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 남다윤(7)
* * *
"……."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돌 하르방을 닮은 검은 색 골렘들이었던 '것'들을 바라보았다. 내 주변은 검은색 돌조각들로 널려 있었다.
"슉. 슈슉."
"시. 시바."
돌 하르방이 그들만의 언어로 무언가 말을 하기도 전에 은빛으로 빛나는 검이 쇄도했다. 찰나라고 부를 시간 만에 석상이 수십 조각으로 조각조각 났다.
그렇게 30분 즈음을 걸었을까.
나와 남다윤은 심층부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통로의 끝을 지나자, 거대한 공동이 나왔다. 공동의 절반은 물에 잠긴 검은빛의 호수가 있었는데, 그림자가 출렁이는 이상한 느낌이 드는 호수였다.
고오오.
그리고 그 호수 위에 그림자로 이루어진, 거대한 뱀의 형태를 가진 무언가가 붉은빛의 안광을 뿜어내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번에 봤었던 천둥 군주보다 훨씬 강하네...?"
"그러게요."
"그러면 보상도 더 좋으려나. 이건 이 상태로 좀 힘들겠네…….
남다윤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검들을 회수했다. 마검이 그녀의 손에 안착하며 마검의 분신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 우리 시우를 가르쳐 주었을 때, 내 검술이 내 특성에 맞춰져서 가르쳐주기 힘들다고 했었지?"
남다윤이 그렇게 말하며 손을 뻗었다. 아공간에서 그녀의 의지에 따라 수십 자루의 검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마검이라 불리는 것들도 있었고, 명검이나 신검으로 불리는 것들도 있었다. 정령의 자아가 담긴 정령검과 성스러운 빛을 뿜어내는 성검도 있었다.
"내가 쓰는 검은 본래, 주술과 검술을 결합하여 만들어진 법이야."
남다윤이 손을 뻗어 그중 한 자루의 검을 움켜쥐었다.
그 검은 특이한 모양새였다. 황금빛의 음각이 검신에 한자로 적혀 있었으며, 관리는 잘한 듯 보였지만, 검날은 이가 듬성듬성 빠져 있었다. 남다윤이 그 검을 소중하다는 듯이 바라보고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천둔검법????."
수십 자루의 검에서 은빛의 광채가 발광했다. 한순간 눈을 뜨기 힘들 정도의 광채가 사방을 덮었다.
수십 자루의 검이 분열한다. 한 자루에서, 두 자루. 두 자루에서 세자로. 분열된 검들이 하나 둘 씩 붙더니, 이윽고 그림자 형태의 뱀보다 거대한 하나의 거검巨?이 완성되었다.
거검의 주위에는 위성처럼 수십 자루의 검들이 그것을 호위하듯이 주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제마??
거검이 내리쳤다.
***
천둔검법.
중국의 도교 전설, 팔선?? 중 한 명인 여동빈이 사용하는 검법이다.
검법이라고는 하나, 천둔검법은 검법이지만 검법이 아니다.
천둔검법은 주술과 혼합한 일종의 법?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익히기 위해서는 주술적 능력과 검술 능력이 뛰어나야 하지만, 남다윤은 어검이라는 고유 특성으로 천둔검법을 체득했다.
남다윤이 이따금 해외로 나가게 되면 중국에 자주 들리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중국에는 마인과 마수, 요괴들이 가득하기에.
나는 천둔검법의 효능을 떠올렸다.
마?에 속하는 존재들에게 추가로 데미지를 주며, 용을 사냥할 때도 추가로 데미지를 준다.
「크롸라라라!」
뱀이 거검을 내리꽂히는 것을 보며 울부짖었다.
뱀이 울부짖을 수 있나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봤지만, 저건 일종의 마물이니 안될 것도 없겠지.
그림자로 이루어진 뱀이 이리저리 몸을 비틀어보지만 움직일 수 없다. 천둔검법에서 제마는 마를 억제하는 힘이 있다. 일종의 바인드의 능력과 필살기를 합친 기술이다. 마에 속하는 몬스터나 마수들은 저 기술을 피할 수 없다.
애초에 저런 거검을 그냥 내리꽂는 것을 맞아줄 마물은 거의 없으니까.
거검이 그림자로 이루어진 뱀의 몸체를 꿰뚫었다. 그것이 신호라도 된 듯이, 수십 자루의 검이 유성이 낙하하듯,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뱀의 몸통 곳곳에 불길이 일어나며, 어느 부분은 얼어붙고, 어느 부분은 번개가 파직파직 거리며 사방으로 튀기 시작했다.
쿵.
