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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나에게 최면어플을 사용한다-20화 (20/298)

〈 20화 〉 검주(3)

* * *

음식은 금방 들어왔다. 한정식이어서 그런지 여러 명의 한복 차림의 여성들이 나와서 한 상 가득 음식을 내왔다.

정갈한 그릇 위에 갈비찜에 양념갈비, 소불고기, 겉을 바싹하게 익힌 훈제 고기 등이 얹어져 있었다. 내 근처에 올려진 밑반찬만 10가지가 되었고, 고기만 해도 종류가 10가지 이상의 고기들이 있었다.

고기의 양을 보니 정말 억 소리가 나올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있었다. 내가 보통 2~3인분 정도 먹는다지만 고기 차림은 그런 내가 2, 3명 정도 있어야 먹어 치울 수 있을 것 같은 양을 자랑했다.

"오, 마법이 걸려 있네요."

이지아가 식기를 보며 자그맣게 감탄했다.

"네, 아무래도 한 번에 내오다 보니 다른 음식을 먹는 사이에 음식이 식을 염려가 있어서, 보존 마법이 걸려 있습니다."

나는 종업원의 말에 질린 눈을 했다. 천수를 이용해서 살펴보니 확실히 그릇 하나하나에 전부 보존 마법이 걸려 있었다. 이 정도의 식기를 전부 보존 마법을 걸려면 돈깨나 깨졌을 텐데.

종업원들이 식탁에 음식들을 차려놓고 고개를 숙이고는 나갔다.

"우리도 먹어 볼까?"

검주가 젓가락을 들며 말했다.

"잘 먹겠습니다."

우리는 검주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고 오리고기를 젓가락으로 한 점 집어서 입으로 넣었다.

"와."

오리고기를 입에 넣은 순간.

그 뒤의 일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몸을 부르르 떨며 나온 음식들을 허겁지겁 먹었으니까.

'이게 미각 마법이 걸린 음식...?'

이게 미각 마법이 걸린 마법이란 건가.

보통의 음식이 쓰레기처럼 느껴질 정도로 맛있었다.

매콤함, 짠맛, 단맛이 더 자세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고기에서 누린내 같은 것은 나지 않았고, 소고기는 입에 넣자마자 녹았으며, 오리고기는 겉은 바삭했고, 속은 촉촉했다. 돼지고기는 양념과 잘 어우러졌고, 양고기는 누린내가 나지 않았다.

고기를 먹으면서 주변을 살폈다. 이지아와 김하린 역시 그릇에 얼굴을 파묻듯이 밥을 먹고 있었고, 남다윤은 나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이것도 먹을래?"

남다윤이 자기 그릇에 있던 양념게장을 하나 나에게 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양하지 않고 받았다.

***

"하."

배가 불렀다. 보통 부른 것이 아니라 심각하게 배불렀다. 자칫하다가는 체할 것 같은 느낌. 몸속의 마나를 몸 안으로 퍼트리니 좀 살 것 같았다.

아마 오늘 밤 동안은 배부름 땜에 고생하겠지만 후회는 되지 않는다. 그만큼 맛있었던 음식이었으니까. 아마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해도 나는 고기를 다 먹었으리라.

"시우야."

"네?"

남다윤이 나를 불렀다. 그녀가 나를 보며 뿌듯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잘 먹었니?"

"네, 잘 먹었어요. 그런데 많이 나왔죠?"

"괜찮아. 이번에 던전을 하나 털면서 꽤 많이 벌었거든."

내 물음에 남다윤이 씩하고 웃으며 말했다. 나는 남다윤의 말에 멈칫했다. 던전? 요 근처에 던전은 기린의 둥지 하나뿐일 텐데. 설마…….

"봐봐. 던전에 들어가서 보스한테 얻은 건데 꽤 크지?"

남다윤이 내 주먹보다 큰 노란 구슬을 보여주며 말했다. 구슬 안에 높은 밀도의 마력이 정제된 채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마정석이었다. 그것도 천둥 군주가 가질법한 뇌 속성을 지닌 마나가 구슬 안에 들어있었다.

"혹시 던전 입구에서 천둥새를 죽이셨나요?"

"어?"

내 물음에 남다윤의 표정이 묘해졌다. 어떻게 알았느냐는 표정에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사실 저희가 이번에 임무 주간에 나온 이유가 천둥새를 잡는 것이었거든요."

"뭐?! 임무로 천둥새 토벌을 받았다고!?"

남다윤이 기겁하며 나에게 물었다. 확실히 이게 일반적인 반응이지. 교장처럼 그래? 그럼 해볼래? 라는 식으로 승낙하지 않는다. 이지아와 김하린도 이상할 정도로 나를 믿어주었고.

