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 검주(2)
* * *
우리는 검주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검주를 따라 호텔 밖으로 나가니 검은빛 광택에 리무진이 보였다.
차 앞에는 검은 슈트 차림에 선글라스를 쓴 남성이 있었다. 남성이 검주가 다가오자 공손히 인사하고는 뒷문을 열었다. 남자가 우리에게도 인사하자 얼떨떨해하며 인사를 받았다.
차 안으로 들어가니 마주 보는 구조로 되어있었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검주가 희미하게 웃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보는 것이 느껴졌다. 내 옆에 이지아가 앉고, 이지아 맞은편에는 김하린이 앉았다.
의자는 푹신했다. 앉아 있는 느낌도 편안했다. 차가 비싼 이유가 다 있구나.
"나 리무진 처음 타봐~"
이지아가 신나며 여기저기 구경했다. 그러더니 남다윤을 보더니, 눈치를 살폈다.
"저, 사진 찍어도 될까요?"
"네. 얼마든지 찍으셔도 됩니다."
남다윤의 허락에 이지아가 신나며 사진으로 이것저것 찍기 시작했다. 나는 괜스레 목이 말라서 옆에 있는 수통을 하나 집었다.
"목마르니?"
"네."
"음료수도 있는데 마실래?"
"제로 콜라 있어요?"
남다윤이 멈칫했다.
"제로 콜라..?"
"네, 없나요?"
나는 남다윤에 반응에 입맛을 다셨다. 제로 콜라는 내가 즐겨 마시는 음료 중 하나인데 그것이 없다니. 깔끔함이 마음에 드는 음료인데. 하긴 콜라보다 마이너 하니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아니, 있어. 있고말고. 시우가 좋아했던 음료라서."
"그래요?"
남시우라고 했나. 제로 콜라는 좋아하다니, 꽤 맘에 드는 구석이 있는 녀석이었다.
그나저나 다른 사람들한테 존댓말을 하면서 나한테는 존댓말과 반말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전생의 나이보다도 나이가 많으니 딱히 불편할 것은 없지만…….
아마 그녀는 옛날에 잃어버린 동생을 나에게 대입하는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불편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한정하자면.
'개꿀이지.'
솔직히 말해서 불쾌하기는 하지만 검주급의 인맥이 보통인가? 차기 최상격의 영웅으로 들어가는 게 확정되고 미인인 데다가, 미인이니까.
차에 배치된 냉장고에서 그녀가 제로 콜라 캔을 따서 건네주었다. 치익, 하는 기분 좋은 소리가 차 안에서 울렸다. 나는 그녀에게서 제로 콜라를 건네받으며 물었다.
"그런데 저희는 어디로 가는 거예요?"
한참 사진을 찍어대던 이지아가 남다윤에게 물었다.
"지금 청식당으로 향하고 있어요."
청식당이라는 말에 이지아와 김하린이 놀라는 것이 느껴졌다. 나 역시 놀랐다. 청식당은 굉장히 유명했다.
이 세계에는 마도학이 발달하면서 여러 가지 분야가 생겼는데, 마법을 이용하여 맛을 향상하는 마법이 있었다.
일명 미각 마법.
게임 내에서는 단지 먹는다는 행위 하나로 온갖 버프를 받을 수 있어서 플레이어들도 나름대로 관심 있게 봤으나 배우기가 까다로운 것에 비해 효율이 별로인지라 다들 포기했었던 마법이었다.
나는 거기까지 떠올리다가 게임 내에서 모든 캐릭터가 미각 마법이 걸린 음식을 맛봤을 때, 다들 극찬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리고 청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은 고유 특성에서도 요리에 특화된 인물이다. 음식만으로 세계를 감동하게 했다는 찬사를 불러일으킨 사람이다.
이름이 이장금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음식으로 유명한 대장금을 모티브로 한 인물이었다.
청식당의 다른 이름은 천상의 맛을 가진 식당. 게임 내에서도 어느 정도 지위를 얻은 상태에서도 발을 들이기 힘든 곳이었다.
"처, 청식당에 가는 건가요? 천상의 맛을 가졌다는?"
"네."
이지아의 물음에 남다윤이 짧게 말했다.
"근데 거기 바로 갈 수 있나요? 예약하고 자리 잡는데도 최소 한 달 전에는 연락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게임 속 지식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런 내 물음에 남다윤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장금이하고 내가…아니, 제가 친구거든요. "
"진짜요? 대단하시네."
근엄한 척 표정을 하고 있지만, 입가가 근질거리고 있었다. 누가 봐도 내 칭찬에 좋아 죽겠다는 모습이었다.
"그러고 보니 계속 존대하시던데 말씀 편하게 하세요."
"그…. 럴까?"
"네, 저희는 그게 더 편해요."
남다윤이 내 말에 멈칫했다.
"시우야, 라던가. 시우 동생도 괜찮고."
생각해보니 시우 동생은 좀 위화감이 있었다. 그러니까 시우야로 타협보자. 그렇게 생각하며 남다윤에게 말을 걸었다.
"시우야, 라고 해보세요."
"시, 시우야."
내 말에 남다윤이 낯부끄러워하며 내 이름을 작게 불렀다.
"네. 잘 부탁드려요, 누나."
"누나...?"
내 말에 남다윤이 멈칫했다.
이런. 너무 실례였나. 말을 정정하려던 찰나였다.
"누나. 라…. 좋네."
그녀는 그 어감이 퍽 마음에 드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고는 중얼거렸다.
