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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나에게 최면어플을 사용한다-49화 (49/298)

〈 49화 〉 빼앗는자, 빼앗기는 자

* * *

히어로 아카데미는 문자 그대로 영웅을 육성하는 학교다.

영웅.

빌런과 마?에 몸을 팔아넘긴 인류의 배신자들과 대적하는 이들.

그 끝에 머지않아 부활할 마왕을 저지하기 위해서 영웅들과 이종족들이 차근차근 준비한 안배 중 하나가 바로 히어로 아카데미다.

보통 그곳은 학생들만 받아주지만, 아예 들어서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수인이군요."

담담하게 말하는 잿빛 머리색의 여성.

요정족을 통솔하는 여왕, 티타니아의 측근인 그란데힐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것도 희귀하기 그지없는 신수??계열의 혈통……."

그란데힐이 김시연의 은빛 머리카락을 보고는 힐긋 나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걸 주워왔냐는 표정이었다.

김시연이 불안한지 꼬리를 흔들었다. 머리에 손을 올려주자 방긋 웃으며 내 손길을 느꼈다. 털이 풍성한 게 어렸을 적 키웠던 강아지를 쓰다듬는 느낌이었다.

"빌런들에게 노려지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데려왔어요."

"잘하셨습니다. 이정도면 좀만 다듬어도 훌륭한 전투원이 되겠군요."

­가족관계는……?"

뇌리에 박히는 것 같은 음성이 들렸다. 마법의 사용이었다. 고개를 젓자 그란데힐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김시연 같은 경우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여왕님에게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몸을 돌리고 그란데힐이 갔다. 나도 따라갈까 싶었지만, 20세이니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나도 몸을 돌려 훈련장으로 향했다.

향하려고 했다. 김시연이 내 옷자락을 잡고 있지 않았다면.

김시연이 내 옷자락을 꾹, 하고 잡았다. 얼굴을 보니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불안한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가족을 잃은 트라우마가 있어 주인공에게 달라붙으려 했었지.

"시우는 안가?"

"응, 티타니아 님은 함부로 만날 수 없으신 분이거든."

내 말에 그란데힐이 고개를 숙이며 긍정했다. 슬쩍 입꼬리가 올라간 걸 보니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내 말에 내 옷자락을 잡은 힘이 조금 약해졌다.

나는 픽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나도 여기 다니는 학생이거든. 만나고 싶으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어."

"하, 학생이라고? 지, 진짜?"

내 말에 김시연이 당황하는 눈초리가 보였다. 하긴 20세한테 머리 쓰다듬어졌으니 기분이 나쁘려나.

"네. 이시우 님은 학생이십니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유망주시죠."

"그러니까 만나고 싶으면 언제든 만날 수 있어.…아, 이런 말은 실례인가. 나보다 누난데."

"아니, 괜찮아. 오, 오히려 좋아. 시연이라고 불러줘."

3살 위인데 이름으로 불러 달라고?

"……그래."

원작보다 뭔가 더 적극적인 것 같은데. 나는 떨떠름해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여왕님을 알현하러 가겠습니다."

그 말을 하며 그란데힐이 김시연에게 달라붙어 먼지를 털어주고 옷을 단정하게 하고는 데리고 갔다.

­아 참, 그리고…….

그란데힐이 나를 돌아보며 마법으로 내게 말을 전했다.

까먹은 걸 기억났다는 듯이 담담하게.

­성관계 시 피임은 필수입니다. 만약 이지아 씨의 특성인 마도의 업이 아니었더라면 임신하셨을 겁니다.

폭탄을 투하했다.

***

­우리 잠깐 만날래?

[이지아]­응? 왱?

톡을 보내자마자 바로 답장이 왔다.

­얼굴 좀 보고 싶어서.

[이지아]­볼을 발그레 붉히는 토끼 이모티콘

[이지아]­그럼 어디서 볼까?

­카페에서 만날까?

[이지아]­카페? 그래. 바로 갈게.

바로……? 나는 좀 당황했다. 그래도 여자들이라 시간이 좀 걸릴 줄 알았는데. 아무튼 카페로 향해서 걸어갔다.

대충 자리를 잡고 앉으니 이지아가 먹을 과일 빙수와 먹기만 하면 심심하니, 마실 아메리카노 두 개를 시키니, 얼마 안 돼서 이지아가 왔었다. 풍성한 갈색 머리에 살짝 웨이브 진 머리. 언제 웨이브까지 넣었대.

