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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나에게 최면어플을 사용한다-11화 (11/298)

〈 11화 〉 이지아(6)

* * *

교장과의 면담이 끝나고 우리는 대련장으로 갔다. 오후 수업이 일대일 대련이 있기 때문이다. 대련장으로 가니 바글바글한 인원들이 우리를 반겼다. 반마다 약 100여 명이 있으니 단순계산만으로도 오늘 50번의 대련을 거쳐야 한다.

"대련은 성적순으로 랜덤으로 돌린다. 상성은 고려하지 않는다. 영웅이 되면 항상 최상의 컨디션, 너희가 상성이 유리한 상대만을 상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상성이 안 좋을 경우, 교수들의 재량하에 추가 가산점은 부여하겠다."

""네!!""

강한자가 학생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순위를 확인했다. 내 순위는 반에서 11위. 일단 나랑 상성이 극히 안 좋은 여자 용사랑 한종우랑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시우, 강한남. 처음 대련은 너희가 시작한다."

강한자 교관의 말에 나는 대련장으로 올라갔다. 한종우의 부하를 자처하는 강한남 역시 뚜벅뚜벅 올라오기 시작했다. 근육질의 울퉁불퉁한 몸이 인상적이었다. 남자답게 생겼고 호방한척해서 나름 여자들의 인기를 얻고 있는 녀석.

그가 나를 강렬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이지아와 내가 좀 친하게 지낸 뒤로 항상 저랬지만 늘 부담스럽게 노려보고 있었다.

"오, 첫 번째는 이시우와 강한남이네."

"우와 진짜 극단적인 매치업이네. 기술은 달리고 신체 능력이 뛰어난 한남이랑 신체 능력은 달리지만, 기술은 최고인 이시우..."

여기저기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주변의 이목이 이쪽으로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다. 나름 매치업이라고 할 만한 흥미로운 경기는 사실이긴 해. 내 일이라서 그렇지. 나도 아니었으면 나름 흥미롭게 구경했을 거다.

'강한남은 꽤 골치 아픈데.'

강한남.

어떻게 보면 한종우나 임나연보다 더 골치 아픈 상대다. 그는 한마디로 돌진에 특화된 능력자. 주 무기는 몸의 대부분을 가리는 방패와 소검. 일대일에서 정말 까다로운 무기들이었다.

'지식열람!'

이름 : 강한남

근력 : 18

민첩 : 10

체력 : 15

마력 : 10

고유능력 : 저돌맹진

특성 : X

체력과 근력이 높았다. 마력과 민첩은 낮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마력은 나보다 높고 민첩은 비등했다. 힘 싸움은 절대로 하면 안 되겠네. 고유 특성은 저돌맹진. 돌진 시 공격력과 이동속도, 방어력 보정이 달린 B급 특성이다. 특성도 아마 그와 관련된 거로 덕지덕지 붙여놨겠지.

그렇다면 야금야금 괴롭히는 전술로 가야지.

나는 검하고 보조용으로 쓸 단검을 들었다. 수비로 끌고 가서 상대가 방심한 틈을 찔러야 했다.

창을 들고 요리조리 때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만은, 상대는 바보가 아니다. 내가 자신의 거리에 들어오게 되면 눈 깜짝할 사이에 나를 내팽개치겠지.

나는 차분하게 검사의 가면을 착용했다.

마음이 차분해졌다. 감각이 좀 더 날카로워지고, 근력이 조금이나마 상승함을 느꼈다. 당장은 체감할 수 없지만, 체력 역시 높아졌겠지.

머릿속에서 동영상 너머로 봤던 검술들이 뇌 속에 부상한다.

"후."

가볍게 숨을 몰아 내쉬었다. 마음이 차분해졌다. 나는 강한남과의 거리를 재봤다. 대충 10m. 나름 멀다면 먼 거리지만 영웅 지망생이 넘치는 이곳에서 이 정도의 거리는 아차 하는 순간에 좁힐 수 있는 적은 거리였다.

"이시우."

강한남이 나를 잡아먹을 듯이 내 이름을 내뱉었다.

"왜?"

"내가 이기면 이지아에게서 떨어져라."

"……."

소년만화를 너무 많이 본 거 아니니. 이런 내 반응과는 다르게 여기저기서 꺅하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뭐야."

"사랑싸움이야?"

여기저기서 흥미로운 듯 잡담하는 것이 느껴졌다. 영웅을 지망하여 아카데미에 들어왔다지만, 아직 다들 어린 나이였다.

