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 동상이몽(7)
* * *
인간과는 다른 금색의 빛으로 물든 눈동자. 그것이 쭉 찢어진 채 우리를 향했다.
3m 즈음 보이는 크기의 금색빛의 털을 가진 이족 보행의 늑대. 정령이 넘치는 던전에 무슨 웨어울프냐고 할 수 있지만 다 이유가 있다.
이 던전을 이루는 근간은 정령검. 그것을 베오울프의 후예인 저녀석이 정령검의 인정을 받고 힘을 키우는 중이기 때문이었다.
───!!
흉성이 울려 퍼졌다.
정령수??? 가로쉬.
베오울프의 먼 후예. 중상격에 이르는 환수??. 여러 가지 수식어가 있지만……가장 많이 불리는 별명은 뉴비 절단기였다.
가로쉬가 자세를 숙였다. 돌진의 자세. 게임처럼 빨간색의 가이드 라인은 없었다. 그러나 자세와 위치, 가로쉬의 적의가 발하는 곳은 알고 있다. 윤승하. 녀석은 윤승하를 목표로 삼았다.
윤승하가 반응했다. 윤승하의 주변에서 일곱 체의 정령들이 소환되었다. 땅?의 정령과 금의 정력이 울타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윤승하의 표정은 다급했다. 별 무리가 머무는 눈으로 정보를 파악한 모양이다. 저것으로 가로쉬의 공격을 막을 수 없다.
나는 윤승하의 목덜미를 잡고 뒤로 당겼다. 최소 다섯 이상의 정령으로 막지 못하면 저 돌격은 막을 수 없다.
쾅!
폭음을 동반하며 방벽들이 깨져나갔다.
동시에 가면을 중첩했다. 감각이 날카로워지며, 몸 전체에 활력이 돌고, 거대한 마나가 몸에 넘쳐흘렀다.
파지지직!
뇌령이 몸속을 누볐다. 시야가 엿가락처럼 느려졌다.
번쩍날카로운 황금빛의 발톱이 나를 향했다. 잡았다는 듯이, 늑대가 히죽 하고 입꼬리를 올리는 것 같았다.
나는 빠듯하게 뒤로 물러났다. 발톱의 간격보다 훨씬 더 멀리 회피했다. 온갖 정령의 비호를 받는 가로쉬의 발톱은 눈에 보이는 간격보다 훨씬 넓은 간격을 공격한다.
서걱분명 발톱을 피했음에도 머리카락이 뭉텅 잘렸다. 이마 부분이 조금 훤해졌다. 거리를 벌렸다. 가로쉬가 내 쪽을 탐색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엄호해줘.”
윤승하에게 일방적으로 말하고, 검에 뇌광을 둘렀다. 보랏빛의 번개가 파직거리며 검을 감쌌다.
가로쉬가 자세를 낮췄다. 처음 돌격했을 때보다 조금 더 높게. 그리고 한 쪽 발을 뒤로 내디뎠다. 돌진이 아니라 도약이다.
돌진을 경계하는 척하며, 특성을 발현했다. 어검.
검이 희미하게 빛을 띠었다.
가로쉬가 도약했다. 검이 늘어난다. 한 자루에서 두 자루. 두 자루에서 세 자루로. 파지직보랏빛의 뇌광을 두른 검들이 가로쉬의 다리를 향했다.
크허엉!
가로쉬가 울음을 토해내며 발을 움직였다. 바람이 움직였다. 풍령들이 가로쉬의 움직임을 보조했다. 두 자루의 뇌광이 담긴 검을 피했으나.
쐐액!
어검은 내 의지에 따라 움직였다. 파바밧! 보랏빛의 뇌광이 가로쉬의 다리를 난도질했다.
‘얕다.’
그러나 공격이 얕았다. 풍령과 지령이 가로쉬에게
보조해줬기 때문이다. 지령이 가로쉬에게 단단함을, 풍령이 공중에서 움직일 수 있는 바람을 줬다.
‘원래대로라면 곤란하지는 않지만.’
윤승하의 타고난 정령 지배력 때문이었다. 본래 윤승하의 적들이 정령사일경우 적들은 어지간하면 윤승하에게 무력하다. 물론 게임인지라 다들 중후반부부터는 방비를 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정령의 힘을 쓰기는 요원하긴 마찬가지.
그러나 가로쉬는 다르다. 베오울프의 후예라는 신비??를 두르고 있고, 이곳 던전을 이루는 근간, 정령검의 인정을 받아 정령의 힘을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파지직!
가로쉬의 몸에서 황금빛의 번개가 튀었다. 발톱이 황금빛의 번개로 물들었다.
