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 은수아(2)
* * *
"마법사를 상대할 때는 마법사가 구축한 진지에서 싸우면 안 됩니다. 마법사가 구축한 진지는 아무리 대인전에 강한 기사나 무인일지라도 마법사에게 최소 두수는 접고 가니까요."
송라희의 말에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보랏빛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하지만 영웅으로서 활동하다 보면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에서만 싸울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함정임을 앎에도 들어가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지요."
그래서 영웅이다. 빌런들이 온갖 비겁한 수를 짜와도 양지에서 정공법으로 싸우며, 사람들을 구원한다.
영웅들이 희귀하고 존대 받는 이유는 이러한 까닭이 있어서이다.
"하지만 제가 지금까지 가르쳐 준 것과 앞으로도 가르칠 마법의 이론들. 이것들에 대해 성실히 수업을 듣는다고 하면 최소한 어디 가서 위태롭지 않을 겁니다."
송라희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하긴 송라희 정도면 저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
상아탑, 흔히 말하는 마탑이라 불리는 기관에서는 매해 자신들의 주체로 색깔을 선정한다. 무지개의 칠색七色에 따라 색깔을 선정하며, 40세 이하의 인물 중에서 고르고 골라, 그들이 자신 있어 하는 특기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들을 선정하여 색을 부여한다.
상아탑에서 자색의 색깔을 부여받은, 자색의 마녀.
마법을 가장 잘 파훼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색깔, 자색?色.
다른 의미로는 파마??의 마법사. 마법사이면서도 상대의 마법을 파훼하는 방법을 쓰는 것이 그녀의 특기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송라희가 슬쩍 시계를 보고는 말했다. 그리고 송라희의 말이 끝나자마자 수업이 끝나는 종소리가 울렸다.
딩동댕동.
"우으, 힘들다."
송라희가 나가자마자 임나연이 옆에서 앓는 소리를 하였다. 나는 살짝 웃으며 하얀색에 붉은색 리본이 감싸진 상자 하나를 꺼냈다. 벨기에산 초콜릿. 김호동이 중반부부터 환장하게 좋아하는 초콜릿이다. 나도 좋아하는 편이라 좀 많이 사 왔다.
마나를 머금었다는 것 하나 때문에 한 개의 가격이 3,000원이 넘었다. 엄지만 한 크기 주제에 말이다.
"오, 초콜릿이야?"
"응. 하나 먹을래?"
"응, 먹을래!"
상자를 열어서 껍질 하나를 까주자 임나연이 입을 벌렸다. 나는 그것을 임나연의 입에 넣어 주었다.
오물오물.
임나연이 햄스터처럼 오물거리며 초콜릿을 먹었다 이렇게 보니 애완 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것 같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익숙한 갈색 머리의 소녀가 왔다. 이지아였다.
"시우랑 나연이 사이 좋아 보이네."
이지아가 복잡한 표정을 하며 말했다. 임나연이 오물거리며 말했다.
"응. 내가 훈련할 때 이번에 최유나 선배님이 많은 도움을 주셨거든."
"아, 그러고 보니 최유나 선배하고 친하다고 했지?"
이지아가 깨달았다는 듯이 말했다.
"에헴. 내가 최 쌤하고 좀 친하지."
임나연이 잘난 듯이 말했다.
실제로 최유나가 깍듯하게 모시면, 뭐가 되었든 그녀는 잘난 것이 맞지만.
저렇게 말하니 좀 재수가 없었다.
나는 초콜릿을 하나 까먹었다.
마나를 머금었다는 특징 때문인가. 일반 초콜릿보다는 좀 더 부드러운 단맛이 존재했다.
"그러고 보니 다들 준비는 했어?"
"준비? 무슨 준비?"
이지아의 말에 임나연이 되물었다.
"이제 곧 중간고사 시즌이 돼가잖아. 히어로 아카데미는 실기 필기 나눠서 봐서 좀 더 빨리 볼 걸."
그러고 보니 벌써 중간고사 시즌이었다. 실기는 아마 대련하고 마나 인형으로 만든 몬스터를 얼마나 잘 공략하느냐일 거다.
'대련인가.'
아마 상대는 강한남일거다. 이지아나 임나연, 한종우, 용사들은 이미 기를 개화하기 시작했다. 검기나 기갑을 쓸 수 있는 존재들이라 나랑 배정받지 않겠지.
비슷한 이유로 은수아랑 김하린 역시 마찬가지다. 김하린은 힘숨찐 놀이를 하느라 하위권에 머물고 있고, 은수아의 칠색은 출력이 너무 비범하다. 출력만 따지고 본다면 그 윤채린보다 바로 비교해도 딱히 꿀리지 않을 정도니까.
"그러고 보니 나연이는 시험 괜찮아?"
"나야 괜찮지. 시우가 내 공부를 봐주고 있는걸."
"어, 진짜?"
