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이지아(5)
* * *
교장실 앞에 도착했다. 검은색의 나무문에 황금색으로 음각된 문. 노크를 두드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점검했다. 옷 부분에 흐트러진 데가 없는지. 혹시 뭐가 묻어있지 않은 지. 핸드폰을 이용해 거울 어플까지 깔면서 꼼꼼히 확인한 후. 한숨을 내쉬었다.
평온의 가면을 써서 대면하고 싶은 존재지만, 지난날, 그녀와 처음 대면했을 때에 간파당했었다.
굉장히 흥미롭구나. 이번에 입학하는 신입생들은 정말 수준들이 높아. 기대 이상이야. 한 명씩만 있어도 아무렇지 않게 수석을 차지할 수 있을 정도의 인원이 최소 6명...거기다가 '이치'에서 벗어난 가면이라.
그녀의 말을 곱씹으며 생각했다. 이치에서 벗어난 가면이라.
대부분을 통찰할 수 있는 '통찰안'을 가진 그녀의 말이라면 천의 가면의 굉장히 중요한 무언가를 말했음은 틀림이 없었다.
하지만 이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자. 지금 나는 교장실 앞에 있으니까. 나는 검은색 문을 손등으로 몇 번 두들겼다.
똑똑.
들어오려무나.
가녀린 미성이 들렸다. 그리고 그 미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말투.
그녀의 말에 문을 열자, 풀 냄새가 물씬 풍겼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중앙의 목제 테이블에 앉아 있는 여성.
황금빛의 머리카락과 연둣빛의 눈동자. 사람 같지 않은 뾰족한 귀. 젊다기보다는 약간 어려 보이는 인상. 풀잎이 장식된 연둣빛과 하얀색이 뒤섞인 드레스. 그리고 나조차 압도될 것 같은 압도적인 외모.
취미로 아카데미의 교장을 맡고있는...요정여왕, 티타니아였다.
그녀의 눈동자가 내 쪽을 향했다. 무엇이든 꿰뚫어 볼법한 눈빛이 나를 향했다. 그녀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시우야!"
"미안, 내가 좀 늦었지."
나는 사과하며 슬쩍 주위를 둘러보았다. 갈색빛의 머리카락이 흔들릴 정도로 격하게 나를 반겨주는 이지아. 그 옆에는 핑크빛의 머리 빛을 가진 소녀가 있었다. 소심한 척 연기를 하는 김하린. 뚱한 표정을 하는 탈색된 백색의 머리카락과 금빛의 눈동자를 가진 소녀, 은수아도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나란히 있는 두 명의 소년과 소녀가 보였다.
두 명의 소년 소녀는 눈에 확 띄는 외모를 하고 있었다. 좋은 말로 했을 때의 이야기고.
고유 특성으로 신체의 변화가 일어나 온갖 기상천외한 모발과 눈 색이 바뀌는 이 세상에서 그들은 독보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정도로 이쁘장하게 생긴 녀석. 나른하게 하품을 하는 은발 청안의 소년. 그 옆에 나란히 붙어서 따분해 죽겠다는 듯한 표정을 하는 금발 적안의 소녀. 이 세계에 떨어진 보정으로 왜인지는 모르나 어마어마한 외모를 타고난 나와 견줄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인물들이었다.
하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 그들은 이야기를 이끄는 용사들이니까. 이 세상을 구할 운명을 타고난 녀석들이었다.
"좋구나, 아주 좋아."
그들을 유심히 보다가 흐뭇해하는 교장의 말에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르신 말투를 쓰는 묘령의 여성. 하지만 그녀는 진짜 어르신이다. 그것도 나이를 최소 800살 이상 먹었다고 추정되는, 어르신.
"생각 이상으로 성장을 많이 해줬구나. 특히 지아가 많이 성장했어."
"아뇨, 교장 선생님이 많은 지원을 해주셔서 그래요."
이지아가 헤헤거리며 교장에게 말했다. 실제로 그녀는 이지아에게 많은 지원을 해줬다. 억 소리가 날 정도의 가격을 자랑하는 마력 증진제와 요정족이 이용하는 마법서들...이지아가 한 달 만에 아카데미 상위권에 해당할 정도로 높은 성적을 자랑하는 것은 그녀의 지원 덕택이었다.
"그런데 왜 저희를 부른 것이에요?"
이지아와 교장 선생님이 하하호호 웃으며 떠들 때 그들을 가로지르는 미성이 들렸다. 심기 불편한 얼굴로 교장을 바라보는 소녀. 그 옆에서 은발 머리의 소년이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쓰다듬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무례는 아무렇지 않은 듯 교장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음, 너희들에게 줄 것이 있어서 말이야."
