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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나에게 최면어플을 사용한다-54화 (54/298)

〈 54화 〉 빼앗는자, 빼앗기는 자(6)

* * *

팔에 낀 천변과 기타 액세서리들을 관계자에게 맡겨 두고 결투장으로 향했다.

시험 중에 외물의 힘을 빌려 오는 것이 불가하다. 생도들의 능력을 확인하는 시험의 장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건 좀 불편하네.'

단도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게 퍽, 불편했다.

나는 기지개를 펴며 마지막으로 몸을 점검했다.

"이시우 님, 출전 준비 하실게요~."

귀가 뾰족한 엘프족이 말했다. 안내를 받아 무대 위로 올라갔다. 반투명한 마나의 방벽이 반원의 형태로 무대를 감쌌고, 그 밖에서는 수천의 사람의 시선이 느껴졌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이 수면위로 부상했다. 중압감과 짜릿함이 공존하는 느낌.

그것을 느끼고 있자니 반대편에서 한종우가 보였다.

터벅거리며 고요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한종우.

조용히 그의 무장인 대검을 들어 올렸다.

나도 조용히 검을 뽑아 들었다. 스릉, 철 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검을 들어 한종우에게 겨눴다.

"그럼 A반의 한종우 학생과 이시우 학생의 대결이 있겠습니다!"

심판역을 맡은 요정족이 나와 한종우에게 마법을 걸었다. 마법방벽. 생도 수준으로 이 방벽을 부술 수 있는 존재는 쌍둥이 용사뿐이다. 즉, 손대중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싸워보는 건 처음인가?”

“싸우려고 할 때마다 나연이가 말렸으니까.”

한종우가 나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번엔 말릴 사람도 없다.”

“그러게.”

오히려 주위에서 환호하고 있었다. 내기판도 벌이고 있겠지.

“그럼 학생분들은 다들 준비해 주세요.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요정족이 카운트를 세기 시작했다.

"셋."

한종우가 조용히 마나를 체외로 배출하기 시작했다.

"둘."

마나가 조용히 파문을 일으키며 조물되더니 그것이 이내 한종우의 전신을 감싸는 갑옷으로 화하기 시작했다.

그의 고유 능력인 마갑??이다.

저 상태에서 한종우의 신체 능력은 급등하게 올라간다. 당연하게도 방어력과 마법 저항력이 그것보다 더 올라간다. 후에 상격으로 올라간 한종우는 어지간한 검기들은 무시하고 저 상태로 돌진해서 찍어누른다.

그러나 저 정도로 강한 능력에는 항상 대가가 따른다. 저런 종류의 능력은 흔히 말해서 가성비가 별로다.

보통 학생이라면 저 갑옷을 1분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골골대겠지만……한국을 대표하는 길드의 회장의 아들로 태어난 한종우는 날 때부터 몸에 좋다는 온갖 영약들을 먹고 자라났다. 빡빡하게 잡자면 15분 정도 유지할 수 있으려나.

그렇기에 한종우의 특기는 단기전이다.

"하나."

갑옷을 착용한 한종우가 허리를 굽히고 한 손으로 땅을 짚는 돌진의 자세를 취했다.

단검을 꺼냈다. 가면을 쓴다. 마나를 불어넣자 파직하고 보랏빛의 번개가 단검에서 피어올랐다.

"시작!"

팡!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들리며 한종우가 돌진했다.

동시에 단검을 내던졌다.

특성 어검에 의해 단검이 분열한다.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셋으로. 보랏빛의 뇌광이 피어오른 단검이 세 개가 한종우에게 쇄도했다.

한종우가 옆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소용이 없다. 저것은 어검의 특성이 적용되어 있으니까.

내 뜻에 따라 단검이 휘었다.

"귀찮은 잡기를!"

우웅! 대검이 잘게 떨렸다. 대검에서 푸른 빛이 피었다. 푸른빛의 검날이 길쭉하게 뻗었다.

캉!

푸른빛과 보랏빛이 부딪친다. 검광이 번뜩였다. 한종우의 대검이 단검들을 쳐냈다. 캉캉! 단검을 쳐냈지만, 단검이 다시 한종우를 노린다. 특성, 어검의 효능이다. 대인전에서 뛰어난 능력을 자랑한다.