"그럼 내가 이기면?"

"……."

강한남이 입을 닫았다. 자기가 하는 말이 억지임을 아는 거겠지.

"강한남."

"네, 넵!"

"너...아니. 후우."

강한자가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조용히 강한남에게 말했다.

'나중에 교무실로 와라.'

강한자가 강한남에게 말하고는 내게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나는 괜찮다는 의미로 강한자에게 고개를 숙였다. 속으로는 괜찮지 않지만, 이것으로 강한자에게 뜯어먹을 게 있으니까 이득이었다.

강한남이 아까보다 매섭게 나를 노려다 보았다.

"준비는 됐나?"

"네, 됐습니다."

"넵. 준비됐습니다."

"그럼 시작해라."

"흡!"

교수에 말에 강한남이 나에게 돌진했다. 나는 뒤로 재빠르게 물러섰다. 하지만 강한남은 그것조차 예측했다는 듯 그가 나를 향해 검을 뻗어왔다.

휙.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뻗어오는 검. 나도 검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챙!

날카로운 금속음이 비명을 질렀다. 내 검과 강한남의 검이 맞대자마자 강한남의 검이 위로 솟구쳤다. 순간 그가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검사의 가면의 효과도 있지만 가장 큰 것은 바로 천수. 온갖 것에 만능적인 손재주는 검과 관련된 부분에서도 굉장한 효력을 발휘한다.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한 수.

이대로 순간 몸이 빈 강한남에게 후속타로 몇 대 때려주고 싶지만, 방패가 거슬렸다.

텅.

후속타로 내지른 검이 방패에 막혔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움직인다.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척하면서, 왼쪽으로 상체를 기울였다. 강한남이 한 박자 늦게 반응했지만, 나보다도 빠르게 이동했다. 하지만 이미 예상했던바. 나는 바닥을 발로 박차 오른쪽으로 뛰어오르며 검을 휘둘렀다.

터엉!

'쯧, 귀찮네.'

하지만 강한남이 안정적으로 막아냈다.

알고는 있었지만, 방패는 역시 상대하기 성가시다. 상대가 방패를 쓰는 법을 알고, 나보다 육체 능력이 뛰어날 때, 그 성가심은 불합리할 정도다. 나는 스텝을 밟았다.

강한남이 나를 경계하고 있었다. 아마 듣던 거와는 아주 다를 거다.

한 달 전, 첫 번째 대련 때는 내가 아직 천수와 가면의 활용이 많이 미숙했을 때이니까.

5m 거리에서 나를 경계하며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에 피식하며 웃어주었다. 강한남이 발끈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돌격했다. 단순하구먼.

나는 단검을 뽑고는 강한남에게 달려갔다. 좌우로 스텝을 밟는다. 한순간 몸을 휙, 숙였다. 방패가 가진 단점. 시야를 너무 많이 가리는 것. 보이지 않아도 당황한 것이 느껴진다.

"큭!"

방패에 몸을 맞대며 잠시 고민했다. 열심히 괴롭혀줄까. 더 열심히 괴롭혀줄까. 고민은 짧았다. 아무리 저쪽에서 나를 괴롭혔다지만 내가 고등학생을 괴롭히는 건 좀 그랬다. 만약 여기서 더 선을 넘는다면 그때는 확실히 괴롭혀줄 테지만…. 나에게 호의를 보이는 강한자와 적대하는 건 좀 그랬다.

나는 강한남의 검 쪽으로 획, 돌았다. 강한남은 당황해하면서도 검으로 나를 내려치고 있었다. 나는 단검을 쳐내듯 휘둘렀다. 내 단검에 부딪힌 강한남의 검이 밖으로 튕기듯 나갔다. 그리고 그대로 단검을 내던졌다.

텅!

마나로 강화된 신체는 목을 향해 노린 단검을 방패로 방어할 수 있을 정도로 빨라졌다. 다만 반대쪽이 텅텅 빈 것이 문제였다.

나는 손에 쥐고 있는 검으로 강한남의 목에 검을 대었다.

"승자, 이시우!"

강한자 교수가 나의 승리를 알렸다. 표정이 살짝 굳어 있었다. 자기 동생이 발리는 모습이 안 좋아 보여서 그렇겠지.

'쉽네, 쉬워.'

"꺄악, 시우야! 멋있어!"

"이시우 멋있다!"

