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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나에게 최면어플을 사용한다-38화 (38/298)

〈 38화 〉 마인(4)

* * *

윤채린의 양손을 단전 부근에 모았다. 손아귀 속에서 정순한 어둠의 기운이 휘몰아치더니 구체의 형태로 만들어졌다.

직후, 어둠이 세상을 뒤엎을 듯이 폭사했다. 윤승하는 멀리서 윤채린을 보았다.

천마신결, 멸겁륜.

시전시간이 오래 걸리며 극도의 집중을 요해 상대가 공격하면 방어를 하기 힘들지만, 한 번 발동하면 다른 건 몰라도 그녀가 가진 무공 중 가장 강렬한 파괴력을 가진다.

새까만 기운이 휘몰아쳤다. 정순한 기운이 느껴진다. 보통의 마인들이 사용하는 마?와 같은 힘이라고 착각할 수 있으나 근본부터가 다른 힘.

정순한 어둠이 휘몰아치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마치 블랙홀처럼 옥상에서 휘몰아치고 있었다.

휘몰아치는 어둠이 걷히고.

죽어가는 더스트의 모습이 보였다. 온몸이 갈기갈기 난도질당하고, 피를 토하고 있는 모습. 과연 그림자 혼혈이었다. 특유의 끈질긴 생명력으로 저 속에서 목숨을 부지하다니. 나지막이 감탄하며 윤승하는 바람의 정령을 타고 이동했다. 시선을 끌기 위해서 정령을 소환했지만, 애초에 윤승하는 전투에 한 발짝 떨어져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이 상황을 주도한 인물이 남긴 쪽지를 보았기 때문이다.

­더스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생존. 위치로 이동 요망. 그의 특성으로 표시된 장소로 한 번 무조건 이동 가능.

빠르게 적었음이 분명함에도 글씨가 정갈했다. 윤승하는 글씨에 한차례 감탄하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윤승하는 이시우를 떠올려 보았다. 더스트. 그녀도 들어본 적 있는 악당이었다. 무릇, 히어로 아카데미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전부 영웅을 지망한다.

영웅이란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이들을 단죄하고, 사회의 질서를 지키는 자들을 일컫는다. 그렇기에 기본적으로 마인과 빌런에 대해 숙지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그러나 보통 저렇게까지 자세하게는 알지 못한다.

다들 절기를 한두 개씩은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힘을 어느 정도 숨기며, 만일 힘을 드러낸다면 목격자들을 모두 제거한다. 그것이 타락한 자들의 방식이었다.

방송에 노출되어 비기까지 개방하는 영웅과는 다르게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한정되어 있다.

'그런데 다 알고 있었어.'

­그림자에 숨으면 약 7초에 딜레이 존재.

­그리고 그림자에 숨게 되면 반드시 자신을 습격한 사람의 그림자 뒤에서 나옴.

더스트가 무엇을 쓰는지에 대해서 알고 있고, 그의 심리까지 꿰뚫고 있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더스트와 그는 처음 마주친 인물일 것이다.

어떻게 알았을까. 윤승하는 궁금증이 일었지만, 상념을 털었다. 나중에 생각해도 될 일.

시야를 정면으로 옮겼다. 주변에 정령들을 소환했다.

그가 가르쳐 준 위치에 피를 토하며 절망하는 표정을 짓는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

"쿨럭."

기침하며 피를 토하는 더스트를 바라보았다. 거의 만신창이였다. 더스트는 한 번, 무조건 표식에 따라 이동하게 된다. 그의 특성 때문이었다.

스르륵.

피를 토한 채 그림자 속으로 들어갔다. 주변의 모두가 긴장한 채 그림자를 주시하고 있지만, 더스트는 이미 떠났을 터.

"내려가자. 애쉬를 처리해야 해."

그런 이들을 보며 말했다. 갑옷의 얼굴 부분만 해제한 한종우가 눈썹을 슬쩍 위로 올렸으나, 그는 이내 내 말에 따랐다. 보통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임나연이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윤채린은 표정을 굳히고 있었다. 은수아는 입가를 씰룩이며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라, 나연. 내가 지켜줄 테니."

느끼한 말로 임나연에게 말하는 한종우를 무시하며 내려갔다. 내가 달려가자 다들 내려오기 시작했다.

최대한 빠르게 처리했다고 하지만 이만한 마력의 파동이 삽시간에 휘몰아쳤다. 학교 내에 남아있는 전원이 전투가 있음을 알았겠지.

여기저기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소리치는 학생. 옥상으로 올라가는 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배지를 보니 2학년과 3학년도 있었다.

'근데 너무 과한 전력인 것 같은데.'

애쉬는 약하지 않다. 그러나 이 전력을 상대로 버티는 것도 힘든 게 애쉬였다. 윤채린이 새로운 스킬을 각성할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시간을 끌면 폭주하지만, 시간을 오래 끌면 교수들이 당도해서 상황을 정리할 거다.

