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 남다윤(3)
* * *
"아차, 아직 시간이 좀 그런가."
"아뇨, 조금 전 까지 훈련하다 와서 배가 좀 고팠어요."
"그래. 그럼 누나가 요리 해줄게. 아, 시우는 고기를 좋아했지? 고기를 해줄까?"
"네."
실제로 배가 고프기도 하였다. 원래 세계의 몸에서 게임 세계로 떨어진 뒤에 몸이 바뀐 뒤로 항상 이랬다. 조금만 움직여도 배가 고팠고, 훈련을 하면 어지간한 성인보다 3배는 더 먹었다.
'……천수의 힘인가.'
나는 남다윤의 눈을 바라봤다. 나를 바라보는 남다윤의 눈빛이 바뀌었다. 귀여운 동생을 바라보는 눈빛에서 남자를 보는 눈빛으로. 남다윤의 몸에 슬쩍슬쩍 터치를 하게 된 후, 저리 바뀌었다.
도대체 어느 정도길래 이러는 거지. 천수를 활성화해서 귀를 슬쩍 만졌다.
'흡.'
나는 순간 휘청거렸다. 상상 이상의 쾌감이었다. 슬쩍 만지기만 했는데 다리의 힘이 풀렸다.
생각보다 훨씬 더 대단한데...?
순간 내 성감대가 귀 쪽인 줄 알았다.
이걸로 몇 번 건드렸는데도 이성을 유지한 남다윤이 이상할 정도였다. 이런 거로 최대 출력으로 만져댔으니 임나연이 기절할만했다.
나는 남다윤의 안내에 따라 식탁 쪽으로 향했다. 그곳으로 가니 10명쯤 앉아도 문제없어 보이는 크기의 식탁이 나왔다.
"가끔 오는 애들 때문에 좀 널찍한 걸로 샀어."
"애들이요?"
"응. 애들. 마음 맞는 애들끼리 만든 모임이 있는데 거기 애들이 가끔 놀러 와서 말이야."
그러곤 슬쩍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남자는 없어. 여자들만 모여있거든."
"아, 네."
미묘한 남다윤의 말에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나는 식탁에 앉아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포스터 하나가 눈에 띄었다. 남다윤이 중국풍 옷을 입은 채 검을 휘두르려는 모습의 포스터가 보였다. 슬쩍 보니 게임 포스터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남다윤은 중국에서도 인기가 많았었지.
"고기는 어떤 거 좋아해? 오리고기, 소고기, 돼지고기, 양고기…선물로 받은 뱀고기도 있는데."
뱀고기? 미묘한 식재료였다. 정력에 좋다는 사실도 미신에 불과하다던데.
"저는 소고기랑 돼지고기로……."
"나도 소고기랑 돼지고기가 먹고 싶었는데. 마음이 통했네. 구이는 좋아하지?"
"네, 한국인은 구이죠."
남다윤이 슬쩍 눈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그녀가 기다란 하얀 막대기 쪽으로 가더니 막대기를 톡톡 두들기자 검은 먹물이 퍼지듯, 공간이 일그러졌다. 아공간을 개발하여 냉장고로 만들었다고 광고하던 개발품이었다.
수납할 수 있는 공간이 무려 50평이다. 아공간이라 식량을 거의 무한에 가까운 시간에 저장할 수 있고.
개발사는 임나연의 아버지가 만든 회사다. 저거 하나에 수천만 원 이었던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자세히 알고 있냐면 임나연에게 아부하기 위해서 몇 명이 칭찬하듯 말했기 때문이다.
남다윤이 공간에서 고깃덩이 몇 개랑 채소를 꺼내놨다.
쿠웅!
도마 위에 내려놓았다. 만화에서 볼법한 크기의 고깃덩이였다. 과장 좀 보태서 내 머리가 두 개가 들어갈 법한 크기였다. 저거 한우인가? 한우겠지? 저거 덩어리만 해도 몇십만 원은 깨질 텐데…….
