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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나에게 최면어플을 사용한다-58화 (58/298)

〈 58화 〉 동상이몽

* * *

“이봐, 꼬맹이.”

익숙하면서도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렸다. 하얀색의 야구모자를 비스듬하게 쓴, 여성이 보였다. 파란색의 후드티. 검은색의 스키니진을 입었고, 하얀색의 운동화를 착용했다.

기다란 검은색의 생머리. 여기까지만 보면 평범한 여인이지만 그녀의 눈동자가 특이했다. 태양과 보름달이 박힌듯한 붉은색과 푸른색의 오드아이. 음양안이었다.

나는 이 인물을 알고 있다.

세계 전체를 뒤져도 고작 50명밖에 안되는 최상격. 그중에서도 추리고 추린 13명의 일원. 십 삼익이라 불리며 한 명 한 명이 나라의 전력을 좌지우지하는 존재 중 하나.

섬뢰 김은정.

다른 말로는 라이트닝이었다. 애초에 모를 수가 없는 인물이었다. 내가 성장하고 있는 성장 트리 중에서 가장 많은 영감을 받은 상대니까.

나는 바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날 알아보는 모양이네……. 유명세가 이럴 때 좋기는 해. 귀찮게 이리저리 잴 필요는 없으니까.”

그녀가 씩, 하고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꼬맹이. 너 음양체를 가지고 있냐?”

김은정이 물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체질 맞죠?”

“응. 그게 맞아. 하긴 보랏빛 마나를 보니까. 어떻게 쓰는지는 하는 것 같고.”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손가락을 튕겼다. 탁.

파지직!

새까만 칠흑빛의 번개가 그녀의 손을 휘감았다. 음양체가 한 단계 진화해서 태극 지체가 되면 보랏빛의 마나는 사라지게 된다. 대신 검은빛의 마나로 바뀐다.

“다른 놈들은 이것저것 재고 뭐 설명하겠지만, 나는 그런 성격이 아니거든. 꼬맹이. 협회에 들어와라. 그러면 내가 키워주마. 네 재능을 보면 아마, 10년 내외로…나만큼 강해질 수 있을 거다.”

김은정이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좀 놀랐다. 최고의 위치에서 있었던 그녀는 사람 보는 눈이 좋고, 오만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말을 할 줄이야.

“죄송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계약서를……음?”

김은정이 담담하게 말하다가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내가 자신의 제안을 거절할 줄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좋은 제안이기는 했다. 다만 10년 후면 마왕이 부활한다는 게 문제고, 나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도 있었다.

“제가 스승으로 모시고 있는 분이 계셔서요.”

“남다윤 말인가?”

김은정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어떤 의미에서 스승이 맞기는 하지만 동료에 더 가까웠다.

나는 좀 곤란한 표정으로 주위를 바라봤다. 그러자 김은정이 손가락을 튕겼다. 허공이 물결치며 장막 같은 것이 주변을 감쌌다.

“주변의 소리를 차단했다. 걱정하지 말아라, 요정 여왕조차 이곳의 이야기를 엿들을 수 없으니까.”

김은정이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실제로 티타니아가 주의한다면 못 들을 것도 없고 공간계 관련된 능력을 지닌 그란데힐이라도 능히 들을 수 있지만…….

그들이 이 대화를 주목할 리는 없겠지.

“꼬맹이, 말해봐라. 스승이 누구길래 그러는 거지.”

“혁월이에요.”

그녀가 흠칫했다. 눈동자가 순간 떨렸다. 이윽고 그녀가 굳은 표정을 짓고는 나를 바라봤다.

“꼬맹이…너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지?”

“네. 알고 있어요.”

무신.

회귀자라 불린 존재와 어깨를 나란히 한 괴물이다. 그와 함께 싸울 때면 항상 최전방에서 돌격하는 인물.

그는 옛날 옛적에 죽은 인물이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는 그의 무공을 배우고 있으니까.

뇌령신공.

기린의 모습을 본떠 만든 무공은 그가 창시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익히면 익힐수록 점점 기린의 모습을 따라가게 된다.

그리고……뇌령신공이 극성에 도달하게 되면 뇌신무??라 불리는 무공이 탄생한다.

“혁월……. 무신, 혁월의 유산을 이은 소년이라.”

김은정이 잠시 눈을 감았다.

“혹시 다른 누군가에게 말한 적은 있나?”

“아뇨, 없어요.”

“그래…그 이야기는 남다윤에게도 하지 말아라. 설사 그게 가족일지라도 말이야.……때론 정보를 아는 것만으로도 목숨이 위험해지는 그런 정보가 있다. 소년, 네가 가진 무공은 그런 종류의 것이야. 만약 진실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나라 전체가 피로 물들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그런 종류의 것이지.”

김은정이 잠시 뜸을 들이며 말했다.

“하지만 그 정도의 정보가 평생 숨겨질 거라 생각하지는 마라.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이능??들이 존재하니까. 과거를 염탐하는 종류도 있고, 미래를 보는 미래시???같은 종류의 것도 있으니까. 무신…그것과 연관된 키워드로 어쩌면 네가 그의 무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 존재도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나를 불러라.”

“……그건.”

“거부할 필요 없다. 내가 혁월에게 목숨 빚을 좀 많이 달아뒀었거든.”

