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여자들이 나에게 최면어플을 사용한다-60화 (60/298)

〈 60화 〉 동상이몽(3)

* * *

알림이 울리기 전에 일어났다. 시계를 보니 오전 4시 55분. 맞춰서 일어났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니 이제는 몸이 절로 반응한다.

나는 반팔을 갈아입다가 멈칫했다.

푸른색의 눈동자가 나를 응시했다.

‘……깜짝이야.’

그러고 보니 어제부터 윤승하랑 잠깐 룸메이트로 지내기로 했었지.

나는 잠깐 놀랐지만 반팔을 벗었다. 남자끼린데 뭐 어때. 나는 반팔을 입으면서 잠시 내 상체를 감상했다. 완벽한 초콜릿이 복근에 자리 잡고 있었다. 뿌듯해하며 잠깐 상체를 바라보다가 반팔을 갈아입었다. 오늘은 하얀색을 입어야지. 하얀색 반팔을 주워서 갈아입고 있자니, 윤승하가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윤승하는 아침에 약한 편이었지.

“나 먼저 나갈게.”

“어, 어? 응. 잘 갔다가 와.”

윤승하를 뒤로하고 운동장으로 향했다.

***

훈련을 끝낸 후, 땀을 훔치려다가 멈칫했다. 땀이 별로 나지 않았다. 만화나 소설 속 주인공들이 훈련하듯, 무게추를 더하고 이지아에게 특별히 부탁한 훈련용 기구들을 썼는데도 이랬다.

‘나연이 훈련실도 빌려야 하나.’

그러면 상승 폭이 꽤 될 것 같은데. 나는 그것을 생각하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내가 부탁하면 임나연은 선뜻 빌려주겠지만, 임나연은 좀 더 성장해야 된다.

지금은 비록 밀리지만 ‘빙정’을 먹으면서 강화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임나연이 가용하지 못하는 마나까지 끌어올리게 되며, 이지아만큼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후반부까지 활약이 가능해진다.

자판기를 보았다. 자판기에는 여러 가지 음료수들이 있었다. 몇 군데 다 팔려서 없다는 표시가 보였다. 나는 이온 음료와 항상 다 팔렸다는 표시가 절대로 뜨지 않는 오이 맛 사이다를 골랐다.

‘이건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는 걸까.’

하지만 취향이니까 뭐. 나는 자판기에서 윤승하에게 줄 오이 맛 사이다 한 캔을 뽑았다.

차가운 캔의 감촉이 손을 휘감았다. 기숙사로 걸음을 옮겼다.

삐빅.

지문인식으로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방금 샤워를 했는지 촉촉한 머릿결을 가진 윤승하가 나를 바라보았다.

“왔네. 훈련은 잘 됐어?”

“그냥 그렇지.”

적당히 답하며 캔 하나를 던졌다. 윤승하가 캔을 받고 놀란 얼굴을 했다.

“어? 너도 이거 좋아해?”

“……아니, 그냥 주웠어.”

내 말에 잠깐 입을 삐죽거리더니 캔을 땄다. 윤승하가 행복한 표정으로 그것을 조금씩 꿀꺽거렸다.

“화장실 다 썼지?”

내 물음에 윤승하가 오이 맛 사이다를 꿀꺽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대충 옷가지를 들고 샤워했다.

샤워하고 나오니 윤승하는 교복을 입고 정령하고 교감 중이었다. 나는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시계를 힐끔 보니 평소보다 빨랐다. 그래도 윤승하랑 친목 다질 기회니 같이 등교라도 해야지. 나와 윤승하는 밖으로 나왔다.

“오늘 아침이 송라희 교수님 수업인가.”

“응, 저번에 필기시험 본 거 강의해주신다더라. 그러고 보니 시우는 시험 잘 봤어?”

만점이었다. 필기시험 만점에 실기시험은 최상위권.

“나? 그럭저럭 잘 봤지.”

