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 남다윤(2)
* * *
탁. 탁.
왼쪽에서 내리치는 검을 막았다. 남다윤은 목검을 막은 것에 안도하지 않았다.
시우와 상대하기 위해서 신체 능력을 낮췄다.
제 몸 스스로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상격의 영웅조차 될 수 없다. 남다윤은 그중에서도 감각이 뛰어난 편에 속하는 영웅. 스스로의 신체 능력을 낮추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검과 검을 맞댄다. 흐름에 휩쓸리지 않게 주의했다. 시우의 기교는 그 나이대에 어울리지 않는 기교였다. 천재라는 족속들이 무에 몸을 내던져 10년 동안 무?에 미쳤거나, 일평생 검만 휘두른 범재들이나 가질법한 기교.
'이게 가능한가?'
남다윤은 검을 튕겨내며 생각했다. 검을 동영상을 보면서 연습했다. 무공서에 적힌 검법으로 연습했다. 그러면서도 상급 영웅에 필적하는 기교를 가진다.
위의 두 개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상급 영웅에 필적하는 기술을 가지는 것은 말이 안됐다.
'하지만.'
남다윤은 상념을 털어냈다. 그녀의 동생 시우는 딴생각을 하면서 싸울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상대가 아녔다.
시우가 보법을 밟으며 움직였다. 사각지대로 접근하며 검을 휘두른다.
탁!
가볍게 막았다. 그러나 검이 흔들린다. 바로 패링을 쓰는 것이다. 남다윤은 혀를 낮게 차며 무게중심을 옮겼다.
'더 능숙해졌어.'
고작 일주일뿐이지만 저번 주보다 더 능숙해졌다. 음양체라는 특성을 얻으면서 신체의 능력치가 급격히 상승했는데, 벌써 강건해진 신체에 익숙해졌다는 증거이다.
탁! 탁! 탁!
목검이 부딪쳤다. 남다윤은 제자리에서 받아치다가 당황했다. 아주 조금이지만.
미묘하게 검술이 더 견고해졌다.
이따금 그런 존재들이 있다. 지금까지 기본기를 바탕으로 몇 번 실전을 겪으면서 한순간에 올라가는 타입. 범인의 시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
'천재.'
그리고 남다윤 역시 남들 눈에 그렇게 보였다. 이해할 수 없는 녀석. 그녀가 아직 어렸을 적, 아카데미에서 자주 듣던 말이었다. 날고기는 학생 중에서 이해할 수 없는 존재.
그리고 그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만났다.
***
대련이 끝났다. 남다윤이 나를 미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혹시."
그녀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창술도 동영상을 보고 배운 거니?"
"네, 참고하면서 애들하고 대련하면서 좀 다듬긴 했는데……."
그녀의 표정이 더욱더 묘해졌다. 마치 천재라는 족속을 보는듯한 표정. 그러나 나는 천재가 아니었다. 그냥 특성빨 인데.
"그러면 단검술을 한번 볼까?"
그녀가 목재로 만들어진 단검을 내게 던지며 말했다. 10분 정도 그녀와 대련하다가 그녀가 멈췄다.
"혹시 다른 무기를 써 볼 생각은 있어?"
"그냥 일단 무기라면 다 써보려고요."
"……자신에게 더 맞는 무기를 찾는 것도 괜찮겠지."
그녀가 그렇게 말하며 손목에 낀 팔찌를 매만졌다. 그러곤 허공에 손을 넣는듯한 동작을 취하자 손목 부분이 안 보였다. 아공간 가방. 못해도 십수 억은 줘야 하는 물건이다. 게임을 하면서 던전에서 얻을 수 있지만, 사게 될 때 말도 안 되게 비싸다고 욕했었는데. 이렇게 보니까 좀 묘했다.
그녀가 허공을 몇 번 뒤적거리다가 검은색의 구체를 꺼냈다.
"천변??이라는 물건이야. 한 번 써볼래?"
그녀가 검은색의 구체를 나한테 던졌다. 나는 지식열람으로 무기의 정보를 확인해 보았다.
[천변]
천개의 무기로 변할 수 있는 구체다
사용자가 생각한 대로 변화한다.
나는 채찍을 떠올렸다. 검은색의 구체가 길쭉해지더니 채찍으로 변했다.
'생각보다 가볍네.'
하긴, 전부 가죽이니까. 철보다 가벼운 것은 당연했다.
"한 번 써봐도 될까요?"
"응. 그러라고 준 거니까."
