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 빼앗는자, 빼앗기는 자(9)
* * *
“임나연, 한종우, 아야네, 제이니, 강찬우, 하수진…….”
김춘자가 이름을 호명했다. 호명한 학생들의 숫자에 따라 경기장에서 환호성이 울렸다.
결투장에서 학생들이 올라가자 남색 로브 차림의 마법사들이 수인을 맺고, 주문을 외웠다. 마법진이 허공에 떠올랐다.
마법진에서 환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관절마다 검이 튀어나온 나찰이라 불리는 환수에다가 이족 보행을 하며 기다란 롱소드와 방패를 든 것이 특징인 호랑이의 줄무늬를 가진 타이거 울프.
온몸이 철갑으로 가려져 있는 철갑거인과 빠른 속도와 강한 내구성과 근력을 가져 상대를 제압하여 꿀을 바른 사탕을 먹이는 습성이 있는 캔디베어 등등. 여러 가지 환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임나연 쪽을 바라보았다. 임나연의 상대는 호랑이 줄무늬를 가진 늑대, 타이거 울프였다. 수인족이지만, 뛰어난 기교를 가져서 상대하기 까다로운 중하위급의 몬스터였다. 주로 땅의 기운을 끌어다 써서 방어력이 뛰어난 것이 특징이었다.
타이거 울프를 향해 임나연이 달려들었다. 길쭉한 푸른색의 검기가 검신을 타고 넘실거렸다. 타이거 울프가 방패를 위로 올렸다. 방패에 노란색의 기가 흐르며 그것을 흘렸지만.
“하압!”
임나연이 기합을 내뱉으며 강하게 휘둘렀다.
쩌어엉!
검과 방패가 격돌했다고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슬쩍 옆을 보니 던전 실습 때 같은 파티였던 아야네가 캔디 베어랑 싸우고 있었다. 아야네의검이 새까만 색으로 물들었다. 검기의 발현. 그리고 그녀의 고유 능력인 단절이 발동한 결과였다. 저 상태라면 어지간한 것들은 한번 긋는 것만으로도 절단되어 버린다.
쾅쾅한쪽에서는 한종우는 철갑거인과 투닥거리고 있었다. 한종우가 대검으로 크게 긋자, 철갑 거인의 팔뚝이 반쯤 잘렸다. 철갑 거인이 크게 주먹을 휘둘렀다. 한종우가 거인의 주먹을 갑옷으로 받아들였다. 들썩. 몸이 잠깐 떴지만, 이내 다시 땅으로 내려와 대검을 휘둘렀다. 서로 방어력이 높은 것들의 싸움. 침투경을 안 배웠으면…나도 저렇게 싸워야 했겠지. 보기만 해도 땀내가 났다.
주변을 슬쩍 둘러보니 남자들은 그 싸움에 열광하고 여자들은 질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단기 전력으로 승부를 보는 학생들은 이미 무대에서 내려오고 있었고, 장기전이 장기인 학생들은 아직 한창 싸우는 중이었다. 여기저기서 교수들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학생들이 실수를 하면, 고개를 저으며 노트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시간 가량 흘렀다. 관중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르고 계속해서 올라갔다.
“김현우, 우르하, 이시우…….”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주변에서 나를 쳐다봤다.
느긋하게 엉덩이를 털며 일어났다. 어떤 상대가 올까. 내 변화는 너무 즉각적이었다. 처음엔 기교랑 머리만 뛰어난 학생에서 마인 전에서도 나름 활약을 하는 학생. 그리고 한종우를 상대로도 이길 힘을 가진 학생으로.
정신력을 괴롭히는 환수는…나오지 않을 것 같다. 나오지 않으면 좋기도 하고.
아직 내 능력은 소문이 퍼지고 있을 뿐이니까. 정신계 환수가 나오면 맥없을 정도로 쉽게 져줘야 했다.
반대로 그 외의 환수가 나온다면 압도적으로 이겨야 했고.
느긋하게 결투장으로 올라왔다. 사방에서 환호성이 울렸다. 잘 생겼다고 하는 소리도 가끔 들렸고, 숨이 멎는 소리도 들렸다.
“이시우 학생. 준비되셨습니까?”
남색 로브를 입은 마법사가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자 수인을 맺었다.
소환 마법진이 허공에서 빛났다.
묵빛의 광택을 빛내는 철갑 거인. 당첨이었다. 나는 웃으면서 할버드를 휘둘렀다.
