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 하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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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세계에 떨어지고 용사가 두 명임을 알았을 때, 나는 일종의 선별 작업을 했었다.
동료들을 선별하는 것이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가, 게임 밸런스가 무너진 후반부에서도 활약할 여지가 있는가, 내 동료가 되어서도 다른 동료들과 마찰을 일으키는가, 수월하게 영입이 가능한가 등이었다.
로크라는 게임은 분기 루트마다 동료가 될 수 있는 존재가 있고, 악역으로 나오는 존재들이 있었다.
동료들의 상성을 고려했었지만, 관계도를 깨닫고 우선 여자라면 무조건 동료로 끌어들이기로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지아는 그 모든 조건을 충족했다. 성격이 둥글둥글한 데다가 마도의 업이라는 특성 때문에 집안에서 박해를 받았다. 그녀는 좀만 도와줘도 동료로 영입할 수 있으며, 후반부에서도 최전선에서 싸울 수 있는 인물.
은수아 역시 마찬가지. 이쪽도 오글거리기는 하지만 무력 면에서 뛰어난 인재다. 비록 그녀의 너무 뛰어난 이능 때문에 무인들과 싸우면 밀리는 감이 없잖아 있지만…그 정도야 커버는 쉬우니까.
임나연은 반대로 어려울 거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는 쉬웠다. 그녀의 마력에 대한 보완점이나 가르쳐준 것이 유효한 것 같았다. 아쉬운 점은 무력 부분이지만 그녀의 무력은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으니 괜찮았다.
김하린은 애매했다. 뭔가 나를 힐끔힐끔 보는 것을 보면 좀만 잘하면 꼬실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용사인 윤승하는 좀 애매했다.
외모 하나로 따지자면 내가 더 위지만, 윤승하는 이 게임의 주인공이다. 성격도 불의를 보면 못 참으며 기본적으로 모두에게 상냥하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호인도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인공이 주인공인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러니까 윤승하에게 반하는 여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종우.
'한종우는 안되지.'
걔는 꽤 능력 있는 애지만, 임나연과 관련되면 눈이 홰 까닥 돌아가서 곤란했다.
한종우는 필요할 때는 서로 협조는 할 수 있을 정도의 친분과 빌런이 되지 않음에 만족해야 한다.
어쨌든.
그중에서 한 번 '구원'을 해주면 항상 동료에 편에 서는 존재가 있다. 일러스트가 잘 나오고, 항상 주인공을 바라보는 존재. 충성심이 너무 높아서 별명이 사냥개라는 이명이 붙는 존재가 있다. 실제로 그녀의 종족은 반쯤 갯과가 맞기도 했고.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익숙하지 않은 흑발이 보였다. 그리고 앞머리를 길게 내려 눈을 덮었지만, 살짝 튀어나온 화상 자국이 보였다. 거기다가 음울한 오오라 같은 것을 뿜어내고 있었다.…이해는 한다. 얼마 전에 가족을 잃었으니까.
'이콜라의 낙인.'
이콜라의 낙인은 저주…의 일종이지만 좀 애매했다. 저것은 고유 능력을 강화해주는 일종의 버프 계열의 능력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상대를 불행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저주는 맞았다. 하긴, 상대를 불행하게 만드는 게 저주긴 하지.
나는 힐끔 바라보며 지식 열람을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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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김시연
근력 : 2
민첩 : 2
체력 : 2
마력 : 0
고유능력 : 늪지 여왕의 그릇
특성 : X
'찾았다.'
다행이었다. 사실 그녀가 사는 곳은 알지만, 무턱대고 가기 쉽지 않았으니까. 자연스러운 만남이 중요했다. 여차하면 오늘 밤까지 돌아다닐 생각이었지만…….
상태창을 보니 그냥저냥 단련한 신체 능력이 보였다. 마력은 0. 아직 각성하지 않은 평범한 일반인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시선을 내려서 고유 능력을 살펴보았다. 늪지 여왕의 그릇. 늪과 관련된 존재에게 호의를 얻을 수 있는 능력이다. 그리고 그릇이기도 하였다.
그릇.
이 세계에서 그것은 '외차원의 존재'를 담기 좋은 '신체'의 의미이기도 하다. 정령이 될 수도 있고, 외차원의 환수??라 불리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정리하자면, 빌런들의 계획은 김시연이라는 인물을 낙인으로 존재감을 올려서 그녀를 '인신 공양'하여, 깽판을 치는 것이다. 약, 한 달 후에 빌런들은 그녀를 바치고, 이계의 존재를 소환한다.
어쩌다가 주인공이 이 근처를 지나가다가 저주의 흔적을 발견하여 치유해주지만, 그렇지 못하면 그녀는 이계의 존재에게 바쳐져 이 세계에 현현하게 된다. 그리고 도시 하나를 망가트리고 영웅들에게 살해당한다. 그 과정에서 영웅들 측의 사상자도 꽤 크다. 그것을 기점으로 빌런들이 더 활개 치기도 하고.
그것을 위해서 김시연이라는 인물은 그녀 모르게 모든 것을 통제당했다.
