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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나에게 최면어플을 사용한다-24화 (24/298)

〈 24화 〉 김하린(1)

* * *

언제부터 그를 좋아하게 된 걸까.

임나연은 스스로 물어보았다.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처음 그가 자신에게 말을 걸었을 때가 떠올랐다. 히어로 아카데미 시험 때, 자기 자신에게 슬쩍 했던 말. 그 말 덕분에 좀 더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재수 없는 애라고 생각했다.

첫인상은 그랬다.

얼굴 잘생기고, 머리가 좋은 재수 없는 애. 히어로 아카데미에 자기 잘난 맛에 들어온 녀석. 한종우 같은 녀석이었다. 대인 전이 약하고, 머리가 좋은.

그 인상은 다음 날에 바뀌었다.

­적당히 힘 풀어. 검에 힘이 너무 들어간다.

­마나가 정교한 것도 좋지만, 그 정도만 되도 네 검기를 부술 애는 여기에 없을걸.

아카데미의 실습 첫날, 시우가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너무 긴장해서 힘이 들어갔다는 말.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눈치채지 못했다. 덕분에 높은 점수를 얻었다. 재수는 없지만 조금 괜찮은 녀석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짝궁이네. 반년 동안 잘 부탁해.

그래서 실습 첫날이 끝나고, 짝궁이 됐을 때도 딱히 반감은 없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 달리 보였을까.

­사람이 살다 보면 질 수도 있지. 너무 얽매이진 마.

처음 윤승하와 싸워서 패배하게 되었을 때. 임나연이 스스로 실망해서 좌절할 때였을까.

가장 결정적인 것은, 어쩌다가 남들이 자기가 하는 험담을 들었을 때였다. 그중에서 중학생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있었다.

그때부터 였을까. 남들에 악담을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이.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인터넷을 뒤져서 악플을 뒤지는 것을 막아 줬을 때다.

­굳이 그 녀석들이 하는 말을 다 신경 쓸 필요가 있어?

­뭐?

­옛날에…어디 드라마에서 봤던 말인데...남들이 뒤에서 헐뜯는 말은 독이 묻은 화살이래. 뒤에 숨어서 하는 애들의 말은 힘이 없어서 나를 뚫지 못하고. 그런데 가장 어리석은 행동은 땅에 떨어진 그 화살을 내가 주워서 내 가슴에 찌르는 거래. 왜 굳이 너 스스로 받지 않아도 될 고통을 받는 거야?

­…….

­인생은 한 번밖에 없고, 살아가면서, 즐기는 것만으로도 부족한데 굳이 그 녀석들이 하는 말에 일일이 다 신경 쓸 필요가 있나? 신경 쓰지 마. 어차피 말밖에 못 하는 애들이야. 아마 네가 다가가서 겁 좀만 주면 알아서 닥치거나 자퇴하지 않을까.

그래서 그녀는 그가 좋았다. 말을 슬쩍 험하게 하면서도 자신을 배려하고. 자기를 평범하게 대해주면서, 자기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이라서.

잘생긴 얼굴과 비율 좋은 몸매가 괜찮다고 느끼기는 했다. 히어로 아카데미에서도 특출난 외모. 딱히 모나지 않으며, 서글서글한 성격.

자기 자신을 과신하지 않으며, 남을 깔보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향상하려는 향상심도 좋았다.

그중에서 가장 큰 이유를 꼽자면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 임가라는 배경을 아예 안 보는 것은 아니지만 그 배경보다 자기 자신을 봐주는 것이 그녀는 좋았다.

그래서였을까.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너무 충돌 적이었다. 최면 어플이란 것을 웃으면서도 실제로 그에게 쓴 것도.

최면 어플로 자신의 욕구를 채운 것도

­나를 노예로 만들어줘.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해졌다. 하지만 만족스러웠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렇게 충족감을 얻은 적이 없었다.

날 때부터 대부분 이들에게 긍정적인 사랑을 받고 자라왔던 그녀는 조금 삐뚤어진 성벽을 가지고 있었다.

'자각하고는 있지만.'

그만두기가 힘들다.

