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 기린의 둥지(2)
* * *
우리는 천둥새가 목격된 산으로 향했다. 근처에는 군인들과 헌터들이 무기를 들고 경계를 서고 있었다. 아마 민간인들이 혹시나 들어갈까 봐 경계 같은 걸 서고 있어서 그렇겠지.
"정지! 정지! 정지!"
군인이 우리에게 말했다. 나는 미리 준비해둔 생도증을 꺼내 군인이 볼 수 있도록 보여줬다.
"아, 아카데미 생도시군요. 임무 때문에 오셨습니까?"
"예. 임무 때문에 왔는데 들어갈 수 있을까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군인이 잠시 생도증을 검사하더니 무전기에 무어라 말을 했다. 잠시 기다리자 군인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상부에서 허락이 떨어졌습니다. 들어가셔도 됩니다."
"네, 고생하세요~"
산에 들어간 지 10분 즈음 됐을 때, 나는 뒤에서 나를 졸졸 따라오는 이지아와 김하린에게 주의해야 하는 점을 다시 한번 말했다..
"천둥새는 몸에 번개를 두르고 있어. 이건 천둥새가 조절할 수 없으니까 천둥소리가 들리면 천둥새가 근처에 있다는 거니까 천둥소리가 들리면 항상 긴장하고."
"응."
"그리고 어쩌다가, 아주 어쩌다가 만약 여의치 않게 우리가 흩어지게 돼서 천둥새랑 홀로 싸우게 된다면."
"이걸 던지라는 거지? 근데 이게 효과가 있을까."
내 말에 이지아가 미리 나눠준 상자를 들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거기에 천둥새가 환장할 물건이 들어있거든. 그러니까 그걸 던지면 천둥새가 도망갈 거야."
"그...래?"
김하린이 미심쩍다는 듯이 나를 보았다. 하지만 이내 이곳에서 가장 안전한 게 자신이란 걸 깨달았는지 눈치를 거뒀다.
우리는 숲 안쪽으로 들어갔다. 천둥새가 한바탕 난리 쳐서인지 몬스터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30분 즈음 걸어 다녔을까.
우리의 눈앞에 몬스터 한 마리가 보였다. 푸른색의 번개가 갈기의 형상을 이루는 검은색의 말.
"와, 저거 천둥마 아니야?"
이지아가 놀라워하며 말했다. 천둥마는 보통 D급 난이도 토벌에 이름을 올리는 녀석인데 보통 아카데미 생들이 잡는 녀석이라 생각하면 된다. 머리에 박힌 마정석이 꽤 값지게 나가서 인기 있는 몬스터다.
천둥마가 이 근처에 있다면 근처 어딘가에 기린의 던전이 있다는 이야기인데. 게임 속 지형과 현실의 지형이 달라서 좀 헤매야 할 것 같다.
"진짜 시우 말대로 여기에 뭐 있나 봐."
"그러게요. 천둥마는 뇌기가 많은 데에 서식하는 거로 유명한데……."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이지아와 미심쩍어하는 김하린. 나는 준비해둔 가방에서 30cm정도의 일자 형태의 막대를 꺼냈다. 막대에 마력을 불어넣자, 창! 하는 소리가 들리며 1m 남짓한 단창으로 변했다.
"시우야..?"
"잠깐만.
쉿.
나는 검지를 입에 대고서 창술사의 가면을 썼다. 가면의 효능으로 마력을 제외한 모든 능력치가 1씩 오른다. 로크에는 한가지 특징이 있다. 스텟이 10의 배수가 될 때마다 효능이 껑충껑충 뛰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근력의 능력치가 9가 되었을 때, 300kg의 바벨을 무리 없이 들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10의 능력치를 가지게 되면 500kg도 문제없이 들 수 있게 된다.
숫자로 변한 것은 고작 1이었지만, 체감되는 변화는 고작 1이 아니었다. 대략 가면을 쓰기 전보다 체감상 배에 달하는 근력이 느껴졌다.
"흡!"
짧게 호흡하고 단창을 내던졌다. 내던져진 창이 마정석채로 뇌를 꿰뚫었다. 뇌를 관통당하고 살아날 정도로 강한 마수는 별로 없다. 그리고 천둥마는 절대 그런 괴물이 아니고.
마정석이 아깝기는 하지만 실수로 다른 곳을 노려서 죽이지 못하면 귀찮으니 어쩔 수 없다. 천둥마는 혼자 돌아다니지만, 위협에 처하면 구슬프게 운다. 그렇게 되면 그 울음소리를 들은 다른 천둥 몬스터들이 순식간에 이쪽으로 달려오게 된다.
"잠깐만."
일행을 두고 천둥마 근처로 다가갔다. 천둥마가 나타난 장소에서 오른쪽으로 쭉 가면 바위 하나가 나오는데 거기 근처에 기린의 둥지가 있다.