몸이 살짝 저렸다. 가로쉬가 뉴비 절단기인 이유였다.
근접전을 하면 마비라는 상태 이상을 일으킨다. 로크에서 어느 정도 숙련되면 바로 스킬을 이용해서 신공이나, 정령을 이용해 마비를 풀 수 있지만, 뉴비들은 즉각 즉각 반응하는 게 힘들다.
가로쉬는 타입은 전사라기보다는 암살자 타입에 가깝다. 강한 공격력, 빠른 속도. 다만 돌진 패턴과 도약 패턴을 제외하면 크게 위협적인 공격은 없지만, 플레이가 익숙지 않은 상태에서 마비를 풀고 즉각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그래서 별명이 뉴비 절단기.
캉!
금빛으로 물든 번개의 칼날이 내 목을 노렸다. 뇌광을 두른 검으로 맞상대했다. 손이 저렸다. 힘 싸움은 역시 내 쪽이 압도적으로 낮다.
황금빛의 번개가 파직거리며 몸을 자극했다.
그러나 음양체와 뇌령신공을 익히며, 뇌 속성의 저항력이 생긴 나로서는 살짝 거슬리는 정도였다.
가로쉬의 손이 한 번 더 휘둘러졌다. 이번 건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여기는 나 혼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얼음덩어리와 불의 창, 바람의 칼날, 형체 없는 공격이 가로쉬에게 향했다. 보랏빛의 중력이 가로쉬의 몸을 감싸, 압박했다. 나무줄기가 그를 감쌌고, 수십 자루의 정령력이 담긴 칼날이 가로쉬에게 향했다.
폭음이 치고, 윤승하의 공격에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마력을 눈으로 돌려 확인했다. 가로쉬의 몸에는 잔 상처가 많았다. 그리고 귀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소리 정령의 공격. 저 정령은 생명체와 싸울 때 특히나 유효했다.
달팽이관을 터트리거나 고장 내서 감각을 어긋나게 만들면 온갖 디버프가걸리기 때문이다.
파앗!
윤승하의 마나가 터질 듯이 팽창했다. 별 무리가 깃든 눈으로 윤승하가 조용히 가로쉬를 응시했다.
사방에서 빛과 우레가 쏟아지고, 독이 깃든 연무가 사방에서 가로쉬를 포위했다. 서리가 움직임을 둔화시키고, 어둠이 시야를 앗아가며 물의 채찍과 불의 창들이 쏘아졌다.
가로쉬가 공격을 막다가 이렇게 흘러가면 지는 것을 직감했는지, 자세를 낮췄다. 도박의 수였다. 나는 슬쩍 윤승하를 지켜보았다.
윤승하의 앞에 철, 흙, 꽃, 나무, 어둠의 방벽이 생겼다. 그것으로 조금 부족했는지, 무형의 방벽까지 세웠다.
콰아앙!
가로쉬가 포탄처럼 쏘아졌다. 황금빛의 잔상을 남기며 방벽에 부딪쳐 윤승하가 세워놓은 방벽을 깨부쉈다. 철이 으그러지고, 흙이 사방으로 퍼졌으며, 꽃이 흩날리고, 나무가 부서지고.
어둠의 방벽에 가로막혔다. 기회였다. 나는 검을 들고 휘둘렀다. 보랏빛의 뇌광이 가로쉬의 팔을 갈랐다.
어둠의 방벽에서 손이 나오더니 가로쉬를 구속했다. 보이지 않는 무형의 힘과 중력의 힘이 가로쉬를 압박했다.
“죽여!”
윤승하의 말에 온갖 정령들이 길길이 날뛰며 가로쉬를 공격하였고, 가로쉬의 육체는 이내 먼지가 되었다. 그리고.
텅.
검 한 자루가 떨어졌다.
검날은 얇았다. 검이라고 부르기도 묘했다. 약 1.5cm 크기의 넓이를 가진 칼날. 검날은 길어서 90cm가량 되었다. 실전성이라고 없어 보이는 검날. 예식용에 가까운 검.
“이건…….”
윤승하가 드물게 놀란 표정을 했다. 검을 들어 올려 잠시 눈을 감았다. 무언가 보이지 않는 파문이 퍼져나갔다.
주인의식이 성공했다.
“……엄청, 엄청 좋은 검이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다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은 휑했다.
“혹시 여기 던전 보상은 이게 끝인가…….”
“그건 아닐 것 같은데.”
보상은 하나 더 있다. 감춰줘 있어서 모를 뿐이지. 저 정령 검만큼은 아니지만, 꽤 유용한 보상이 있다.
“이, 이거 같이 쓸까?”