그가 삐뚤어진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갈구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마약은 하지 않았지만, 마약같이 중독성이 심하단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 이시우의 발을 맞췄을 때를 떠올렸다. 그를 주인님이라고 부르게 되었을 때. 그의 앞에서 속옷만 입고 서게 되었을 때, 그리고 나신으로 서게 되었을 때.

무언가 자신의 안에서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더 하고 싶다. 다른 남자들이 자신을 볼 때는 불쾌했는데 그가 볼 때는 진도를 더 나가고 싶었다. 그 열망은 날이 갈수록 더 강해졌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그가 나에게 입을 맞추었을 때는 정점에 달했다.

'아직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임나연은 잠시 주머니에 있는 목줄을 만지작거렸다. 이시우에게는 조금, 아니, 많이 미안하지만.

'미안해, 시우야. 대신 평소에 더 잘 해줄게.'

지금 이 충동을 멈추는 건 불가능했다.

***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경계선. 오후 7시지만 아직 노을이 지고 있었다.

'벌써 5월이 돼가네.'

새삼스레 여기에 떨어진 지 벌써 2개월이 넘었단 것이 떠올랐다.

나는 노을빛으로 물든 거리를 따라 걸었다. 앞에서 걷는 임나연의 머리카락이 찰랑거렸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걷고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신나 하는 건지.'

나는 암울했다.

'오늘은 대체 무슨 플레이를 할지.'

첫날에는 노예와 주종 관계라기보다는 여기사와 오크 같은 플레이였다.

둘째 날에는 내가 천수로 기절시켜서 최면을 풀지 못해서 전전긍긍했으며.

세 번째에는 화장실에서 로맨스 판타지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

'화장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야.'

설마 또 화장실에서 하지는 않겠지?

"우리 어디로 가는 거야?"

"우리 동아리 부실."

임나연의 말에 나는 부실을 떠올렸다. 중앙에 거대한 의자가 있는 부실. 그러고 보니 동아리 이름이 뭐였지. 대충 친목 동아리 같은 느낌이었는데.

임나연의 부실로 향하는 길에 화장실이 보였다. 임나연이 잠깐 멈칫했다.

'나연아, 제발.'

화장실을 보고 있었다. 누군가 있나 없나, 잠깐 확인하는 듯했다. 화장실에는 누군가 훔쳐볼 수 없게 마력 방벽이 쳐져 있어서 현재 임나연의 수준으로 그 방벽을 뚫거나 속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다행히 인기척이 느껴졌다. 임나연은 아쉬운 듯, 잠깐 바라보다가 내 옆에 서며 이야기했다.

"얼마 전에 임무 끝내면서 재밌는 걸 가져왔거든."

"재밌는 거?"

재밌는 게 뭐가 있지?

나는 여러 가지를 생각해 봤지만, 딱히 재밌는 게 떠오르지 않았다. 이 세계는 마도 공학이 발달해서 그나마 찾아보자면 가상 현실 게임? 그러나 판타지 게임 소설에 나올 정도로 뛰어난 물건들은 없다. 이전 세상보다 진보한 건 맞지만, 굳이 비싼 돈을 주고 해야 할 것을 느끼지 못한다는 편이 옳으리라.

우리는 어느새 동아리 부실 앞까지 오게 되었다.

드륵.

문이 열렸다. 언제나 시선을 이끄는 거대한 의자가 중앙에 있었고, 그 옆으로는 그와 비견되는 의자가 하나 더 있었다.

"하나 더 생겼네?"

"……응. 종우가 가져왔더라."

임나연이 꺼림직한 시선으로 의자를 바라보았다. 하긴, 걔도 과시욕이 꽤 심했으니까. 나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재밌는 게 뭔데?"

내 말에 임나연이 히죽거리며 웃었다. 그 모습에 순간 가슴이 뛰었다. 진짜 살벌하게 이쁘긴 이뻐.

"아직은 비밀이야."

여기까지 와서 비밀이라고? 나는 의아해하며 임나연을 바라보았다. 임나연이 눈웃음을 치며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분홍빛과 보랏빛이 차례대로 회전하는 화면이 보였다.

최면 어플. 나는 재빠르게 눈에 힘을 풀었다. 초점 없는 눈동자로 허공을 응시했다.

