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 마인(1)
* * *
"출력이 달라진다니요?"
"음."
임나연의 물음에 최유나가 잠시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체질에 의한 변화는 능력치를 보다 효율적으로 받아들입니다. 능력치 자체에는 변화는 없지만, 한순간에 강한 힘을 낸다던가, 유지력이 는다든가 하는 식이지요. 그리고 몇 가지 체질에는 특수한 힘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최유나가 나를 슬쩍 바라보았다. 음양체의 보랏빛의 마나를 일컬음이라.
체질을 얻음으로써 출력이 느는 것도 느는 것이지만 대부분의 유저는 특수 능력을 찾는 데 집중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윤채린의 천마지체나 윤승하의 정령체. 주인공 보정을 받은 덕분인지 온갖 사기적인 효과가 덕지덕지 발라져 있었지.
"뭐, 이렇게 설명해봤자, 한 번 체감해보는 것이 더 좋겠네요."
최유나가 임나연에게 오늘 할 루틴을 가르쳐주고 나를 측정실이라고 적힌 곳으로 이끌었다.
"운동을 하기 전에 몇 가지 테스트를 해볼게요."
그녀가 그렇게 말을 하며 나에게 여러 가지를 시켰다. 대부분 기계가 알아서 검사하며 나는 최유나가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정말 대단합니다."
그녀가 나지막이 감탄하며 말했다.
"육체의 성능이 월등히 뛰어나 졌습니다. 근육의 탄성이나 유연성은 전과 비교하기 미안해질 정도로 뛰어나 졌고, 감각도 훨씬 날카로워졌군요."
노트에다가 무언가를 쓱쓱 쓰며 말했다.
"혹시 마나 연공도 해보셨나요?"
"아뇨, 아직."
"한 번 나중에 해보십시오. 아마 몸의 마나 감응도가 올라서 마나를 훨씬 더 잘 받아먹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기계를 몇 번 조작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적인 훈련으로 육체를 단련하는 건 어렵겠군요. 중력실에서 단련해야 할 것 같습니다."
최유나에게 이끌려 중력실로 향했다.
"실전을 해보죠. 우선 뛰어볼까요?"
"몇 분 정도요?"
"지칠 때까지요."
최유나가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말했다. 내가 뛰기 시작하자 최유나가 몇 가지 장치를 누르더니 몸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최유나가 시키는 데로 운동을 시작했다.
중력 훈련장에서 몸에 부하를 걸고 운동을 하는 식이었다.
평소에 하던 운동이라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중력이 걸리니까 몇 배는 더 힘들었다.
"더 빨리 뛰세요! 있는 힘껏!"
그녀의 말에 전력을 다해 뛰었다.
"상체를 바르게 펴세요!"
"헉, 하윽. 네에!"
그녀가 중앙에서 달리는 나를 보며 외쳤다. 최유나의 말에 따르며 전력으로 달렸다. 그렇게 10분쯤 달렸을까. 다리가 후들거렸다. 한계까지 쥐어짜인 느낌. 최유나가 그만둬도 좋다는 신호를 보내자마자 나는 뒤로 엎어졌다.
"기계로 미리 측정해보았지만, 측정 결과보다 더 굉장하군요. 아마 육체 자체가 마나를 순환하는 구조를 가지게 되어 회복력이나 체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것 같습니다."
더 빡빡하게 굴려도 되겠군요. 라고 들리는 것은 착각일까.
하지만 회복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는 말은 맞는 것 같다.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힘들었던 몸이 어느새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
"벌써, 몸이 안정되려 하시는군요. 아주 좋군요."
그녀가 눈을 빛내며 후후 웃었다. 웃음이 불길했다. 마치 최고의 재료를 본 장인 같은 표정이었다.
나는 슬쩍 눈을 돌렸다. 그러나 중력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애초에 그녀는 나를 도와주러 온 것이다. 나를 해치려고 온 것이 아니다.
"우선 이것을 해보시겠습니까?"
"……네."
최유나는 그 후에도 나를 악랄하게 굴렸다. 힘이 다할 때까지 기마자세를 유지한다던가, 윗몸 일으키기를 하는데 몸을 일으키거나 내릴 때마다 이상하게 꼬아서 체력을 빠지게 하였다. 본래의 몸이라면 수백 번을 해도 괜찮겠지만 중력의 작용 때문에 죽을 만큼 힘들었다.
***
다음 날.
슬쩍 움직여보니 근육통은 없었다. 최유나의 말이 떠올랐다. 육체의 회복력이 뛰어나서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근육통도 없을 거라고.