이지아가 놀라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
공부를 봐주고 있기는 했다. 한 번만 봐줬고, 30분 공부하고 나머지 시간은 최면 놀이 하느라 시간을 허비해서 문제지.
"그렇기는 한데. 다음부터 공부를 봐줄 때는 30분 공부하고 쉬는 건 없어."
임나연이 내 말에 울상을 지었다.
***
모든 수업이 끝난 시간. 방과 후, 나는 무명연합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의뢰비는 이 정도면 본전을 뽑을 수 있겠지.'
나는 주머니 속에 든 상자를 만지작거렸다. 상자 속에는 뇌 속성 마정석이 들어있다. 500만 원짜리인지라 다루기가 조심스러웠다.
김호동이 지닌 특성, 전뇌 정령은 뇌 속성과 정보 복합 정령인지라 마정석 같은 것을 먹이면 성장이 가능하다.
'얻어야 하는 정보는 우선 두 개인가.'
내가 얻어야 할 정보를 떠올렸다. 초반에 파악되지 않는 어떤 인물들의 위치. 한 명은 충성심이 높아 다루기 쉬운 검이었다. 다른 한 명은 반드시 추적해서 죽여야 할 빌런 중 한 명.
정보들을 정리하니 나는 어느새 부실 앞에 당도하였다.
"시우야?"
그때 소심함을 주장하는 듯한 작은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분홍빛의 소녀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김하린. 얘는 또 무슨 볼일이지?
"여기는 웬일이야?"
"호동이한테 말할 게 있어서. 너는?"
"아, 나는……."
김하린이 잠시 머뭇거렸다.
"가족이거든. 호동이랑 쌍둥이야."
김하린의 말에 나는 살짝 놀란 척 연기했다.
"진짜? 쌍둥이 둘 다 아카데미에 입학한 거야? 대단하네."
"으, 응. 뭐..."
내 칭찬에 김하린이 말을 얼버무렸다.
그때 부실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자 김호동이 나를 보곤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러다가 김하린에게 향하더니 한순간에 사색이 되었다. 살이 푸들푸들 떨리더니 안색이 하얘졌다.
"기, 김하린?"
"응, 잠깐 볼일이 있어서 왔어."
김하린이 소심하게 말하였다. 그러나 눈빛은 강렬했다. 뭐 잘못 말하면 죽여버리겠다는 듯이 눈을 내리깐 채 강렬하게 노려보았다.
그 사인에 김호동은 살을 푸들거리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을 열었다.
"어, 어어, 어서 와. 누, 누누추하지만."
말을 덜덜 떨며 말했다. 제삼자가 보더라도 김호동이 김하린을 두려워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리 준비해둔 상자를 꺼냈다.
"빈손으로 오기 뭐해서 사 왔어. 하나 먹어볼래?"
"고고고, 마워. 자, 잘 먹을게."
김호동이 상자를 받았다. 삐걱거리는 듯이 움직이며 나랑 김하린을 안내했다.
"나는 다음에 올게. 손님인 것 같으니까. 그럼 나중에 보자."
김하린이 그렇게 말하며 떠났다. 김호동이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김호동이 안내해준 의자에 앉았다. 김호동은 바로 반대편에 앉았다.
중앙에는 노트북이 하나 있었는데, 푸른색의 옷을 입은 애니 캐릭터 스티커가 붙여져 있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푸른색의 장발. 자그마한 체형. 매혹적인 분위기를 가진 여자 캐릭터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남자 캐릭터다.
'여자 공포증이니까.'
어렸을 적, 김하린에게 당해, 고자가 된 후로, 여자 공포증이 생긴 그는 여장남자가 취향이 되었다. 불쌍한 것.
"그래서 히어로 아카데미의 '그림자'까지 찾아온 이유가 뭐지?"
김호동이 한껏 거들먹거리며 물었다.
"사람 두 명을 좀 알아봐 줬으면 해서."
"두 명?"
김호동이 내 물음에 반문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응. 여자하고 남자야. 이름은 각각 김시연하고 김우진."
"김시연하고, 김우진이라."
김호동이 타자를 치며 이름을 적었다.
"하지만 알지? 사람의 뒤를 캐는 것은,
"나이는 김시연이 스물둘. 김우진이 서른셋이야."
"그 외에 특징은?"
"둘 다 헌터야. 김시연은 검을 쓰고, 김우진은 총을 사용해."
"검과 총을 사용한 다라. 다른 특징은?"
"김시연은 얼굴에 절반이 화상 자국이야."
"화상이 있으면 찾기 쉽겠네."
"김우진은 콧등에 일자 모양의 흉터가 있어. 그리고 주로 사용하는 무기는 샷건이고."
"권총은 반입하기 힘드니까."
김호동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권총은 휴대성이 편하지만, 위력이 약하다. 고블린 정도의 몬스터쯤을 죽이는 데는 문제는 없지만, 그 위부터는 잡기 힘들다. 그렇기에 휴대성이 편리하고 은밀한 권총은 정치인들이 자기 생명을 위해, 반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라이플이나 샷건 등은 헌터라면 대부분 소유할 수 있다.