부모를 사고로 위장하여, 죽이고.
친척들의 욕망을 극대화해 부모의 유산을 탐내게 했다.
그리고 그녀의 인간관계를 하나, 둘 끊어낸다.
채팅어플에서조차 만남을 허락하지 않았다.
'처녀성 때문에…….'
제물과 관련된 것에서 처녀인가, 동정인가 하는 문제는 매우 중대한 사항이었다. 처녀가 아닌 제물을 바칠 경우 제물을 받는 존재가 노하여 의식을 실행한 존재에게 저주 같은 것을 걸기 때문이다. 의식을 행한 자가 약하다면 찢어 죽을 수도 있고.
그래서 커뮤니티에서는 장난스레 유니콘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나는 김시연에게 걸어갔다.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흠칫하는 것이 느껴졌다.
"저주에 걸리셨네요. 저주, 풀고 싶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하는 것보다 행동력 있게 저주를 풀어주는 것이 더 믿음직스러우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자들에게 절대적인 내 외모를 믿었다.
"저주요? 제가 저주에 걸린 것은 어떻게……."
"제가 저주에 관해서 연구하는 사람이라서요. 얼굴에 진 화상 자국을 보아하니, 꽤 오랫동안 걸리셨네요. 대충 3개월쯤?"
사실 그런 것은 잘 모른다. 그저 게임 내에 언급되었으니까 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저에게 걸린 저주가 어떤 것인지도 아시겠네요?"
"네. 이콜라의 저주입니다. 사실…저주라고 하기에도 좀 뭐하죠. 고유 능력을 강화해주는 일종의 버프 계열이거든요."
"……버프요?"
"고유 능력을 강화하는 대가로 흉터를 가진다. 라는 계통의 능력이에요. 꽤 많은 자원을 소모해야 하지만. 뭐…정확하게는 '제물', 또는 '인신 공양'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네요."
"……제물이요?"
일부러 강한 단어를 사용했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고. 내 말에 김시연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네, 제물이요. 당신의 능력은 그쪽과 관련되어 있거든요. 그리고 당신에게 걸린 저주는 그 저주를 증폭시켜주는 것이죠."
"그렇다면 저주를 풀어주실 수 있나요?"
"네. 신변도 보호해드릴 수 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복수를 하고 싶지 않나요?"
"복수는……."
그녀가 말을 얼버무렸다. 그녀의 심정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아직 빌런들이 그녀의 부모님을 죽였다는 것을 그녀는 모르니까.
"제물을 가장 구하기 쉬운 방법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납치요?"
"납치도 납치지만, 그런 쪽은 영웅들이 엄청 민감하게 받아들이거든요. 인신 공양은 끔찍하지만, 효율이 굉장히 높아서 아차 하는 순간 도시 하나가 날아갈 정도로 위험하거든요."
"……."
"그래서 대부분 인신 공양을 하려면 신중히 처리합니다. 땅덩어리가 좁고 인재는 많아 감시가 철저한 한국 같은 나라에서는 절대 하지 않지만…그 제물이 매우 특수하다면 빌런들도 생각을 달리하거든요. 주변의 사람들을 하나둘, 멀어지게 해서 고립시킨 뒤에, 빼 오는 거죠. 그 과정에서 사람도 죽이기도 하고."
"……설마."
"네. 당신의 부모는 살해당했습니다. 빌런에게요."
"……."
김시연이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입술이 떨렸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았다가, 이를 악물었다.
"증거는 있나요?"
나는 애쉬의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김시연이 핸드폰 스크롤을 쭉 올렸다. 여러 가지 문자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녀가 스크롤을 올리는 손을 멈췄다. 핸드폰 화면에 부서진 차량이 보였다. 사고로 위장하여 마인들이 죽였다고 보고한 메시지 역시 보였다.
"복수는 할 수 있나요?"
"물론이죠. 당신은 당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대단한 존재거든요."
***
우리는 근처 폐건물에 들어왔다. 너무 낡아서 곧 철거할 거라는 소문이 도는 건물이란다. 근처에 아무도 없는 공간을 아냐고 물어보니 이곳을 가르쳐준 것이 김시연이었다.
자그맣게 약식으로 소환식을 준비했다.
본래 의식이란 준비에 준비를 거듭해도 불안하지만, 김시연에게 한해서는 별 상관없다. 그녀의 존재 자체가 곧 부를 존재에게 너무 특별하기 때문이다.
미리 준비한 양의 피를 뿌려 소환진을 그렸다.
피에 마나를 감응시키자 보랏빛을 뿜기 시작했다.
우우웅!
사방이 둘러싸인 건물이건만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바람이 머리카락을 들췄다. 입안이 바짝 말랐다. 이제부터 나올 존재의 존재감이 사방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산들바람이 격렬해지며, 이내 폭풍이 되었다. 나는 다급하게 김시연을 끌어안았다. 생각보다 격렬한 바람에 김시연이 다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김시연이 내 품속이 안기자, 마나를 이용해 몸을 붙잡았다.