나는 채찍을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한번 휘둘러보았다. 채찍이 한 번에 쭉 늘어나며 내가 목표로 한 곳보다 조금 멀리에 부딪쳤다.
생각만큼 움직여주지 않네.
나는 채찍을 연속으로 휘둘렀다. 채찍을 몇 번 휘두르니 감이 잡혔다. 크게 휘두르는 것보다 손목의 스냅을 활용하여 손잡이를 휘두르는 것이 핵심이었다. 리치가 긴 무기들은 이게 좋았다. 적게 움직여서 상대를 타격하기 유용했다. 그만큼 상대가 들어오면 힘들어지지만…….
"엄청 좋은 무기네요."
천변을 몇 번 바꾸고 말했다. 도끼나 창, 폴암따위로 바꿔도 내 생각대로의 길이와 무게, 형태가 잡힌다. 이거 엄청 좋은 무기인데 왜 안 쓰지? 그런 표정으로 그녀를 보니 그녀가 쓰게 웃었다.
"천변은 그렇게 좋은 무기는 아니야. 내구성이 별로거든. 그리고 한 번 고장 나면 수리하기도 힘들고."
"아하."
"그래서 아공간에 대충 두고 있었는데, 오늘 시우를 보니까 떠올랐지 뭐야. 아카데미에서는 규정상 쓰기 힘들지만, 그래도 연습은 할 수 있잖아. 필요하다면 가져갈래?"
"헉, 감사합니다."
나는 바로 받아먹었다. 한국인은 예의상 한 번 거절한다지만 이런 좋은 무기를 거절했다가 놓친다면 큰 손해니까.
'남다윤이 그럴 것 같진 않은데.'
내 반응에 남다윤이 굉장히 흐뭇하게 웃었다.
"혹시 사이드를 쓰는 법은 아니?"
"사이드요?
대낫은 한 번도 써본 적도 본적도 없다.
"없어요."
"그럼 가르쳐 줄게."
나는 천변을 사이드로 바꿨다. 검은색 봉에 날의 길이가 1m가량 있는 대낫으로 바뀌었다.
남다윤이 내 앞으로 와서 낫 쥐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달콤한 로즈메리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이렇게 손과 손의 거리가……."
남다윤의 손이 내 손을 겹치며 자세를 잡아줬다. 부드러운 살결이 느껴졌다.
"이렇게요?"
"응, 그렇……"
그녀와 좀 더 밀착하며 물어보자 남다윤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그러나 싫어하는 반응은 아니었다. 나는 슬쩍 팔로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물었다. 아까까지 나를 몰아붙였다고 느끼지 못할 여리여리한 팔이었다. 말랑거리기도 했었고. 나는 슬쩍 손을 옮겨 남다윤의 손을 잡았다. 흠칫, 하고 떠는 게 느껴졌다.
그녀가 고개를 떨궜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귀 끝까지 빨개진 것은 변하지 않는다. 귀엽네. 남자에 면역이 없다는 것이 느껴졌다. 아카데미에서 모두의 동경을 받았던 검주지만, 그녀는 지금까지 동생을 제외하면 남자의 손조차 잡지 않았다고 한다. 아카데미에서는 본인의 실력을 키우느라 바빴고, 졸업하고 나서는 자기 동생을 죽인 빌런들을 척결하는데 바빴기에.
"이, 이, 이렇게 휘두르고."
"이렇게요?"
남다윤이 귀여워서 천수를 조금 활성화했다.
"엇, 누나 여기 뭐 묻었어요.
슬쩍 그녀의 귓불을 쓰다듬으니 그녀의 몸이 움찔거렸다. 나는 그녀에게 여러 가지 물어보는 척하며 천수로 툭툭 건드렸다. 새하얗던 피부가 빨갛게 물들었다.
"엇?"
발이 엉켰다. 아니, 엉켰다기보다는 내가 발을 내디딜 때, 절묘하게 남다윤이 내 발을 걸어서 넘어트렸다. 아니, 대체 왜?
나는 그 사실에 당황해하며 반사적으로 몸을 뒤집었다. 그러자 묘한 동작이 되었다. 내가 남다윤을 덮치는 듯한 상황이 발생했다.
"……."
"……."
분위기가 묘했다. 남다윤의 얼굴이 가까이 보였다. 나이는 30세가 넘었지만, 20대 초반처럼 보이는 앳된 얼굴. 바다를 닮은 푸른 눈동자가 보였다. 수줍은 표정에 새하얀 볼이 홍조에 붉게 물들었다.
"시우야……."
