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 성장(3)
* * *
일요일 점심.
나는 오전 내내 심법만 돌리다가 점심을 먹기 위해서 내려왔다.
사실 맛만 보려고 새벽 5시에 잠깐 하려고 했었는데 눈치채고 나니 어느새 12시가 살짝 넘었다.
'실제로 강해져서 그런가.'
성장하는 게 눈에 띄어서 그런가. 잠깐 했을 뿐인데도 마나가 1 상승했다.
실제로 기린의 가면을 쓰고 연공에 들어가면 효율이 말도 안 될 정도로 오른다. 아마 이대로 일주일만 하면 마나를 10까지 무난하게 찍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후에는 꽤 더디겠지만.'
그래도 방학 시즌에 던전 몇 개를 털고 마나와 관련된 영약들을 쓸어 담으면 20은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향후 계획을 정하니 배가 고팠다.
'오늘 메뉴가 뭐였지.'
앱을 켰다. 히어로 아카데미 학생들만 이용할 수 있는 히어로 앱을 켰다.
히어로 아카데미는 밥도 잘 줬는데 거기서 양식 중식 일식 한식 등등으로 또 나뉘었다.
'뭘 먹지.'
메뉴가 전부 무난했다. 오늘 오전에는 육체 훈련을 안 했으니까 최대한 담백하게 먹어야지. 야채도 좀 많이 먹고. 매일 고기만 먹으니 야채가 그리웠다. 아주 조금.
거기까지 생각하니 한식에 산채 비빔밥이 보였다.
'난 죽은 채 비빔밥이 더 좋은데.'
시답잖은 개그를 떠올리며 비빔밥을 먹고는 훈련장으로 향했다. 아카데미에서 집으로 향할 수 있음에도 많은 학생이 훈련장에 모습을 보였다.
나는 적당히 체조하며 근육통을 풀어갔다.
그러다가 훈련실에 들어가려는 임나연과 최유나가 눈에 띄었다. 그러다가 임나연과 눈이 마주쳤다.
"시우야!"
임나연이 나에게 달려왔다.
"시우도 이제 운동하게?"
"응. 너도?"
"응. 최 쌤이 오늘 훈련 봐주는 날이거든."
"안녕하세요. "
"아, 안녕하세요."
최유나가 바르게 인사하자 나도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나는 눈을 빛냈다. 다른 사람을 단련시키는 데에 뛰어난 능력을 지닌 최유나에게 도움을 조금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일었다.
임나연과 친하게 지내면 그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데 그녀의 도움을 받느냐 안 받느냐에 따라 효율이 어마어마하게 달라진다.
극적으로 말하면 초반에 한정해도 혼자 하는 것보다 3배 이상의 효율을 가지고 있다.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초반에 그 정도의 효율이 나왔으니 아마 나도 도움을 받으면 그 이상의 효율이 나오지 않을까.
나는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임나연을 바라보았다. 내 눈빛에 임나연이 움찔거렸다. 그리곤 눈이 양옆으로 빠르게 굴러다녔다.
"혹시 시간 됩니까?"
최유나가 내게 물었다. 되다마다. 최유나와 임나연과 친해질 수 있으면 없는 시간이라도 만들어야지. 그 증거로 이쪽을 향해 부러운 눈빛으로 보내고 있는 녀석들이 있었다.
"시간이요? 물론 되죠. 되고 말고요."
"그럼 같이 훈련하시겠습니까?"
최유나가 제안했다. 임나연을 힐끗 보니,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하자, 내 훈련장 엄청 좋아."
당연히 좋겠지. 훈련장은 모든 학생이 이용할 수 있는 훈련장과 개인 훈련장으로 나뉘는데 그 이야기는 간단했다. 개인 훈련장은 기업이나 왕가 단위에서 후원하기 때문이었다. 모든 학생이 이용할 수 있는 훈련장은 그들이 후원한 돈으로 훈련 시설을 만들고, 개인 훈련장은 그들 가문의 비전을 위해 만들었기에 빌리는 데도 천문학적인 돈이 든다.
"그럼 조금만 신세 질게."
내 대답에 임나연이 환하게 웃으며 나를 끌고 갔다.
우리는 임나연의 개인 훈련장으로 향했다. 훈련장 안을 본 나는 자연스레 감탄했다. 개인 훈련장이라고 하기엔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천수로 대략 확인해보니 100m x 100m 정도의 크기였다.