"됐나?"

내 연기가 완벽했는지, 임나연이 손가락 하나를 들어, 내 앞에서 흔들었다. 나는 애써 허공을 응시했다. 내 반응에 만족스러운지 임나연이 씩하고 웃으며 나를 공주님 안기로 들어 올렸다.

"……."

이건 좀 부끄러운데. 임나연은 그렇든 말든 나를 공주님 안기로 들어 올린 채 조심스럽게 왕좌같이 생긴 의자에 나를 앉혔다. 그리고 황금빛의 유물을 꺼냈다. 밖에서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는 유물. 아마도 나를 제외하면 교수급에서도 몰래 보거나 할 순 없을 거다.

임나연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개목걸이를 내 손에 쥐여주었다.

'정말 재밌구나...'

설마?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쳤다. 아마……분명히 개목걸이를 그녀의 목에 채우고 이상한 짓을 할 것이 분명했지만, 나는 지금 최면에 빠진 상태라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기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오, 오늘은 끝까지 갈 거니까."

라고 중얼거리며, 들고 있던 작은 핸드백 안에서 빨간 약을 꺼냈다. 콘돔도 꺼냈다.

'…….'

내 의견은? 이라고 묻고 싶지만 나는 최면에 걸려서 말할 수 없는 설정이다. 좋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싫냐 좋냐고 물으면 좋냐에 가까운 상황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임나연은 엄청난 미녀니까.

마나를 개화 시켜 잡티 하나 없는 피부에 윤기 나는 머리카락. 가슴 사이즈는 D컵에 넓은 골반을 가진 주제에 얇은 허리까지 가지고 있다.

"목줄 꺼냈고, 콘돔이랑 피임약도 먹었고…. 헉, 이걸 안 꺼냈네."

임나연이 백에서 팔뚝만 한 검은 막대기를 꺼냈다. 끝이 얇고 넓적해서 때리면 찰질 것 같은 막대기였다.

'맙소사.'

SM은 취향이 아닌데. 나는 암담했다. 임나연은 내 속도 모르고 들뜬 숨을 내쉬며, 박수를 쳤다.

짝.

나는 재빠르게 가면을 썼다. 얼굴 위에 덧씌워지는 것을 느꼈다.

"임나연."

"...네."

내 부름에 임나연이 몽롱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벗어."

내 명령에 임나연이 한차례 입술을 깨물고는, 옷을 차례대로 벗었다. 바로 전에까지 운동하고 와서인지 옷은 단출했다. 반팔에 반바지. 위에 걸칠 웃옷 하나였으니까. 웃옷을 벗고, 부끄러운 표정을 지으며 반팔을 벗었다. 하얀색의 브라가 입혀진 커다란 가슴이 탱글탱글하며 나왔다.

'저런 게 가능하다니.'

만화속에서나 가능할 줄 알았던 연출인 줄 알았는데. 속으로 감탄하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붉게 물든 얼굴로 반바지를 벗었다. 하얀색의 속옷이 보였다.

가느다란 허리에 커다란 골반. 그리고 거대한 가슴. 비현실적인 몸매였다.

스윗 시우가 그녀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내 시선에 임나연이 얼굴이 더 붉어지더니 천천히 손을 등 뒤로 가져갔다.

찰칵. 소리가 나며 그녀의 브라가 풀렸다. 하얀색의 속옷이 천천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제야 스윗 시우가 히죽 웃으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름답구나."

스윗 시우가 말에 임나연의 입가가 한순간 미소를 그렸다. 가면은 내 몸을 움직여 아까 전 임나연이 건네 준 개목걸이를 쥐었다. 그리고는 일어나더니.

"어?"

그녀가 반항할 틈조차 없이 한순간에 개목걸이를 채웠다. 극에 이른 손재주의 힘이었다. 가면이 개 목걸이의 이어진 줄을 거칠게 당겼다. 줄에 따라서 임나연의 몸이 저항 없이 내 쪽으로 당겨졌다.

그리고는 허리를 숙여 임나연에 귓가에 속삭였다.

"하지만 개처럼 기는 모습이 더 어울려."

직후.

[임나연의 관계도가 증가했습니다.]

알림창이 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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