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 검주(1)
* * *
우리는 산속을 뒤졌다.
혹시나 천둥새가 토벌되지 않고, 있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한참을 뒤지고 군인들에게 협조까지 받아서 수색에 시간을 할애했지만, 천둥새는 없었다. 즉, 동굴 앞에서 토벌되었다는 거다.
'진짜로 개꿀 임무였네.'
준비한 것이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좀 허탈했지만 개운하기도 했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자 우리는 철수를 시작했다. 목요일하고 금요일까지 계속 수색하고 없으면 토벌했다고 해야지.
"호텔 생활도 벌써 이틀 남았구나."
이지아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호텔 생활이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확실히 여기 호텔은 서비스가 좋고 물건 하나하나가 고급스러웠다. 음식도 엄청 다양하고, 맛있었다. 여자들이 좋아할 요소가 한가득하긴 했다.
"시우도 밥 먹으러 갈래?"
"난 잠깐 샤워 좀 하고."
머리를 쓸며 말했다. 방금까지 호텔에 있는 단련장에서 훈련을 마치고 와서 땀을 많이 흘렸다.
"그래? 그럼 기다리고 있을게."
이지아가 말하자 김하린도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굳이 기다릴 필요가 있나 싶지만, 여자들은 단체로 행동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이며 샤워를 하러 올라갔다.
향기가 마음에 드는 로즈마리 바디워시와 샴푸, 린스까지 써서 샤워를 대충 마치고 가볍게 반팔과 반바지를 입은 나는 식당으로 내려오는데 식당이 웅성거리는 것을 느꼈다.
"나 지금 꿈꾸고 있는 거 아니지?"
"어, 어."
익숙한 갈색빛의 머리카락과 핑크빛 머리카락이 보였다. 이지아와 김하린이 서로 멍하니 한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나도 그쪽을 따라 눈을 돌리니 바다에서 한올한올 건져 올린 듯, 목덜미까지 내려오는 푸른빛의 머리카락. 하얀색 반팔 티셔츠에 검은색 스키니진 차림의 캐쥬얼한 옷차림. 머리카락과 같은 푸른빛의 눈동자를 가진 여인이 삭막한 표정을 지으며 서 있었다.
'검주?'
중격의 영웅들이 진짜 영웅들이라고 불린다면 '상격' 이상의 영웅들은 각각의 국가의 힘을 상징한다. 세계를 다 뒤져봐도 1,000명을 넘지 않는 진짜배기 괴물들이다.
검주, 남다윤은 그 상위격의 영웅 중에서도 얼마 안 가서 50명도 채 안 되는 최상격의 영웅으로 올라갈 거라 예상되는 인물이었다.
검주 쯤 되면 이런 곳에 머무를 이유가 없을 텐데. 시그니쳐 호텔이 오산에서 가장 좋은 호텔이라지만 다르게 말하자면 결국 오산에서 가장 좋은 호텔일 뿐이다.
검주쯤 되는 인물이라면 나라에서 워프 게이트를 지원해줘서 나라에서 세 손가락에 꼽히는 호텔에 머물러도 이상할 게 없었다.
"사인…. 받을 수 있을까?"
"힘들지 않을까. 검주님도 사생활이 있으시고."
진지하게 표정으로 말하는 이지아와 난감해하는 김하린이었다. 그러고 보니 검주는 이지아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검주와 이지아 둘 다 페널티 특성으로 재능을 모르고 있다가 교장이 가진 신기??, 천공의 눈에 걸려 히어로 아카데미에 입학해, 재능을 개화했다.
요컨대 이지아의 미래가 검주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물론 내가 얻어 줄 기연으로 이지아는 훨씬 더 빠르게 성장하겠지.
"밥이나 먹으러 가자."
"헉, 시우야, 지금 배고파?"
"응. 배고파 죽을 것 같애."
호들갑 떠는 이지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배를 쓰다듬으며 장난스레 말해줬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다.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는 검주가 있었다. 푸른색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리며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시우...?"
그녀가 내 이름을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러나 나름 초인에 턱걸이한 나로서는 들을 수 있는 목소리였다. 왜 검주가 내 이름을 부르는 거지?
'어...?'
그녀에 반응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남다윤의 남동생의 이름이 시우였던 것. 남시우. 또 시우, 너야?
생각해보니 외모도 비슷했다. 내가 좀 더 잘생겼지만...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그녀가 내 '앞'에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있었다는 듯, 그녀는 내 앞까지 다가와서 나를 바라보았다.
아마도 그녀의 특성 중 하나인 축지를 이용했겠지. 내가 그녀의 움직임을 놓친 것은 놀랍지 않은 일이다.
공간을 접어서 이동하는 그녀의 이동기술은 게임 내에서 다섯 손에 꼽힐 정도로 빠른 이동성을 자랑한다.
"……."
바다를 닮은, 푸른빛의 눈동자가 계속해서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무표정한 표정이 경악이라는 글자가 박혀있듯, 계속해서 바뀌었다.
기쁨, 환희, 경악, 의문 같은 감정들이 느껴졌다.
그녀의 눈동자가 내 얼굴에서 천천히 발끝부터 머리까지 훑어보기 시작했다.
"똑, 같아."
그녀가 신음하듯 말했다.
뭐가, 똑같다는 소리야. 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마 빌런에게 죽은 그녀의 남동생…. 남시우와 똑같다고 말하려는 거겠지.
"저기요?"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툭 던지듯 말했다. 나는 말을 던지고도 아차 했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그녀에게 말했다.