"쯧."

한종우가 낮게 혀를 찼다. 슬쩍 눈치를 보며 대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대검에 마나가 광채를 더해갔다. 그리고 대검을 크게 휘둘러.

쨍!

단검을 깨트렸다. 깨진 단검의 분신은 허상으로 사라졌고, 본체는 검신이 두 동강이 난 체 땅에 떨어졌다.

'흠…….'

어검이 확실히 대인용에서 좋기는 하나……마나의 소모가 심했다. 마나가 사 분의 일은 날아갔다.

한종우도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는 것이 보였다. 마나를 소모한 값을 따지자면 한종우가 절대적으로 손해나 퍼센트 지로 따지면 내가 손해였다.

나는 단검집을 땅바닥에 던졌다. 검을 들었다.

한종우가 빠르게 돌진해온다.

그리고 대검을 크게 휘두른다. 거대한 풍압이 일었다.

나는 스텝을 밟으며 대각선으로 물러났다. 한종우가 대검을 회수하고 다시 크게 휘두른다.

'귀찮아.'

동작을 크게 하는 것은 위력의 상승을 동반한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지만……그와 동시에 약점 또한 노출된다. 그러나 한종우에 한해서는 이야기가 달랐다. 몸을 감싸는 마갑으로 약점을 보완한다. 그리고 큰 동작으로 강한 공격을 한다.

‘내가 패링으로 막을 수 없을 만큼.’

슬쩍 눈짓하며 검에 동반된 풍압을 바라본다. 그리고 판단을 내렸다.

생각보다.

‘훨씬 더 할만한데?’

가면을 중첩한다. 근력이 증폭하며, 감각이 날카로워진다. 마력이 증폭되고, 밀도가 높아졌다. 다시 한번 한종우의 대검이 크게 휘둘러지자.

콰앙!

보랏빛의 뇌광과 푸른빛의 검기가 부딪쳤다. 몸이 조금 밀렸지만, 이정도야 예상했다. 한종우가 다시 검을 휘두르려 하자 손을 폈다.

마갑은 귀찮다.

사용자에게 신체 능력을 월등히 올려주며 방어력과 저항력을 크게 올려준다.

물리적으로도, 마법적으로도 강인하게 만들어준다. 사용자의 마력을 크게 잡아먹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마력만 받쳐주면 문제가 없는 것이다. 일반 생도라면 마갑을 유지하는 것으로도 헐떡이겠지만, 한종우는 그게 가능하고.

파직, 손에서 보랏빛의 번개가 피어올랐다. 안을 타격하는 심상을 구현한다.

침투경???.

던전 실습때 윤승하에게 잠깐 배웠던 것. 남다윤의 집을 드나들며 제대로 배운 기술이었다.

적의 내부를 타격하는 심상을 구상하고.

기를 세밀하게 이용하여 상대의 내부를 헤집는다.

마갑에 옆구리에 손을 대자 푸른빛이 강하게 일며, 강한 반발력이 일었다. 한종우를 지키고 있는 마갑의 옆구리 부분이 뜯어진 듯, 헤집어졌다.

“뭣?!”

한종우가 놀라며 마력을 피워올렸다. 마갑이 찢어진 부분에 마력이 일며, 재생하려고 했다. 그렇게는 안 되지. 어검의 특성을 이용해 아까 전, 땅에 내려놓은 단검 집에서 세 자루의 단검이 쏘아지듯 날아갔다.

목표는 갑옷이 찢겨진 부위. 한종우가 대검으로 쳐내려 했다. 그렇게는 안 되지. 대검에 검을 휘둘렀다. 한종우가 뒤로 물러났다.

나는 집요하게 검을 휘두르고 단검을 조종했다. 자세가 무너지며 허용하는 부위가 늘었다. 왼쪽 허벅지, 오른쪽 팔.

갑옷이 점차 벗겨졌다.

한종우가 뒤로 물러나며 고요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타이밍을 재고 있겠지.

