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 던전 실습(2)
* * *
"전방에 여섯 마리!"
제이미가 외쳤다. 전방에서 암석 골렘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내가 두 채를 맡을게."
윤승하가 차분히 말했다.
"그럼 제가 한 채를 맡을게요."
"나와 제이크가 두 채를 맡지."
아야네가 긴장한 표정으로 말하고 김창섭이 거만한 투로 답하며 방패를 들어 올렸다. 제이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재빨리 준비 자세를 취했다.
"내가 한 채를 맡으면 되겠다."
"괜찮아요?"
내 말에 아야네가 물었다. 나는 괜찮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암석 골렘이 우리의 전방 10m까지 왔을 때 즈음 윤승하가 마법을 펼쳤다.
[그래비티 체인]
윤승하의 손에서 보랏빛의 체인이 넘실거렸다. 윤승하가 그것을 잡고 휘두르자 차르르륵, 거리며 암석 골렘 두 채를 묶었다. 상대의 무게에 따라 구속력을 강화하는 그래비티 체인. 그것에 묶인 암석 골렘은 당분간 움직일 수 없겠지.
"와."
윤승하의 마법에 아야네가 나지막이 감탄하였다. 나는 감탄하는 대신 내 쪽으로 오는 암석 골렘을 노려보았다.
축이 되는 발을 이용하여 관성으로 체중까지 실어 일 점을 타격한다. 이것이 발경??. 그리고 그 끝에 기를 불어넣어, 상대의 내부를 진탕 시킨다. 이것이 침투경???.
이번에는 무기술보다 기를 다루는 능력이 중요했다. 그렇기에 미리 만들어 둔, 마나 감응력을 올려주는 가면을 썼다.
"흡."
머릿속으로 다시 한번 상기한다. 가볍게 호흡을 하며 신체의 긴장을 풀었다. 암석 골렘을 응시하며, 언제든 박차 나갈 수 있게 발가락 끝에 힘을 주었다.
꾸어어.
느릿하게 암석 골렘이 주먹을 휘둘렀다.
발에 힘을 주어 다리와 몸을 가속했다. 피하지 않고 안쪽으로 파고든다. 그리고 힘껏, 창을 내질렀다.
텅.
"읍!"
손이 찢어질 듯이 아파왔다. 첫 시도는 실패했다. 나는 낮게 신음을 내뱉으며 뒤로 물러났다.
기를 뿜어내는 타이밍이 살짝 엇나갔다. 좀 더 빠르게.
"창끝이 암석 골렘에게 도달했을 때, 폭발하듯이 기를 넓은 면적으로 뿜어내는 것이 핵심이야. 제대로 된 개념을 알려면 훨씬 더 복잡하지만, 암석 골렘은 그 정도면 충분해. 타이밍이 중요해. 늦어도 빨라도 안돼."
뚜렷한 미성이 귓가에 들렸다. 윤승하가 나를 보며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거리가 제법 있는데도 귓가에 속삭이듯이 말하는듯하였다. 아마 그의 특성을 이용한 것이겠지.
'기를 넓은 면적으로 뿜어내는 것.'
상기한다. 게임을 하면서 본 적이 있다. 윤채린이 내뱉었나? 나는 거기까지 하고 암석 골렘을 응시했다. 전투 중에 잡생각은 사치였다.
마나를 머금은 창을 다시 한번 내지른다. 창이 상대에게 도달했을 때, 기를 뿜어내는 것.
텅.
창끝이 암석 골렘에게 도달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빠직.
그와 동시에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귓가에 조그맣게 들렸다. 찢어질 듯 아픈 손보다 암석 골렘을 바라보았다. 암석 골렘이 미동하지 않았다. 마석이 파괴된 듯, 힘없이 쓰러졌다. 암석이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암석 골렘이 쓰러짐을 보니, 안도감과 동시에 탈력감이 들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버티려다가, 이내 적이 없단 것을 깨달았다. 이미 정리했단 거겠지. 나는 그대로 풀썩 주저앉았다.
"와, 대단한데. 작은 개념 하나를 가르쳐줬는데, 바로 실행하다니."
짝짝.
윤승하가 나를 보며 감탄하듯이 말했다.
"별거 아냐. 가르쳐 준 조언이 좋아서 그랬지."
"그것보다 훨씬 더 쉽게 풀어줘도 못하는 애들이 수두룩한데."