"음, 사실 천둥새를 꽤 쉽게 토벌하는 방법이 있거든요."

"…그래? 그러고 보니 시우는 필기 만점이라고 했었지?"

"아셨어요?"

"응, 꽤 유명했으니까."

그러고 보니 입학 초가 떠올랐다. 신문이나 국뽕 동영상 등에 히어로 아카데미에 처음으로 만점을 받은 사람이 한국인이라면서 온갖 어그로를 끌었었지. 엄청 민망했었다. 그럴 줄 알았으면 적당히 할걸.

[전 세계를 경악시킨 뇌섹남 이시우! 히어로 아카데미의 첫 필기 만점 합격자?! 그의 활약으로 전 세계가 한국에 놀랐다!!]

[한국의 희망! 새로운 K­Hero! 이시우에 대한 전격 분석!]

다시 생각해봐도 어질어질하다. 포탈도 한동안 그런 제목을 가진 기사들이 장식했었지.

"하지만 너무 위험하잖니."

"그래도 하린이가 광익을 가져서 승률이 엄청 높았어요."

실제로 김하린을 이용해서 천둥새를 잡는 방법은 약 99% 정도의 성공률을 자랑한다. 1%는 허튼짓하거나 운이 엄청 없어서 일이 어마어마하게 꼬이는 경우였다.

"하린이 고유 특성은 말 못 하지만 천둥새를 잡는데 특화되어 있거든요."

"그래? 그래서 도전했구나."

그녀가 쓰게 웃으며 덧붙였다.

"요즘 아카데미 학생들은 대단하네. 천둥새를 임무로 토벌 받을 정도라니, 나 때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성장했네."

"에이, 그 정도는 아니에요. 이번에 들어온 애들이 너무 뛰어나서 생긴 일이죠."

"그리고 그 뛰어난 애들 중에 시우도 있고?"

그녀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녀는 내 반응에 뭐가 좋은지 방긋거리며 웃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말에 용사인 척하는 존재가 떠올랐다. 아카데미 생도들이 세계 전역에서 가장 뛰어난 고등학생들을 모아 놓았다지만 천둥새는 생도들 수준에서 잡을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아마도 천둥새가 올라온 것은.'

금발적안.

자신만만하게 씩, 하고 웃는 표정을 짓는 여성이 떠올랐다.

직업이 용사라고 했지만, 후반에 천마??로 각성하는 존재.

남자 용사가 '만능'이라면, 여자 용사는 '여포'의 컨셉을 가졌다. 그리고 현재 모든 학생 중에서도 혼자 교관에게 덤벼서 교관을 이길 수 있는 존재.

이지아나 김하린, 칠색七色의 특성을 가진 은수아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재능의 끝이라고 친다면 임나연이나 한종우는 바로 그 아래에 있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 용사 두 명이 가진 고유 특성은…….

'여기에 와보니 알겠어. 그 두 명이 가진 고유 특성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특성인지.'

남자 용사나 여자 용사가 가진 고유 특성은 위에 나열한 애들과 비교해도 격을 달리했다.

문자 그대로 마왕들을 죽이기 위해서 '선택받은 존재'들.

세계에게 사랑받는 특성으로 그저 숨 쉬는 것만으로도 모든 재능과 숙련도가 올라가는 세계의 운명.

대인전에서 모든 특성 중, 최강을 자랑하며 마?의 속성을 가졌으면서 모든 마?속성에 카운트치는 특성, 천상의 마.

'내 특성도 꿇린다는 생각은 안 들지만...'

아마 세계의 운명을 제외하면 가장 만능적인 특성, 천의 가면. 손재주의 끝판왕인 천수, 지식으로 분류되는 대부분을 볼 수 있는 지식 열람.

이것들 모두 정말 좋고 유용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위의 것들과 비교하자면 조금 아쉽다는 생각은 든다.

그렇다면 내가 고유 특성으로 개화해야 할 것은…….

"시우야?"

나를 부르는 미성에 나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아차,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거지.

"아, 죄송해요. 잠시 생각할 게 있어서……."

"그래, 어떤 건데?"

"하하, 개인적인 거라."

"누나한테 가르쳐주기 싫은 거구나."

그녀가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그 표정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뇨, 그냥 어떻게 하면 강해질까 하는 고민이었어요."

그녀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떠졌다. 그리고 이내 아련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시우도 검을 쓰지?"

"네. 이것저것 다 쓰긴 한데, 검을 주력으로 써요."

"그럼 내가 검을 좀 봐줄까?"

"누나가요?"