그녀가 느긋하게 손짓을 했다. 투명한 공간에서 위로 틀어 올린 회색의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메이드 복을 입은 여성이 나타났다. 느닷없는 등장에 모두가 동요했다. 동요하지 않은 것은 나뿐이었다. 나는 그녀가 여기에 존재하고 있던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요정족을 이끄는 요정 여왕을 모시는 충복, 그란데힐. 온갖 가사에 만능 적이며 암살자로서의 소질은 초일류라 평해지는 우수한 도적 동료다. 극히 희귀하기 그지없는 공간 속성의 이능력자라 공격도 우수하고 방어력도 우수했다. 이동속도는 더욱 우수하고. 레즈비언 속성이 있어서 여자 용사에게 반하는 인물 중 하나이기도 하고.
"놀라지 않는구나."
티타니아가 즐겁다는 듯이 나를 보며 이야기했다. 순간적으로 다른 아이들의 시선이 쏠렸다.
"뭐, 보통의 교장님들은 없겠지만, 요정족을 이끄는 교장님 같은 경우에는 항상 호위 같은 게 있을 거니까요."
나는 대충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그런 내 반응이 즐겁다는 듯, 그녀는 웃으며 그란데힐에게 말했다.
"다름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부른 것은 임무를 주기 위해서란다."
아카데미에는 크게 필기시험, 실전시험이 있다. 그리고 실전시험에 들어가는 '임무'. 아카데미가 존재하는 인공섬의 외부로 나가서 몬스터를 죽이던가, 던전을 탐색한다던가. 하는 등의 임무이다.
게임을 하게 되면 교장은 플레이블 캐릭터에게 기본만 지키면 깰 수 있는 임무를 준다. 그야말로 튜토리얼 같은 느낌. 난이도보다 보상은 굉장히 후하며 받고 싶어도 받기 힘든 것이 교장의 임무다. 학기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게 단점이라면 단점. 이건 뭔 수를 써서라도 받는 것이 옳다.
교수들과 자신이 커버할 수 있는 아카데미에서는 혹독하게 굴리지만, 밖에서는 쉬운 임무의 난이도를 주고, 후한 보상을 준다. 그것도 오직 재능있는 자 중에서 통찰안으로 선별한 자들만 한해서.
장학생이라는 명목하에 이루어지는 편애.
교장이 착실하게 '마왕'의 '대적'들을 키우기 위한 방식 중 하나였다.
"다음 주부터 실시되는 임무 주간 시간에 밖에서 임무를 받는 거와는 다르게 내가 주도하는 거지. 물론 거절해도 된단다."
"그럼 보상은 요정족의 보물고에서 택할 수 있는 건가요?"
"그럼."
은수아가 물었다. 은수아의 말에 교장이 조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요정족의 보물고..."
"헤에..."
용사 두 명이 나지막이 감탄했다. 요정족의 보물고는 1,000년의 세월 동안 요정들이 모아놓은 보물들이 있는 곳. 그들이 모아놓은 대부분은 인간들은 손쉽게 구할 수 없는 정령과 관련된 물품들이다.
팔아도 비싼 값에 받을 수 있고, 그것을 매개로 정령친화력을 올려도 좋았다.
"그란데힐."
"네, 여왕님."
그란데힐이 절제된 동작으로 고개를 숙이더니 품속에서 그녀의 절반만 한 크기의 두루마리를 꺼냈다. 그리곤 그것을 쭉 펼쳐서 중앙에 있는 탁자 위에 두었다.
"오크 토벌도 있네요."
"오크는 시시한데, 오우거 같은 것은 없나요?"
용사 두 명이 먼저 다가가 임무를 훑었다. 오크 토벌이 만만한 임무는 아닐 텐데.
게임에서 꾸워억!하며 뒤지는 오크와 다르게 여기에서 오크는 살인 병기 같은 무언가이다. 화기는 통하지만 어지간한 소형화기로는 데미지도 주기 힘들다. 한 명 한 명이 무기를 가리지 않는 웨폰 마스터이며 살인을 주저하지 않는 몬스터들. 주먹질 한방으로 사람 크기의 절반 정도로 큰 바위마저도 뚫는 근력을 가진 주제에 100m를 7초 안에 질주하는 미친 스펙의 몬스터들. 어디까지나 전사 클래스로 분류되는 몬스터가 저 정도고 투사, 라이더, 족장들은 더한 괴물들이다.
다만, 그녀의 고유 특성이 몬스터나 마수들을 죽이기 너무나도 특화되어 있기에 저런 말을 하는 것.
나도 임무 목록을 쭉 훑었다.
'어라?'
임무를 훑어보다가 당황했다. 원래 스토리 상에 나오는 임무대로 나오지 않았다. 용사가 두 명이어서 그런가. 말도 안 되게 꿀을 빨 수 있는 임무가 하나 있다.
[천둥새 토벌]
임무 유형 : 토벌
난이도 : B
오산 근처에 자리 잡은 천둥새의 둥지에서 천둥새를 토벌할 것.
토벌 난이도는 B. B등급이라고 무시하면 안 된다. 일반적인 생도들은 도저히 도전할 수 없는 난이도다. 영웅들조차도 난색을 보이며 아마 정공법으로 도전한다면 저기 있는 그란데힐조차도 나름으로 고생해야 할 것이다.
