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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나에게 최면어플을 사용한다-30화 (30/298)

〈 30화 〉 던전 실습(1)

* * *

히어로 아카데미는 섬 위에 지어져 있다. 섬이라고 하기엔 어폐가 있다. 왜냐하면 일찍이 멸망한 세계에서 요정왕이 요정족들과 세계수가 살 토지를 들고 이계의 일부를 가져온 것이기 때문이다.

산악지대부터 시작해서 동굴 던전, 구릉지대가 있고, 화산지대가 있으며, 냉대기후를 지닌 남극의 일부를 재현해 내었고, 정글마저도 존재한다.

히어로 아카데미에는 현재 확인된 던전만 19군데가 있다. 실습용을 제외한 네 군데는 아카데미의 환경에 의해 자연적으로 발생하였는데, 이 네 군데의 던전은 너무 위험해서 교수들 정도나 이용할 수 있다.

'그리고 확인되지 않은 던전이 한 군데.'

사실 그건 던전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했다. 수련용 던전이라고 뭉뚱그려 놓았을 뿐이니까.

유저들 사이에서도 수련장이라고 불리고 있다.

안법??과 직감??의 스킬을 얻을 수 있게 도와주는 던전이며, 그 외에도 소소하게 스텟을 올려준다거나 특성에 따라 몇 가지 특성을 올려다 주기도 한다.

몇 가지 꼼수를 이용한다면 지금 내 스텟으로도 안법??과 직감, 관련 특성과 스텟을 올릴 수 있겠지만, 그 꼼수가 통할 것 같지는 않았다. 꼼수는 게임 내에서만 통했고, 여기는 현실이니까.

"오늘은 예정했던 대로, 던전 실습을 시작하겠다. "

집합 장소에는 우리 반 말고도 학생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숫자는 약 200여 명. 각 반당 100여 명 정도 있으니까, 지금 집합 장소로 향하는 우리반까지 합치면 여기에만 총 3반이 모여있던 셈이었다.

"이 던전에는 암석 골렘들이 서식한다. 우리가 알려줄 건 이게 전부다. 나머지는 다들 알아서 하도록. 던전 끝에 존재하는 우리가 정한 표식을 얻으면 그것으로 수업이 끝난다. 팀 구성을 발표하겠다. 각 팀당 6인으로 구성했다."

보통 플레이어블 캐릭터를 이용하면 팀 구성은 전위 3명 궁수나 마법사 같은 후위 1명, 리치 가긴 무기나 재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중위 2명이 구성된다.

"팀 배정은 종합 성적으로 고려해서 최대한 공정하게 분배했다. 높은 순위의 학생들은 낮은 순위의 학생들과 함께할 것이다."

우웅.

핸드폰이 울렸다. 핸드폰을 보니 문자로 단체 전송했다.

나는 내 팀을 확인하였다.

[12팀]

[윤승하/아야네/제이미/이시우/김창섭/제이크]

윤승하.

윤승하랑 팀이었다. 내가 이 게임을 좋아했으면서도, 증오하게 된 이유.

윤승하쪽을 바라보니 그도 나를 바라보았다. 나른한 표정. 목덜미까지 내려오는 은발. 푸르게 빛나는 사파이어 같은 청색의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안녕."

"……응, 안녕."

나른한 표정으로 슬쩍 미소지으며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한다는 윤승하의 표현이었다. 그는 어지간한 학생들로는 자기 눈에 차지 않아 적당히 받아넘기지만, 마음에 드는 상대가 있으면 이런 식으로 표현하고는 하였다.

"잘 부탁해. 조원이 되어서 다행이네."

"응. 나도 든든하네. 네가 같은 조라니까."

내 말에 그가 기분 좋다는 듯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드럽게 잘 생겼네.

"안녕하십니까, 제이크입니다."

뒤에서 어색한 한국어가 들려왔다.