여기저기서 환호하는 소리가 들렸다. 후, 이 몸의 인기란. 살짝 자화자찬하니, 여자애들의 환호성과 임나연의 반짝거리는 눈과 살짝 차가워진 이지아의 환호성을 기분 좋게 들으며 내려갔다.

"쟤는 진짜 무기술 하나는 예술이네."

"중간에 한남이가 도발에 걸려 급하게 들어간 게 패배 요인이긴 한데…. 그거 아니었어도 이겼을 것 같아."

"그러고 보니 쟤 고유 특성도 아직 개화 못 했다고 하지 않았어?"

"……개화 못 한 게 저 정도라고? 진짜 미쳤네."

여기저기서 감탄하는 소리가 들린다. 괜스레 부담스러워져서 사람들이 별로 없는 구석진 곳으로 향했다.

학생 중에 혹시나 쓸모 있는 특성이 있을까 싶어서 학생들의 상태창을 몰래몰래 염탐했다.

"임나연과 이지아."

강한자가 임나연과 이지아를 호출했다. 그 말에 여기저기서 떠들던 애들이 순간 조용해졌다.

"임나연과 이지아?"

"이지아가 걔지? 특별진형으로 온 장학생."

"이지아, 걔 아냐? 마법 명가에서 재능 없다고 반쯤 버려진 애?"

"어....? 내가 들은 바로는 마법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천재라던데?"

여기저기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저…. 여기에 앉아도 될까요?"

작게 들리는 미성에 고개를 돌렸다. 투명하리만치 새하얀 피부에 핑크빛 머리색에 핑크빛 눈동자를 가진 소녀, 김하린이 보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천둥새 의뢰 때문에 이야기해야 하기도 했고 거절할 이유도 없었으니까.

"응, 앉아도 돼."

"응…. 고마워."

"고맙긴 뭘."

김하린이 내 옆에 다소곳이 앉았다.

나는 대련장을 보고 있었다.

파지지지직!

이지아가 양손을 내밀자 손 사이에서 전류가 휘몰아친다. 새파란 전류가 이지아의 의지에 따라 반응하며 순식간에 임나연에게 쏘아졌다.

라이트닝 스트라이크!

"흡!"

새파란 전류의 파도. 그것을 보며 임나연이 눈을 부릅뜨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녀의 몸 바깥으로 푸른색의 마력 역장이 생성되며 이내 갑옷처럼 그녀의 몸에 둘러지기 시작했다.

기갑??이었다.

무공을 배우고 일정 이상의 경지에 도달하면 쓸 수 있는 일종의 경지. 기를 하나하나 엮어서 전신의 갑옷처럼 기를 몸에 두르는 것. 이것을 날카롭게 버리면 검기??가 된다.

"와, 미친. 쟤낸 진짜 괴물들이네."

"뭔 학생이 벌써 기갑을 쓰고 난리야…. 나 지방에 있을 때 천재 소리 들으면서 자랐는데, 여기 온 뒤로 진짜 자괴감 오지게 드네..."

여기저기서 한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저, 혹시 천둥새를 공략하는 방법에 대해서 알려줄 수 있을까? 그, 제가 좀... 많이 불안해서..."

"공략법?"

이지아와 임나연의 대결을 보고 있을 때 김하린이 내게 말을 건넸다. 뭐, 저 상태라면 무난하게 임나연이 이기는 걸 알고 있어서 문제는 없지만.

"여기서는 말하기 좀 곤란한데. 주변에 듣는 귀가 많아서..."

"앗, 죄송해요... 제가 눈치가 없었죠…?"

응, 없는척하는 거잖아. 돌아가.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참았다. 나는 평온의 가면을 썼다. 마음이 잔잔해지며 세상 근심 걱정 없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괜찮..."

거기까지 말하다가 멈칫했다. 임나연과 이지아의 싸움이 스토리와는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지아가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다가 틈을 드러냈을 때 임나연이 이지아를 몰아붙여 승리로 이끄는 것이 바로 '정사'였다.

그런데 이지아가 달라졌다. 온갖 번개 마법을 뿌리며 임나연을 압박하고 있었다. 임나연이 진지한 표정으로 이지아에게 달려들지만.

챙!

금속음이 울렸다. 임나연의 회심의 일격이 이지아의 스태프에 가로막혔다. 이지아가 스태프를 휘저었다. 마치 '내'가 강한남의 공격을 뒤집듯, 부드럽게. 임나연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그녀의 검이 튕기듯 위로 솟았다.

그리고...

"이지아 승!"

임나연이 패배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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