나는 일행을 이끌고 부실로 향했다. 애쉬라면 구슬을 먼저 챙기려고 할 테니까. 부실 문이 보이자 발로 걷어찼다. 문이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날아가며, 부실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당황한 표정의 애쉬가 보였다. 부실로 오는 것이 정답이었다. 확률이 반반이었는데. 옆에 누군가가 보였다. 검은 복면을 쓴 남성이 있었다.

나는 순간 멈칫했다. 저 녀석이 왜?

'광견.'

당황은 했으나, 머릿속에서 지식이 떠올랐다. 이명, 광견. 개 수인족. 무투파. 중격의 마인. 속도가 빨라 출력만 샌 은수아의 카운터로 유명했다. 속도가 빠르고 근력이 세지만, 기교에 약하다.

나는 우리 쪽 전력을 확인했다. 윤채린과 은수아, 임나연, 한종우. 든든했다.

'가능해.'

승산은 충분했다.

"학생들인가. 배지를 보니 1학년들이군."

"…방심하지 마. 저것들은 신입생의 탈을 쓴 괴물들이야."

"지랄. 괴물은 너희들이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넘기고, 인신 공양을 처하는 새끼들이."

광견과 애쉬의 말에 윤채린이 말했다.

"준비됐어, 은수아?"

"물론이지."

내 말에 은수아가 답했다. 칠흑색의 불꽃이 그녀의 손에 피어오르더니 이내 창으로 바뀌었다. 흑염창. 그녀의 주특기 중 하나였다. 칠흑색으로 이루어진 화염창이 광견에게 쇄도했다.

"흥!"

시커먼 기로 둘러싸인 손으로 휘둘렀다. 흑염의 창이 휘둘러진 손에 흩어졌다. 아니, 흩어지는 것 같았다. 흑염은 광견에 손에 달라붙어 끈질기게 타올랐다.

"쯧, 귀찮은 불꽃이군."

한순간 광견의 마력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야, 야! 그렇게 소란 피우면 교수급들이 바로 달려온다고!"

"걱정하지 마라. 유물로 주변에 결계를 쳐놨으니."

목에 걸린 흑진주 목걸이를 자랑스레 보이며 말했다.

'저런 것도 있었나.'

처음 보는 유물에 당황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갔다.

쿠르릉.

몸속의 마나를 돌리자, 번개가 치는 소리가 들렸다. 뇌령이 번개를 토해내며 신체를 질주했다. 보랏빛의 번개가 튀었다. 시간이 길쭉하게 늘어졌다.

"쯔으읏! 그으러언건……."

검날에 보랏빛 뇌광이 맺혔다. 내 속도에 크게 당황한 표정을 짓는 애쉬. 광견이 손을 뻗지만, 이내 그 손을 회수했다. 옆에서 정순한 마기를 휘두르는 윤채린이 있었기 때문이다.

검이 한 줄기의 일섬一?이 되었다. 뇌광비검술, 일식. 일섬. 검을 휘두르자 애쉬가 손을 뻗었다.

채앵!

검과 손이 부딪치자 철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애쉬의 손이 묵빛의 색으로 바뀌었다. 옆에서 한종우와 임나연이 내 쪽으로 오려 했다.

"나를 도와주지 말고 윤채린을 도와줘."

"……괜찮겠어?"

"빨리 처리하고 상대하는 게 더 나아."

그렇게 말하며 애쉬에게 달려들었다.

"내가 만만하게 보이냐?"

"어. 엄청 만만한데. 좃밥아."

"애새끼가!"

애쉬의 말에 적당히 답해주고 도발하며 검을 휘둘렀다. 내 도발이 먹혔는지 애쉬가 광분하며 검게 물든 손을 휘두르며, 입김을 불었다. 입에서 초록빛의 액체가 나한테 쏘아졌다.

나는 기겁하며 검을 휘둘렀다. 보랏빛의 뇌광이 초록빛의 액체를 태웠다. 역한 냄새가 났다. 나도 모르는 사이 애쉬가 주변에 독을 뿌렸기 때문이다. 독 저항 세트를 착용하고 새롭게 각성한 음양체와 유아독존 덕에 소용은 없지만.

'너무 서둘렀나.'

게임에서 플레이했을 때는 만만했었는데, 직접 싸워보니 만만하지 않았다. 슬쩍 옆을 보니 일행이 광견을 쉽게 처리할 것 같지도 않았다.

찰나, 광견에게서 맹렬한 마력이 쏟아져 나왔다.

그에 호응하듯 윤채린도 마력을 끌어올렸다. 마력과 마력이 격돌하고, 부실이 휘몰아쳤다. 부실에 있던 온갖 운동기구들이 사방으로 떨어져 나갔다. 몰아치는 마력이 격돌하고, 승자와 패자가 갈렸다. 금빛의 머리칼을 휘날리며 부실의 벽면에 처박혔다.

"……."

나는 순간 말을 잃었다.

이상하다.

광견은 저렇게 강하지 않았는데. 당장 아카데미에 입학할 때의 윤채린도 쉽게 압도할 수 있는……

'그러고 보니 중간에 검주에게 쫓기다가 상처를 크게 입었었나.'

나는 혀를 찼다. 아무래도 숨길 때가 아닌가 보다. 나는 애쉬에게 발차기를 날리고 크게 뒤로 물러섰다.