그녀의 갈색 머리와 같은 색의 갈색빛을 띠는 카디건에 허벅지에서 절반 정도 내려오는 검은색의 치마에 곰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이지아가 잠깐 둘러보더니 나를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내가 반겨주자 주변에서 탄성이 흘렀다.

"미안, 좀 늦었지."

"아냐, 별로 안 늦은 걸. 방금 왔어."

그렇게 웃으며 말하자 이지아의 표정이 좀 더 환해졌다.

그녀를 자리에 앉히고 안부를 묻고 있더니 대기표에서 붉은빛이 흘렀다.

"잠시만 주문한 것 좀 받고 올게."

"주문한 거? 그새 주문했어? 같이 갈까?"

"아냐, 혼자서도 충분해."

방금까지 더운데 있었으니, 앉으라는 의미에서 배려한 건데 이지아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왜지.

나는 카운터로 향했다. 카운터에서 여자 직원이 꿀 떨어지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갈색의 나무 쟁반 위에는 멜론이랑 포도가 올라간 과일 빙수랑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 여기까지는 주문 대로였으나 조각 케이크 하나가 더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쟁반은 한개. 내것이라는 건데.

'또 인가.'

"저 조각 케이크 안 시켰는데."

"서, 서비스에요. 좀 더 카페에 자주 오시라고…헤헤."

"감사합니다. 자주 올게요."

적당히 답해주고 돌아서니, 작게 꺄아­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테이블로 향하니 이지아가 일어나서 쟁반을 받아주었다.

"역시 시우 센스 있네. 과일 빙수 먹고 싶었는데. 근데 시우는 치즈 케이크 좋아해?"

"응? 아니, 서비스래서. 먹어볼래?"

"……아냐, 난 빙수먹을래."

이지아가 고개를 살짝 흔들며 말했다. 갈색빛의 머리카락이 살랑거렸다. 수저를 연유와 과일이 듬뿍 들은 빙수를 한 입 크게 뜨고는 입을 크게 벌리고는 그것을 넣었다.

"앙."

그것을 입에 넣고는 부르르 떨었다. 맛있게 먹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물어봤다.

"맛있어?"

"응, 맛있어. 시우도 먹어봐 자, 아."

숟가락으로 멜론과 연유가 뿌려진 빙수를 떠서 나에게 주었다. 한 입 먹어보니.

'그냥 과일 빙수네.'

딱히 특별한 맛은 없었다. 그냥 연유의 맛과 과일 때문에 맛있다는 느낌.

기대 어린 눈빛으로 나를 보는 이지아에게 적당히 답했다.

"맛있네."

"그치, 그치?"

그러면서 숟가락으로 한 입 더 빙수를 먹었다.

부르르 떨자 하얀 티셔츠가 흔들거리는 것이 보였다. E컵의 위엄이었다.

그것보다.

'엄청나게 강해졌네.'

상태창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마력의 밀도가 달라졌다. 이대로 이 주……못해도 한 달만 지나도 진짜 임나연을 쓰러트릴 수 있겠는데.……한종우는 힘들다. 한종우의 능력은 마법사들과 이능력자들의 천적이니까.

"그러고 보니 엄청나게 강해졌네."

"응. 교장님이 많이 도와주셨거든. 송라희 교수님도 도와주셨고. 아, 그러고 보니 송라희 교수님이 제자가 되지 않겠냐고 물어보셨는데……."

"진짜?"

"응, 그래서 요즘 교장님과 송라희 교수님에게 배우고 있는데, 슬슬 누구를 정해야 할지 몰라서."

나한테 스승을 골라달라는 건가.

나는 내 앞에 놓인 조각 케이크를 포크로 한 입 크기로 잘라 입에 넣으며 생각했다.

이지아가 가진 재능은 마도의 업이다. 마법을 사용할 때 일반적인 마법사들과는 그 틀부터가 다르다. 보통의 마법사가 온갖 변수를 차단하여 안정적으로 마법을 쓴다면 이지아의 마법은 '불안정한' 상태에서 마법을 이용한다.

역천의 재능이라 불리며 '마력'을 그대로 쓰는 마법사와 다르게 과부하의 공정을 걸치고 불안정한 상태에서 폭발력을 극대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마법을 발현할 수 있다.

자연체에 가까운 티타니아가 가르쳐주는 마법보다는 송라희가 가르쳐주는 마법식이 그녀에게는 더 알맞다.