윤승하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다가 윤승하가 잠깐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근데 침투경 정도면 시우, 네가 쓰는 패링하고 난이도가 비슷한데 왜 아직도……아, 미안. 혹시 김하린 같은 케이스야?"
윤승하가 의아해하듯 말하다가 끝에서 목소리를 확 낮추며 말했다. 미안하다는 어조. 어떤 목표를 위해 힘을 숨기고 찐따 노릇을 하냐는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실제로 침투경보단 육체의 스펙을 올리는 것에 집중했었다.
침투경. 겉에서 내부에 기를 흘려, 방어구를 부수거나 내상을 입히는 것. 말은 좋아 보이지만, 결국 개념을 자르는 검기??를 익히면 쓰지 않게 되는 기술이다.
힘겹게 상대 내부에 기를 흘린다고 해도, 상대가 바보도 아니고 순순히 맞아줄 리가 없다. 영웅이나 마인, 빌런쯤 되면 다들 맞아도 카운터를 칠 수 있게끔, 방비 정도는 해놓기도 한다.
"괜찮아?"
숨이 차서 호흡을 고르고 있더니 윤승하가 나에게 물었다.. 안 괜찮았지만,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상태를 슬쩍 보더니 윤승하가 팀원들에게 제의했다.
"잠깐 쉬고 갈까?"
"찬성. 다들 전투를 겪느라 힘들었으니, 잠깐 쉬어도 되지 않을까?"
윤승하의 의견에 제이미가 찬성했다. 아야네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5분 동안 정비를 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나는 휴식의 가면을 바꿔썼다.
"이야, 다들 대단한데. 이 정도 속도면 우리 1등도 문제 없는 거 아니야?"
제이미가 심심했는지 활발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쓰게 웃었다. 글쎄 5등 안에 들면 다행이지 않을까.
1등은 이견 없이 윤승하의 누나인 윤채린. 그녀의 무력은 본심을 낸 김하린하고 은수아 그리고 적어도 두 달은 마도에 파고든 이지아가 힘을 합쳐야 상대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녀의 무력은 이미 생도 수준이 아니라 교수급으로 쳐야 하는 수준이다.
'윤승하도 만만치 않지만.'
그러나 윤승하는 자신의 힘을 개방하는 것에 꺼려했다.
이렇게 되면 2등은 은수아. 그녀의 이능 칠색은, 아니 정확히는 그녀의 싸움법이 대인전에 적합하지 않으나, 몬스터나 마수를 상대할 때는 은수아를 당해낼 자는 별로 없을 거다.
'이능이 너무 뛰어난 부작용이지.'
은수아의 싸움법은 안타깝게도 너무 단조롭다. 게임 속에서도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초반 여포로 활약하지만, 중 후반부에는 조금 안습해진다. 같은 이능자를 만날 때는 잘 싸우지만 싸우는 법을 아는 무인을 만나면 고전을 면치 못한다.
"후. 미안 나 때문에 시간 좀 지체했지?"
"아뇨. 저도 좀 지쳐있었으니까요."
내 말에 아야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이크도 나도 힘들었으니까 괜찮다고 말했다. 김창섭이 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언가 맘에 안 든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쓰게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휴식의 가면 효과로 체력은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계속 쓰고 다녀야지.
"가볼까?"
"…응. 가자."
윤승하가 무어라 말하려다가 멈추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후 우리는 계속해서 산을 올라탔다. 30분 즈음 올라탔을까. 슬슬 정상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정상 쪽에 강한자 교수가 말한 깃발같은 것이 있었다.
"……."
그러나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다.
묵광을 띄는 거대한 암석이 크게 요동쳤다. 저 멀리서 암석으로 이루어진 대검을 들고 다니는 골렘이 한 채 있었다. 암석 파수병. 일반 몬스터보다 더 까다로운 '정예'등급의 몬스터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암석 파수병을 호위하는 듯, 11채의 암석 골렘이 있었다.
"저, 저게 뭐야."
김창섭의 목소리가 떨렸다. 암석 골렘 11채. 숫자에서부터 밀린다. 거기에다가 상대 쪽에서는 정예등급으로 분류되는 몬스터가 한 채 더 존재했다. 일반적으로 바로 아래, 일반 등급 분류의 몬스터들을 홀로 10마리 대적할 수 있는 몬스터.