'비싼 이유가 다 있어.'
그것 말고도 여러 가지 시설이 있었다. 중력 마법이 걸려서 몸에 부하를 주기 위한 덤벨들과 가상 현실을 구현하여 만든 훈련실. 안력이나 감각을 키우기 위해 공이 자동으로 발사되는 훈련실도 있었다.
"잠시 시우님의 몸을 만져 봐도 될까요?"
"마, 만진다고요?"
"어, 언니!"
임나연이 최유나의 이름을 경악해 하며 불렀다.
나는 최유나의 말에 의문을 느꼈다. 그녀의 고유 특성은 관찰안. 상대의 신체를 관찰하고 그것을 수치화하여 상대의 신체를 어떻게 키워야 가장 완벽하게 키울 수 있을까로 한정한다면 최유나는 게임 내 최고의 능력자이다. 그런데 그녀가 내 몸을 만질 이유가 없을 텐데.
"아, 실례했군요. 이시우 씨에게는 제 능력이 통하지 않습니다."
"아!"
최유나의 말에 임나연이 나지막이 탄성했다.
"더 정확히는 무언가의 방해를 받습니다. 이시우 씨를 보려고 할 때마다 가면 같은 게 나와서 가로막거든요."
천의 가면에 그런 특성이 있었었나.
"아, 옷은 안 벗으셔도 됩니다."
최유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유나가 내 신체를 만지작거렸다. 간질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최유나가 내 몸을 더듬었다. 팔뚝에서 대흉근에서 허벅지까지. 허벅지를 만지고 다리부터 발까지 꼼꼼하게 만진 뒤, 그녀가 잠시 침음을 흘렸다.
"음."
"어때요?"
나는 기대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전생의 나름 pt까지 받아 본 경험을 살려 훈련을 했다. 아마 10점 만점에 9점은 못 받더라도 7, 8점은 받지 않을까.
"굉장히."
"굉장히..?"
"대충 훈련하셨군요."
"…네?"
"나름 상체와 하체를 키우려고 노력한 흔적은 보입니다만. 굉장히 엉성해요. 마치 일반인이 pt에게 훈련을 받고 그 경험을 토대로 훈련을 하신 것 같습니다."
"……."
"아마 동영상 같은 것을 참고하고 하셨을지 모르겠지만, 일반인의 신체와 영웅의 신체는 다릅니다. 그대로 훈련한다고 되지 않아요. 마치 30인분의 양을 조리할 때 레시피에 적힌 양념을 그대로 30을 곱한다고 레시피처럼 되지 않는 것처럼."
'도대체 뭐가 다른 거지.'
목구멍 너머로 말이 나올 것 같지만 참았다.
"어, 안 돼요?"
하지만 임나연은 아니었다. 임나연의 말에 최유나에게서 아주 살짝 한심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감정은 이내 사라졌다.
"안됩니다."
"그렇구나."
"어쨌든……오늘은 이시우 씨에게 붙어서 지도를 해드리겠습니다. 임나연 님은 오늘 루틴 4대로 훈련 하시면 됩니다."
"우우..그거 엄청 빡센데."
임나연이 울상을 지으며 다른 방으로 이동했다.
나는 최유나를 따라서 덤벨이 많은 장소로 향했다.
"우선 가볍게 이것부터 들어 올려 보십시오."
최유나가 봉을 가리켰다. 본래 봉의 무게는 20kg밖에 되지 않지만 여기 훈련소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중력 마법과 과부하 마법이 걸려서 최소 200kg은 되는 데다가 훨씬 더 몸에 부하를 준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최유나가 어디서 50kg이라고 쓰여 있는 추를 가지고 와서 양옆에다가 달았다.
합계 300kg. 그러나 과부하 마법이 걸려 있어서 실제 무게는 더 엄청나겠지. 나는 의자에 앉아 자리를 잡고 봉을 들어 올렸다.
"끙!"
"호오."
내가 덤벨을 들어 올리자 최유나가 나지막이 감탄했다.
"자세는 완벽하시네요. 감각이 워낙 뛰어나셔서 그런가."
최유나가 감탄하며 그 후로 내게 이것저것 시켰다. 마도 공학이 발달한 세상인지라 정말 다양한 운동기구와 운동법이 있었다.
"좀 더 빠르게 일으키세요!"