금발에 푸른 눈을 한 소년이 보였다. 소년 말고 옆에는 동글동글한 인상을 가진 소녀도 보였다.

"안녕하세요."

소녀가 발랄하게 인사했다. 잠시 그녀를 보다가 그녀의 이름이 떠올랐다. 아야네. 검을 잘 다루는 일본의 희망이라고 불리는 소녀. 중반부까지 나름대로 비중이 있어서 기억할 수 있었다.

"하이하이."

활을 등에 멘, 붉은 머리의 주근깨 가득한 소녀와 라운드 쉴드와 할버드로 무장한 나보다 키가 큰 남성도 왔었다. 근육이 어마어마하게 펌핑된 게 딱 봐도 나 전위야, 라는 듯 말하는 것 같았다.

"안녕. 난 김창섭이야."

"나는 제이미. 잘 부탁해."

여섯 명이 모였다. 윤승하가 슬쩍 한 명 한 명씩 훑어보고는 입을 열었다.

"그럼 각자 자기소개부터 할까."

"네! 제 이름은 제이크입니다. 특기는 보시다시피 대검을 다룹니다."

어눌한 한국어로 제이크가 말했다. 제이크가 입을 열자 김창섭도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김창섭이다. 보다시피 방패와 할버드를 쓰지. 전위는 나에게 맡기도록."

"저는 아야네라고해요. 특기는 요거."

아야네가 검자루를 툭툭 두들기며 살짝 웃었다.

"이야, 우리 팀은 전위가 많아서 든든하네. 나는 제이미. 포지션은 궁수지만 사실 활은 잘 못 쏴. 하지만 수색이나 색적능력은뛰어나니 맡겨만 줘."

"나는 윤승하야. 잘 부탁해. 후위에서 중열까지 할 수 있는 것은 대부분 할 수 있어."

윤승하의 나른한 말에 모두가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나는 이시우. 신체 능력은 좀 딸리지만, 대인전은 좀 하는 편이야."

"우우, 겸손한 척!"

내 소개에 제이미가 장난스럽게 야유했다. 한 차례 자기소개를 하고, 우리는 어떻게 포지션을 나눌지에 대해 말했다.

"포지션을 나누자, 가장 기본적인 대형으로."

"그럼 내가 가장 앞에 서지."

김창섭이 라운드 방패를 들며 거만하게 말했다. 그 의견에 나를 포함한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 뒤에는 대검을 다루는 제이크. 그 뒤에는 아야네가. 시우는 창을 쓸 거지?"

"응."

"그럼 시우가 바로 아야네 뒤네. 나랑 시우가 중열, 제이미가 후열. 이렇게 하자."

윤승하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후, 핸드폰으로 문자가 왔다.

"각각 스마트 폰으로 던전 입구의 위치를 전송했다. 당장 모두 출발해라."

6인 1조로 구성도니 50개의 팀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입구로 향했다. 당연하게도 실습이라지만, 빨리 끝내면 끝낼수록 가산점이 높게 붙기에 다들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윤승하가 나른하게 말했다.

"우리도 가자."

***

우리는 던전 입구에 들어왔다. 동굴에 한 발자국을 들이니 공간이 달라졌다. 여기저기에 검은색의 바위산이 보였다.

"와, 신기하네. 인공 던전이라 해서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제이미의 중얼거림에 김창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잠시 암석 골렘의 정보를 떠올렸다.

암석 골렘은 마정석을 기준으로 암석으로 만들어진 형태의 골렘이다. 당연하게도 심장 부분에 해당하는 마정석은 가장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으며, 전위들은 검보다는 둔기 같은 것으로 충격을 줘서 마정석을 깨트리는 것에 중점을 둔다.

"그럼 가볼까? 혹시 모르니까 제이미가 창섭이 바로 뒤에서 색적을 해줘."

"오케이. 기습은 걱정 마."

윤승하의 나른한 어투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바위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암석 골렘은 바위산과 동화되어 보호색을 띄기 때문에 주의하며 가야 했다.

