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여자들이 나에게 최면어플을 사용한다-12화 (12/298)

〈 12화 〉 이지아(7)

* * *

"……"

나는 잠깐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봤다. 임나연의 공격을 흘리는 이지아. 이지아의 특성을 아무리 떠올려봐도 이지아가 가질 수 없는 특성이었다.

저 정도로 완벽하게 흘리려면 최소 A급 이상의 특성이 있어야 했다. 그것도 전투계와 관련된. 그러나 이지아는 육체 쪽의 재능이 있지는 않다. 그렇다면...

'나만 스펙업하는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해보지만 역시 이상했다. 저건 천의 가면의 효과가 아니다. 저게 천의 가면 효과라면 천의 가면은 최소 Ex등급을 받았어야 했으니까.

S급에 준하는 특성을 페널티를 받는다고 해도 주고받을 수 있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점이다. 마력 제어능력과 마력의 용적은 상당하지만, 무기술이 부족한 임나연이 내 천수를 받는다면, 바로 용사들 바로 밑까지 치고 올라갈 괴물이 될 테고, 이지아가 천수가 아니라 지식열람을 얻었으면 어마무시한 대마법사가 됐을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관계도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봐야 할 것 같다.

"킥."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김하린이 희미하게 웃는 소리를 내었다. 보통의 학생들이었다면 순간 잘 못 들었겠지, 라고 생각될 정도로 아주 작게. 하긴 김하린은 임나연을 싫어하니까. 아니, 싫어한다. 정도가 아니라, 김하린은 임나연을 혐오한다.

아마 지금쯤 한 달도 안 된 이지아한테 져서 된통 좋아라 하고 있을 거다. 이지아가 임나연을 이긴 건 임나연이 방심한 탓도 있고 마지막에 굳이 무기로 쳐서 이지아를 쓰러트리려 했으니까.

나 같으면 멀리서 검기 같은 걸 슉슉 날린 거 나 해서 승리를 했을 텐데.

"지아가 무술도 할 줄 알았구나."

김하린이 묘하게 들떠있고 목소리를 숨기며 감탄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게... 나도 처음 알았어."

"그러면 최근에 얻은 특성인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김하린이 이지아를 바라봤다. 이지아의 근처에는 어느새 애들이 잔뜩 몰려서 떠들고 있었다.

"와, 지아야 마지막의 그거 뭐야?"

"장학생은 장학생인 이유가 있구나..."

라는 둥의 감탄을 터트리고 있었다. 임나연이 솔직히 좀 방심한 감이 없잖아 있었는데 그걸 포함해서라도 이지아가 이긴 것은 이변 그 자체였다.

대외적으로 마법을 익힌 지 약 한 달밖에 안 됐는데, 이지아가 임나연을 쓰러트린 거니까. 이렇게 말하니 임나연이 없어 보이는데, 임나연의 랭크는 나보다도 높다.

나는 엉덩이를 툭툭 털며 일어났다. 다름이 아니라 이제 대련이 끝나서 강한 자가 애들을 모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을 다섯 열로 세우고 줄마다 스물다섯 명씩 세워 줄을 세웠다.

"오늘 대련을 겪으면서 많은 것을 느꼈을 거다. 오늘 대련을 하면서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했나, 혹은 고쳐야 할 점들을 적도록. 성적에 반영되니 잘 써야 할 것이다."

그놈의 느낀 점을 쓰라는 건 여기도 변치 않는구나.

"오늘 수업은 여기서 끝이다. 다들 해산하도록."

강한자의 말에 다들 뿔뿔이 흩어졌다. 아이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혼자 가는 애들도 있었고.

"야, 오늘 버거 가게 새로 생겼는데 갈래?"

"오. 레알? 당연히 가야지."

친구들과 모여서 가거나 pc방을 가자며 주변 애들을 꾀는 애들이 있었다. 그들을 한심하게 보며 훈련실로 가는 학생도 있었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이지아가 나에게 다가왔다.

"시우야 나 오늘 멋있었지?"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그리며 내게 소곤거리며 말했다. 아무래도 임나연을 이긴 게 눈치가 보여서 그런가 싶다. 그런데 다들 초인이라 귀가 밝을 텐데.

이지아의 말에 적당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러고 보니 나연이 공격은 어떻게 막았던 거야?"

"아, 그거…. 알려줄까?"

"어...? 어, 아, 알려줘."

핥짝.

이지아가 혀로 입술을 핥으면서 나를 요염한 눈으로 바라봤다. 눈빛이 성욕으로 번들거렸다.

순간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그럼 있다가 나랑 같이 내 부실에 가자."

"그, 그럴까?"

떨떠름하게 답했다. 부실에 들어가는 순간 최면에 걸릴 텐데.