"고, 고기가 엄청나게 크네요."
"응. 자세하게는 모르겠는데 백두산에서 마나를 키워 먹인 소라고 하더라고."
당연하게도 그 정도면 값이 천정부지로 솟는다. 한우만 해도 비싼데, 백두산에서 마나를 키워 먹이면 도대체 얼마나 비싼 거지. 한 끼 얻어먹는 거로 너무 비싼 물건인데.
서걱
그런 내 심정을 모르는지 남다윤이 식칼 하나를 꺼내어 고깃덩이를 베었다. 한 번 베는 것이 보였는데 고기가 자로 잰 듯이 균등하게 세 덩이로 잘렸다.
"와."
내가 나지막이 감탄하자 남다윤이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요리를 잘하시네요."
적당히 칭찬하자 남다윤이 무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검을 다루는 영웅들이라면 어지간한 요리사들보다 더 낫거든. 하지만 요리하는 게 귀찮아서 보통은 다 시켜 먹어."
그렇게 말하며 남다윤이 팬에 식용유를 뿌렸다.
'……?'
그리고 고기를 한 덩이를 그대로...
"누, 누나! 잠깐만요!"
"어, 어? 왜 그러니, 시우야?"
"누나, 혹시…스테이크 처음 하세요?"
요리 처음하냐고 물을뻔한 걸 참고 답을 바꿨다.
"어, 어?"
내 물음에 매우 당황한 표정의 남다윤. 저 표정은 본 적이 있다.
첫 월급을 탔을 때, 한우를 집에 사 갔는데, 동생이 내가 요리는 자신 있다 하면서 한우를 숯덩이처럼 태우다가 내가 뭐 하냐고 물어봤을 때 나왔던 표정이었다.
나는 슬쩍 일어나 남다윤의 어깨를 양손으로 잡았다.
"시, 시우야? 버, 벌써?"
"사실 제가 누나한테 보답해주고 싶었거든요. 항상 절 많이 도와주시고 주는 것도 많으니까. 오늘은 제가 요리를 해 드릴게요. 누나만을 위해서."
"……."
남다윤의 귀가 새빨개졌다. 얼굴은 가려서 안보였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것보다 중요한 건 고기였다.
나는 남다윤을 식탁으로 옮기고 칼을 잡았다. 주방을 슬쩍 둘러보니 기본적인 것들이 다 있었고, 고급 식재료나 허브 등도 다 보였다.
'요리에 문외한 사람이 가지고 있을 것들이 아닌데.'
주변에 누가 챙겨주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칼로 우선 고기의 지방을 제거했다. 그리고 핏기와 수분을 제거하기 위해 종이 헝겊으로 고깃덩이들을 눌러줬다.
"오..."
남다윤이 뭔가 기대감 넘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굵은 소금을 고깃덩이 위에 뿌렸다. 통후추도 갈아서 뿌려줬다. 풍미를 위해 보통보다 많이 올리브 오일도 뿌려주고 그것들을 주물럭거렸다.
"시, 시우는 요리를 잘 하는구나."
"네. 동생 때문에."
"동생? 시우도 동생이 있었어?"
"네. 여동생이요. 사고뭉치 하나 있어서요. 부모님은 바쁘시고 동생은 요리에 재주가 없어 가끔 해주거든요."
"귀엽겠네."
"그런 끔찍한 소리 하지 말아주세요……"
아무리 남다윤이라도 용서할 수 없는 게 있다.
고기를 주물럭거리고 냉장고에서 마늘하고 버터를 챙겼다. 한국인에게 마늘은 필수였다.
치이익.
아름다운 소리와 함께 고기가 맞닿았다.
"처음에 강한 불로 하는 거 아니야?"
"육즙 가두기 때문에요? 그거 만화나 애니 같은 데서나 연출 때문에 나오는 거예요. 아니면 요리 마법을 익힌 사람들이나."
