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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나에게 최면어플을 사용한다-3화 (3/298)

〈 3화 〉 임나연(3)

* * *

"하지만 곤란하지? 이 영상이 유출되는 건?"

나는 핸드폰을 들며 말했다. 동영상. 조금 전 떠오른 생각이었다. 사실 동영상 같은 건 임나연의 연줄이면 아무렇지 않게 해결할 수 있다.

인터넷에 올린다? 아마 올리자마자 바로 삭제될 것이다. 그리고 법무팀과 경찰들이 몇십 명 단위로 우리 집을 들락날락하겠지. 어쩌면 영웅들이 직접 나를 묻으려고 올 수도 있다.

"벗어."

"크윽..."

명령조로 바뀐 내 말에 임나연이 수치스러운 듯 이를 깨물고는.

스륵. 스륵.

차근차근 옷을 벗기 시작했다. 재킷부터 시작해서 넥타이. 이제 그녀가 입고 있는 것은 블라우스와 교칙보다 조금 줄인 발칙한 미니스커트.

상의하고 하의는 아직 벗기 싫은지 머뭇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느긋하게 바라보는 척했다. 속은 암담했다. 어떻게 하지. 말릴까? 그러면 더 이상하지 않을까? 차라리 이대로 쭉 가? 그럼 어디까지 갈 건데? 선이 중요했다. 그녀가 적당히 만족하고, 내가 적당히 물러날 수 있는 선.

나는 임나연을 거만한 자세로 바라보았다. 어느새 블라우스 단추를 차근차근, 풀고 있었다. 블라우스를 벗으니, 새하얀 나시티가 모습을 드러냈다. 투명하리만치 새하얀 피부에, D컵에 가까운 가슴 크기. 임나연은 옷을 입으면 말라 보이는 타입이었구나.

스륵.

블라우스를 벗고, 미니스커트까지 벗고, 나시티까지 벗으니 검은색의 란제리가 모습을 보였다. 정말 바람직한 속……. 발칙한 속옷이었다.

거기까지 가자 그녀가 나에게 힐끔거렸다. 눈빛으로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여기서 더 벗어? 보고싶…. 아니, 여기서 더 나아가는 건 위험했다.

"매력적인 몸을 가지고 있네. 더 가지고 싶어졌어…."

`도대체 뭐라는 거야.`

비열하게 미소를 지으며 가면을 쓴 내가 느끼하게 말했다. 하지만 매력적인 몸이라는 것은 사실이었다. 가냘픈 허리와 한 손에 다 들어 올리지 못할 것 같은 가슴. 매끈한 다리에 한국인답지 않게 커다란 골반. 몸매는 호리호리한데 가슴과 골반이 크다니, 반칙이 아닌가?

현대 판타지 세계관이라 그런지 몸매도 판타지였다. 더 봤다가는 참지 못할 것 같아 임나연의 얼굴을 바라봤다.

수치스러움과 부끄러움이 공존하는 표정. 그리고 희미하게 올라간 입꼬리.

`미치겠네, 진짜.`

"시, 시우야……."

떨리는 목소리로 임나연이 나를 불렀다.

"시, 시우야. 아, 아직 늦지 않았어. 동영상을 지우면 없던 일로 해줄께…."

무얼? 여기까지 해서 그만두라고? 그러면 내가 죽을 텐데? 그녀 역시 바라고 있지 않다. 아마 오히려 지금 그만두면 내가 죽지 않을까?

"아니지."

"뭐, 뭐가 아니야?"

"시우가 아니야. 주인님이지."

`미친놈.`

"……."

"뭐, 싫으면 안 불러도 돼."

나는 핸드폰을 슬쩍 올리며 흔들었다. 아무런 영상도 없는 핸드폰. 하지만 임나연은 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주…. 인, 님…."

"잘 안 들리는데."

"…… 주인님."

"그래. 잘했구나."

나는 눈웃음을 지으며 임나연을 칭찬했다.

여동생 때문에 보았던 관능 소설에 이런 부분이 있었다. 상대를 조교 할 때 상벌은 확실히 하라고. 잘했으면 칭찬하고, 못했으면 열심히 괴롭혀라.

나는 초짜니까 관능 소설을 교본으로 움직여야 했다.

"그럼 이제 주인님에게 맹세해야지?"

`돌겠네.`

참담한 심정과는 다르게 내 몸은 내가 정한 가면에 따라 행동했다. 나는 비열하게 웃으며 발을 쓱 내밀었다. 얼마 전에 세탁해서 깨끗한 하얀색의 운동화.

그 운동화를 임나연 쪽으로 대며 입을 열었다.

"자, 내 신발에 맹세의 키스를 하렴."