근육통이 생기면 마나 연공으로 보내려고 했는데, 이 정도면 육체를 단련해도 되겠다.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밖을 나섰다. 때는 새벽 5시 30분. 운동장으로 나오니 여러 학생이 스트레칭을 하거나 운동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애들의 시선을 피해 구석으로 향했다. 애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환골탈태로 잘 생겨진 탓에 무엇을 하던 여자애들의 시선을 끌기 때문이다. 그에 따른 남자들의 질투는 덤이었다.
나는 구석에 박혀 스트레칭을 하였다. 팔다리가 쭉쭉 뻗었다. 스트레칭을 함에 따라 몸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소와는 다르게 몸이 유연하고, 생각대로 움직여줬다.
어제 최유나에게 받은 팔찌와 발찌를 찼다. 각각 무게가 30kg에다가 몸에 부하를 주는 마법이 걸린 팔찌와 발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육체가 진화에 가깝게 성장한 탓에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 정도는 해야 운동이 좀 될 것 같았다.
나는 그것을 찼다. 한없이 가벼운 육체에 무게감이 느껴졌다. 달리기를 시작했다. 몸이 앞으로 쭉쭉 나아갔다. 어제 아침에 달렸을 때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감탄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내 옆에 다가왔다.
"하루 만에 엄청나게 달라졌는데."
백발을 뒤로 질끈 묶은 은수아가 옆에서 가볍게 뛰고 있었다. 상아탑의 탑주가 될 재목을 가진 마법사라지만 기본적인 무투도 배운 녀석이라 체력 역시 어지간한 학생의 육체에 근접해서인지 숨이 흐트러지지 않은 채 달리고 있었다.
"어. 운 좋게 능력을 각성했거든."
"역시 너라면 해낼 줄 알았어."
이 정도는 해줘야지. 은수아가 혼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나를 언제 봤다고 이러는 거지.
"능력을 각성할 때, 그 구슬들을 쓴 거야?"
"응, 거기에 교장 선생님이 주신 반지도."
내 말에 은수아가 내 손을 잠깐 스쳤다. 그녀는 내게 어떤 걸 물어보는 대신 고개를 돌려서 무어라 중얼거렸다.
"노린 건가. 역시…귀자."
끝의 단어가 잘 안 들렸다. 하지만 은수아 특유의 망상증이 심하게 도진 게 틀림없었다. 뭐라 말하면 오해를 살 수 있었기에 나는 입을 꾹 다물고 달리기 시작했다. 사실 그녀의 망상은 나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나중에 진실을 알게 된 그녀가 어떻게 행동할지는 또 모르겠지만.
나는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지웠다. 훈련 중에 상념은 사치였다. 10분 즈음 전력으로 달리자 지치기 시작했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호흡을 진정시켰다. 옆을 슬쩍 보니 은 수 아는 처음과 같은 표정으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있었다.
빛바랜 백발이 찰랑거렸다. 어둠 속에서 빛날 것 같은 금빛의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강해졌으면, 나도 더 미안해할 필요는 없겠네. 자."
"……?"
그녀가 나에게 하얀색 봉투를 내밀었다. 나는 봉투 안을 펼쳐 안을 바라보았다. 딱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하얀색의 종이가 있었다. 온갖 마법 처리가 되어있는 것인지 마나가 느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남다윤 님의 사인을 받는데 일반 종이는 아닌 것 같아서 말이야. 그건, 남다윤님에게 실례지. 아, 그리고 사인을 받을 때 은수아에게라고 부탁할 수 있을까."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머리카락을 빙글빙글 돌렸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아니면 남다윤의 사인이 이렇게까지 해야 얻을 수 있는 건가?
나는 떨떠름해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교실 문을 열었다. 그러자 온갖 시선들이 꽂혔다. 오묘한 눈빛들이었다. 강렬한 눈빛도 있었다. 몽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학생도 있었다.
와, 미친. 외모 물오른 것 봐. 미쳤어, 미쳤어. 얼굴만 봐도 진짜 반백 년은 행복하겠다.
어제 돈 소문이 진짜였네. 진짜 환골탈태를 했어?
고유 능력이 무슨 신체와 관련되었다던데. 이제 진짜 학생 중에서는 대인전은 이시우가 최강이 되는 거 아냐?
그래도 윤 씨 애들이 있잖아. 은수아도 있고.
게넨 학생 수준이 아니잖아...