“그래?”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걷자니 금방 학교에 도착했다. 자리에 앉으니 차례대로 애들이 들어와서 자리를 잡고 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10분 뒤, 송라희가 들어왔다.

송라희가 문을 열며 폭탄을 투하했다.

“성적이 나왔습니다, 여러분. 성적이 가파르게 오른 학생들도 있고, 내려간 학생들도 있네요.”

종이를 쭉 훑어보더니 송라희의 시선이 잠깐 나에게 머물렀다.

“이번 성적 순위는 필기를 1 실기를 3의 비율로 채점하였습니다. 필기를 못본 학생들에게는 희소식이고, 실기를 망친 학생들에게는 불행한 소식입니다만…여기는 영웅을 만들어내는 학교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 말을 끝내고 송라희가 성적표를 펼쳤다.

성적표를 위에서부터 확인했다.

1등 윤승하

2등 윤채린

3등 은수아

4등 이시우

4위인가.

나는 그 숫자를 바라보았다. 예상은 했었지만, 실제로 보니 기분이 묘했다. 주변에서도 놀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 시험에서 굉장히 순위가 튀어 오른 학생이 있죠? 이시우 학생은 실기도 굉장히 뛰어났지만……필기시험은 정말 교수들 사이에서도 감탄밖에 나지 않았어요.”

송라희가 나를 보며 말했다.

“정말 대단하더군요. 감히 학생이라고 볼 수 없는 식견이 보였습니다. 아마 이론 쪽으로 가도이시우 학생은 역사에 이름을 알릴 천재로 남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송라희가 그렇게 칭찬하자 얼굴이 뜨거웠다. 그런 내 반응을 모르는 듯 송라희가 계속해서 내 칭찬을 이어갔다.

“혹시 상아탑에 들어오실 생각이라면 저에게 말씀해주세요. 제가 색의 권한으로 이시우 학생을 추천해 드릴 겠습니다.……어쩌면 이시우 학생이라면 지금까지 공백으로 남았던 ‘흰색’의 칭호를 얻으실 수 있을 테니까요.”

송라희가 중얼거리듯 이야기 했다.

색에는 무지개를 상징하는 색을 제외하고도 흰색과 흑색이 따로 나뉘는데 여기서 흰색은 이론을 뜻했다.

마법사들이라는 족속들은 재능이 희귀하여 그 숫자가 적은 데다가 자존심이 높고, 스스로 선택받은 사람들이라 생각하며, 전부 마법 이론에 한 평생을 바친 사람들이라 그들에게 인정받기라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웠다.……라는 것이 게임 내의 설정이고, 실제로는 주인공과 은수아가 합심하여 은수아가 흰색의 색을 부여받는 것을 도와주는 것으로 은수아를 공략하는 루트가 따로 있다.

송라희는 상아탑에 일원으로서 나에게 최고의 칭찬을 한 것이다.

그 칭찬이 있고 난 뒤에 수업이 진행되었다.

“사실 오늘 강의는 제가 준비한 것들이 있었습니다만……이시우 학생의 시험지를 보고 나서 마음이 바뀌었어요. 오늘 강의는 이시우 학생의 시험지로 대체하겠습니다. 우선…….”

***

밥을 먹다가 정보 수집을 할 겸 핸드폰을 켰다. 히어로 아카데미 학생들만 들어갈 수 있는 사이트에 접속했다.

접속했더니 업데이트를 한다는 표시가 있었다. 업데이트? 대충 내용을 읽어보니 좀 더 보기 편하게 간소화했다는 내용이었다.

­지금 기숙사 반파 돼서

­너희 친선전 있는 건 아냐?

­솔직히 마법 ㅈ밥인것같으면 개추ㅋㅋ

[작성자 : 고로시마렵다]

[제목 : 지금 기숙사 반파 돼서]

2인실 이상으로 돼서 화난 사람들 개추

윤승하인지 뭔지 1등이 기숙사 반파시켜서 화난 사람들 개추.