대충 그린 약식 소환식 위에 무언가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나를 부른 것이 너인가]
중후한 목소리가 들렸다. 들렸다…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았다. 머릿속에 새겨지는 언어였다. 게임 속의 표현 그대로였다. 다행히 여기는 그대로였다.
"네, 제가 당신을 불렀습니다."
[……그 아이 때문인가?]
"네. 계약을 이행시키기 위해 제가 나섰습니다."
[신기하군. 그것을 일개 인간이 알고 있다니]
긴 한숨을 쉬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도 다행인가. 사실 그의 피를 이은 존재는 이미 없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은 이 세상에 남아있구나. 계약을 이행하겠다. 그대, 힘을 원하는가?]
목소리가 김시연에게 향했다. 김시연이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고는 눈을 꾹, 감고 말했다.
"히, 힘을 원합니다."
[계약을 이행하겠다. 너는 바라는 대로 힘을 얻을 것이다. 그 대가는 그대가 가진 능력이다]
"저는 능력이 없는데요?"
[있다.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그, 렇다면 계약을 할게요."
[아주 좋은 선택이다]
머릿속에 말이 새겨지며 바람이 격렬하게 몰아쳤다.
바람이 은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은빛으로 이루어진 바람이 그녀의 이마로 빨려 들어가며, 문자가 새겨진다.
문자가 새겨지고, 은빛의 문자가 발광하며 김시연의 몸을 휘감았다. 그녀의 몸이 바람에 부상하며 주변이 마나를 게걸스럽게 탐하기 시작했다.
뚜둑. 뚜둑.
그녀의 몸에서 뼈가 뒤틀리는 소리가 들렸다. 피부가 쩌저적, 소리를 내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육체가 재구성되는 과정이었다. 머릿결이 바뀌었다. 검은색의 머리에서 회색빛의 색으로. 머리카락 위에 개의 그것과 닮은 회색빛의 귀가 생겼다. 꼬리뼈 부근에도 꼬리가 새로이 생겨났다.
바람이 멎었다. 그녀가 허공에서 조용하게 착지했다.
그녀가 조용히 눈을 떴다. 금빛의 안광이 일렁였다.
"여기."
나는 그녀에게 조용히 겉옷을 벗어서 건넸다. 다름이 아니라 육체가 재구성되는 과정에서 그녀의 옷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다.
나는 조용히 상태창을 확인했다.
▼
이름 : 김시연
근력 : 15
민첩 : 15
체력 : 15
마력 : 15
고유 능력 : 풍랑
특성 : X
아까와는 확연히 다른 능력치였다.
고유 능력이 바뀌었다. 아마 특성도 몇 개 생겼을 거다. 내가 못 봐서 문제지. 어떤 작용인인지는 모르나, 지식 열람으로는 특성을 살필 수 없는 것은 좀 뼈아팠다.
그녀가 실감 나지 않는 듯,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살폈다. 꼬리도 만져보고 새로 생긴 귀도 몇 번 만졌다.
***
"이런 망할!"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으르렁거리는 남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바로 김우진.
그는 바로 김시연을 감시하는 인물이었다. 잠시 애쉬에게 온 문자 때문에 자리를 비운 그는 그녀에게 건 저주가 사라짐을 깨달았다.
그것만이었으면 다행이었다. 저주에 드는 재물 자체는 나름 희귀했지만, 어떻게든 무마할 수 있었다.
폐건물에서 마나의 흐름이 느껴졌다. 격렬한 마나의 흐름. 그것도 외차원의 존재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이질적인 마나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은 누군가가 자신들이 만든 제물을 훔쳐서 이용했음을 의미한다.
"어떻게 할까요?"
"으득."
이를 악물며 생각했다. 지금 저기로 향한다? 그것은 자살행위일 거다. 저렇게 이질적인 마나의 흐름은 시선을 끌기 너무 좋았다. 아마 이미 영웅들이 출동했을지도 모른다.
"물러난다."
"그렇지만."
"일단 보고가 우선이다! 그 뒤는 나중에 생각해. 그리고 저만한 마나의 흐름이면 영웅들도 다 출동했을 거다. 길드나 클랜도 움직이겠지."
"……알겠습니다."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부하를 보니 김우진은 머리가 어지러웠다. 빌런들은 나름 마음껏 욕망을 배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빡대가리 새끼들이 많았다.
아픈 머리를 매만지며, 그는 부하들을 이끌고 후퇴했다.
하려고 했었다.
눈을 깜빡이는 잠깐의 시간이었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한 여성이 어느 순간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푸른색의 단발머리와 호수를 연상시키는 눈동자가 보였다.
"역시 시우 말이 맞았네. 정말 '예지'와 관련된 능력을 가진건가. 너무 비범한데."
여인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시야가 한순간 비틀렸다.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을 입은 눈에 익은 체형이 보였다. 그와 함께 있던 십수 명의 부하들 역시 마찬가지. 어깨 위의 당연하게 달려야 할 것이 보이지 않았다.
'어라, 내 몸이 왜……'
그리고 그것이 그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