***
족히 수천 명은 수용할 수 있는, 콜로세움을 재현한듯한 공간. 관중석은 이미 발 디딜 틈도 없었다. 보통 학생의 가족들이 절반을 채우고, 그의 오 분지 일쯔음 되는 스카우터들이 자리를 메꿨다면, 지금은 스카우터들이 족히 절반 이상을 메꾸고 있었다.
“황금세대, 황금세대 하더니 정말 장난 아니네.”
찌익과자 봉지를 쥐어 뜯었다. 감자칩을 한점 꺼내 입에 물었다.
새 하얀색의 야구모자를 대충 걸치고, 파란색의 후드티를 입은 여성.
달라붙는 스키니진을 입은 채 다리를 꼬고 관중에 앉은 채 느긋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의 주변에는 자리가 휑했다. VIP석. 학교에 과도한 기부를 했거나 학교의 명예를 드높인 이들을 위한 이들을 위한 자리였다.
“이번 세대는 정말 이상할 정도로 특출납니다. 근 5년간 뛰어난 학생들은 두 손에 꼽을 정도라고 하면 이번 기수들은 대충 훑어봐도 10명은 훌쩍 넘어갈 정도로요…….”
갈색빛의 바바리안 코트에 중절모를 입은 50대의 남성이 말했다.
“그렇지? 괜찮은 애들이 정말 많이 보이네. 그 광성자의 아들도 무식하지만, 방어력과 힘은 괜찮고.”
“네. 임나연도 꽤 괜찮네요. 거기 안사람이 임나연을 워낙에 아껴서 온갖 영약으로 강해진 케이스인 줄 알았는데……기본적으로 자기 힘을 다룰 줄 알고요.”
“그러게. 저 정도면 괜찮네. 요즘 애들은 겉 스펙만 올려서 기교 같은 거 모르는 놈들이 대부분이지. 온갖 지원을 받고 아득바득 올라가면 상격에 오를 재능으로 중격에 겨우겨우 오르는 꼴을 보면 울화통이 다 터진다니까? 그 얼마 전에 길드에 들어온 누구냐. 그 녀석도 약한 주제에 새도어 워리어에게 깝죽거리다가 골로 갈뻔한 애. 아, 생각하니까 다시 화나네.”
와그작, 하고 감자칩을 세 개를 한 번에 먹으며 우물거렸다.
“그러고 보니 꼬맹이, 협회에서 누구누구 꼬시라 했지?”
꼬맹이. 명백하게 50대로 보이는 바바리안 코트를 입은 남성에게 말한 것이지만, 그것을 말한 여성도, 그것을 들은 남성도 그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겉으로는 20대로 보이지만 족히 100세를 훌쩍 넘은 그녀가 보기에 자신은 꼬맹이가 맞으니까.
“재능이 있고, 배경이 약한 사람들이라고 했었죠. 윤채린과 윤승하를 최우선으로 접촉해야 합니다.”
“아, 그 쌍둥이? 게네는 확실히 태생부터 난 놈들이더라.”
감자칩을 하나 씹어먹으며 생각했다. 십수 체의 정령을 부리는 소년.……아니,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남장을 하던 소녀. 그리고 화사한 금발에 악동 같은 얼굴을 하던 소녀.
걔들은 난 놈들 중에 난 놈들이었다. 100년을 살아오면서 그런 종류의 재능들은 처음 보았다. 그 나이에 그 정도로 강했던 존재들은……없지는 않았지만, 그들보다 좀 더 다른 무언가라고 해야 하나.
“그리고……만약 그 둘이 안 된다면 다른 두 명을 어떻게든 포섭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쯧, 꼬맹이 놈들이 어르신을 귀찮게 한단 말이지. 누구냐.”
“이시우와 김하린입니다.”
“김하린?”
“저기에 보이는 핑크 머리의 소녀입니다.”
그 말에 그녀는 눈을 떴다. 붉은빛의 태양이 그녀의 오른쪽 눈에 떴고, 푸른빛의 달이 그녀의 왼쪽눈에 떴다. 음양안???. 만물을 살피는 눈이 핑크빛의 소녀에게 향했다.
“와오. 쟤도 장난 아닌데?”
“……그 정도입니까?”
“엉. 저기 보이는 한종우나 임나연이 합공해도 답이 없을걸.”
여성의 중얼거림의 중년 남성의 눈이 커졌다.
“그건 따로 보고드려야겠군요.”