김창섭과 제이크, 제이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야네의 표정 역시 눈에 띄게 굳었다. 여기서 유일하게 여유로운 것은 윤승하와 나 정도였다. 윤승하는 자신의 힘에 자신이 있어서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었고, 나는 그의 힘을 알기에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이거……. 생도 수준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김창섭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김창섭의 말은 틀렸다. 이 정도는 나와 이지아를 제외한 장학생들은 혼자서도 잡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여기에서 1학년 멤버를 더 끼자면 한종우 정도?
'죽기 직전까지 가겠지만.'
황금세대라 불리는 1학년만 못하지만 2학년에도 1명 즈음 있고, 3학년 중에도 3명은 있다.
나는 슬쩍 윤승하를 바라보았다. 윤승하가 여유롭게 미소지었다.
공기가 떨리고 있다.
"좀 골치 아프게 됐네."
"좀 골치 아픈 정도가 아니잖아!"
김창섭이 낮게 소리쳤다.
윤승하는 김창섭에게 대꾸하지 않고, 나른하게 걸어갔다.
바람이 흔들렸다. 공기가 조금 무거워졌다. 온도가 조금씩 올라갔다. 조금 습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딛고 있는 땅이 좀 더 단단해 진듯하였고, 그림자가 길쭉해지며, 빛이 좀 더 밝아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고개를 위로 올렸다. 청명한 하늘이 조금 더 높게 보였다.
윤승하의 특성이 발현되는 '전조'였다.
"왜? 숫자도 우리가 '위'고, 저기 보스보다 내가 더 센 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윤승하의 말에 김창섭이 말을 하다가 멈칫했다.
바람이 뭉쳐서 3m 크기의 매가 모습을 드러냈다. 남색 빛의 털을 가진 고양이가 윤승하의 어깨 위의 올라타 야옹, 하고 울었다. 불꽃으로 이루어진 5m 크기의 도마뱀이 혀를 날름거렸다. 푸른빛을 띠는 거북이와 하늘색의 여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끝이 아니었다. 검은색의 형체로 이루어진 뱀이 있었다. 빛으로 만들어진듯한 구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푸른색의 번개를 뿜는 양의 모습이 있었다. 땅에서 솟은 두더지가 있었다. 금속으로 이루어진 지렁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보랏빛의 이족보행을 하는 개구리가 있었다. 무색의 드래곤과 꽃의 요정과 연둣빛의 요정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광경을 다들 멍하니 보고 있었다.
윤승하의 특성.
세계에게 사랑받아 모든 것의 재능이 시간이 가면 갈수록 증가하는 것이다. 이것 하나로도 그의 특성은 사기급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이것들은 전부 부가적인 힘이었다.
세계에게 사랑을 받는다.
그것은 세계를 구성하는 정령들에게 사랑받는다는 말과 동의어이다.
그리고 윤승하는.
화火, 수?, 풍風, 지?, 뢰雪, 빙, 금, 독?, 무無, 목?, 중?, 화花, 암?, 광光.
총 14가지의 속성의 정령들을 사역하였다.
요정족들이 일생의 동반자를 택하고, 그들 중 천재라는 족속들은 최대 네 채의 정령들을 사역한다.
윤승하는 고작 17세의 나이에 단순하게 숫자만으로 그들의 세배 이상가는 숫자의 정령들을 사역했다. 고작 17세의 나이에 말이다.
그렇기에 그는 용사다.
남들과 비교하자면 압도적으로 다른 무언가.
훗날, 성장을 끝마친 그가 홀로 나라와 싸우자고 마음을 먹는다면, 그 나라를 상대로 승리를 점치는 존재. 고작 개인 주제에 집단을 이길 수 있는 불합리함의 표본.
"자, 그럼 모두들."
윤승하가 장난스레 웃으며 손을 들었다. 눈에 보일 정도의 밀도를 가진 마력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쓸어버려."
형형색색의 빛이 부풀어 올랐다. 성난 자연이 난동을 피우는 듯한 과정이었다.
나무가 성난 듯이 채찍질을 하였고, 불꽃이 터졌다. 물이 압축되어 채찍으로 변하고, 번개의 일 점으로 뭉쳐져 쏘아진다. 바람이 날카로운 칼날을 형성하여 덮치고, 바위더미들과 얼음덩이들이 위에서 쏟아지며 아래에서 강철의 검들이 골렘들을 찢어발겼다. 꽃이 씨앗을 뿌려, 피어나고, 적을 묶으며 빛이 쏘아져 적을 꿰뚫고, 어둠이 적들을 가라앉힌다. 무색의 무언가가 적들을 짓눌렀다.
그 광경을 우리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