그녀와의 행위가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아니, 오히려 좋았다. 하지만 다음 주부터 임무 주간이다. 공략법이 있다지만, 최대한 훈련해서 스텟을 올릴 수 있다면 올리고 싶었다. 하지만 관계도에 대해서 알려면 이지아와 섹스를 해야 하지 않을까.

'음.'

고민할 문제가 아닌데 갑자기 고민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훈련을 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훈련이나 하자. 섹스는 일순간의 쾌락이지만, 훈련은 목숨이 달린 문제다.

……그러니까 지금은 훈련해야 하는 시기이다. 여자에 한눈을 팔 시간은 없었다.

"그럼 있다가 부실에 같이 갈까?"

"응, 부실에 가서 '둘이' 오붓하게 이야기 하자아."

……하지만 엔딩을 보기 위해서는 관계도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나를 향해 눈웃음을 치는 지아를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임나연 님의 행동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임나연의 전속 코치가 된 3학년 최 쌤, 아니 최유나가 차분하게 동영상을 보며 말했다.

동영상에서 자신의 검기가 이지아에게 도달하기 직전에서 멈추었다. 이 뒤에는 이지아가 차분하게 지팡이로 임나연의 검격을 흘혔다.

이 순간 임나연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예상치 못한 이지아의 숙련도. 그것은 마치 이시우의 것과 닮았으니까. 알고도 당하면 당황할 수밖에 없는데, 모른 상태에서 당했으니 당연한 반응이기는 했다.

당황한 임나연은 순간 페이스를 잃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마법의 향현.

라이트닝 스트라이크. 버닝 임팩트. 프리즈 볼트.

한 호흡 만에 마법이 연달아 발동된다. 요동치지는 마나에 임나연은 그에 따라 기갑을 끌어올렸다. 임나연의 일격은 빗나갔지만, 임나연은 여유가 있었다. 거리를 벌려 공격하면.

"아마 임나연 님은 거리를 벌려서 이길 생각을 하셨겠지요."

"……네"

최유나의 말에 임나연은 긍정했다. 마법에 맞기 전까지 그렇게 생각했다.

콰아앙!

동영상 속에 이지아의 마법에 맞고 커다란 폭음이 동반된다. 임나연은 기갑으로 방어했지만, 미처 방어하지 못한 허리 부분이 아직도 욱신거렸다.

그녀의 마법들의 위력은 그녀의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지금까지의 마법은 마치 가짜였다는 듯, 격이 다른 위력을 동반했다.

동영상으로 보니 확연히 달랐다. 주변에 넘실거리지는 마나. 마법에 크기. 그리고 위력.

"이지아 씨는 여기 오기 전까지, 제대로 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건 아시죠?"

"응, 지아는 말해주지 않았지만 여기저기서 들리니까."

임나연은 아카데미의 첫날을 떠올렸다. 자신감 없이 주눅 든 표 정한 이지아.

그리고 그녀를 보며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던 학생들.

특례로 입학한 주제에 장학생까지 차지한 인물. 도대체 어떤 인물이길래 저런 혜택을 받는 걸까. 대충 그런 이야기였다.

그리고 우연히 듣게 된 2학년에 올라와 있는 이지아의 언니의 말.

­하, 집에서 나갔나 싶더니 왜 여기에 와 있는 거야?

­그리고 도대체 무슨 수를 써서, 여기에 들어온 거야? 그것도 장학생으로. 몸이라도 팔았냐?

무례하고 천박한 말이었다. 하지만 이지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우물거릴 뿐. 아마 자신이 우연히 봤던 것처럼 등장하지 않았다면 더 심한 모욕을 들었으리라.

"엄청 놀라운 성장이에요. 아마 그녀는 마도와 관련된 특성이 있었으나, 그 재능에 걸맞은 페널티를 가지고 있었겠지요."

"페널티요...?"

"네, 정확하게는 페널티 특성입니다. 가끔 어마어마한 능력을 자랑하는 특성들이 가진 특징들이죠. 너무 뛰어난 잠재력이 가진 특징들이기도 합니다."

최유나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페널티 특성으로 인해 처음에 빛을 보지 못했던 인물들이 떠올랐다. 그들이 가진 하나하나의 업적을 되새김질해 봤다.

현대에서 10대, 20대, 30대에게 가장 유명한 '검주'부터 거악巨?중 하나인 나태의 산양을 죽이는 데 크게 공헌한 '무희', 20년 전, 민간인들을 지키기 위하여 10명의 기사와 함께 약 하루 동안 1만의 몬스터를 막은 '신념의 방패'.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업적을 가진 인물들이었다. 그렇다면 이지아 역시 범상치 않은 특성이 있겠지. 아니, 이미 범상치가 않다.

그동안 그녀가 살아오면서 마법과 관련된 지식이 축적되었다고는 해도...방심했다고는 하나 정식으로 마법을 배운지 한 달 만에 임나연을 쓰러트렸다. 당장 1년 뒤만 해도 적수를 찾기 힘드리라.