­승하는못말려 : 윤승하 없었으면 우리 다 2학년 숙박시설이나 3학년 숙박시설, 아니면 바깥에 호텔에서 잤을걸?

ㄴ승하야사랑해 : ㅇㅇ윤승하가 피해를 막아준 거지 윤승하가 기숙사를 반파시킨 게 아님.

ㄴ승하내꺼 : ㅋㅋㅋㅋ얘 그냥 윤승하 질투하는 추한새끼인것같은데.

­떼껄룩 : 윤승하 싸우는 거 안 봤냐? 고로시가 아니라 이거 자살 아님? 1학년에 그 호동이? 걔가 ㄹㅇ해킹 잘해서 이거 안전하지도 않은데ㅋㅋㅋ

­만카이 : 이번 사건으로 승하 팬 겁나 많아졌네. 근데 글쓴이는 자살한게 마따…

ㄴ포테이토 : ㅋㅋㅋㅋ영웅 예비 생도들 중에서 중격의 영웅급인데다 학교에서 잘생긴 걸로 따지면 투톱이니 당연하지.

­썬더볼트펀치 : 근데 학생들인데 호텔을 이용함? 헤으응

ㄴ포테이토 : ㅋㅋㅋㅋ맘만 맞으면 상관없지. 어차피 히어로 아카데미 학생들은 다 성인 신분이라 결혼도 일단 가능함

ㄴ천마 : 진짜?

ㄴ포테이토 : ㅇㅇ가능함. 법에 명시되있음

[작성자 : 북두칠성사이다]

[제목 : 너희 친선전 있는 건 아냐?]

지금 짱깨들이랑 친선전 준비 중이라는 카더라 있는데 아는 사람?

­고기는웰던 : ㄹㅇ?

ㄴ북두칠성사이다 : ㅇㅇ지금 짱깨들이랑 친선전 준비 중이래.

ㄴ고기는웰던 : 개꿀 아님? 지금 1학년들 ㄹㅇ미쳐날뛰는데.

­오이맛사과 : ㅋㅋ1학년들 무조건 다 이기지.

ㄴㅇㅇ : 짱깨들 ㅈㄴ쌔지 않냐? 공허족 이 새끼들 덕분에 요즘 무섭던데.

ㄴ북두칠성사이다 : 국뽕 어느 정도 있기는 한데 지금 윤 씨 쌍둥이 ㄹㅇ괴수들임ㅋㅋ

ㄴㄹㅇㅋㅋ만치라고 : ㄹㅇㅋㅋ

[작성자 : 주문싸개]

[제목 : 솔직히 마법 ㅈ밥인것같으면 개추ㅋㅋ]

아무리 마법 잘 익혀봤자 은수아처럼 발릴 것 같으면 개추ㅋㅋ

마법사들 맨날 고고한 척, 자기들만 대단한 존재인 척 하면서 은수아가 윤채린의 ‘천마데스빔’한방에 발린 거 보고 통쾌했으면 개추. 주문싸개들 지린거보면 진짜 마법사는 암것도 아니다. 우선 나부터ㅋㅋㅋㅋㅋㅋ

­무지성개추러 : 씹ㅋㅋ천마데스빔ㅋㅋ존나 찰지네

ㄴ부엉이가물에빠지면첨부엉 : 그럼 윤채린 천마군림보도 천마데스킥임? 엌ㅋㅋ

ㄴ천룡검제 : 갈!!!!!!!!!!! 이,,,런,,,,쒸불,,이런건,,,무공이,,아니야!!!

ㄴ원딜은신이다 : 검제게이야…

ㄴ롤링팝 : ??천룡검제 쟤 게이임?

ㄴ천룡검제 : 게이아닌데요씨발아

­암흑여제 : 이런 싯팔. 선 존나 넘네.