사실 누나, 동생 하는 것은 별것 아닌 일이지만 그 주체가 인간관계 맺기 힘든 인물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옆에서 이지아가 대박, 거리도 있었고, 김하린이 나를 놀랐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남다윤이 슬쩍 핸드폰을 꺼내며 내게 건네줬다.
"번호도 찍어 줄래?"
"번호요?"
"설마 시우는 이렇게까지 하고 모른 척할 셈이었어?"
그럴 리가.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빙빙 휘저었다.
내가 멈칫한 것은 내가 알고 있는 그녀와 현재 그녀가 행동하는 괴리감 때문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게임 속 남다윤을 떠올려 보았다. 항상 냉정한 표정을 지으며, 빌런을 사냥하는 그녀. 존댓말로 인간관계를 긋는 것이 남다윤이었다. 용사 두 명으로 공략 루트가 열려있지 않았던 존재.
아마 저것이 남다윤의 본 성격인 거겠지.
나는 남다윤의 고유 특성을 떠올렸다. 고유 특성 어검??. 검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특성이었다. 그녀의 특성은 나한테 필요했다.
'사실 기대도 안 하고 있었지만.'
어쩌면 그녀의 공략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쉬울지도 모르겠다.
***
우리는 식당에 도착했다. 대문에는 한자로 청식당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필체가 한석봉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뛰어났다.
사극에서나 볼법한 무사의 옷을 입은 남성이 우리를 막았다.
"예약하셨습니까?"
"네. 남다윤 외 3명으로 예약했습니다."
남다윤이 일행의 앞으로 오며 말했다. 남다윤의 얼굴을 본 남성의 눈이 순간 커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가 잠시 태블릿을 켜더니 무언가를 확인했다.
"네. 남다윤 님과 동행 3인. 확인했습니다."
남자가 웃으며 길을 터주자, 우리는 안으로 들어갔다.
"분위기 장난 아니네~"
"그러게."
이지아가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나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청식당은 옛 궁궐처럼 지어져 있었다. 국악기인 가야금이나 거문고 등이 울리고, 나무 장식 하나하나가 고풍스러웠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한복 차림의 여성에게 안내를 받아 안쪽으로 들어갔다.
주변을 힐끔 보니 유명 연예인이나 배우, 정치인, 영웅들이 보였다. 나만 그들을 관찰하는 건 아니었던 건지 주변에서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다. 대충 놀라운 감정 정도.
그와 동시에 저 멀리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인물이 있었다.
"잠깐 실례해도 되겠습니까."
하얀색 정장을 입고, 금색 빛의 반곱슬머리에 느끼한 눈빛이 인상적인 서양인이 우리에게 인사했다. 아니, 정확하게 남다윤을 바라보며 인사했다.
"중격의 영웅, 크리스찬이군."
"저자가 바로 태양의 기사의 동생인가?"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태양의 기사.
영국에서 엄격한 선별을 통해서 만들어진, 원탁의 기사의 일원인 가웨인.
크리스찬은 영웅 중에서도 진짜라 불리는 중격의 영웅. 그리고 세계에서 1,000명조차 되지 않는 상격 영웅의 동생이다.
즉, 뛰어난 배경에 잘생긴 외모, 출중한 능력이라는 삼박자를 가진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남다윤에게 대쉬를 해보지만.
"실례인 걸 아시니까 잘됐네요. 다음부터는 실례하지 말아 주세요."
남다윤은 그대로 무시하고 갔다.
남자를 돌같이 보며, 빌런을 향해 복수심을 태우는 여자. 그것이 바로 검주의 모습이었다. 남자에게 관심이 없어, 그녀에게서 고유 특성을 얻는 것을 포기했었던 이유이기도 했었다.
"멋있어..."
이지아가 작게 중얼거렸다.
뭐가 멋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상대의 배경이나 능력을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갖췄기에 그런 건가.
아무튼, 우리는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메뉴판을 보았다. 메뉴판에는 코스 메뉴들이 적혀있었다. 호박이나 나물 등이 들어 있는 산채 코스와 정식 한식 코스, 가짓수가 많았는데 무엇을 먹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여기 오기 전에 훈련으로 땀도 흘렸겠다 양이 많은 고기 요리를 먹고 싶었는데 그 요리는 너무 비싸서 망설여졌다. 코스 요리가 무슨 100만 원씩 이나 해.
"주문은 무엇으로 하겠습니까?"
"늘 먹던 거로요."
내가 고민하는 사이에 남다윤이 우아하게 주문했다.
"저도 남다윤님이랑 같은 것으로 할게요."
김하린이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하였다. 김하린에 말에 이지아도 말했다.
"저도 똑같은 것으로 부탁드릴게요."
이것으로 나를 제외한 모두가 똑같은 메뉴를 골랐다. 왠지 모르게 나도 같은 것을 주문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하긴, 레스토랑에 왔는데 양이 뭐가 중요할까. 맛이 중요하지.
나도 같은 것으로 주문하려던 찰나였다.
"시우는 이거 어때?"
남다윤이 내게 메뉴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가장 먹고 싶었던 코스를 추천해주었다. 무려 100만 원짜리 코스 요리.
내가 아무리 뻔뻔하다지만 일개 요리에 그렇게 값을 쓰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뇨, 이건 너무 비싸서..."
"괜찮아. 동생에게 사주는 건데 뭘."
그녀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사양하는 것이 그녀에게는 더 실례일 거다.
"그러면 잘 먹겠습니다."
"그래. 이 코스 세 개랑 고기 만찬 코스 하나 부탁할게요."
"네, 알겠습니다."
한복 차림의 웨이터가 공손히 인사하며 물러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