나는 놀라워하며 말했다. 검주로 불리는 남다윤이 나에게 검을 가르쳐 준 다라. 아무리 생각해도 이득밖에 없었다.

검술을 가르쳐준다는 명목으로 그녀에게 달라붙어 관계도를 올리고.

그녀에게 조언을 구해 내가 더 강해질 기반을 만들 수도 있고.

급하게 돌아야 할 던전이 생기거나, 빌런들이 날뛸 때, 그녀를 이용해 마인을 쓸어버리는 방법도 있다.

"어, 정말 감사한 제안인데, 누나가 너무 귀찮지 않을까요?"

"귀찮긴. 오히려 시우를 자주 볼 수 있어서 좋은데."

"네?"

내가 되묻는 말에 남다윤이 히죽거리고 웃었다.

어, 그만큼 동생을 많이 보고 싶었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는 건가…….

"시우는 학생이니까 주말에 일정을 잡으면 되지?"

"네? 네. 그래주면 저야 정말 감사한데."

"감사하면 나중에 성인이 될 때, 크게 쏘면 되지."

남다윤의 말에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사방이 온통 어둠에 잠긴 숲.

그곳에서 남녀 한 쌍이 걷고 있었다.

찬란한 금발과 적안. 검은색의 반바지와 긴 팔의 츄리닝 복을 입은 여성은 따분하다는 듯이 하품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금발과 대비되는 은발의 청안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잘 안 되는 이쁘장한 사람.

그 역시 숲에 어울리지 않는 복장이었다. 검은색의 츄리닝과 반바지. 그리고 대충 근처 어딘가로 이동하는 듯한 슬리퍼 차림을 한 채, 나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 내가 먼저 천둥새 토벌에 참여나 할걸."

"게네들이 먼저 가져갔으니까. 어쩔 수 없지, 뭐."

금발의 여성, 윤채린의 말에 윤승하는 나른하게 대꾸했다.

사실 그들로서는 이쪽이 더 쉬운 축에 속하는 임무였다. 천둥새가 찾기는 더 쉽지만, 그 비행속도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았을 테니까.

'어둠의 정령 수색은 뭐...'

윤승하는 그의 쌍둥이 누나를 바라봤다.

윤채린.

천상의 마라 불리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여성. 대인전에 어마어마한 보정을 받고 모든 마를 지배하는 능력.

어둠의 정령이 일반적으로 까다롭다지만 윤채린의 특성을 생각하면 누워서 떡 먹기보다 쉬웠다.

'누워서 떡 먹으면 떡이 목구멍에 걸려서 뒤질 수 있기는 한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걷는 도중이었다.

­꺄아아아악! 살려주세요!

찢어질 듯한 비명이 울렸다. 목소리가 가냘팠다. 아마도 상대는 여성. 그러나 둘은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사람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비명을 지르는 상대가 인간이 아님을 알기에 짓는 표정이었다.

"쯧, 별 같잖은 것들이 지랄하네."

"이쁜 말."

윤채린의 험악한 말에 윤승하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욕만 안 하면 좋은 사람이긴 한데.'

"동생 주제에 어디서 나한테 훈계질이야."

"엄마한테 이른다?"

"……쯧. 별 이상한 애들이 다 시비를 거네."

동생, 윤승하의 필살기에 윤채린은 말을 바꾸었다. 그녀는 무서울 것이 없다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상대하기 좀 그랬다.

"뭐, 어쨌든. 저 녀석 죽이고 온다."

"이쁜 말."

"……쟤 좀 잡고 올게."

윤승하의 말에 윤채린은 구시렁거렸다. 내가 나이가 더 많은데 동생의 말을 들어야 하나? 진짜 확, …만 아니었어도.

그렇게 투덜거리며 윤채린이 땅을 박찼다. 그녀의 모습이 일순간 '어둠에 잠기기' 시작했다. 어둠이 어둠을 가르며 쏘아진 화살같이 날아갔다.

그 모습에 윤승하는 아차 하는 심정이 되었다. 저 멧돼지 같은 사람이 어둠의 정령을 가만히 잡을 리가 없었지.

그녀의 특성을 생각하면 그녀는 가까이 다가가서 어둠의 정령을 만지기만 해도 되었다. 아니, 만지지 않아도 멀리서 어둠의 정령을 '흡수'하면 되었다.

콰아앙!

숲이 뒤집어진다. 윤승하는 한숨을 내쉬며 윤채린이 떨어진 장소를 보았다. 마치 포탄이 떨어진 듯, 10m 크기에 크레이터가 생겨 있었다.

그리고 해맑게 웃으며 어둠의 정령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자신을 향해 흔드는 여성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윤승하는 아파오는 이마를 매만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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