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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나에게 최면어플을 사용한다-17화 (17/298)

〈 17화 〉 기린의 둥지(3)

* * *

내 말에 설득당한 김하린과 이지아를 이끌고 갔다.

"그럼 마법을 걸게."

이지아가 주문을 외우더니 우리 주변에 무언가 역장 같은 것이 퍼지는 느낌이 들었다. 역장을 슬쩍 만지니 번개가 파직거리며 튀었다.

나는 벽을 향해 손을 뻗었다. 벽이 손을 통과했다. 느껴지는 이질감은 없다. 왠지 모르게 신기한 기분을 느끼며 나는 벽을 통과했다.

벽을 통과하자 다섯 사람 정도 지나가도 문제없을 정도로 거대한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은 묘하게 밝았다. 전방에 20m 정도는 무리 없이 보였다.

"여기가 히든 스테이지..."

이지아가 눈을 반짝이며 통로를 둘러보았다. 나는 김하린의 뒤로 걸어갔다.

"아까 설명을 했지만…. 이 정도의 마력이라면. 사실 둘 중 하나야. 거의 숨이 끊어지기 직전이던가, 엄청나게 약하던가."

"…설마?"

"아마도 이 던전의 특성상 전자일 확률이 높지. 그러니까 하린이가 미리 광익을 전개해서 앞에서 막아줘."

"……."

순간 김하린이 나를 흘겨봤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더니 자신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 하린이의 광익 정도면 충분히 막을 수 있을 정도니까. 어차피 하린이의 광익으로 막을 수 없으면 전멸인데 내가 여길 왔겠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밀어 넣었다. 그녀가 한숨을 쉬며 앞으로 나아갔다.

한 10m 즈음 걸었을까. 감각에 무언가가 걸린 느낌이었다.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닌지 김하린과 이지아 역시 표정이 굳었다.

"하린아, 부탁해."

내 말에 김하린이 눈을 감았다.

파앗!

빛무리가 한순간 시야를 장악했다. 김하린의 등 뒤에 빛으로 짜인 날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 둘, 셋. 세 쌍의 광익이 만들어졌다. 그것이 그녀의 고유 특성. 마치 천사가 강림한듯한 광경이었다.

펄럭.

빛으로 이루어진 날개가 발광하며, 활짝 하고 펴졌다.

"우와 그게 광익이야? 나 말로만 들었는데, 진짜 소문대로 이쁘다."

이지아가 김하린이 펴낸 광익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김하린의 광익은 확실히 이뻤다. 게임 내에서도 여자 캐릭터들이 모두 관심을 내보일 정도로 인기가 있었지.

"으응."

김하린이 이지아의 말에 멋쩍어하며 답했다.

그때였다.

번쩍!

"어?"

이지아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나 역시 순간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았다.

시야에 끝에서.

노란빛의 뿔이 솟은 도마뱀 같은 존재가 뿔에서 번개를 발사하고 있었다. 섬광이 뿜어졌다.

파아앗!

그에 맞춰 김하린의 광익이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빛이 찬란하게 반짝이며 방벽같은 것을 만들어냈다. 방벽이 우리를 감싸며, 번개를 그대로 흡수하기 시작했다.

"으, 으아아……. 시, 시우야, 바, 방금 거..."

이지아가 패닉에 빠졌다. 그러나 이지아 역시 어느새 대지의 방패를 세워 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패닉에 빠졌음에도 역상성 속성의 방패를 세우다니, 역시 인권 캐 중 하나다운 대처였다.

나도 안전하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순간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패닉에 빠질 뻔했다. 나는 재빠르게 평온의 가면을 썼다.

'방금 거, 장난 아닌데...'

순간 치솟았던 불안함이 한순간에 가라앉는다.

그런데도 불안했다.

평온의 가면은 부정적인 감정이나 긍정적인 감정을 강제적으로 끌어 내려서 평온하게 만들지만, 그 감정이 너무 날뛸 경우에는 완전히 가라앉히는 것이 불가능했다.

무엇보다도 평온의 가면을 벗게 되는 순간 좀 더 감정이 날뛰게 된다.

나는 평온의 가면을 쓴 상태에서 창술사의 가면을 '덧' 씌웠다. 가면을 중첩한다.

이렇게 되면 유지 시간이 대폭 줄어 든다. 그 시간은 수십 분 단위에서 1분도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급격하게 줄어들어 잘 쓰지 않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창술사의 가면을 쓴다면 제정신을 유지할지 미지수였다. 힘이 솟으며, 감각이 좀 더 날카로워졌다.

가방에서 막대를 꺼내, 마력을 불어넣었다.

마력을 불어넣자 찰칵, 소리를 내며 막대기에서 날이 솟으며 봉 부분이 길어졌다. 나는 마력의 대부분을 단창에 불어 넣으며 창을 날렸다.

푸욱!

기분 나쁜 소리를 동반하며 창이 도마뱀의 입으로 빨려 들어가듯 꽂힌다. 창은 그대로 천둥 도마뱀의 입부터 꼬리까지 관통했다. 그 장면을 보고 이지아가 마법을 외기 시작했다. 김하린이 광익을 펼쳐 쏜살같이 도마뱀을 향해 달려들었다.

도마뱀은 조금 전의 일격으로 모든 힘을 소진했는지 김하린의 검이 내려치자 반항 한번 하지 못하고 목이 허공으로 솟았다.

"허억. 허억."

김하린이 숨을 헐떡였다.

나는 멍하니 방금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게임 내에서 이론으로만 언급되었었던 공략법이었다. 실제로 쓰는 것은 일정이 겹치지 않아 불가능했지만, 고인 유저들도 모두가 할 수만 있다면 가장 빠른 성장 루트 중 하나로 꼽았다.