`맹세의 키스는 또 뭔데…….`

어처구니없어하면서도 정신이 번쩍 듦을 느꼈다. 선을 넘었나? 가면을 벗으며 발을 빼려고 준비함과 동시에 임나연의 표정을 재빠르게 확인했다. 그러나 내가 확인할 틈도 없이 임나연이 재빠르게 엎드리며.

"네, 네! 맹세하겠습니다!"

내가 발을 빼는 것보다 빠르게 붙잡으며 내 신발에 입을 맞췄다.

"주, 주, 주인님……."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부르며 한 번 더.

맙소사. 속으로 경악하며 임나연을 내려다보았다.

꿀꺽.

나는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정복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 임나연이 내 신발에 입을 맞추고 조아리고 있다. 성욕이 뇌를 지배하는 것 같았다. 눈앞에 여자를 범하고 싶다는 생각도 가득 찼다. 그러나 참아야 했다. 이 이상 가기에는 위험하니까.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진짜 덮칠 것 같아서 위험했다.

그때였다.

또각또각.

저 멀리서 누군가 걸어오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임나연이 갑자기 벌떡 하고 일어나더니 어어, 하는 사이에 옷을 갈아입었다. 육체 계열의 능력자인지라 블라우스를 입고, 미니 스커트와 넥타이를 착용하는 시간이 5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재킷까지 입고 나서.

짝.

임나연이 손뼉을 쳤다. 나는 재빠르게 멍한 눈으로 허공을 쳐다보았다.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정신을 차린 듯, 멍한 소리를 냈다.

"어....?"

"괘, 괘, 괜찮아, 시우야?"

"어...? 어. 괜찮지."

나는 말을 더듬으며 임나연의 말에 답했다.

"시우, 네가 나랑 말하다가 갑자기 쓰러져서 깜짝 놀랐어. 어디 아프지 않아? 기억나는 건 없고? 혹시 몸에 이상이 있는 것 같아?"

내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임나연이 속사포로 입을 열며 내게 말했다. 나는 일부러 얼떨떨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 어. 기억나는 것은 없네."

"그…. 래? 다행이네."

말과는 다르게 임나연은 웃음을 삼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 내가 기절해서 많이 놀랐지?"

"……어, 어. 응."

나는 쓰게 웃으며 임나연에게 사과했다. 내 사과에 임나연이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드르륵.

그때 문이 열렸다. 갈색빛의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내려오는 청순가련한 타입의 소녀가 들어왔다. 임나연의 부하 A인 이지아였다. 부화라고 하기에는 이지아가 지닌 재능이 너무 뛰어나지만.

"오, 역시 여기 있었네. 나연아, 한참 찾았잖아."

"어? 날 찾았어?"

"그럼, 그럼. 수업도 끝나고, 동아리도 끝났으니까, 오랜만에 좀 놀자고 찾아다녔지. 요새 훈련하느라 많이 바빴잖아? 그래서 스트레스 좀 풀자고. 문자도 보냈잖아."

"아, 미안. 잠깐 시우랑 대화 좀 나누느라 못 봤네."

"어? 뭐야, 무슨 대화를 하고 있었어?"

임나연의 말에 이지아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러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어? 응, 시험…. 때문에 시우가 머리가 좋잖아."

"하긴~. 우리 아카데미가 만들어지고 10년 만에 유일하게 필기에서 만점 받았잖아. 그것 때문에 한동안 여기저기서 개인 과외 좀 봐달라고 난리 났었고."

"으응. 그랬지."

"시험 문제도 하나 절대 못 풀 거라고 장담하면서 낸 거 있었는데, 그거까지 맞춰서 지금 교수들도 수업 준비할 때 좀 어렵게 준비해오더라."

"맞아, 맞아."

미안하지만 나는 그렇게 똑똑하지 않다. 내 특전 중 하나인 지식 열람(S)의 능력으로 시험을 봐서 모조리 만점을 받았을 뿐이니까.

"아차, 시우야. 너도 애들이랑 같이 갈래? 엄청 재밌을 거야."

"응, 가자. 얼마 전에 들어선 카페에 디저트가 엄청 맛있대."

같이 가자.

이지아의 표정에서 그런 말을 하는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임나연의 얼굴 역시도. 그러나 나는 오늘 너무 피곤했다. 몸은 피로가 거의 없었지만, 정신적인 피로의 문제였다. 집에 가면 바로 씻고 자고 싶어질 정도로.

"미안, 오늘은 좀 피곤하네. 다음에 같이 가자."

"그래. 그럼 다음에 꼭 같이 가자."

임나연이 아쉽다는 듯 다음을 기약하며 말했다.

***

"하아."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힘든 하루였다. 학교에 다니면서 훈련이니 뭐니 해서 힘들지 않은 적은 없었는데 오늘은 특히 더했다. 임나연에게 최면 걸린 척을 했고, 임나연을 조교……. 강제로 조교 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굣길에 기숙사로 향하는 길.