도발을 좀 하자면 화를 내며 달려들 것이다. 예를 들어.

‘나연이 쩔더라.’

라고 가볍게 이야기해주면 얼굴이 시뻘게져서 달려들 것이다. 그리고 완전히 척을 지겠지.

그건 안된다. 한종우가 맘에 들지 않는 자식이지만, 그래도 필요했다.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며 타이밍을 잡았다. 어검을 극도로 끌어올려 단검을 모두 끄집었다. 마갑의 특성 중 하나를 경계하면서, 갑옷을 해체한다.

오른쪽 어깨, 오른쪽 허벅지. 거기까지 갑옷을 파괴하자 순간 한종우의 마력이 폭발하듯, 팽창했다.

갑옷에 마력이 깃들며 그것들이 폭발하듯, 나에게로 향했다.

마력을 팽창시킨다. 마력이 폭주하듯이 급격하게 상승했다. 술식을 연성한다. 쉴드. 하급의 마법이고 마법사라면 입문하면서 배우는 누구든지 쓸 수 있는 간단한 마법.

그러나 갑옷 조각의 공격은 흉흉했다. 쉴드 하나로는 불안했다.

어검으로 단검을 조종해서 주요 급소를 보호했다. 나머지 부위는 체력 20을 믿고 버틴다.

‘존나 아프네.’

이를 악물었다. 갑옷의 파편이 쉴드를 뚫고, 몸을 헤집었다. 그래도 20으로 오른 체력 덕에 버틸 만은 했다. 버틸 만은.

눈을 뜨며 보니 갑옷 조각에 숭숭 뚫린 쉴드, 여기저기 금이 갔거나 부서진 단검들이 보였고, 그 끝에서 이를 악문 한종우가 대검을 내리치고 있는 장면이 보였다.

나는 검을 휘둘렀다. 보랏빛의 뇌광이 파직거리며 한종우의 검을 막았다. 그리고.

획.

가볍게 패링. 한종우의 대검이 위로 솟았다. 한종우가 이를 악물며 그대로 내려치려고 힘을 주지만.

내 검이 더 빠르게 한종우의 목으로 향했다. 대검을 내려치려는 한종우와 한종우의 몸에 검을 가져댄 나.

휘익­!

호각을 부는 소리가 들렸다. 관계자가 내 이름을 호명하며 승자라고 칭했다. 나는 휘파람을 불며 밖으로 향했다.

***

결투가 끝났다. 적막한 결투장.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들 당황해하며 결투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부모님 역시 입을 벌리고 있었다.

“……역시 대단하네.”

나지막이 감탄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회색빛의 머리색에 금색의 눈동자가 보였다. 그리고 머리 위에 개의 그것과 닮은 귀. 요정족 중 수인족이 있었나. 라는 생각 대신 멍하니 얼굴을 바라볼 정도로 예쁜 여성이 있었다. 품에 껴안고 뒹굴거리고 싶을정도로 귀여웠고.

“뭐, 뭐야? 광성자의 아들이 진 거야?”

“이시우는 기교만 뛰어난 거 아니었어?”

“어검 특성에 불안정하긴 해도 마법까지 썼어! 고유 능력이 대체 뭐지?”

“신체 능력이 입학 때 나온 데이터랑 완전히 다른데?”

“이시우는 머리가 좋아서 장학생이 된 게 아니었나?”

“빨리 알아봐! 이시우에 관한 자료 전부! 젠장, 안 그래도 이번 학년들은 다 뛰어나서 돈 얼마나 깨질지 모르겠는데……!”

“세계 최고의 두뇌와 황금 세대라 일컬어지는 1학년 중에서도 최상위권 실력이라. 몸값이 엄청나게 불겠는데.”

“그 정도가 아니지. 대인전에서 뛰어난 어검의 능력과 마법을 쓰는 데 실력도 좋다? 게임 끝났지, 뭐.”

“이번 1학년들은 진짜 볼거리가 많네. 2학년의 ‘겁화’도 장난 아닌데 십수 체의 정령을 다루는 녀석이랑, 상아탑의 예비 탑주로 내정된 은수아에다가 은수아를 이기는 실력자까지.”