폼이 안 나도 여러 번 뒤집는 게 맞다. 고기를 다섯 번 정도 뒤집고 손으로 대충 으깬 마늘도 넣었다. 두 번 더 뒤집은 다음 버터하고 로즈메리를 넣었다.
"오오."
남다윤이 내가 고기를 굽는 걸 보고 감탄했다. 고기를 구우며 숟가락으로 버터탕을 스테이크 위에 끼얹어준다. 고기의 풍미를 올리는 작업. 그리고 마지막으로 레스팅 해준다. 육즙 가두기. 고기를 그릇 위에 담고 은박 호일로 씌웠다.
남은 건 소스를 만드는 작업.
'A1 소스가 있으니 편하네.'
기름이 남아있는 팬에 소스를 넣었다. 설탕도 한 스푼 추가하고 저어서 조려준다.
구운 정도는 미디엄 웰던. 줄어들었어도 그 크기가 장난 아니었다.
서걱.
한 입으로 먹을 수 있을 만큼 고기들을 결대로 썰어준 다음 마늘을 옆에다 장식한 다음, 그 위에 소스를 끼얹어 줬다.
천수를 활용한 데코. 절묘한 손재주로 먹기 아까울 정도로 아름답게 장식된다.
"다 됐어요, 누나. 자, 아."
"아, 아."
내가 고기 한 점을 주자 남다윤이 얼굴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 그러곤 얌, 하고 먹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맛, 맛있어."
그리고 그날, 남다윤은 고깃덩이 세 개를 모두 해치웠다.
…내 몫은?
***
아까의 크기만 한 고깃덩이를 두 개 더 해치우고 난 후.
남다윤이 만족스럽게 웃으며 배를 쓰다듬고 있었다. 크롭티를 입어서인지 앙증맞은 배꼽이 보였다. 하얀색의 피부에 날씬해 보이는 배. 손으로 꾹꾹 눌러 만지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것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장난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마인이 습격했다고 했잖아요."
"응. 근데 왜?"
"그게 교수님이었거든요. 그때 마인을 잡으면서 얻은 게 있는데 한 번 봐주실래요?"
"……어떤 건데?"
만족스러운 표정이 사라지고 날카로운 표정으로 바뀌었다.
검주 남다윤. 빌런들 사이에서 몰살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표정다웠다.
"최면 어플이란 건데요."
"…최면 어플?"
내 말에 남다윤의 표정이 바뀌었다. 날카로운 표정에서 어처구니없어하는 표정으로.
"네. 실제로 이걸 이용해서 학생들을 제물로 바쳐서……."
애쉬와 더스트에 관해서 설명하니 그녀가 심각한 표정으로 애쉬의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이게 진짜란 말이지. 확실히 마력이 느껴지긴 하는데……."
반신반의하다는 표정으로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나는 애쉬의 핸드폰을 켰다.
보랏빛하고 핑크빛이 교차하는 소용돌이 형태의 어플을 보여주었다.
"이게 최면 어플이란 거거든요."
"최면이라 나는 그런 거에……."
남다윤이 말하다가 멈칫했다. 그러더니 이내 내 얼굴을 한 번 보고는.
"시, 시우야."
"네?"
"오, 오해하지 말고 들어볼래? 그 최면어플 이란 거 나한테 한 번 써보지 않을래?"
"누나한테요?"
나는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호, 혹시 모르니까…만약 나 정도 되는 사람도 걸릴 정도면 그것도 큰일이잖아."
남다윤에게 걸려면 내 목숨을 바쳐도 안될 텐데. 나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고민할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건강하게 오래 살아서 마신의 뚝배기를 깨야 한다. 그러니 미리 깔아둔 가짜 최면 어플을 켰다.
핑크빛과 보랏빛이 소용돌이치는 화면이 핸드폰 전체를 채웠다. 내가 그것을 보여주자 남다윤의 눈이 초점이 사라졌다.
'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