그녀가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고, 거기서 명함 한 장을 나에게 건넸다.

나는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녀석은 가족도 없어서 이 빚을 못 갚고 갈 거라 생각했었는데……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좀 다르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등을 돌렸다.

“그럼 간다, 꼬맹이. 잘 있어라.”

파직.

검은색의 번개가 일었다.

그리고 그녀의 모습이 사라졌다.

***

시험이 끝난 후.

떠들썩한 학생들로 넘쳐났다. 영웅 지망생이라도 학생은 학생이었다.

수업이 끝난 지금, 여기저기서 놀러 가자는 학생들이 많았다.

“야, 너희는 노래방 갈 거야?”

“아니, 난 피방갈려고.”

여기저기서 학생들이 모여 놀러 가자는 이야기로 모이고 있었다.

“……시우는 갈 거야?”

임나연이 옆자리에서 나를 보며 물었다.

“어딜?”

“우리 중간고사 끝난 기념으로 놀러 가려고.”

그렇게 주위를 쓱 둘러보니 얼굴만 아는 애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아는 게 이지아. 놀랍게도 이런데 항상 끼는 한종우가 보이지 않았다. 한종우 자리를 보니 주변에서 애들이 있고, 거만한 자세로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는 임나연을 바라보았다.

임나연이 책상에 턱을 바친 채로 기대 어린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무심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뻔했지만, 가까스로 참았다.

“미안, 난 일정이 있어서.”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임나연의 권유를 거절했다.

“헐, 설마 시험이 끝났는데도 훈련하러 가는 거야?”

임나연이 경악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옆에 있는 이지아가 나를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응”

“……그럼 나도 시우 따라서 훈련하러 갈까?”

“어? 애들하고 놀기로 한 거 아니야?”

“……그렇게는 한데.”

임나연이 슬쩍 나를 바라보았다.

표정을 보니 나랑 같이 있고 싶나보다. 그런데 나는 훈련장 가봤자 미친 듯이 훈련에 매진할 건데.

‘임나연이 싫은 건 아닌데.’

아니, 오히려 좋다. 그녀는 이쁜 데다가 몸매도 좋고, 성격도 좋으니까. 조교당하고 싶은 이상한 성벽이 있지만, 그 정도야 괜찮다. 그녀가 가진 배경은 그런 사소한 단점쯤은 가리니까. 대한민국 재계 1위의 회사. 그곳에서 유일한 독녀인 임나연.

원래 전생에 치면 애플이나 구글의 회장이 아끼는 유일한 독녀라고도 볼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진짜 말도 안 되긴 하네.’

하지만 훈련하면서……슬슬 뇌령신공이 궤도에 오르고 있었다. 슬슬 뇌령신공의 오의들이 눈에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미안, 요즘 훈련하고 있는 게 한참 잘 돼서.”

“아, 그럴 수 있지. 열심히 해. 다음에 같이 하자.”

임나연이 아쉬워하며 말했다. 임나연과 이지아를 뒤로하고 반에서 빠져나가는 길.

김하린이 다 안다는 듯이 기분 나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꿀밤 마렵네.’

그러다가 김하린과 눈이 마주쳤다. 분홍빛의 눈동자가 몽롱하게 바뀌었다. 그리곤 슬쩍 고개를 내리고 수줍어하는 표정으로.

나는 그 모습을 잠시 눈에 담고는 훈련장으로 향했다

***

훈련장으로 향하는 길. 가는 길에 빛바랜 백색의 머리카락이 보였다. 금빛으로 빛나는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았다. 와이셔츠의 단추를 두 개 풀어놓고, 마이를 허리에 묶은 패션.

씩, 하고 웃으며 은수아가 나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이번에 크게 한 건 했던데. 한종우도 이기고. 일각에서는 벌써 널 웨폰 마스터라고 부르기도 하더라.”

네가 부르는 게 아니라?

나는 묻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근데 벌써 그렇게 두각을 보여도 괜찮은 거야? 최하위권에서 단숨에 최상위권으로 치고 올라와서, 길드 관계자들이 전부 네가 누구냐고 묻거라. 이번에 사건으로 널 주시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어. 영감님이 너에 대해서 알아 오라고 하더라고.”

은수아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어감이 묘했다.

“……상아탑주 님?”

“응.”

은수아가 불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영감님이 말하더라…….”

은수아가 말을 멈춘 채 한곳을 주시했다. 1학년들이 있는 기숙사. 은수아가 주시한 쪽에 마나가 팽팽해지더니, 이윽고.

콰아아앙!

거대한 폭발음이 들렸다. 그러고 보니 슬슬 이 사건이 나오기 시작할 때가 되었지.

‘벌써 계약을 하는 건가.’

나는 흥미로운 눈으로 기숙사를 주시했다. 저것은 마인이 침공했거나 그런 사태가 아니다. 단지 사고로 일어난 폭발일 뿐이니까.

“뭐야, 별거 아닌 거야?”

우웅­공간을 통째로 도려낼 것 같은 칠색 검을 든 채 은수아가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딴에는 마인이 잠입해서 준비하고 있던 모양인데 내 표정을 보고 별일 아닌 거로 치부했다.

‘별일이냐 아니냐로 따지면 별일이 맞기는 하는데.’

결과로만 말하자면 별일 맞다.

주인공 파워업 이벤트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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