실제로도 티타니아의 제자가 되는 루트보다 송라희의 제자가 되는 루트의 이지아가 더 강했다.

'둘 중 하나만을 비교하자면 말이지.'

송라희의 파계의 마법식은 마법사들이라면 대부분 받고 싶어 할 정도로 뛰어나지만,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녀에게 어울리는 것은 따로 있다. 나는 슬쩍 라플라스의 지팡이를 바라보았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일단 두 사람한테 어느 정도만 배워놔."

"…어느 정도만?"

이지아가 잠깐 고개를 갸웃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배시시 웃으며 빙수를 먹기 시작했다.

얘가 착해서 그런가. 의심을 하나도 안 하네. 잘못하면 요정 여왕이랑 송라희 연줄이 끊어질 수 있는 노릇인데.

"의심 같은 건 안 해?"

"그렇지만……시우 말은 지금까지 다 맞아떨어졌는걸."

나는 이지아를 잠시 멍하니 봤다. 좀 감동했다. 나름 신경 써주기는 했지만, 임나연이나 남다윤에 방치한 편이었는데 이렇게까지 믿어주다니.

"아, 맞다. 시우는 중간고사 준비 잘 되어가?"

"……나야, 잘 준비하고 있지."

필기는 솔직히 특성 때문에 못 칠 자신이 없었다.

실기는 주인공들만 만나지 않으면 괜찮았다. 은수아도…지금은 조금 힘들겠네.

"지아는? 괜찮아?"

"응, 실기는 생각보다 괜찮을 것 같애. 필기는 좀 어렵지만……."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나를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이라면 도와줄 수 있겠지만, 나는 일종의 치트를 이용하는 것이라 선뜻 도와주기가 뭐 했다.

지이잉.

때마침 핸드폰이 울렸다. 슬쩍 화면을 보니 남다윤이 카톡을 보냈다.

슬쩍 답장해주니 카톡이 연달아 울렸다.

"여자야?"

"응."

"……시우는 아는 여자가 많구나."

답지 않게 조금 음울한 목소리로 이지아가 말했다. 그 음울한 목소리에 떨떠름해 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냐. 별로 없어."

반사적으로 대답이 나왔다. 별로……없나? 나는 잠시 내 여자관계에 대해 생각해봤다. 관계를 맺은 여성이 이지아, 임나연, 남다윤.

그리고 공략 중인 은수아.

저번에 던전 체험을 할 때, 같이 조를 짰었던 아야네의 능력도 꽤 탐나긴 했다. 아야네의 능력은 단절.

나중에 성장하면 개념마저 잘라내는 능력이었다. 아야네도 나한테 꽤 호감이 있으니 좀만 꼬시면 넘어올 것 같기도 한데.

윤채린은……그녀의 고유 능력은 다른 능력들과 어울리지 않아서 애매했다.

김하린의 광익도 탐났다. 이능쪽에서 최속의 능력을 자랑하며 하늘을 날 수 있는 장점과 뇌속성과 광속성 공격의 면역, 그리고 광익에서 쏘아 보내는 광속성 공격은 쉽게 포기할 수 없으니까.

거기다가 김시연의 바람을 마름대로 다룰 수 있는 가호, 풍랑도 좋고. 자색인 송라희의 능력도 탐나는데. 마법식 구조를 보는 능력은 쉽게 얻을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니까. 그란데힐의 공간 관련 능력도 탐나고…….

샤오메이의 물건의 가치를 꿰뚫는 탐욕의 시선도 나쁘지 않았지만……샤오메이의 능력은 굳이 모으지 않아도 되었다. 그녀와는 필요에 의해 협력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그 외에도 탐나는 능력을 지닌 여성의 능력들이 많았다.

거악이라 불리는 괴물 중 한 명을 쓰러트린 '무희'의 '봉관' 능력도 탐나고, '라이트닝'의 '뇌광'도 탐났다. 아니, 뇌광은 내 무공 특성상 필요한 능력이었다. 뇌령심법의 최속의 보법인 풍뢰질주보와 합쳐지면 무적의 도주기가 탄생하니까.

다음 해에 아카데미에 들어올 '공주'의 능력도 탐났고.

"그런데 나는 왜 보자고 한 거야?"

"응, 할 말이 좀 있어서……."

"……하, 할 말이라고?"

이지아가 잠시 침을 삼켰다. 볼이 홍조로 물들며 나를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실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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