"이 정도만 있어도 알기 쉽겠네."
"시간은 어느 정도 걸릴 것 같아?"
"사흘이면 충분하지."
김호동이 말했다. 그리고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만, 내 특성을 이용해야 하는 문제라, 정보료가 조금 들어."
"얼만데?"
내 말에 김호동이 살짝 머뭇거렸다. 아마 학생들이 지불하기에 힘든 돈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나는 조금 쓰게 웃었다. 조금만 소문에 귀를 기울여보면 내가 돈을 꽤 많이 번다는 것 즈음은 알 수 있을 텐데.
"이 정도면 충분할까?"
나는 주머니에서 상자를 꺼냈다. 김호동이 상자를 살짝 풀었다. 노란빛을 띠는 마정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추, 추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데?"
김호동이 머뭇거렸다. 나였다면 그냥 날름하고 먹었을 텐데.
"아무튼 부탁할게."
"응. 최대한 빨리 알아볼게."
자리에서 일어나자 김호동이 마정석을 소중하게 만지며 말했다. 처음부터 이틀 정도 걸릴 일을 사흘이라고 말했으니 저 마정석 값까지 생각하면 대충 내일이면 들어오려나.
드르륵.
그때 문이 열렸다. 하얀색 가운에 애쉬 핑크색의 머리가 인상적인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머, 다른 학생이 와 있었네."
그녀……아니, 그가 살짝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가녀린 목소리에 여리여리한 체형이지만 '남자'다. 그리고 마인 이기도 하다.
최면어플을 퍼트린 장본인이기도 하고, 동성애자이기도 하다. 그것이 껄끄러워서 나는 적당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어? 네가 그 시우니? 만나서 반갑다."
그가 나한테 악수를 청했다. 나는 웃는 척하면서 그녀가 내민 손을 잡았다. 손이 여자처럼 물컹물컹해서 기분이 나빴다.
"그럼 저는 먼저 가볼게요. 수고하세요."
"응, 잘 가렴."
***
수련을 하기 전, 세수를 하다가 잠깐 거울을 보며 얼굴을 감상했다.
참 잘생겼다. 오뚝한 코에 뚜렷한 이목구비. 피부는 새하얗고, 잡티 하나 없었다. 전생에도 나름 잘 생겼다는 말을 듣기는 했는데 그와 비교하면 배우와 일반인 이상의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떡 벌어진 어깨와 키.
키는 가장 완벽한 키인 185cm. 모델 포즈를 몇 번 취해봤는데, 오그라들지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잘 어울려서 곤란했다.
'진짜 더럽게 잘생겼네.'
거울을 보며 몇 번을 감탄하고는 적당히 주접을 몇 번 더 떨고 나는 방 안에 대충 걸터앉았다.
가면을 쓰고, 호흡을 골랐다.
"후우."
호흡하자, 단전속에 존재하는 작은 구슬이 내 호흡에 반응하며 조용히 떨기 시작했다.
뇌령?이 마치 살아있는 듯, 반응하며 혈도를 따라 이동하는 마나들을 받아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받아먹었을까.
파직.
번개가 작게 이는 소리가 들렸다. 단전에 갇힌 뇌령이 몸을 작게 분열하더니 혈도를 타기 시작했다.
파지지직.
뇌령이 작게 분열하며 혈도를 따라서 이동해서 심장으로 이동하고, 다시 단전으로 이동하고. 그렇게 이동하면서 노폐물들을 태운 다음 다시 뇌령이 마나를 달라는 듯, 이리저리 움직여 보채는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마나를 다시 호흡하여 혈도로 보내주자 그제야 얌전히 마나를 받아먹기 시작했다.
마치 자아라도 있는 듯한 모양새. 실제로 뇌령은 자아가 존재한다. 자아가 있다고 해도 말을 할 수 없고, 주인을 위협할 수는 없지만, 주인이 위험하다고 판단하면 스스로 몸을 쥐어짜네 마나를 생성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뇌령. 자체적으로 성장하며 주인의 성장을 도우며, 커지면 커질수록 뇌 속성 친화력을 올리는 말도 안 되는 심법이었다.
"후우."
가볍게 호흡을 마치며 생각했다.
'효율이 장난 아니야.'
나는 기린의 가면을 떠올려 보았다.
기린의 자아에 매몰될 수 있다는 주의. 그러나 가면을 썼을 때하고 쓰지 않았을 때의 효율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단순하게 가면을 착용했을 때와 아닐 때의 마나 성장률이 거의 20배 이상 차이가 난다.
'마나가 복사가 된다고!'
페널티는 무섭지만, 이득은 달달했다. 하지만 일정 선을 넘으면 폭주할 위험이 있으니 언제든지 가면을 벗을 준비는 해놓는다. 그래도 조금 불안하지만.
'1학기 때까지는 쓰자.'
1학기가 지나면 그때의 나는 지금과 다를 정도로 성장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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