6시 언저리이건만 생각보다 밝았다. 벌써 4월이 왔다는 것이 체감되기 시작했다. 날도 더워졌고. 슬슬 여름옷을 꺼낼 때가 되었나. 하복도 미리 세탁해놔야겠다.

재킷을 벗어 대충 접어들고 다니며, 빠르게 걷자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와…. 뭐야, 방금 지나간 애? 진짜 세상 혼자 사네. 쟤 누구야?

­아, 이시우? 이시우가 존나 잘 생기긴 했지.

­아, 쟤가 걔야? 필기시험 만점 받은 애?

­응. 그것 때문에 쟤 과외 공부 좀 해달라고, 여기저기서 완전 난리잖아. 여러 군데서 억 단위로 제안하면서 가르쳐 달라고 얘기하더라.

­머리가 좋다고 잘 가르치는 건 아니잖아?

­쟤가 푼 문제, 10년 동안 아무도 못 푼 문제야, 등신아. 그 정도 머리면 시험 문제 정리 본 같은 건 껌이지.거기다가 쟤 싸움도 잘하잖아. 아마 1:1에서 쟤 이길 애 몇 명 없을걸?"

­그 정도야?

­그 정도야. 쟤 능력치는 진짜 형편없는데, 기교가 워낙 미쳐 날뛰어서.

여기저기서 소곤대는 소리를 무시하며 빠르게 걸었다. 현대 사회에서 외모는 일종의 스펙인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렇게 빠르게 기숙사로 향했다. 가방을 대충 던져놓고, 빠르게 옷을 갈아입었다.

검은색 츄리닝 바지에 검은색 반팔티. 칙칙하지만 이게 좋았다. 하얀색같이 속이 비치는 걸 입었다가는 주변 여자들의 시선과 남자들의 질투 섞인 시선을 쓸어 담는 것보다야 패션 고자가 낫지. 암, 그렇고말고.

기숙사 근처에 훈련장으로 가자 벌써 여러 명의 소년, 소녀들이 훈련에 힘쓰고 있었다. 개인 훈련장도 있지만, 거긴 좀 부담스러울 정도로 비싸기도 했다.

나는 내가 주로 쓰던 장소로 가다가 멈칫했다. 이미 많은 소녀와 소년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여기는 구석진 곳이라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는 곳인데 왜? 나는 50kg라 쓰여 있는 5kg처럼 보이는 아령을 두 개 들었다. 손에 들리는 아령의 무게가 묵직했다. 이 또한 마도 공학의 산물이었다. 나는 아령을 들고는 가면을 썼다.

헬창의 가면.

보다 효율적으로, 그리고 내가 하는 것보다 열심히 운동하게 되는 가면이었다. 특이하게도 성장 보정을 올려줘서 내가 이 세계에 떨어진 후 가장 자주 쓰는 가면이다. 무언가 내 얼굴에 씌워지는 것을 느끼며 내 몸이 절로 움직였다.

그렇게 한 시간가량 몸을 움직였을까. 여러 운동을 해서 몸 전체가 뻐근했다. 헬창의 가면을 벗으며, 회복력을 올려주는 휴식의 가면을 썼다. 이제야 좀 살 것 같았다. 대충 근처에 주저앉아 호흡을 골랐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괜스레 불쾌해져서 위로 쓸어올리자 주변에서 헙! 하는 소리가 들렸다.

"꺅! 방금 봤어?! 씨발, 미친! 존나 섹시해!"

"남자가 저리 섹시해도 되냐……."

라는 여자들의 성욕과 선망이 뒤섞인 시선과.

"씨발, 진짜 혼자 사네."

"싸움도 잘하고, 전국에서 제일 똑똑하고, 존나 잘생기고. 세상 존나 불공평하네."

남자들의 질투가 내게로 쏠렸다.

어느새 주변에 자리 잡은 사람들이 보였다.

`개인 훈련장을 써야 하나.`

질투 섞인 시선이나 선망 어린 시선이 좋기는 했는데 이 정도의 관심은 부담스러웠다. 훈련하기도 힘들었고.

하지만 개인 훈련장은 이것저것 좋은 시설들이 많아 가장 싼 훈련장만 해도, 한 달 이용료가 무려 300만 원이 넘게 깨진다. 따라서 나 같은 서민들이 쓰기에는 굉장히 부담스럽다.

하지만 훈련을 안 한다면 부담스러운 게 아니라 이승과 하직한다. 이 세계에서 죽는 게 진짜 죽는다는 것과 같단 것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그걸 실험하자고 죽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클리셰대로라면 내가 죽는 결과로 이어지겠지.

나는 주변의 시선들을 애써 무시하며 다시 가면을 쓰고는 운동을 계속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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