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남다윤(1)
* * *
대한민국, 미국, 중국. 이 세 개의 나라는 세계의 패권을 주도하는 초강대국이다.
일찍이 게이트에서 넘어온 요정족과 동맹을 맺고, 무너진 북한에 세계수를 심어, 온갖 마법적 자원이 넘치는 나라이자, '영웅'이라는 비대칭 전력이 가장 뛰어난 한국.
한국과 중국의 대부분을 압도하지만, 노동력과 영웅의 전력이 낮은 미국.
그리고 공허족과 동맹을 맺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노동력을 자랑하는 중국.
공허족.
공허에서 사는 종족이며, 일각에서는 정령족이라 불리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반투명한 신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언데드들을 사역하며, 흑마술에 능통한 종족이며, 물질적인 이득보다 정신적인 충족을 원하는 특이성을 가지고 있다. 이들이 가진 흑마술은 일반적인 인식과는 다르다. 정당한 계약으로 맺어져 있기 때문이다.
죽기 전까지 국가에서 나름 풍족하게 살 수 있는 돈을 매달 지원받으며, 사후에 국가에 평생토록 봉사하는 조건으로 맺어진 계약. 혹은 죽기 전, 가족을 위해 막대한 돈을 받고 계약을 진행한다.
'솔직히 말해서 왜 1위를 못하는지가 의문인데.'
샤오메이는 생각했다.
6억이라는 말도 안 되는 숫자를 자랑하는 언데드 노동자들. 언데드 노동자들은 언데드 이기에 쉴 필요가 없다. 언데드 이기에 24시간 일할 수 있다.
물론 기본적으로 언데드인지라, 사기死?를 씻기 위하여 사흘에 한 번씩 성물을 이용한다지만, 그 시간과 비용은 말도 안 되게 저렴하다.
찰칵.
"저게 세계를 구한 영웅인가."
여린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짝 비열해 보이는 미소. 검은색의 땋은 머리를 늘어트린 160cm 언저리 될 것 같은 소년. 그 소년이 핸드폰을 들고 동생을 배경으로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으며 셀카를 찍고 있었다.
자신의 동생인 타오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잠깐 상념에 빠졌는데 벌써 딴짓거리를 하고 있다.
샤오메이는 고개를 돌렸다. 백색의 동상이 보였다. 위엄 가득한 얼굴. 검을 휘두르며 당장에라도 달려갈 듯 박력이 넘치는 동상.
신유진.
회귀자로 유명한 영웅이자 세계를 구한 영웅이었다. 한국이 낳은 불세출의 천재.
슬쩍 둘러보니 근처의 행인들이나 외국인들이 사진을 찍거나 꽃을 내려놓으며, 묵념하고 있었다.
자신의 동생 타오, 역시 그 동상을 보며 동경 어린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타오."
"왜 누나?"
"오늘 무슨 일 때문에 왔는지는 알지?"
"물론 알고 있지. 검주님 때문이잖아.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고 있어."
검주??.
검의 주인.
최상격에 들어갈 것이라고 확실시되는 영웅이며, 가장 단시간에 상격까지 올라선 인물. 빌런을 증오하며, 상격 영웅 중에서도 빌런 퇴치에 가장 적극적인 인물이며 불의를 참지 못하는 인물이다.
기본적으로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활동하지만, 땅덩어리 좁은 한국보다 중국에서 온갖 러브 콜이 들어와 중국에서도 간간이 활약하는 그녀의 인기는 어지간한 자국의 영웅들보다 인기가 많다.
어검을 다루며, 중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여검사. 한국에서 검주라 불린다면 중국에서는 검후라고 불린다.
오늘 그들의 목적은 검주에게 의뢰하는 것이었다.
목적은 빌런의 퇴치.
본래 그녀의 가문의 힘이면 아무렇지 않게 해결할 수 있지만……..
'빌어먹을 새끼들.'
가문에서 사고가 크게 터졌다.
당대의 문주와 친위대 무력대를 대리고 임무를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체포한 마인이 탈주한 것이었다. 사유는 가문의 장로의 아들이 술에 취해 감옥에서 마검을 들고 난동을 부리다가 그사이를 파고들어 탈주한 것이었다.
'그 새끼를 잡으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천문학적인 돈과 인력이 들어갔다. 가문 내의 스켈레톤 병사가 500기가량 박살 났으며, 마법이 담긴 스크롤과 물약 등 값비싼 소모품도 상당히 썼고, 부상당한 영웅들의 치료와 내상약 등등.