실제로 김하린은 천둥 도마뱀의 일격을 버텼으니까 이론은 맞았다. 생명의 위기는 느꼈지만…. 이론과 현실이 꽤 다르다는 것을 체감했다.

'하지만 공략은 됐지.'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머리를 한번 쓸었더니, 땀에 젖어 떨어졌다. 식은땀이었다.

나는 이지아에게 다가갔다. 이지아는 아직도 패닉에 빠져 있었다. 나는 땀이 묻지 않은 손으로 이지아의 손을 잡아줬다. 패닉에 빠진 사람에게 손을 잡아주면 굉장히 안정감을 줄 수 있다고 어디서 들어봤기 때문이다.

"괜찮아?"

"어, 응. 어, 이제 좀 괜찮아졌어.

내가 손을 잡아준 덕분인지 이지아는 다행히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는 깊게 심호흡을 하며 숨을 고르고는 심신을 안정시켰다. 고등학생답지 않은 침착함이었다. 나와 이지아는 천천히 통로의 끝을 갔다.

통로의 끝을 가니 널찍한 공간이 나타났다. 과장을 조금 하자면 축구를 해도 괜찮을 넓이. 그 중앙에는 제단이 있었고, 제단 위에는 상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방금 일격을 내보내고 목이 잘린 천둥 도마뱀이 있었다.

나는 이지아와 김하린과 함께 보상을 확인했다.

보상 중에는 보석이나 금화 따위들이 있었지만 이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나는 시선을 돌렸다.

어지간한 사전들은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두툼한 책과 푸른빛으로 빛나는 단검. 그리고 내 주먹만 한 크기의 마정석. 느껴지는 마력의 농도로 보아 대략 10억 원 정도의 값어치를 할 것이다.

나는 지식 열람을 이용해 2개의 아이템을 모두 살폈다.

[번갯불의 표식]

번개의 힘이 잠들어 있는 단검.

­주문 : 라이트닝 쇼크

­번개 속성 지배력 상승.

[뇌령신공]

사령四?, 기린을 본떠 만든 무공.

뇌광비검술, 뇌령심법, 풍뢰질주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혹시나 해 살펴봤는데 모두 게임과 같았다.

전부 훌륭한 보상들이다. 번갯불의 표식은 유저들이 평하기로 초반에 엄청 좋고, 중반에 좋은 무기이고, 뇌령신공에 속하는 경신법, 풍뢰질주식은 게임 내에서 최속의 경신법이라고 평가되는 무공서다.

다른 것들은 다 필요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은 뇌령신공. 돈도 있으면 좋다지만 저건 억만금을 줘도 구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보상은 어떻게 나눌까?"

"셋이서 나누자. 지아도 대지의 방패를 만들어서 공격을 막았으니까."

김하린이 말하고 내가 대답했다. 내 대답에 이지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나 김하린 역시 내 의견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 하지만 난 정작 한 게 없는데."

이지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미안하면 나중에 마도구 같은 거 하나 만들어 주던가."

"응, 나중에 하나 만들어줘."

내 말에 김하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그럼 보상은 어떻게 나눌래? 다들 원하는 거 있어?"

"나는 단검으로 고를게."

김하린이 내 말에 냉큼 말했다.

"그럼 나는 책을 고를게."

나도 냉큼 책을 집었다. 무게가 상당했다. 나는 책을 가방에 담았다. 자연스레 이지아는 마정석을 집었다. 금화와 보석은 따로 챙겨서 나중에 분배하기로 했다.

보상을 모두 챙긴 우리는 미련 없이 호텔로 돌아왔다.

***

호텔로 돌아온 즉시 무공서를 탐독했다. 게임 속 세계로 들어온 영향인지, 특전의 효과인지, 아니면 어려져서인지 책 한 권을 머릿속에 넣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두께가 두께인지라 꼬박 이틀이 걸렸다. 하루면 충분했지만, 중간에 천둥새를 수색하러 움직였기 때문이다.

천둥새의 행방을 알기 위해 군인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봤지만, 천둥새는 며칠 전부터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래도 먼저 잡힌 것 같단 말이야.'

나는 동굴 입구에 있는 천둥새 사체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내 생각을 오늘 수색을 끝마치며 말했는데 이지아와 김하린 역시 동의했다.

­역시 그렇지?

­이번 임무가 내 학창 생활 중 가장 힘들 줄 알았는데, 가장 쉽고 달달한 임무가 됐네.

이번 임무는 너무 날로 먹는 것 같았다. 기린의 둥지도 그렇고, 임무도 그렇고. 보상이 안 그래도 달달한데 천둥새 토벌 즈음 되는 임무니, 교장한테도 좋은 물건을 받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무공서를 펼쳤다.

'생각보다 엄청 어려워.'

솔직히 말하자면 쉽게 본 경향도 있었다. 부모님께 배운 마나 연공법은 굉장히 쉬워서 만만하게 봤었는데 뇌령신공는 난해했다.

이걸 익히기 위해서는 꽤 많은 수고를 들여야 할 테지. 하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지식 열람의 특전이 있으니까.

나는 지식 열람을 발동했다. 기이하고 난해한 말들이 내가 이해하기 쉽게 변형되었다. 나는 미리 꺼내놓은 노트에 그것을 하나하나 적어넣었다.

컴퓨터는 이용하지 않는다. 이능과 현대 문물이 합쳐진 시대에서는 '해킹'과 관련된 고유 특성이 있는 인물이 있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지만 조심해서 나쁜 것은 없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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