여기저기서 관계자로 보이는 이들도 경악해 하고 있다. 콧대가 올라갔다. 평소의 으르렁거리는 사이지만, 결국 남매다.

자기 가족이 칭찬받는데 기분이 나쁠 리가 없었다.

그녀는 조용히 일어났다.

“하나야 어디가?”

“잠깐 꽃 좀 따러.”

부모님이 묘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봤지만, 그녀는 흥흥거리며 화장실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화장실이 어디지. 뭐, 걷다 보면 나오겠지. 걷다가 이쁜 동상이 보여서 잠깐 멈추고 핸드폰을 꺼냈다.

최신기종으로 150만 원 가까이 하는 물건. 이시우가 공부 열심히 하라고 사준 핸드폰으로 슬쩍 동상 옆으로 이동한 다음, 손으로 V자를 그리며 셀카를 찍었다. 맘에 들지 않아서 30번 정도 찍고. SNS에 게시한 후, 그녀는 화장실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을까. 조금 전 자신의 오빠와 싸운 남자가 보였다. 분했는지, 눈시울이 붉은 모습이 보였다.

‘잘생겼네.’

윤승하 님보다는 아니지만.

그렇게 속으로 삼키며 주머니를 뒤졌다.

주머니 속에 이시우가 선물해준 손수건이 잡혔다. 손수건을 슬쩍 건넸다.

“……너는.”

“하나요. 이하나.”

“이건 왜?”

“남자가 꼴사납게 울지 말라고요. 조금 전에 싸울 때는 당당하더니만. 사람이 살면서 패배 한 번쯤은 할 수 있죠.”

“하지만 걔는…….”

“그 사람은 그 사람이고, 당신은 당신이죠.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된다잖아요. 곰쓸개를 씹으며 복수하라고요.”

“그…런가?”

“네. 그렇고 말고요. 그러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말고, 당당하게 있으세요. 어깨 좀 펴고!”

그렇게 말하며 속으로 뿌듯해했다. 살짝 거친 맛이 있는 남자에게 조언하는 모습. 자기가 꿈에 그리던 드라마 속 여주인공과 닮았다…!

무엇보다 자신은 외모가 괜찮았다.

이시우는 자기보고 원숭이니, 고릴라니 하지만 당장 학교에만 가도 하루에 한 번은……아니고, 일주일에 한, 두 번 정도 고백받는 것이 자신이었다.

슬쩍 한종우를 보았다. 멍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한종우. 아무래도 반해버린 것 같다. 나란 여자는 죄 많은 여자…….

이하나는 그렇게 자화자찬을 하며 반대편으로 향했다.

그 후, 메차쿠차 화장실을 열심히 찾아다녔다.

***

조용히 화장실로 향하다가 우연히 조금 전 장면을 봤다. 어디선가 많이 본 대사를 치르는 원숭이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나름 당차 보이는 드라마 속 여주인공인 양 행세하며, 속으로 방금 나, 좀 멋있었음. 이러고 있겠지.

근데 한종우의 표정이 이상했다. 멍한 표정으로 원숭이가 지나간 자리를 바라봤다. 하염없이.

“…잘, 된 건가?”

잘 모르겠네.

어쩌면 한종우와 친해질 기회니 잠깐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리고 다음 날, 대결이 끝나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을 때였다.

이상한 소문들이 떠돌기 시작했다.

임나연과 내가 사귀고 있다는 소문.

누군가가 물어봤는데 임나연이 얼굴을 붉히고 우물쭈물한 게 결정적이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당연하게도 그런 이야기는 말이 안될 정도로 빠르게 퍼졌다. 온갖 살이 붙으면서 결국에는 나와 임나연이 서로 죽고 못 사는 사이이며, 아카데미를 졸업할 때,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다. 라는 소문으로 변했다.

그리고.

“사실 당신은 임나연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김하린을 사랑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임나연과 사귀고 있습니다…그리고 자신은 임나연과 사귀면서 김하린을 사랑하고 있던 것을 깨달았습니다.”

김하린이 나에게 최면을 걸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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