"혹, 주제넘은 발언일 수도 있지만..."

"네?"

"이지아와 친하게 지내십시오."

"이미 지아는 저랑 완전 짱친인데."

"더 친해지셔도 좋습니다. 아마 이지아 씨는 영웅 계의 한 획을 그을 존재가 될지 모르니까요."

"그래요? 그럼 최쌤이 보기에는 시우는 어때요?"

"이시우 씨요?"

눈을 반짝거리며 묻는 임나연에게 말에 최유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카데미 설립 이래, 한 번도 만점이 없었던 필기 성적. 비상한 머리 하나로도 장학금을 받을 수 있지만 사실 그것보다 더 무서운 건.

'볼 수가 없었지.'

최유나는 처음 이시우를 봤을 때 떠올렸다. 아카데미에서 만점 받은 후배를 보기 위해 합동 수련 때 잠시 봤었던 이시우. 최유나는 그에게 자신의 고유 특성을 사용했다.

고유 특성, 관찰안. 상대를 관찰해서 어떤 부분을 트레이닝해야 효율적인가, 당사자의 재능이 얼마나 개화되었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 그녀의 고유 특성이었다.

그저 호기심이었다. 혹시 육체적으로도 뛰어난 인물이라면 회사에 강력히 추천해서 데려가면 그것만으로도 이득이 되니까, 하는 속물적인 계산도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고유 특성을 이용하는 순간.

그녀는 보았다.

그의 주변에 떠다니는 하얀색의 가면들을.

해탈한 듯, 평안한 표정을 보이는 가면. 무언가에 열중하는듯한 표정을 짓는 가면. 편안해 보이는 표정을 짓는 가면. 표정에 변화가 없는 가면, 냉철한 표정을 짓는 가면…….

가면, 가면, 가면, 가면, 가면.

가면밖에 볼 수 없었다.

그녀는 이시우를 볼 수 없었다. 그것을 느꼈을 때, 처음 떠오른 감정은 지독한 괴리감을 느꼈다.

그 가면들이 한순간 자신을 향해 휙, 하고 시선을 보내는 장면이 떠올랐다. 아직도 그 장면을 떠올리면 식은땀이 흐른다.

그녀의 특성이 통하지 않은 인물은 아카데미의 교장인, 요정 여왕뿐이었다. 그녀는 이해할 수 있다. 환상종이라 일컬어지는 요정족을 이끄는 한 종족의 장이자, 800년의 역사를 가진 살아 움직이는 마법 병기니까.

……그러나 이시우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나름의 인맥을 동원하여 알아본 결과, 이시우는 너무 평범했다. 너무나도 평범하면서도. 너무나도 이상한 소년.

"최 쌤...?"

"네? 아, 이시우 씨 말이죠."

임나연의 말에 상념에서 깨어난 그녀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이시우 씨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대인전의 달인이라고 정리되겠군요."

"달인이요?"

"네. 그는 대인전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 임나연 님도 아시죠? 이시우 씨와 무기를 맞대면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휘둘러지는 현상."

"네, 보기만 하기는 했는데도, 좀 암담하더라고요."

"그는 그것만으로도 대인전에서 적수를 찾기 힘들 겁니다. 그와 근접해서 싸우자니 상대는 이시우 씨와 무기를 맞대기를 꺼릴 테고 소극적으로 나오겠죠. 이시우 씨가 버티지 못할 극단적으로 강한 하력으로 찍어누르거나 원거리에서 공격하는 것으로 그의 체력을 빼앗은 후 공격하지 않는 이상 임나연 님이 이시우 씨를 이기긴 힘들 겁니다."

"음, 역시 그런가요."

"네, 다만."

"다만...?"

최유나가 말꼬리를 흐렸다.

"그가 고유 특성을 개화하기 전까지는 그럴 겁니다. 그가 어떤 고유 특성을 가질지는 모르나…. 분명 성가시거나 어마어마한 특성을 갖겠죠."

"그러고 보니 시우는 고유 특성을 아직 개화하지 못해냈죠?"

"네. 보통 고유 특성은 어릴 때 깨우치게 됩니다. 하지만 이따금 그것을 늦게 깨우치는 사람들이 있지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한국의 삼대 길드 중 하나인 창천. 그곳의 길드장이신 광성자님도 특성을 늦게 개화하셨습니다."

"아, 한종우 아버님이요."

"네, 그렇습니다. 광성자께서도 특성을 늦게 깨우치셨으나 그분은 고유 특성을 깨우치시기 전부터 비범하셨습니다. 아마 이시우 씨도 같은 케이스겠죠."

"그것 말고는 없나요?"

"네, 없습니다. 만약 만화처럼, 그가 다른 세계에서 뚝 떨어지듯이 온 게 아닌 이상엔 말이죠."

장난스레 말하는 최유나의 말에 임나연이 킥킥거리며 웃었다.

* *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