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 성장(1)
* * *
금요일 밤.
나는 기숙사 밖으로 나와 공터로 향했다.
다름 아닌 뇌령신공을 익히기 위함이었다.
뇌령신공은 뇌 속성의 마정석을 이용해서 몸속의 뇌령을 품는 것으로 시작한다.
몸속의 뇌령을 품어 그 뇌령이 발산하는 번개를 몸속에 쌓는 것으로 내공을 늘린다.
하지만 나는 뇌령신공을 바로 익힐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뇌령을 품는 과정에서 주변에 전기가 튀어서 주변의 전자기기를 마비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연히 지식열람으로 심법을 해석하면서 확인하게 되었다.
그래서 호텔 훈련장이나 호텔 내에서 심법을 배울 수 없었다. 기숙사 내에서도 배울 수 없었고. 그래서 아카데미에 있는 공터에서 뇌령심법을 배울 수밖에 없었다.
미리 이지아와 김하린에게 말해서 그들에게 대금을 주고 사 온 마정석을 꺼냈다. 나는 마정석을 착잡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딴 돌멩이가 하나에 1,000만 원이나 하다니.'
돈은 다행히도 강한자가 권유해준 전당에 코카트리스에 관한 학술을 기재해서 살 수는 있었다. 예상보다 들어온 돈이 많았는데 기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음에도 1억 가까운 돈이 들어왔었다. 그리고 온갖 사람들이 계속해서 볼 테고, 내 돈은 계속해서 늘어나겠지.
20대가 안 됐는데도 번 돈이 1억이라.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나는 미리 가져온 돗자리를 펴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바르게 앉았다. 자세는 딱히 중요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가면을 작성한다.
뇌령신공에 어울리는 가면.
뇌 속성 친화력을 최우선으로 상승시키고, 그다음으로는 마나 감응력이 뛰어난 녀석으로. 안된다면 아쉽지만 마나 감응력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문득 가면을 만들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모방하는 가면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 거기까지 생각에 미치자 이 게임의 신수가 떠올랐다.
나는 기린의 특징을 떠올렸다. 사령四?이면서 사령死?의 특징을 가진 존재들. 그들은 본래 모두 '누군가'에 의해 죽었다. 누군가가 누군지는 나도 모른다. 그저 게임 내에서 누군가라고만 뜬 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사령은 마왕을 부활시키려는 '교단'에 의해서 부활한다. 자아가 없으면 사령이 가진 힘을 다 못 쓰기에 용사 일당이 사령을 죽여 그들에게 안식을 주는 것이 중반부에 마지막 메인 스토리였다.
사령, 기린. 응룡과 함께 폭풍을 몰고 다니면서 중국에 존재하는 도시 여러 개를 날려버리는 일러스트가 떠올랐다.
[기린을 모방한 가면 Lv. 1]
착용 시, 번개 친화력과 마나 감응력이 상승합니다.
※주의! 가면의 선행 조건을 완벽히 충족하지 못했습니다. 기린의 자아에 매몰될 수 있습니다.
이번의 만든 가면은 굉장히 독특했다. 평소에는 나오지 않는 주의 표시가 존재했다.
나는 가면에 적힌 설명을 읽으며 고민했다. 자아가 매몰된다. 기린의 자아가 세상 어딘가에 있는 것은 알고 있다. 그것으로 사령을 부활시켰으니까. 근데 그게 천의 가면과는 도대체 무슨 상관인 거지?
'모르겠다.'
하다못해 설명이라도 읽었으면 짐작이라도 했을 텐데 하필 특전을 고를 때 대충 아무거나 무작위로 골랐던 게 컸다.
선행 조건은 그래도…. 짐작이 갔다. 아마도 저것이 가리키는 것은 관계도일 것이다. 이지아랑 섹스한 후 관계도가 오른 다음에 마도의 업을 이라는 특성을 얻었으니까.
'일단 써볼까?'
여기서 다른 것을 만들까 싶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한번 써보고 싶기도 했다. 잠깐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나는 가면을 썼다. 얼굴에 무언가가 달라붙는 평소와 같은 불쾌한 느낌. 그리고 1초가 지나고, 10초가 지나고, 1분이 지났다.