과부하와 중력 마법이 걸린 운동기구를 매고, 손바닥으로 몸을 지탱하고 윗몸 일으키기를 한다던가.
"좀 더 빨리 달리세요."
과부하와 중력 마법이 걸린 러닝으로 미친 듯이 뛰게 한다던가.
"그, 그만."
"한 번만 더 하시면 쉬겠습니다."
그 한 번 더 벌써 열 번이 넘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제 됐습니다."
텅!
나는 덤벨을 대충 내려놓고 손을 내렸다. 진짜 있는 힘 없는 힘을 모두 다 쥐어 짜낸 것 같았다.
"안 해! 못해! 절대 더 못 해! 차라리 죽여!"
나는 악을 썼다. 그런 내 반응에 그녀가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지금은 쉬는 시간이니까."
나는 안도하며 땅바닥에 대충 엎어졌다.
"약 30분 정도만 쉬고, 조금 전 루틴을 그래도 하시면 됩니다."
"……."
"말씀드렸잖아요. 영웅이랑 일반인은 육체가 다르다고요."
그녀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째서 캐릭터들이 감사하면서도 치를 떨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은 대목이었다.
***
훈련을 끝마쳤다. 지옥이나 다름없었지만, 나름 힘은 넘쳤다. 밥을 먹고 최유나가 특별히 제조했다는 음료수를 마시니 체력이 꽤 회복되었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지만.'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내 쪽에서 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을까. 그녀의 훈련은 내 생각 이상으로 효율적이었으니까.
나는 히어로 어플을 켰다. 소문으로 최면 어플에 대해서 알아볼 생각이다.
우연인지 아닌지 베스트 란에 최면 어플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다.
[최면 어플에 대해서]
한다면한다 : 어제 문자 온 거 암만 생각해도 [최면 어플]이거 아니냐? 이거 좀 쌔 하긴 함. 빌런 쪽에 세뇌 쪽으로 유명한 애 있잖아. 걔가 만든 거 아닐까?
ㄴwldn13541 : ㅋㅋㅋㅋ이거 좀 싸하더라. 이거 몇 명 찐으로 최면 걸린 것 같이 보이던데. 시우 걔도 걸리지 않았음? 분명 뭐 있다.
ㄴgayslayer : ㅇㅇ최면어플 뭐 있는 것 같긴 함. 거악과 관련되어 있을 수 있음.
ㄴ로제떡볶이 : 걔 아직 고유 특성 발현 안 돼지 않았음? 그쪽 관련 아냐?
ㄴ맞춤법빌런 : 안돼x 안되o
학생들이 최면 어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꽤 날카로운 의견이 있었다. 댓글을 쭉 내려보니 익숙한 닉네임이 몇 개 보였다.
블란 : 여기에는 ㅇㅅㅇ 하는 사람 없어서 좋다.
ㄴwldk178 : ㅇㅅㅇ
ㄴ우진짱 : ㅇㅅㅇ
ㄴ포유 : ㅇㅅㅇ
ㄴ용사 : ㅇㅂㅇ
ㄴ천마 : ㅇㅅaㅇ
ㄴHan : 십, 진짜. ㅇㅅㅇ어그로 작작 해라.
용사랑 천마. 둘 다 용사였다. 쟤낸 저기서 뭐 하는 거야. Han은 한종우였다.
우진짱 : ㅋㅋㅋ5분뒤에 댓삭 할 테니 애들 궁금하게 대댓좀 달아주셈
ㄴ잠꿀 : 진짜 너어어는....
ㄴtldk7154 : 당신은 정말 나쁜 사람이에요. 끔찍하게 이기적인 사람이야 ;ㅅ;
ㄴ포유 : 거,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심한 말 아니오?
ㄴ우진쨩 : 내가 바로 경기도 안양의 김우진이다!
ㄴ우진짱 : 뭐냐. 너 누구냐?
ㄴ우진쨩 : 1학년 A반의 최강, 김우진이다!
ㄴ우진짱 : 씹, 너 누구야!
ㄴ용사 : 왜 혼잣말을 하세요
ㄴ천마 : 끝에 ㅏ하고 ㅑ잖아. 다른 사람임
ㄴ용사 : ㅇㅎ
몰?루 : 읽지는 않았지만 정말 좋은 의견이네요. 추천 눌렀습니다.
ㄴ한다면한다 : 아니, 씹...