그녀가 몽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녀의 입술을 향해 조금씩 다가갔다. 남다윤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 행동이 귀여워서 무심코 웃음이 나올뻔한 걸 참고, 입술에 입을 맞추려는 순간이었다.
딩동.
벨이 울렸다.
그것도 무시하지 못할 만큼 크게. 아무래도 지하인지라 벨이 울리면 따로 크게 울리도록 설계해놓은 모양이다.
"……."
"……."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남다윤의 표정이 순간 차갑게 변했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녀가 다시 수줍어하는 표정을 지으며, 볼에 홍조를 띄웠다. 그녀가 눈을 다시 감았다.
못 들은 척 하려나 보다. 나도 못 들은 척하며 그녀의 입술에…….
딩동.
다시 한번 벨이 울렸다. 이번에는 참지 못했는지 그녀의 표정이 차갑게 변했다.
"…발. 어떤……지?"
작게 중얼거려서 귀에 들리지 않았는데, 굉장히 험한 욕인 것 같다. 나는 모른척하며 그녀를 뒤따라갔다.
중간에 운동복 복을 챙겨서 몸을 가린 다음 현관문을 열었다.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검주님."
늘씬한 다리가 훤히 드러나는 검은색의 치파오를 입은 묘령의 여성. 그녀가 고개를 숙인 모습이 보였다. 옆에 아까 전 시비를 걸었던 소년, 타오도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나는 내 모습을 드러내면 귀찮아질 것 같아서 슬쩍 현관에서 안 보이는 곳으로 이동했다.
"누구신지?"
남다윤이 입을 열었다. 스산한 목소리가 주변을 울렸다. 샤오메이랑 타오가 흠칫하는 것이 느껴졌다.
"저번에 검후께서 빌런, 하얀 뱀을 토벌 할 때, 신세를 졌었던 리가에서 왔습니다. 그리고 여기, 변변치 않지만, 그때의 보답으로 드리는 선물입니다. 받아주십시오."
타오가 입을 열며 검은색의 황금용이 장식된 상자를 검후에게 바쳤다. 포장지부터 고급스러웠다. 그러나 검후는 그 선물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 그, 그게."
"죄송합니다. 저희가 마음이 급하여 예고도 없이 검후님의 저택에 예고도 없이 방문했습니다. 저희의 실수입니다. 죄송합니다."
타오가 당황해하며 말을 더듬자 샤오메이가 나섰다.
샤오메이가 고개를 한 번 더 숙이자 검후의 분위기가 조금 물러지는 게 느껴졌다. 그녀의 사과에는 그만큼 진정성이 있었다.
검후는 비서를 두지 않아서 그녀의 집에 그녀의 번호를 모르는 사람들이 방문하려면 직접 올 수밖에 없다고 했었지.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가 빌런의 척결을 가장 앞서서 하기 때문이다. 검주는 잡기 매우매우매우 어렵고, 설사 그녀를 죽인다고 해도, 그 후폭풍을 감당하기 힘들지만, 비서는 아니니까.
"그래서 무슨 일로 방문하셨죠?"
"검후님께 의뢰를 하기 위해서 방문했습니다."
샤오메이의 말에 타오가 품에서 두루마리 같은 것을 꺼냈다. 시대가 어느 때인데 두루마리지.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타오를 바라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타오가 공손하게 남다윤에게 두루마리를 건넸다.
"……그러니까 저보고 빌런을 잡아달라는 거네요?"
"네, 그렇습니다."
남다윤이 고민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생각해 볼게요."
"혹시 언제 답변을 주실지 알 수 있겠습니까?"
"언제 중국에 가셔야……아뇨, 늦어도 내일 점심까지 알려드릴게요. 핸드폰 번호 있죠?"
"네, 여기 있습니다."
샤오메이가 남다윤에게 명함을 건넸다. 그 명함을 본 남다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이만."
그렇게 말하며 남다윤이 문을 닫았다.
"……."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실례가 아닌가 했지만, 거칠게 숨을 쉬는 남다윤의 모습이 보였다. 아무래도 약하게 했다고는 하나 천수의 효과 너무 확실했던 모양이다.
남다윤이 나를 바라보았다. 열망 섞인 눈동자가 보였다.
"그, 러고 보니 시우야."
"네?"
"아직 밥 안 먹었지?"
나는 슬쩍 시계를 보았다. 오후 3시. 점심을 먹기에는 늦은 시간이고 저녁을 먹기에는 너무 빠른 시간이었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직 안 먹었네요."
남다윤이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라면 먹고 갈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