“엉. 어지간하면 협회에 끌어들여라. 보니까 이동과 관련된 능력인 것 같은 데. 한 5년…은 무리고 7년쯤 열심히 키우면 내 옆에는 설 수 있겠다.”
중년의 남성은 잠깐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옆에 선다? 어지간한 상격의 영웅들도 거치적거린다고 하는 여자의 입에서 나온 말인가.
“당장 섭외순위 1위로 올리겠습니다.”
“아니, 그 정도는 아니고.”
중년 남성의 말에 여성이 말을 잘랐다.
“네?”
“저거. 저 녀석. 무조건 1위. 저거 진짜 장난 아닌데?”
여성이 흥분한 표정으로 손을 가리켰다. 그 시선을 따라갔다. 잘생긴 이란 표정도 부족했다. 아름답다는 말로도 수식하기 힘든 소년이 있었다.
이시우. 프로필의 사진을 보면서 이 녀석이 협회의 얼굴이 되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던 소년이었다.
“야, 저 녀석 엊그제 한종우를 이겼다고 했지?”
“네? 네. 그 과정에서 그가 가진 특성이 탐욕스러운 거래라는 것이 확인되어서 협회에서도 망설이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정신계 쪽 유물 같은 것은 비싸서.”
“……그래?”
히죽. 입꼬리가 올라갔다. 중년의 남성은 몸을 떨었다. 천방지축이지만 가진바 힘이 너무나도 강해,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여성이 흥미를 보였다. 저 표정을 보았을 때가 언제였지. 검주, 남다윤을 봤을 때였나. 아니, 지금 표정은 그때보다 더…….
이윽고 소년이 결투장에 올라갔다. 특이점이라면 여러 가지의 무기를 주렁주렁 매달고 왔다. 할버드에 채찍, 창과 대검. 소검과 롱소드.
마법진이 빛을 발했다. 나온 몬스터는 묵빛의 광택을 빛내는 철갑의 거인. 그리고 그것을 보는 소년은 히죽, 하고 웃었다. 할버드와 대검, 소검을 제외한 무기를 버리고, 철갑 거인에게 달려갔고.
약, 10분 후. 철갑 거인이었던’것’으로 만들었다.
“휘유, 엄청 깔끔한데.”
“네. 그래도 엊그제 결투에서 만큼의 이펙트는 없네요……라고 하고 싶지만.”
“장난 아니지? 할버드를 찍고, 대검으로 바꾸는데 딜레이가 거의 없었고.”
“……엊그제 보여준 기교도 장난 아니었지만, 오늘은 기교 쪽에 힘을 더 주었군요.”
“소검과 롱소드를 관절에 찍고, 대검으로 결정타. 할버드의 창날로 어깨를 찍었던 장면도 인상적이었지.”
“그럼 슬슬 돌아갈까요? 경기는 거의 다 끝났는데.”
“아, 갈 거냐?”
“네. 아내하고 딸이 기다리고 있거든요.”
“……쩝. 그래 잘 가라.”
중년의 남성이 환하게 웃는 중년의 여성과 중학생쯤 된 학생을 향해 걸어갔다.
고개를 돌려 조용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여성의 눈동자의 아련한 감정이 깃들었다.
***
시험이 모두 끝났다. 사방에서 이번 시험 망했어, 라며 우는 애들도 보였고, 거만하게 앉아 있는 애들도 있었다.
조용히 파벌의 우두머리 눈치를 보는 학생들도 있었고, 제법 잘 봤는지 의기양양해 보이는 표정의 학생도 있었다.
“후, 이번 시험 제대로 조져버렸다.”
“오, 잘 봤냐? 웬일이래.”
“아니, 존나 망했는데.”
……뭐, 이런저런 학생들이 있었다.
"다들 중간고사 끝났다고, 너무 푹 늘어지지 마세요. 오늘을 계기로 하위 권의 학생들은 반성하여 위로 올라갈 수 있게 노력하고, 상위권의 학생들은 하위권의 학생들에게 순위를 뺏기지 않게 단련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다들 오늘은 해산하셔도 좋습니다. 다들 이번 시험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송라희의 말에 사방에서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겠다는 학생도 있었고, 친구들을 모으는 학생들도 있었다.
나는 학생들을 지나치고 훈련장으로 향했다. 어제 푹 쉬었으니 오늘부터 계속해서 움직여야지. 부모님에게는 미리 문자를 보냈다.
나는 훈련장으로 향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