'뭐지.'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혹시나 해 조금 더 기다려서 5분이 지났지만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진짜 뭐지.'
잠깐 고민하다가 게임 내에서 엑스트라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내, 내가 어떤 고생을 해서 이 녀석들을 깨우고 만들었는데!
그리고 용사 일당에게 죽는 정박아 박사가 떠올랐다. 깨웠다는 말을 했었다. 아마 사령의 영혼이 모두 잠들어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래서 아무런 일도 안 일어나는 게 아닐까?
'요즘 너무 꿀만 빠네.'
천둥새 토벌도 그렇고. 검주와 친해진 것도 그렇고. 검주에게 개인 교습을 받게 된 것도 그렇고. 뭐가 되었던 이득이라 나는 뇌령신공운용하기 시작했다.
"후읍."
의식하며 호흡한다. 허공에 마나라는 입자가 있음을 의식한다. 그러자 희미하게 느껴지는 따스한 기운들. 그 기운들이 뇌령신공에 정해진 호흡에 따라 내 몸속으로 들어온다.
몸속으로 들어온 마나가 뇌령신공에 정해진 혈도를 따라 움직인다. 열다섯 군데의 혈도를 타고 마나가 사방으로 퍼져나가서 단전으로 돌아오고, 단전에서 다시 혈도를 걸쳐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마나가 평소보다 훨씬 더 잘 먹어.'
마나가 움직이는 것이 평소와 달랐다. 평소와는 다르게 마나가 마치 몸의 일부인 것처럼 움직인다. 마나가 생각대로 움직이며, 반발하지 않는다.
"후우."
마나가 갑자기 빠르게 회전했다. 주변이 마나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폭주한 것은 아니었다. 안정적인 움직임으로 빠르게 회전한다. 이것은 내가 뇌령신공에 익숙해져서 나오는 결과였다.
그리고 서서히 단전 속에서 구슬 모양의 형태로 마나가 뭉쳐졌다.
뇌령(?).
뇌령심공의 시작이자 끝. 그것의 형태가 만들어졌다. 구슬 모양의 형태가 살아있는 듯, 내 단전 주위를 잠시 떠돌더니 내가 보내지는 마나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며 크기를 키웠다.
"하아."
긴 한숨을 내쉬며 한참 동안 집중하던 심법을 멈추었다. 뇌령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보다 족히 2배는 더 커졌다. 뿌듯함도 있었지만, 전신이 땀에 젖어 축축해져 불쾌했다.
킁킁.
냄새를 맡으니 헛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역겨운 냄새가 내 몸에서 풍겼다.
"빨리 샤워나 하러 가야지."
나는 땀을 털어내며 기숙사로 향했다.
***
샤워하고 돌아오는 길, 갑자기 식혜가 먹고 싶어져서 기숙사 1층으로 향했다.
1층으로 향하니 막 샤워를 마쳤는지 은빛의 머리카락이 젖은 채, 머리 위에 수건을 올리고는 걸어오는 사람이 보였다.
윤승하였다.
검은색 반팔에 반바지를 입은 캐쥬얼한 복장을 한 복장 때문에 하얀 살결이 보였다. 만지면 부드러울 것 같은 피부.
남자인 것을 앎에도 남자인지 여자인지 헷갈릴 것 같은 고혹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과연, 게이가 아니라는 빌런과 게이라는 빌런들이 윤승하에게 왜 열렬하게 구애를 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은 외모였다.
"안녕. 너도 음료수 마시려고 오는 길이야?"
"응. 이름이 시우 맞지?"
여자인지 남자인지 헷갈릴 미성. 윤승하가 내 말에 나른하게 대꾸했다.
"응. 시우가 맞아. 이시우. 네가 윤승하 맞지?"
"응. 천둥새는 어땠어?"
"쉬웠어. 라고 하면 거짓말이고. 사실 공략법을 알고 있었는데, 이미 다른 사람한테 토벌당해서, 그냥 신고만 하고 왔지, 뭐."
"토벌? 아카데미에 임무가 왔고, 그걸 수락했으면 다른 사람들은 임무를 수령할 수 없을 텐데? 누구야?"
윤승하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어봤다.
"검주님."