그리고 이윽고, 그림자로 이루어진 뱀이 힘을 잃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뱀이 허공에 증발하듯,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림자로 물결치는 호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종의 령체??이기 때문이다.
"나쁘지 않은 상대였어."
"다윤이 누나는 역시 대단하네요. 저는 그 뱀을 상대로 1분도 못 버틸 것 같은데."
"크흠. 우리 시우의 응원 덕분이지."
난 아무것도 안 했는데.
우리는 뱀이었던 것이 있던 자리로 향했다. 검은빛의 마정석이 하나 주웠다.
그림자로 이루어진 호숫가가 있던 자리를 보았다.
그곳에 일종의 제단 형태의 것이 있었고, 그 위의 열 개의 상자가 보였다.
나랑 남다윤은 제단으로 걸음을 옮겼다.
남다윤이 주머니에 넣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상자를 열었다. 그곳에서 비단으로 쌓인 검은빛의 내단이 보였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데도 묘한 마력이 깃든 것이 느껴진다.
감정.
[영귀의 내단]
영귀의 힘이 응축된 내단.
복용 시, 능력치 소 증가, 마력 중 증가, 체력 대 증가, 잠재력 개방.
복용 시, 암 속성, 수 속성 중 내성, 지배력 증 상승
복용 시, 변강쇠(A) 특성 부여
"체력 증가에 암 속성, 수 속성의 내성과 지배력을 올려주네요…그, 특성도 부여해주고."
"시우는 감정도 할 수 있어?"
"네, 어느 정도는……."
"특성은 어떤 건데."
남다윤이 물어봤다. 나는 그 반응에 멋쩍어하며 말했다.
"……변강쇠요."
"응?"
남다윤이 순간 멈칫했다.
"변, 강쇠? 변강쇠라면 그, 정력이 강해지는 거지?"
"네. 정력이 강해지는 거예요."
내 말에 남다윤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데 뭔가 음흉한 표정 같았다.
"그, 그럼 이건 시우가 가질래?"
"저는 한 게 없는데요?"
"이 던전은 시우가 발견했으니까, 지분은 어느 정도 있지."
여기서 더 사양하는 것도 민폐다. 사실 이 던전을 공략한 건 이것 때문이기도 했고.
"그럼 감사히 받을게요."
나는 남다윤에게 감사 인사를 표한 뒤 그것을 주머니에 넣었다.
남다윤은 계속해서 상자를 열었다. 기다란 상자를 열자 한 쌍의 검이 보였다.
태극을 이루듯, 백색의 검과 흑색의 검이 눈에 들어왔다. 특이한 것이라면 돌처럼 굳어있는 것.
[간장·막야]
모종의 이유로 봉인되어있는 부부검이다.
"이건……."
남다윤이 한 쌍의 검을 보고 멈칫했다. 봉인되어있어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지만, 그녀는 검사다. 아마 뭔가 특이함을 느꼈겠지.
"별거 없어 보이네. 근데 여기에 나온 것 치곤 뭔가 있어 보이니 시우가 가져갈래?"
……그러고 보니 남다윤은 은근 백치미가 있었지.
하지만 받아서 나쁜 것은 없었다.
"아, 들고 가기 힘들지? 누나가 아공간에 넣어줄게."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남다윤이 쌍검을 아공간에 넣었다.
여러 가지의 색이 만화경처럼 빛나는 보석이 보였다. 그 크기가 내 주먹만 한 크기였다.
[정령석]
정령들이 좋아할 자연력이 농축되어있다.
"이것도 시우가 가질래?"
"아뇨, 저는 지금까지 받은 거로도 충분한걸요."
"그래? 누나도 이건 딱히 필요 없는데……."
그러다가 남다윤이 뭔가 생각났는지, 그게 있었지,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정령석을 아공간에 넣었다. 다른 상자들은 모두 금은보화랑 보석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남다윤은 그것들을 모조리 아공간에 넣었다.
그리고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
워프 게이트를 이용하니 눈 깜짝할 사이에 도착했다.
워프 게이트 근처에서 주차한 차를 타고 남다윤의 집으로 향하는 길, 그녀의 집 앞에 눈에 띄는 두 명이 보였다.
늘씬한 다리가 훤히 드러나는 하얀색 바탕에 매화가 수놓아진 치파오를 입은 묘령의 여성과 옛 중국식 복장을 한 땋은 머리의 소년이 보였다.
샤오메이하고 타오였다.
아, 그러고 보니 저녀석들도 있었지.
"아."
남다윤도 그것을 깨달았는지 아차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남다윤이 차를 주차해 놓고, 문을 열고 나가자 샤오메이랑 타오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구나, 잠깐 나갔다 왔는데. 혹시 오래 기다렸니?"