일단 근신 처분을 내렸고, 후에 문주와 무력대가 가문에 오게 되면 처분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빌런은 잡아야 했다. 이미 가문에서는 그 빌런을 잡았다고 공표한 지 오래. 가문의 힘으로 어느 정도 감출 수야 있겠지만, 바깥에서 제대로 날뛰게 될 경우는 위험했다.
그러한 정치적 문제 때문에 검후에게 의뢰를 하기 위해서 그들이 왔다.…원래 이것도 장로가 해야 하는 일이지만, 혹시 모를 장로의 반란을 저지하기 위해 다른 장로는 움직일 수 없었기에 그들만이 이곳에 올 수 있었다.
"누나, 쟤 좀 봐봐."
"누구?"
타오가 나지막이 감탄하며 손으로 가리켰다. 샤오메이는 타오의 손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기도가 상당한데? 그러면서도 나름 잘 감추고 있고. 겉으로 봐서는 못 느낄지 모르지만, 육체도 나쁘지 않네."
한 소년이 있었다. 반쯤 곱슬한 머리카락에 자신감 넘치는 눈동자. 광채가 이는듯한 새하얀 우윳빛의 피부. 앳된 얼굴과는 다르게 몸은 다부졌다.
'누구지.'
범상치 않은 소년이다. 외모도 범상치 않지만, 그를 둘러싸고 있는 분위기는 더 범상치 않았다. 주변을 홀린다고 해야 하나. 그런 분위기가 소년에게 있었다.
무엇보다 타오가 반응했다. 야성적인 직감으로 상대의 무력을 파악하는 것이 탁월한 그녀의 동생이 반응했다. 요주의 인물이라는 뜻이다.
샤오메이도 그 소년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어디선가 본듯한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력으로 뛰어난 학생들을 떠올려 보았지만,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봐."
"……?"
타오가 묻자 소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그대는 영웅 지망생인가?"
"어, 그런데. 여행 온 거야?"
"그렇다. 중국에서 왔지. 타오라고 한다. 리 타오. 그나저나 대단하군. 과연 한국인가. 이 정도로 단련된 사람이 지망생이라. 히어로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는 건가?"
"어."
타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혹시 1학년인가?"
"그런데."
"혹시나 찍어봤는데 다행이로군. 너 정도라면 1학년 수석이겠지?"
"아닌데."
"…뭣, 네가 수석이 아니라고? 아, 그렇군. 경계하는 건가. 너 정도의 실력자가 수석이 아닐 리가 없지. 너 정도면 나보다는 약하지만, 중국에서도 적수가 없을 거다. 좀 더 노력하면 차석은 되겠지."
"아니, 진짜 아닌데."
"후후. 그렇게 부정할 필요는 없다. 네가 한국에 히어로 아카데미 1학년의 대표라지만 상대가 나일 뿐이다. 상대가 나쁜 것이다. 비가 오면 옷이 젖듯이 당연한 일일 뿐이다."
****
"……."
뭐 하는 새끼지. 대뜸 와서 혼자 한참 동안 지 혼자 떠들고는 끝으로 잘난 체로 끝났다. 억양이나 이름으로 봐서는 중국 쪽 아카데미에 입학한 학생 같은데. 리 타오? 들어본 적이 없는데. 아마 중국의 아카데미의 다니는 학생이겠지.
나는 슬쩍 한숨을 내쉬며 이쪽으로 오는 여성을 보았다.
긴 생머리에 한국에서 보기 힘든 황금색 무늬가 들어간 검은색 치파오를 입은 여성.
리 샤오메이.
저 얼굴을 보니 떠올랐다.
상계에서 검은 손이라 불리는 샤오메이 였다. 상재에 뛰어난 여자 조연이었다. 게임 내에서 윤승하에게 도움을 받고, 윤승하에게 감명받아 중국에 가게 되면 도움을 받거나, 필요한 물품이 있으면 구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즉, 물주다.
근데 이 타이밍에 리가가 한국에 올 이유가 있었나.
머리를 굴려보지만, 기억이 나질 않는다. 게임에서 안 다뤘던 탓이겠지.
나는 남다윤의 집으로 가기 전에 근처 백화점에 들렀다. 뭐라도 사가야 할 것 같아서였다. 말로는 몸만 와도 된다고 했지만, 저번에 마카롱을 받았을 때, 표정을 보면 역시 사 가는 게 좋겠지.
그러고 보니 뭘 좋아하더라.