ㄴ암흑여제 : 칠색검 맛좀 볼래?

ㄴ응애공룡 : 뭐임ㅋㅋ? 위에 찐임?

ㄴ푸른눈의백룡 : 작성자 ㅈ댔네ㅋㅋ

ㄴ콜라는펩시 : 나만 아니면 돼에에에에~~~~

­날아오르라주작 : 이거 주작 아님 내가 개추 50번 눌러서 념글 보냄

ㄴ초밥마시써 : 그게 주작이거든요…

ㄴ굴소스 : 아까부터 개추 하나 사라졌다 말았다 했는데 너였냐?

ㄴ적패 : ???이 새끼 개추 50번 한 게 아니라 50번 쳐누른거임? ㅋㅋㅋㅋㅋ

흥미로운 글이 많았다. 일단 친선전은 원래 미국 쪽이랑 했는데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중국으로 변경되었다. 아마 내가 정사에 참견하게 되면서 뭔가를 건드렸기 때문이겠지. 딱히 중요한 이벤트는 없으니까 상관은 없다. 상품이 중요하긴 하지만 바뀌지는 않을 테고.

‘그럼 샤오메이 동생도 나오는 건가.’

저번에 슬쩍 보니 꽤 쌨었는데. 뭐 문제없겠지. 그렇게 밥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가져갔을 때, 기다란 은빛의 머리가 보였다.

김시연. 신을 먹어 치운 늑대, 펜릴의 피를 이은 풍랑이 내 앞에 있었다.

“안녕.”

김시연이 쭈뼛거리며 인사했다. 나도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요새 얼굴 보기 힘드네”

“시험 기간이었으니까요. 그래도 톡은 많이 했잖아요.”

어색한 존댓말을 했다. 전생의 나이로 치면 나보다 몇 살은 어린 나이지만…지금은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존댓말을 했다. 그렇지만 20살인 애한테 존댓말을 하다니. 상황이 묘해서 애꿎은 햄을 젓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그러고 보니 훈련은 어때요?”

“훈련?”

내 말에 김시연의 얼굴이 조금 시무룩해졌다. 훈련이 제법 빡센 모양이다.

“많이 힘들……지만 그래도 괜찮아. 내가 강해진다는 걸 느낄 수 있으니까.”

“그래요?”

“응…시우가 나랑 처음 만났을 때, 계약을 도와준 덕분에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더라고. 나를 가르쳐주는 요정님들도 내 성장세를 보고 엄청 놀랐어.”

그렇게 말하며 김시연의 눈동자가 생글거렸다.

“다행이네요.”

“응, 그리고 그란데힐님이 키우는 요정수가…….”

카톡으로도 많은 대화를 했는데도 할 이야기가 많은지, 연신 입을 놀렸다. 나는 그녀의 말에 맞장구쳐주며 대화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밥을 먹으니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여기 식당 엄청 맛있다.”

그녀가 중얼거렸다. 진짜 맛있는 모양인지 볼에도 양념 소스가 묻어 있었다. 식탁 한 켤레에 놓인 티슈를 한 장 꺼내, 볼에 묻은 양념을 닦아줬다.

“아, 고마워.”

김시연이 헤헤 웃으며 말했다. 거의 꼬리가 있었으면 흔들 기세였다. 실제로 갯과니 틀린 말은 아니겠지.

“아, 그러고 보니.”

김시연이 갑자기 잊어버린 게 있었다는 듯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중요한걸 말하는 듯이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나에게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조만간 학교에서 친선전이 있을 거래. 상대는 중국의 학생들이고. 이거 그란데힐님한테 들은 거니까 어디서 말하지 마.”

슬쩍 칭찬해달라는 우쭐거리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딴에는 굉장히 귀중한 정보를 가르쳐주는 것 같은 표정인데.

‘이미 학교의 학생들 대부분은 다 알고 있는 내용인데.’

* *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