“아니, 그건 검보다는 지팡이 같은 거라 나보다는 네가 더 어울리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인의식이 이미 끝난 상황이다. 내가 만지면 거부반응만 일어날 거다. 나는 가로쉬가 나온 입구 쪽으로 향했다. 그곳도 횅한 공간이었다. 나는 유심히 땅바닥을 바라보았다. 어디 한군데만 다른 색의 흙이 있나 없나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1분 즈음 샅샅이 훑었을까. 한 군데를 발견했다. 나는 그곳을 조심스레 팠다. 안에는 검은색의 구체가 보였다. 빙고. 찾았군.
나는 그것을 주웠다.
“나는 이거 하나면 돼.”
“그거?”
윤승하가 검은색 구체를 유심하게 쳐다보았다.
“특별한 힘 같은 건 느껴지지 않는데……. 아니면 나중에 내가 던전같은거 도와줄까?”
나는 그 반응에 살짝 웃고는 칼을 들어 엄지에 살짝 상처를 내었다. 피 몇 방울 정도 떨어질 옅은 상처. 상처를 내고 검은색 구체가 그것을 받아먹었다.
그리곤 부르르 떨더니 입을 쩍 벌렸다. 나는 벌려진 입에 검을 넣었다. 검은색의 구체가 검을 삼켰다.
아공간.
그래봤자 고작 10m x 10m 정도의 크기밖에 안 되지만.
‘그게 어디야.’
나는 만족해하며 내 의지에 따라 팔찌로 변한 아공간 구체를 찼다.
“아공간 아티펙트였어?”
“응. 그런 셈이지.”
“그래도 나만 이득 보는 기분인데. 나중에 혹시 던전같은게 있으면 날 불러줘. 내가 도와줄게.”
윤승하가 말했다. 그건 좀 혹했다.
“채린이도 데려갈 수 있어. 애가 다른 건 몰라도 몸 하난 튼튼하니까 데려가면 쓸모가 많을 거야.”
윤승하가 열성적으로 말하자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 그렇게 되면 다음은 그곳으로 가야 하나.
‘거기 가면 오히려 윤채린의 빚을 가져올 것 같은데.’
“그럼 슬슬 갈까. 시간이 좀 아슬아슬한데.”
“그러자.”
내 말에 검을 품에 안고 가는 윤승하가 보였다. 남자답기보다는 가녀린 몸. 그리고 이상하리만치 히로인들과 이어지지 않는 엔딩. 모든 것이 전제 하나가 달라지면 이해가 가는 엔딩이었다.
‘어쩌면 윤승하는.’
“뭐해, 시우야. 뭐 놓고 왔어?”
윤승하의 부드러운 음색이 귓가로 스며들었다. 살가워진 말투에 나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고개를 저으며 윤승하에게 다가갔다.
“아냐. 빨리 가자. 늦겠다.”
***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온 것은 나 혼자였다. 윤승하는 잠깐 어디 들를 때가 있어서 거길 들르고 온다고 하였다.
나는 잠깐 핸드폰을 보았다. 문자 몇 개가 와 있었다. 주로 남다윤이 보낸 문자였다. 중국에서의 일이 늦어져 주말에 한국에 갈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시우야 미안ㅠㅠ누나 중국에서 일하는 게 좀 더 길어질 것 같아. ㅠㅠㅠ]
[시우 보고 싶다.]
[시우는 누나 보고 싶어?]
질척거리는 남다윤에게 적당히 못 봐서 안타깝다는 이모티콘과 답장을 하며 내 몸을 침대에 묻었다. 이지아와 임나연, 왠지 모르게 나에게 살갑게 대하는 김하린의 문자를 적당히 답해주자 문에서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며 윤승하가 들어왔다.
강아지 그림이 그려져 있는 흰색의 반소매 티셔츠. 다리를 감싸는 운동복 바지. 노출이 적은 옷들이 보였다. 평소에는 넘어갔던 것들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노출이 적은 옷들과 분홍색 잠옷이 떠올랐다. 그리고 뭔가 하늘하늘하며 색감이 다채로운 평상복들도.
‘분홍색 잠옷은 뭐…입는 애들도 있으니까.’
그러고 보니 씻어야 하는데. 한숨을 쉬었다. 보이지 않는 중력 같은 것이 나를 침대에 묻으려 했지만 유혹을 견디고 일어났다.
수건과 옷가지를 챙기고, 씻으러 갔다.
“샤워하게?”
“응. 오늘 던전갔다와서 좀 피곤해서 오늘은 좀 일찍 잘려고. 승하, 넌 안 피곤해?”
“나는 정령사니까.”
윤승하가 슬쩍 옅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샤워실로 향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