남다윤에 관한 건 빌런을 증오한다는 것과 그에 대한 사건 몇 개인데. 동생을 끔찍이 아꼈던 것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밖에 다뤄지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중간에 거의 무조건 죽기도 했고.
먹을 것을 또 사가는 건 그랬다. 그런데 남다윤은 최상급 영웅을 바라보는 기대주라 다른 선물들도 별로 의미는 없을 것 같은데.
일단 백화점에 가서 뭐라도 골라볼까.
입구에 도착하니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모자라도 쓸 걸 그랬나. 적당히 둘러보다가 모자를 하나 쓰고 근처를 뒤지다가 향수 가게가 발견되었다. 향수 정도면 괜찮겠지? 직원에게 적당히 로즈메리 향기를 추천받고 그것을 샀다. 그리고 남다윤의 집으로 향했다.
"왔니, 시우야? 오랜만이네."
'만난 지 일주일 밖에 안됐는데.'
벨을 누르자마자 남다윤이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나왔다. 바다를 닮은 푸른색의 단발. 검은색 레깅스에 검은색 줄이 들어가 있는 하얀색의 크롭티. 눈이 즐거운 복장이었다.
"네, 오랜만이네요. 누나는 잘 지내셨어요?"
적당히 답하자 남다윤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푸른색의 단발머리가 찰랑거렸다.
"응. 잘 지냈지. 그러고 보니 시우는 어디 다친곳은 없어? 어제 마인이 습격했다고 하던데?"
"…벌써 그게 알려졌어요?"
"다들 쉬쉬하고는 있지만, 요즘은 이게 발달했잖아?"
핸드폰을 슬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아카데미 측 관계자들이 필사적으로 막고 있기는 한데, 대중들이나 모를 거고, 업계 관계자는 어지간하면 다 알 거야. 그런데."
푸른빛의 눈동자가 반달처럼 휘었다.
"우리 시우, 고유 능력 각성한 거야?"
"네, 운이 좋았어요. 좀 재밌는 걸 주워 먹었어요."
"환골탈태를 한 거 보니 신체와 관련된 거야?"
"환골탈태는 부가적이고……굳이 구별하자면 정신과 관련된 능력이에요."
"정신 쪽?"
나는 유아독존과 음양체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했다.
"와……"
남다윤이 입을 벌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운이 좋은 정도가 아닌데? 그 정도면 못 해도 국가에서 엄중히 취급할 영약인 것 같은데."
"그 정돈가요?"
실은 알고 있다. 음양단과 비슷한 영약이 하나 발견되어 그것 하나 때문에 국가 간의 전쟁이 발발할 뻔했던 적이 있으니까. 그리고 주인공은 그 영약을 우연히 섭취하게 돼서 한 단계 성장한다.
"응. 아차, 내가 정신이 없어서 계속 세워 뒀네. 안으로 들어와."
그녀의 안내를 받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바로 지하에 연습실로 향했다.
지하 연습장은 다시 봐도 널찍했다. 남다윤이 연습장 한쪽에 걸린 목검을 들려고 하자 내가 말했다.
"저 오늘은 단검술을 좀 배우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단검술을?"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바라봤다. 더 정확히는 비도술이다.
"네. 아무래도 검 하나를 쓰는 것 보다는 단검술과 같이 쓰는 게 좋아 보여서요."
"단검술은 많이 힘든데 괜찮겠어?"
남다윤이 인상을 찌푸렸다.
"단검술은 멋있어 보일지는 몰라도 리치가 짧아서 별로야. 휴대하기 편하기 때문에 암살자들만 쓰는 무기지. 검기를 이용하여 길이를 늘일 수는 있지만, 그럴 바에는 처음부터 검으로 길이를 늘이는 편이 더 좋지."
남다윤이 목재로 만든 단검을 들며 말했다.
"그래도 단검술의 장점을 꼽자면, 휴대성과 의외성 정도려나? 단검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만 알아?"
"동영상만 참고해봤어요."
"……아, 그래?"
순간적으로 남다윤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혹시 시우는 검술도 동영상만 본 거야?"
"아뇨. 동영상 말고도 무공서에 적힌 검술도……."
"……."
뭐지. 왠지 남다윤의 표정이 잠깐 재수 없는 것을 본 표정으로 바뀌었는데. 잘 못 본 거겠지.
"…우, 우선은 한번 대련부터 해볼까. 얼마나 강해졌는지 확인해봐야, 실력도 알 수 있으니까."
남다윤이 목검을 들며 말했다.
"우리 시우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실력을 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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