나는 천둥마한테 다가가서 두 조각으로 박살 난 마정석을 꺼냈다. 마력을 소량 정도 흘려보내니 번개 속성을 띄는 마력이 파직하면서 튀어 올랐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번개가 튀는 방향이 오른쪽이었던 것. 번개 자체가 무언가에 이끌리고 있다는 증거였다.
나는 마정석을 버렸다. 박살이 난 마정석은 다시는 쓸 수 없었다.
"저쪽에 번개가 이끌리는 뭔가가 있는데, 가볼래?"
"……던전 이겠지?"
이지아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곳에 보스는 별로 어렵지 않다.
물론 이 전제는 김하린이 있다는 전제다. 아무리 뒤지기 일보 직전이라지만 우리가 갈 곳은 명색이 기린의 던전. 최상위 보스 중 하나인 사령四?의 일원인 기린이 머물던 곳이라 어지간한 던전들보다 힘들 것이다.
'정사'대로 흘러간다면 주인공이 혼자 그 일격을 버티기 위해서는 1학년 후반부에나 가능하지만 김하린이라는 치트키가 있어서 문제는 없다.
"입구만 잠시 보고 오자. 만약 번개 속성 몬스터라면 우리에겐 하린이가 있잖아."
"아니면...?"
"아니면 그냥 도망가지 뭐."
이지아가 내 말에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번개의 마력이 튀기는 쪽으로 다가갔다.
그쪽으로 가니 동굴 비스무리한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역시 던전이네."
이지아가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우리는 조용히 안쪽으로 들어갔다. 동굴을 5분쯤 탐색하자 거대한 시체가 하나 나왔다.
"천둥새...?"
천둥새의 시체였다. 검 따위에 갈기갈기 찢어져 있는 듯, 너덜너덜한 시체.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원숭이의 형태를 가진 천둥원, 여우의 형태를 가진 천둥호 등등. 많은 천둥 몬스터 군들의 시체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내가 이곳 기린의 던전을 오고 싶어 했던 이유였다. 김하린의 광익이 아무리 사기성이 뛰어나다지만 김하린 자체가 뛰어나지 않아 한계성이 명확하다.
우리가 보조한다고 치더라도 김하린 혼자서는 이 던전을 뚫을 수 없다. 하지만 이미 대부분의 몬스터가 죽어있고, 간신히 숨만 쉬고 있는 보스를 처리한다고 하면 이야기는 많이 달라진다. 이런 꿀 같은 던전 흔치 않다.
"아무래도 누군가 이미 온 것 같은데."
김하린이 말을 흐리며 말했다. 사실 나도 이곳에 먼저 방문한 자가 누군지는 모른다. 던전에 여기저기 새겨진 흔적으로 유저들이 추측한 바로는 현재 이 근처에 있다고 알려진 '검주'이거나 빌런 측의 인물 '검령' 중 하나라고 추측할 뿐이다.
"그래도 마정석이라도 챙기자."
***
우리는 던전을 계속해서 탐험해 나갔다. 몬스터를 상대하는 일은 없었지만, 중간중간 몬스터들의 시체를 확인하고 마정석을 빼는 작업 때문에 시간이 좀 걸렸다.
"정말 대단해…… 대체 얼마나 강해야 이런 광경을 만들 수 있을까."
김하린이 감탄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와 이지아도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중격에 영웅들조차도 혼자 쉬이 상대할 수 없는 몬스터들의 시체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가장 압권인 것은 10m 크기에 이르는 하얀색 곰이 쓰러져 있었다. 상격의 영웅들도 혼자 상대할 수 없는 보스급의 몬스터, 천둥 군주의 시체였다.
"마정석은 없네."
이지아가 아쉬운 듯 중얼거렸다. 그건 좀 심한 욕심이었다.
천둥 군주쯤 되는 몬스터의 마정석은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거래되며 가장 최근에 거래된 천둥 군주의 마정석 가격이 70억에 근접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양심이 없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우리는 안쪽으로 걸어갔다. 거기에는 텅텅 빈 제단이 보였다. 개봉된 상태의 상자들. 이미 이곳을 먼저 발견한 사람이 쓸어갔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역시 전부 가져갔어."
이지아가 상자들을 다 훑어보며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뭐, 그렇겠죠. 천둥 군주 정도의 몬스터를 잡았으니 못해도 A등급의 유물이나 보상이 있었을 테니."
"그렇겠지. 그 정도 되는 유물이면 못해도 백억은 넘어갈 테니까."
나는 주변을 살폈다. 여기 어딘가에 있을 텐데. 나는 아까 시체들 사이를 뒤져 얻은 마정석 중 가장 작은 마정석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마력을 흘리자 번개가 파직하면서 오른쪽으로 튀었다. 오른쪽은 벽 부분이었다.
"응? 왜 그래 시우야?"
"……."
나는 마도의 업을 모방하는 가면을 썼다. 가면을 쓰자 몸속의 마나가 거꾸로 역류하기 시작한다. 술식을 짜냈다. 사용하는 수식은 번갯불.
파지직!