슬쩍 보니 은수아가 칠색을 휘두르며 임나연과 한종우가 은수아를 보조하고 있었다. 그러나 칠색은 강한 만큼 마나 소모가 격렬하다. 윤채린은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멸겁륜을 써서인가. 아무래도 애쉬를 빠르게 처리하고 합류해야겠다.

"한종우!"

"왜! 불러!"

한종우가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잠깐만 시간 좀 벌어줘!"

"뭐?!"

경악하는 한종우를 내버려 두고 거리를 벌렸다. 한종우가 갑옷을 착용하며 애쉬에게 돌진했다. 윤채린이 창백해진 안색으로 광견에게 맞섰다.

"뭐야, 도망칠 준비를 하는 거야. 그런데 어쩌나. 결계 때문에 도망칠 수도 없는데."

"뭐래."

애쉬의 말에 적당히 비웃어주며 고유 특성을 발동했다. 바닥까지 떨어졌던 마나가 급격하게 차올랐다. 고유 특성, 유아독존의 힘이었다. 전투 중, 온갖 상태 이상을 회복하며 체력과 마나가 다시 차오르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한 번밖에 쓸 수 없지만.'

그리고.

가면을 썼다.

창술사의 가면. 검술가의 가면. 무예가의 가면. 감각의 가면. 이때를 위해 미리 만들어 둔, 스탯을 올려주는 온갖 가면을 가면 위에 덧쓴다. 이지아와 임나연의 관계도를 높이며, 얻은 가면들 역시 착용한다.

"후우."

머리가 지끈거렸다. 귓가에 노이즈가 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십수 장의 가면을 쓴 페널티치곤 약했다. 예상대로 유아독존의 능력이 가면의 페널티를 커버해주었다.

'상태창.'

이름 : 이시우

근력 : 18(15+3)

민첩 : 20(15+5)

체력 : 15

마력 : 20(15+5)

고유 능력 : 유아독존

특성 : 천의 가면(S), 지식열람(S), 천수(S), 음양체(S­)

감각이 극도로 곤두섰다. 근력이 넘쳐흘렀다. 마력이 방금 보다 두 배 가까이 상승했다. 스탯은 10단위로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기 때문이다.

"무슨!"

한순간 두 배 가까이 부풀어 오른 마력에 경악해하는 애쉬를 보며 천수를 활용했다. 신체 능력이 너무 급격하게 올라 잠시 정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약, 0.5초. 직후 애쉬에게 쇄도했다.

주변의 풍경이 한순간 엿가락처럼 늘어지며 애쉬의 얼굴이 보였다. 검을 휘둘렀다. 급격하게 상승한 마력이 보조했다. 내 눈에서도 희끄무리하게 보일 만큼 검이 휘둘러지며 살이 갈라지는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렸다.

일그러진 애쉬의 표정이 보였다. 그의 한쪽 팔이 날아갔다. 동시에 그의 목을 노리며 한종우가 대검을 휘둘렀다. 슬쩍 보니 피부가 파랗게 변했다. 독에 중독되었다. 그 탓인지 목을 노리던 대검이 어깻죽지를 찔렀다.

"비켜!"

내 말에 한종우가 옆으로 크게 굴렀다. 마력을 있는 대로 때려 넣고 검을 휘둘렀다. 족히 두 배는 커진 보랏빛의 뇌광이 번쩍였다. 뇌광이 크기에 걸맞은 열을 동반하며 터지듯 폭발했다.

애쉬의 목이 허공에 떠올랐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본듯한 표정. 나는 한숨을 쉬었다. 뇌광을 너무 키운 탓에 검이 반쯤 타버렸다. 고개를 돌렸다.

광견과 윤채린과의 싸움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안 좋은 쪽으로. 광견은 머리를 제외하고는 얇은 검에 난자당한 상처를 지니고 있었다. 윤채린이 새롭게 각성한 천마데스빔…이 아니라, 천마광살에 당한 흔적이었다.

윤채린은 눈을 찡그리고 있었고 은수아랑 임나연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아까와 같은 기세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슬쩍 천장을 바라보았다. 천장 부분에 한 장소가 일그러져 있었다.

'왔나.'

만일을 대비해 들어둔 보험이었다. 가면은 벗겨진 지 오래. 스텟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다르게 말하자면 천수를 제대로 쓸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반쪽짜리 검 대신 한종우의 대검을 집었다.

"하! 날파리가 죽을 장소를 찾고 나에게 덤비는구나!"

잔여 마나의 절반을 검에 때려 박았다. 나머지는 다리에. 광견에게 달려들었다.

아까보다 현저하게 느린 속도에 비릿한 표정을 지었다. 불길한 검은색 기에 물든 손이 나에게 뻗어졌다. 그러나 기색이 옅었다. 광견 역시 지쳤기 때문이다.

검을 휘두르자 비웃는 표정이 더 짙어졌다.

"어?"

손과 대검이 부딪치는 순간.

대검이 미끄러지듯 광견의 팔을 바깥으로 튕겨내며.

콰득!

그대로 목을 베어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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