아야네가 상위권이고 시우 네가 최상위권이니까 한 명은 중위권?]
[ㅇㅇ중위권으로 한 명 고르려고. 혹시 전위 중에 탱커 역할에 적합한 애가 있을까? 순위는 좀 높거나 낮아도 돼]
가장 최고는 윤승하를 고르는 거지만, 윤승하는 최상위권이니 페널티가 부담스러웠다. 그러니 우회해서 내 말을 잘 듣는 중위권이나 하위권이 좋았다. 그리고 탱커 역할은 딜러 역할보다 쉬우니까.
아야네는 말을 잘 듣는 편이고, 정한서도 나쁘지 않다. 오히려 내 의도를 읽으려고 노력하며 나에게 맞춰줄 녀석이니까. 문제라면 김하린. 근데 김하린이 조별 과제에서 굳이 트롤링을 할 리가 없을 테고.
그렇게 볼펜을 돌리면서 생각에 잠기니 정한서한테 톡이 왔다.
[정한서]
[세미야는 어때? 얘가 좀 느리긴 한데 엄청 튼튼해. 성적도 딱 중위권이고]
나는 정보열람으로 세미야를 바라봤다. 건강해 보이는 갈색 피부에 검은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학생. 체력과 근력이 높았고 민첩과 마력이 낮은 편이었다. 그래도 특성이 꽤 좋았다.
‘근데 쟨 강한남의 하위호환 같은데.’
나는 카톡으로 OK라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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