하급 마법에 속하는 번개 속성의 마법이 내 손에 펼쳐졌다. 나는 그 마법을 가로막힌 벽에 쏘아 보냈다. 그러자 놀랍게도 번갯불은 벽을 넘어 통과했다.
"엇..?"
나를 지켜보던 김하린과 이지아가 놀라워했다.
'게임 대로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이걸 발견한 건 우연이었다. 엄청난 던전을 발견한 것 같았는데 아무것도 없어서 화풀이로 번개 속성 공격을 했더니 그대로 통과해 호기심에 들어가 봤던 것. 다만 들어가기 위해서는 번개를 몸에 두르고 있어야 한다. 아니면 번개 속성력을 이용하거나.
"히든 스테이지 같네."
"히든 스테이지?"
내 말에 이지아가 반문했다. 히든 스테이지는 말 그대로 숨겨진 보상 방이다. 다만 여기서 생성되는 보스와 보상은 전부 랜덤이다.
던전보다 더 좋은 보상과 그것을 지키는 '파수꾼'이 있기 때문이다.
파수꾼은 보상에 질에 따라 달라지는데 하급으로 판정된 던전의 히든 스테이지는 조금 전 시체가 된 천둥 군주와 비슷한 격을 지닌 보스가 나올 때도 있다.
"그럼 아직 보상이 있는 거야?"
내 말에 이지아가 혹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김하린은 경계하는 표정을 지었다. 보상이 있다는 것은 다르게 말하자면 그 보상을 지키는 파수꾼이 있다는 말과 동의어니까.
천둥 군주보다 더 강한 몬스터라니. 우리 3명이 꿍쳐둔 힘을 꺼내어 완벽하게 합을 맞춰도 10초도 안 돼서 전멸할 자신이 있다. 아니, 10초도 너무 많다.
그러나 이 스테이지는 좀 다르다.
이곳은 본디 기린의 둥지. 사령의 일원인 기린이 어렸을 적, 몰래 도망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방이다. 기린이 자라나면서 그가 떠나지 않았다면 그는 이곳의 파수꾼이 되어 우리를 맞아주었겠지만, 지금은 없다.
즉, 날로 먹을 수 있는 던전이다.
'이렇게 날로 먹을 기회는 흔치 않아….'
다만 이 던전을 헤집은 누군가에 의해 상처를 입은 채 그곳에서 쉬고 있는 몬스터가 있다. 그 몬스터는 일격만 막는다면 이지아가 근접전으로 싸워서 이길 정도로 쇠약해져 있다.
그리고 여기서 그 일격을 막을 능력을 지닌 것은 김하린 뿐.
"하지만 히든 스테이지에 파수꾼은 보통 던전의 보스보다 강하잖아."
김하린이 다급하게 말했다. 이지아가 김하린의 말에 흠칫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아냐."
나는 한 차례 김하린의 말을 부정하고는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입을 털어야 그녀가 앞장서서 갈 수 있을까.
"히든 스테이지가 보통 던전을 지키는 보스보다는 강하지만 그건 던전에 내포된 마나량에 따라 달라. 그리고 이 던전에 내포된 마나량은 천둥 군주나 지금껏 널린 천둥 몬스터 군에 거의 필적해."
"무슨 소리야...?"
김하린이 내게 물었다.
'나도 몰라.'
나도 내가 뭘 말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너희가 어떻게 이해를 할까.
다만 지난 한 달간 지식 열람을 보면서 되는대로 지껄여 보았다. 원래 거짓말을 할 때는 적당한 진실을 섞어야 한다.
"던전 내에 존재하는 마나는 항상 일정하지."
"그건 나도 알아."
"그리고 몬스터들에게는 각자 마나 값이란 것이 존재해. 들어가기 전에는 알 수 없지만, 들어오고 나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몬스터들의 마나 값을 모조리 더하고 던전이 가진 마나 값을 뺀다면 히든 스테이지에 보스는 아마 우리가 어떻게든 이길 수 있는 수준이야."
"그걸 다 계산했다고?"
김하린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마나 값이란 것은 보통 몬스터마다 다르다. 천둥새가 가진 마나가 평균 500이라 치면 던전이 1만이라는 마나를 가졌을 때, 천둥새만 나온다는 가정하에 던전에는 20마리에 천둥새가 가졌다는 결과가 나온다.
그러나 몬스터마다 내포한 마나가 다르고, 세월이 다르다. 인간도 모든 인류가 가진 개성과 재능, 생김새가 다르듯이 말이다. 이걸 슥 보고 계산하는 것은 극히 일부다.
마나 값 역시 저렇게 간단하게 뭉뚱그릴 수 있을 만한 숫자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일일이 다 계산할 수 있을까.
하지만 여기서 쫄릴수는 없다.
이 히든 스테이지는 나랑 이지아 둘이서 깰 수는 없다. 광익을 가진 김하린이 필요했다.
나는 내 머리를 툭툭 두들기며 말했다.
"이론 1위는 거저 딴 게 아니거든."
미안하지만 특성빨로 거저 땄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