"응?"
"검주, 남다윤님. 토벌하려고 천둥새 수색하다가 근처에 검주님한테 걸려서 시체로 있었지 뭐야."
"엄청 편했겠네."
윤승하가 부럽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나는 윤승하를 바라보았다. 그는 내가 로크를 플레이하게 만든 인물이자, 정을 떨어트리게 한 인물.
주변 여자들을 대부분 홀릴 마성을 가졌다. 그런 주제에 온갖 히로인들과 꽁냥거리면 결국에는 그들과 이어지지 않고, 항상 다른 여자들과 결혼하는 분양 엔딩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실제로 다른 히로인들이 결혼하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이어졌다고 확답을 하지 않은 것 자체가 분양이지 않은가? 그렇기에 그는 유저 일동의 애증의 대상이었다. 여자 영웅인 윤채린마저도 여주인공과 이어지는 루트가 존재하는데!
"어둠의 정령은 어땠어?"
"언ㄴ...누나가 한방에 끝장냈지, 뭐."
한방이라. 어둠의 정령은 물리 저항이 뛰어나고 정신을 현혹하는 능력이 있어 상대하기가 까다롭다. 하지만 윤채린의 능력을 생각하면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대단하네."
의미 없는 감탄을 하고 있을 때, 저 멀리서 윤채린이 오고 있었다. 늘씬하게 뻗은 긴 다리를 쭉쭉 뻗으며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둘이 쌍둥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그녀도 검은빛의 반팔과 반바지의 차림새였다.
그녀도 샤워했는지, 물기 젖은 금빛의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털며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쟤도 양반은 못되네.
"응? 뭐야, 나 없을 때 밀회를 즐기고 있었던 거야?"
"남자끼리 무슨 밀회야."
괜스레 불쾌해져서 윤채린에게 툭 쏘듯이 말했다.
"……아, 미안미안."
윤채린이 묘한 표정으로 사과했다. 왠지 모를 아쉬움이 짙은 표정. 나는 의아해하며 자판기에서 식혜를 세 개 뽑았다. 한국인이라면 샤워를 하고 난 후에는 식혜지. 나는 뽑은 식혜 들을 윤채린과 윤승하에게 건네주었다.
"오, 땡큐. 마침 식혜가 당겼는데."
"잘 먹을게."
윤채린이 식혜를 하나 건네받으며 뚜껑을 따고 한순간에 원샷했다.
"크으, 이 맛이지."
소녀라기보단 아저씨에 가까운 감탄사를 하였다. 윤승하는 조신하게 꿀꺽거리며 마시고 있었다. 쌍둥이는 보통 닮는다던데 얘내들은 정반대였다. 머리색부터 눈 색하고 성격까지. 모두 정반대였다.
위잉위잉위잉
갑자기 스마트 폰에서 긴급 문자가 도착했다. 재난 경보같이 요란한 소음에 의문을 느끼며 스마트 폰을 켰다.
[최근 생도들이 기억을 잃거나 실종되는 사건이 있습니다. 다들 혼자 다니는 건 주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나는 문자를 본 순간 직감했다. 에피소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진짜 최면 어플'을 가진 녀석이 사건에 휘말리기 시작했다. 이 에피소드는 굉장히 중요했다.
김하린에게 분기점이 생기기 때문이다. 여기서 루트를 잘못 택하게 되면 그녀는 빌런 쪽으로 전향하게 될 가능성이 굉장히 커진다.
'김호동.'
나는 최면 어플의 주인을 떠올렸다. 새끼돼지같이 생긴 녀석. 히어로 아카데미에 입학할 성적을 가지고 있지만, 뚱뚱한 체형에 온갖 괴롭힘을 당하는 녀석이기도 했다.
'왕따를 당하는 애가 최면어플이라.'
히토미에 자주 나올법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걱정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걔는.
'고자...거든.'
좀 안쓰러운 이유였다. 김하린이 어쩌다가 김호동의 알몸을 보게 되었는데, 그게 너무 징그럽다고 그녀의 주특기인 광익으로 빛을 쏘아버린 것이었다.
목숨은 건졌지만……좋지 않은 곳을 스쳐서 고자가 되었다는 설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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