"그러고보니 요즘 채린이가 뭐라 말 안 했어?"

"윤채린이?"

윤승하가 내게 말을 건넸다. 갑자기 불안하게 걔가 왜 나와?

"아니, 별 말 없었는데. 만난 적도 저번이 처음이었고."

"그래?"

윤승하가 살짝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윤채린이 왜?"

"언제였더라. 너랑 강한남이 붙은 뒤에 슬쩍 말한 게 기억나서."

"……뭐라고?"

"기교가 엄청나게 뛰어나서 한번 붙어보고 싶다고."

난 싫은데. 기교가 뛰어나도 윤채린과 내 스펙의 차이면 기교쯤은 의미가 없다. 패링을 하면 뭐할 텐가. 그냥 압도적인 힘으로 짓누르면 나는 아무것도 못 하는데.

"뭐야, 뭐야. 둘이 무슨 이야기를 나눠."

제이미가 히죽거리며 우리에게 말했다.

"둘이 친하신 거에요?"

아야네가 우리에게 어눌한 한국어로 물었다. 몇 마디 나눠본 게 끝이지만, 고개를 저으자니 괜히 이상해질까 봐 고개를 끄덕였다.

"뭐, 친하다면 친하지?"

윤승하의 어깨에 슬쩍 어깨동무하니 아야네가 눈을 빛내며 우리를 쳐다보았다. 얘는 남자 주제에 뭐이리 피부가 말랑말랑해. 괜히 심란해지게.

"어머머."

아야네가 얼굴을 살짝 붉히며 입을 가리고는 눈웃음을 지었다. 남자끼리 같이 있는 걸 좋아한다고 했나. 슬쩍 보니 제이미도 눈을 빛내며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와, 진짜 아름다운 남자 두 명이 이러니까 예술이네."

"그러게요. 저희 집에 남자들은 볼 때마다 걷어차고 싶은데."

"히히, 사실 여기에 들어와서 시우랑 승하를 봐서 럭키라고 생각했거든. 저렇게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운 남자는 진짜 보기 힘드니까."

"맞아요. 아, 혹시 두 분 나중에 사진 같은 거 같이 찍어도 될까요?"

아야네의 말에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줬다. 윤승하는 말없이 조용하길래 슬쩍 보니, 얼굴이 빨개졌다.

우윳빛의 피부가 빨갛게 물들었다. 어깨동무가 그렇게 싫은가. 그래도 저리 싫어할 필요는 없잖아.

나는 속으로 투덜대며 어깨를 슬쩍 놓았다.

아야네와 제미니가 아쉽다는 듯, 작게 탄식했다.

"전방에 암석 골렘 다섯 채!"

제미니가 그렇게 말하며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순간 분위기가 바뀌었다. 윤승하의 얼굴에 나른한 표정이 사라지고 전방을 주시하며, 주문을 영창 하기 시작했다.

김창섭이 굳은 얼굴을 하며 라운드 방패를 몸 중앙으로 올리며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다. 뒤에서 제이크가 대검을 늘여 뜨려 언제든 뛰쳐나갈 수 있게 준비하며, 아야네가 서늘한 표정을 지으며 검을 뽑았다.

"온다!"

암석 골렘 한 체가 김창섭을 향해 달려들었다.

쿵!

김창섭이 안정적인 자세로 암석 골렘의 돌격을 저지했다. 김창섭의 뒤에서 준비하던 제이크가 앞으로 뛰쳐나가며, 대검을 크게 휘둘렀다.

퍽!

'둔기술도 빨리 배워야겠네.'

대검으로 암석 골렘의 팔을 후려치는 제이크와 할버드의 도끼날 옆면으로 후려치는 제이크를 보며 생각했다. 내 쪽으로 다가오는 암석 골렘을 보며, 가면을 착용했다. 무언가 얼굴에 덧씌워지는 불쾌한 느낌을 느끼며, 암석 골렘을 향해 창을 휘둘렀다.