남다윤의 말에 샤오메이가 안도한 표정이 느껴졌다. 하긴, 어제의 남다윤은 욕구불만 때문에 엄청 날카로웠었지.
"아닙니다. 방금 도착했었거든요."
샤오메이의 말에 남다윤이 쓰게 웃고는 잠시 내 쪽을 바라보았다.
"여기서 이야기하기 뭣하니 집에서 이야기할까?"
"지, 집에서요?"
남다윤의 말에 타오가 경악해 했다.
"왜 싫니?"
"아뇨, 놀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타오가 검후님의 팬이었거든요."
"그래? 고맙네."
그러고 보니 은수아의 사인도 받았어야 했는데. 나는 차의 문을 열고 나왔다.
"……너는?"
타오가 흠칫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샤오메이의 표정도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나는 어설프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시우야, 아는 사이야?"
"누나 집에 올 때 어쩌다가 마주친 사이에요."
썩 유쾌한 만남은 아니었지만…….
샤오메이랑 안면을 튼 게 어딘가.
"혹시 검은 손 샤오메이신가요?"
"네, 네. 어제 몰라뵀었는데, 혹시 히어로 아카데미에 재학 중이신 이시우 씨인가요?"
"네. 머리 좋은 거로 유명한 시우 맞아요."
내 말에 샤오메가 입가를 가리며 웃었다.
"일단 안에서 이야기할까?"
"네, 환대에 감사합니다. 누추한 곳에 귀한 분으로 초대받으니 정말 감사합니다. "
남다윤의 말에 타오가 받아쳤다. 순간 분위기가 싸해졌다.
샤오메이의 얼굴색이 창백하게 변했고, 남다윤은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타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죄, 죄, 죄송합니다! 타오가 아직 한국어가 서툴러서!"
샤오메이가 고개를 숙였다. 타오의 머리를 손으로 눌렀다. 타오도 무언가 깨달았는지 얌전하게 고개를 숙이며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한차례의 소동이 있고 난 뒤에 남다윤의 거실로 들어갔다.
"여기가 제천회??會의……."
제천회. 말로는 제천회라고는 하나 거악이나 마인들을 막기 위한 중국의 단체다. 처음엔 무림맹이었다가, 중국의 마인들이 뭉친 마교에 한 번 멸문당하고, 강자들을 모아놓은 게 바로 제천회다.
타오가 감격한 표정을 지으며 식탁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남다윤도 제천회였지.
타오가 입을 열고 중얼거리자 샤오메이가 획하고 돌아보며 그를 째려봤다. 타오가 찔끔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저는 차라도 내올게요. 다들 드시고 싶은 거 있으신가요?"
"저는 녹차로 부탁드릴게요. 타오도 같은 것으로 해주세요."
샤오메이가 타오가 또 실수할까 봐 빠르게 타오의 차까지 같이 말했다.
"나는 허브티로 부탁할게."
분위기가 불편해서 차를 내온다고 도망쳤다. 부엌으로 향하니 시선이 느껴졌다. 샤오메이는 관찰하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하긴 그녀의 입장에서는 궁금할 거다. 남다윤과 나의 접점은 별로 없었으니까.
샤오메이가 공손한 목소리로 남다윤에게 이야기를 꺼내자, 남다윤이 경청하는 모습을 보고 차를 탔다. 허브차는 뭘 탈까 고민하다가 애플민트 티가 보여서 그것으로 정했다.
다기도 고급스러운 게 있어서 그것을 이용했다. 천수를 이용하여 손재주로 녹차를 타고 다른 손으로 허브티를 탔다.
"여기요."
녹차와 차를 내오자 샤오메이랑 타오가 명문가의 자제라는 것을 증명하듯 우아하게 마셨다. 그리고는 놀란 듯이 눈을 동그랗게 만들었다.
"오……."
"다도에도 소질이 있으셨군요……"
타오가 감탄했고, 샤오메이가 탐난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그 반응에 남다윤이 자기가 칭찬을 들은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보는 내가 다 쪽팔렸다.
"검후님과 이시우 씨는 어떤 관계 신가요?"
샤오메이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어떤 관계라. 연인…은 조금 애매했다. 굳이 따지자면 섹파 정도가 아닐까?
내가 나랑 남다윤의 관계를 생각하고 있을 때, 남다윤이 부끄러운 표정을 짓고는 잠깐 헛기침을 했다.
"흠흠, 나랑 시우의 관계가 궁금했구나. 나랑 시우의 관계는…좀 복잡하지만, 지금은 서로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사이지."
……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