여기저기 귓가에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체 능력이 너무 좋아진 반동이었다. 듣고 싶지 않은 소리가 귓가에 모두 들렸다.
"시우야!"
미성이 들리자 고개를 돌렸다. 갈색의 머리카락을 살랑거리며 이지아가 나에게 손을 듣고 수줍게 인사하다가 멈칫했다.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임나연과 같은 상황에 쓴 웃음을 지으며 마주 인사했다.
"안녕, 좋은 아침이네."
"어, 어? 어, 응! 조, 좋은 아침이네."
이지아의 얼굴이 홍시처럼 익었다. 홍조 띤 얼굴로 나를 보며 말을 더듬었다. 적당히 인사말을 건네고 자리에 앉았다. 임나연은 벌써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를 보더니 헤실헤실 웃으며 인사했다.
"아, 아, 안녕. 시우야."
흑색의 단발머리가 인상적인 여린 소녀가 인사했다. 누구였지. 잠깐 머리를 굴렸다. 게임에 등장인물은 아니었다. 반에 있는 학생 중 한 명. 슬쩍 지식열람으로 보니 별 특성이 없는 학생이었다.
"응, 안녕."
"이, 이거 만들어 봤는데 너무 많이 만들어서. 한번 먹어볼래?"
푸른색 리본에 투명한 포장지로 감싸진 쿠키를 건네주었다. 내가 살짝 웃으며 받자 꺅꺅거리며 일행에게 돌아갔다.
뚱한 표정의 이지아와 임나연이 나를 바라보았다.
리본을 풀어 쿠키를 한입 먹었다. 적당히 단 게 내 입맛에 맞았다. 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임나연과 이지아에게 각각 쿠키를 한입씩 물어 주었다.
"자, 아."
내가 쿠키를 주자 얌전히 입을 벌리며 받아먹었다. 냠냠거리면서.
그때, 드륵.하고 교실 앞문이 열렸다. 보랏빛의 로브에 보랏빛 머리카락. 보랏빛의 눈동자를 가진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색의 마녀, 송라희였다. 오늘은 강한자 교수의 수업인데? 의아해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애들도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송라희가 교탁 위로 올라가며 말했다.
"오늘 수업은 원래 맡기로 하신 강한자 교수님이 급한 용무가 생겨서 제가 맡기로 했습니다."
송라희에 말에 남자들이 작게 환호했다.
"그리고 이제 곧 시험 기간입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필기는 히어로 아카데미 내에서 치지만, 실기를 치는 삼일은 수업 참관이 가능합니다."
이어지는 송라희에 말에 잠시 적막이 깔렸다.
히어로 아카데미의 실기 시험을 보는 날은 히어로 아카데미의 정문이 활짝 열린다. 가족들은 물론 수많은 관계자가 히어로 아카데미에 들어온다.
싹이 있어 보이는 영웅 지망생들을 조금이라도 확보하기 위해서 수많은 스카우터들이 활발하게 움직인다. 각 나라의 유망한 기업이나 길드 등이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때.
히어로 아카데미에서 실기는 두 가지로 나뉜다.
학생들이 서로 지목하고 진검승부를 펼치는 '결투'.
교수들이 학생들을 반 학기 동안 평가하고 학생들에게 가장 불리한 몬스터를 소환하여 싸우게 하는 '괴수 사냥'.
1학년들 중에서 성적이 좋은 상위권의 학생들 같은 경우에는 '정예'등급의 몬스터가 나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거기다가 지금 1학년은 이레귤러들 투성이다.
교수들과 싸워도 이기는 게 이상하지 않은 용사 두 명. 그리고 출력 하나는 그들에게 뒤지지 않는 은수아.
이지아는 아직 성장 기간이지만, 그녀는 무서울 정도로 성장해가고 있다. 아마 반년이 더 지난다면 저들과 싸워볼 만하지 않을까.
김하린은 힘숨찐 놀이를 즐기고 있으니, 뭐…….
"따라서 '검은 왕의 계시'는 한번 발을 들이면 나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만큼 발현이 어렵고, 발현하기 전, 마법의 전조가 너무 요란하기에……."
나는 고개를 들어 송라희를 바라보았다. 검은 왕의 계시.
한 번 펼치는 데에 막대한 제물이 들어가며, 발현 전에 전조가 너무 요란하기에 발동하기 힘든 마법이다.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펼쳐진다면 어지간한 상격의 영웅이라도 그곳에 갇혀 죽는다고 알려진 결계마법.
그리고 중간고사가 끝나고, 이 학교에서 펼쳐질 마법이기도 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