텅.

그러나 가볍게 막혔다.

베기 보다는 충격에 약한 암석 골렘인지라 나랑 아야네는 별 활약을 하지 못하겠지. 나는 창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암석 골렘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데 집중했다.

"합!"

그때였다. 아야네가 암석 골렘의 몸통을 정확히 반으로 잘랐다. 그러고 보니 아야네의 고유 특성이 단절?이었지. 무언가를 베는 것에 특화된 특성이었다.

…나만 활약을 못 하네. 나는 슬쩍 옆을 바라보았다. 제이미는 활을 쏘는 것보다 주변을 탐색해 암석 골렘이 더 있나 확인하는 것에 집중했고, 윤승하는 세 채의 암석 골렘을 홀로 상대하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불꽃과 일렁이는 바람이 머물고 있었다. 나는 잠깐 그를 의아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그의 특성은 세계의 운명. 그저 숨 쉬는 것으로도 모든 종류의 재능이 상승하는 미친 특성이었다.

그래서 플레이블 캐릭터로서의 윤승하가 상징하는 것은 만능이었다. 그는 전사이며, 마법사이기도 하고, 정령사이며, 궁수이기도 하다. 홀로 전위를 담당하며 정령이나 마법 등으로 후위를 담당하기도 하는 솔로 플레이어의 정석.

무력은 윤채린보다 낮지만, 마법과 정령으로 커버한다. 은수아의 칠색보다 파괴력은 낮으나, 그것을 제외하면 모든 것에서 그녀보다 우위를 가진다.

'그러고 보니 두 명이 쌍둥이라는 설정으로 나왔지.'

그래서 그는 게임에서보다 마법 실력이 특출났으나, 육체적으로는 특출나는 부분이 없었다. 그저 간결하게 암석 골렘의 공격을 슬쩍 회피하고, 마법을 영창 한다.

[윈드 크러쉬]

[어스 비트]

[그래비티 포스]

세 개의 마법이 연달아 터져나갔다. 진공파를 암석 골렘을 향해 터트리며, 작은 암석 결정이 수십 개 떠오르고는 암석 골렘들에게 향했다. 그리고 보랏빛으로 이루어진 중력의 구슬이 터져나갔다.

화려한 마법의 향연에 잠시 전투가 소강상태로 빠졌다. 얼빠진 표정을 짓는 제이크와 김창섭이 보였다. 조금 전 일격으로 조우한 암석 골렘이 한 체를 제외하고는 전부 말려서 파괴되었다.

"진짜 장난 아니네."

제이미의 중얼거림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그 사이에 아야네가 암석 골렘의 몸을 베었다. 마정석이 같이 베였는지 암석 골렘이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으음, 이렇게 되면 점수가 별로 좋지 않을 텐데.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다들 괜찮아?"

"네, 넵. 괜찮습니다."

"어서 가시죠."

제이크가 놀라며 말했고, 김창섭이 깍듯하게 말했다. 저 녀석 조금 전 까지만 해도 거들먹거렸었는데. 아야네도 칼을 검집에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조는 적당히 빠른 속도로 앞을 향해 나아갔다. 색적을 하면서 나아간다지만, 내 체력적 문제도 있었기 때문이다. 빨리 영약을 먹어서 능력치나 올려야겠네.

나는 그러다가 잠깐 고민했다. 정말 내가 암석 골렘에게 충격을 줄 방법이 없을까? 창으로 골렘의 내부를 효율적으로 공격할 방법이 진짜 없나?

'하나 있기는 한데.'

침투경. 발경의 일종으로 내부에 타격을 가하는 방법이다.

본래 현실에서는 없는 기술이나 마나라는 초월적인 힘에 의하여 외상보다는 내상에 집중한 공격법.

'한 번 해볼까.'

나는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암석 골렘을 바라보며 창을 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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