ㄴ흥부는흥분중 : 이 글을 읽고 이번 중간고사 100점 맞았습니다. 감사합니다.
ㄴ치코 : 중간고사 100점을 왜 맞음...
ㄴ센즈정말갓겜입니다 : 3줄 요약 ㅇㄷ?
ㄴ2mm : 나는 오늘 유희생활어플을 각성한다!
ㄴ퀸나연 : 진짜 어지럽네...이게 한국의 미래...?
"이봐."
재밌는 내용이 많아 킥킥거리고 있을 때 미성이 울렸다. 나는 미성이 울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빛바랜 백발. 그와는 대비되는 반짝이는 금빛의 눈이 나를 응시한다.
검은색의 반바지, 하얀색의 나시티에 오른쪽 어깨가 드러나는 대충 걸친 검은색 웃옷. 대충 꾸겨 신은 운동화. 나 불량 소녀야, 라고 말하는 듯한 분위기의 소녀가 있었다. 남자처럼 옷을 대충 걸쳤지만 유려한 선과 투명하리만치 하얀 피부 덕에 어느 여자보다 매력적이다.
은수아다.
나는 머릿속으로 은수아의 정보를 떠올렸다.
히어로 아카데미에서도 굉장히 보기 힘든 마법사들이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은 상아탑의 예비 탑주.
다년간 부모님의 억압하에 공부에만 매진하다가 히어로 아카데미에 오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고삐가 풀려서 삐딱하게 행동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기본적으로 순둥이라는 설정이 있다.
외로움을 심하게 탄다. 어둠 속성이나 그림자, 흑염룡같은것에 관심이 많다. 번개 관련 기술에도 관심이 아주 많다. 그래서 그녀의 고유 특성인 칠색七色으로 검은 화염??이나 검은 번개?雪등을 만들어서 쓴다.
'그 좋은 거로 만드는 게 고작 흑뢰나 흑염인게 좀 아쉽지만.'
흑염이 좋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더 좋은 조합법이 있는데 굳이 검은색을 입히는지가 의문이었다.
예를 들어 번개와 불꽃을 조합해서 염뢰?雪를 만들면 범위가 넓은 불꽃의 마법과 빠름과 위력을 겸비한 번개의 마법이 융화되어 어마어마한 시너지를 일으킨다. 하지만.
'은수아. 넌 흑염보다 염뢰가 더 어울려..'
라고 말할 수는 없잖은가.
"왜?"
"잠깐 이야기 좀 하지?"
은수아의 말에 시계를 확인하기 위해 핸드폰을 보았다. 오후 6시. 이제 곧 밥 먹을 시간이었다. 다른 애들이었다면 바로 거절하고 밥 먹으러 갈 시간이지만 은수아는 얘기할 가치가 있다.
그러고 보니 얘랑 제대로 대화를 해본 적이 없었네.
"무슨 이야기?"
"너 말이야, 남다윤님하고 아는 사이야?"
"남다윤님?"
나는 머리를 굴렸다. 남다윤님? 그러고 보니 그런 설정이 있었다. 은수아는 남다윤의 팬이라고.
"다윤이 누나? 누나는 왜?"
"그런 사이야?"
은수아가 보기 드물게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저, 그럼 혹시……."
"시우야!!"
그때였다. 임나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임나연의 목소리에 은수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쳇. 다음에 얘기하자."
낮게 혀를 차며 은수아가 그렇게 말하고는 물러났다. 임나연이 새까만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내 쪽으로 오고 있었다.
"왜 말도 없이 먼저 갔어."
"훈련하는 게 바빠 보여서."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밥은 먹었어?"
"밥? 아직 안 먹었어. 같이 먹을래?"
임나연이 말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까 최유나가 준 주스를 마셨더니 배불렀기 때문이다.
"난 아까 주스를 마셔서 괜찮아. 뭐가 들어갔는진 모르겠는데 한 컵 먹으니까 배부르더라."
"아, 최 쌤 특제 주스. 그거 하나만 먹어도 배부르긴 하지. 그거 여자가 먹으면 피부에 좋고 남자가 먹으면 정력에 좋대."
나는 임나연의 말에 흠칫했다. 핑크빛으로 빛나는 것 같은 눈동자. 열락이 담긴 감정이 느껴졌다.
"시우야 우리 좀 놀다가 기숙사로 갈래?"
임나연의 말에 나는 예감했다.
오늘 최면 놀이를 할 시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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