나는 잠깐 입을 벌리고서는 순진한 척을 하는 김하린을 바라보았다. 김하린을 끌고 가서 기린의 던전을 공략하고 천둥새를 토벌하고 천둥새의 사체와 교장의 보상까지 꿀꺽하는 일석삼조의 날먹이 가능해진다.
"하린아, 지아야."
"응, 왜?"
"네?"
"우리 이거 하자."
나는 천둥새 토벌을 가리켰다.
"그건..."
그란데힐이 뭐라고 말하려다가 그만뒀다. 흥미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교장이 손으로 제지했기 때문이다.
"난이도 B인데 괜찮을까...?"
"마, 맞아요. 이건 상위권 영웅들이나 받는 건데."
그녀들의 제지에 나는 히죽 하고 웃으며 말했다. 사실 천둥새는 김하린이 있는 이상 비싼 보상을 주는 좀 빠른 새에 지나지 않으니까.
"괜찮아. 천둥새를 쉽게 잡을 방법이 있거든."
실제로 나는 자신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천둥새를 못 잡을 자신이.
***
"재밌지 않니?"
장학생들이 모두 간 후, 적막해진 공간. 그곳에서 학생들이 나간 문을 한참 동안 응시하다가 티타니아는 입을 열었다.
"천둥새를 토벌하는 쉬운 방법이 있을까요?"
"아마 있겠지. 코카트리네를 쉽게 잡을 수 있는 공략을 내놓은 학생인데."
그녀는 그란데힐이 타준 홍차로 입을 적시며 말했다.
"꽤 어처구니없는 공략법이었지. 저주 마법이 깃든 마나 인형을 코카트리네에게 던져주고 도망쳐서 힘을 뺀 다음 잡는 다라."
"그것보다 더 대단한 것은 일평생을 코카트리네를 마치 분석해서 얻은듯한 자료였습니다. 코카트리네가 무엇을 주식으로 삼는지부터 성장 과정부터 코카트리네가 가진 약점과 강점, 습관까지..."
코카트리네는 까다로운 몬스터이다. 어지간한 마법과 검기를 튕겨내는 압도적인 방어력과 마법 저항력. 공격력이 약한 것도 아니다. 어지간한 영웅들이 사용하는 검기를 튕겨내는 방어력은 다른 말로 하자면 압도적인 공격력을 가졌다는 동의어니까.
이 까다로운 몬스터를 잡기 위해서는 한 명의 영웅을 공격수로 정하고 다른 영웅들이 그를 보조해 그의 공격력을 높이고, 코카트리네의 움직임을 제한하면서 공격을 하는 것.
'하지만 내부가 저주에 취약하다라.'
그가 낸 이론은 이랬다. 코카트리네의 겉은 한없이 단단하지만, 내부는 취약하다. 그것도 저주계열 마법에. 그것을 부정하기에는 그가 제출한 논문은 너무나도 상세했다.
코카트리네가 몬스터를 사냥을 업으로 하는 영웅들조차 일평생 볼까 말까 한 몬스터임을 고려한다 치면 어디서 그런 정보를 얻었을까 생각될 정도로.
실제로 이론 교수인 강한자가 그 자리에서 그 논문을 통과시킨 것은 코카트리네의 상세한 정보 덕분이었다. 마찬가지로 '전당' 역시 그 정보를 토대로 아귀에 맞는다는 것을 인정하여 '골드'등급의 정보열람료를 요구하지 않았는가.
이미 스위스의 한 지역에서는 그 공략을 토대로 코카트리네를 손쉽게 토벌한 것이 알려지면서 그의 유명세는 더욱 커졌다.
"그러고 보니."
문득, 떠올랐다는 듯이 그란데힐이 입을 열었다.
"3년 전에 일어난 민간인 학살 사건 때에 코카트리네가 출현했었죠."
"……."
3년 전? 티타니아는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 한동안 온 세상은 그 이야기로 떠들썩했었다. 빌런 연합 중 하나가 영웅 한 명을 죽이겠답시고 도시 하나를 봉쇄하고, 코카트리네를 풀어놓고 시민들을 학살해, 민간인이 3만 명 이상이 죽은 사건.
겉으로는 그들을 모두 잡고 처형했다고 공표했지만, 그녀는 알고 있다. 실제로 그것을 주관한 존재들은 버젓이 살아있고, 아직도 어둠 속에서 암약하고 있는 것을.
"설마, 그 사건에서 소중한 사람을 잃은 건가...?"
"네,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상세한 정보를 알 리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굉장히 많은 연구를 통해서 코카트리네를 효율적으로 '죽일 방법'을 연구한 것 같습니다."
"……한번 알아보도록. 너무 파헤치지는 말고."
"네, 알겠습니다."
그란데힐이 그림자 이동을 펼쳐 한순간에 그녀의 방에서 사라졌다. 티타니아는 잠시 창문을 통해 먼 하늘을 응시했다. 복수. 복수라. 그녀는 그 단어를 떠올리며 상념에 잠겼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