"흠흠. 검주, 남다윤 님 맞으시죠? 혹시 저한테 하실 말씀이시라고?"
"혹시."
"네?"
"혹시, 이,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무뚝뚝함을 가정하려 하나 그녀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흔들렸다.
"이시우인데요."
"시우..."
이자는 안 들렸나 보다. 남다윤이 계속해서 시우를 중얼거렸다. 시우, 시우, 시우. 왠지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저기."
나와 남다윤을 가르는 미성이 있었다. 이지아였다.
"혹시 시우를 아시나요?"
"아, 죄송합니다. 제가 아는 사람과 너무나도 닮아서요."
어느새 평정을 찾은 듯, 이지아의 물음에 남다윤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이름까지 같더군요. 시우. 제 남동생의 이름이었습니다."
"아."
이지아가 나지막이 탄식했다. 그녀의 남동생은 빌런에게 죽은 것으로 유명했다.
그녀가 히어로 아카데미를 졸업했던 초창기에 빌런들을 전문적으로 사냥했었는데, 그 이면에 그녀의 남동생이 빌런에게 살해당한 것이 밝혀져 온 국민의 동정을 샀었던 적이 있었다.
"남시우. 제 동생의 이름이었죠. 동생과 같은 이름이 들려서 이시우 님을 봤는데, 제 남동생과 너무 닮아, 저도 모르게 실수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녀가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했다.
"괜찮아요. 뭐, 그럴 수도 있죠."
"아뇨, 실례한 것은 맞습니다…사죄의 의미라기는 뭣하지만, 제가 음식을 대접해도 되겠습니까?"
식사? 나는 잠깐 김하린과 이지아를 바라보았다. 이지아가 기대 어린 표정을 하고 있었고 김하린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마 속으로 검주의 프로필을 떠올리며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겠지.
'나도 마찬가지지만.'
나는 검주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떠올렸다. 그 두 가지는 알기 쉬웠다. 왜냐하면, 로크 커뮤니티에는 검주 빠돌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은 초콜릿과 마카롱. 무표정한 냉혈한처럼 보이지만 그녀는 단것에 사족을 못 쓴다. 취미는 명검이나 보검 등을 수집하는 것.
싫어하는 것은 버섯, 피망, 당근. 식감이 이상하고 맛이 없어서 싫어한다. 해삼이나 말미잘도 싫어한다. 못생겨서.
그리고 주의할 점은...
'동생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건 넘어가도 될 것 같다. 아니, 오히려 내 쪽이 아니라 남다윤이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할 것 같다.
그리고 친해지기 위해서는 빌런에 관한 이야기가 좋았다. 어느 빌런에 약점이 뭐더라, 라고 하면 금방 친해질 수 있다고 했었다.
남다윤이 아련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혹시 고기 좋아하십니까?"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창 사춘기인 소년이 싫어할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
'닮았어.'
남시우.
그녀는 조용히 자신의 남동생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부모님이 죽고 남은 나의 유일한 혈육. 다시는 볼 수 없을 줄 알았던 이름이었다.
'아니, 이건 닮은 정도가 아니라...'
가까이에서 보니까 알겠다. 닮은 정도가 아니었다.
이름이 같았고, 키가 같았다.
그녀는 조용히 남시우를 떠올렸다. 속눈썹이 길었다. 호수 같은 맑은 눈동자로 자신을 올려다보던 소년이었다.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가끔 짓궂은 장난을 치지만, 자신이 힘들었을 때, 누구보다 먼저 달려와서 자신을 위로해 주었던 소년.
시우.
그 이름을 듣고 자신이 고개를 돌렸을 때, 이시우라는 소년이 옆에 갈색 머리의 소녀에게 장난쳤을 때의 표정을 떠올렸다. 남시우가 자신에게 장난쳤을 때 웃던 표정이 이시우라는 소년의 표정과 같았다.
힘들 때면 울상을 짓는 것보다 활짝 웃으며, 괜찮을 거야라며 자신에게 말해주었던 소년이 떠올랐다. 그녀는 이시우라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시우가 자랐으면, 저렇게 자랐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마치 남시우가 이시우로 환생을 한 것처럼.
멈칫.
거기까지 생각에 미치자 온갖 생각이 나뭇가지처럼 뻗어가기 시작했다.
어쩌면. 아주 어쩌면 시우는 환생한 게 아닐까. 자신이 걱정돼서, 이시우라는 사람으로. 그렇다면 말이 된다. 같은 이름. 같은 생김새. 같은 키. 같은 표정...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고 싶어서 식사를 제안했다. 전생의 남시우가 좋아했던 고기. 그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고마워, 누나.
동생이 말했던 말이 이시우라는 소년과 겹쳤다. 말이 다르다. 그러나 표정이 같았다. 그녀는 그 장면을 잠시 멍하니 보았다.
지잉.
핸드폰이 울리며 화면이 켜졌다. 알림이 떴다. 그녀는 핸드폰을 켜다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그녀가 즐겨보는 한 소설의 제목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공작가의 딸로 환생한 내가 전생의 동생이랑 약혼한 것에 대해.'
그녀는 소설의 내용을 떠올렸다. 주인공은 죽어서 공작가의 딸로 태어난다. 그러나 그녀가 환생해서 다 자란 모습은 전생과 똑같은 생김새였다.
그렇다면 시우 역시 소설 속의 주인공과 똑같지 않을까.
그녀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이시우를 바라보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