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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임나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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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 짠."
"우왓! 뭐야! 가방이 무거, 웟!"
소년이 가방을 들어 올리려고 하지만 가방이 올라가지 않는다.
그 이유는 최면 어플이란 앱의 효과로 가방이 무겁다는 명령을 했기 때문은…. 당연히 아니다.
"야야, 구라치지 마."
"진짜냐? 킥킥."
"지, 진짜야. 이 가방이 엄청 무거워졌다니까?"
최면에 걸린 `척`하는 사람을 제외하곤 다섯 명이 킥킥거리며 놀고 있었다.
모바일 앱, 최면어플~누구라도 쓸 수 있는 간단한 최면~.
그것은 어제부터 갑자기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시작은 이 교실에서 가장 큰 파벌인 한종우의 따까리인 이성현이 시작했는데, 그게 갑자기 유행으로 번지며, 어느 순간부터 반 전체가 최면을 걸고, 최면에 빠진 `척`하면서 놀게 되었다.
"야, 시우야 이것 봐봐."
"응?"
날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누구지?
고개를 돌리자, 스마트 폰이 보였다. 화면에는 보랏빛과 분홍빛이 뒤섞여 중심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모양이 보였다.
짝꿍이던 임나연이 장난스레 웃으며 내 앞에 스마트 폰을 보여줬다.
......최면어플이었다.
"자, 심호흡하고. 긴장 풀고."
`망했다.`
나는 눈을 굴리며 생각했다.
스마트 폰 너머에 장난스레 웃으며 눈을 빛내는 임나연을 보았다.
임나연.
165cm 정도의 큰 키와 허리까지 내려오는 새까만 장발. 호리호리한 체형이나 큰 가슴을 가져 남자들에게 굉장한 인기를 받는 소녀. 여기까지라면 문제는 별로 없다.
문제인 건 그녀의 신분.
그녀는 대한민국에서 재계 서열 1위에 해당하는 임가에 유일한 외동딸이다. 그녀는 발랄하고 착하지만……그녀를 따르는 애들이 문제였다.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날 헐뜯는 것쯤 아무렇지 않게 할 녀석들.
임나연이 내게 말을 걸자 아닌 척하지만 다들 이쪽으로 시선이 쏠리는 게 느껴졌다. 나는 정신이 바짝 드는 것을 느꼈다. 여기서 싫다고 거절할 수 없는 노릇이며, 얼버무리기도 힘들다.
자칫하다간 재미없는 녀석으로 찍히고, 최악의 상황에는 임나연을 따르는 파벌에 따돌림당하고, 부모님은 직장을……. 나는 마음속으로 심호흡했다.
"소용돌이치는 문양 보이지?"
"응."
나는 자기 세뇌하기 시작했다. 나는 최면에 걸렸다. 나는 최면에 걸렸다.
"집중해서 쳐다봐, 집중해서…."
".......응."
눈에 힘을 풀었다. 입은 살짝 벌리고. 계속 소용돌이치는 회오리 문양을 바라보았다. 계속 보고 있자니, 무언가 빨려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가 얼굴에 `씌워`지는 느낌이 든다.
"어? 뭐야? 얘, 진짜로 걸린 거야?"
"킥킥. 아직도 고유 능력을 `개화` 못 한 애라 그런가 봐."
"와, 진짜 저런 거에 걸렸다고?"
내 혼신의 연기가 통했는지 임나연이 당황해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더불어 주위에서 나를 비웃는 양아치의 패거리들까지. 쟤 내는 참 한결같다.
그 모습에 순간 표정이 풀릴 뻔했다.
나는 다시 최면을 시작했다. 나는 최면에 걸렸다. 나는 최면에 걸렸다.
"흠흠. 진짜 걸릴 줄 몰랐네. 그럼 어떤 명령을 내릴까."
"좋아하는 사람 물어봐!"
"오, 그거 좋…. 아냐. 딴 거, 딴 거.……모르니까"
임나연의 부하 A가 말했다. 이지아, 나중에 두고 보자.
속으로 이를 갈자 임나연이 그 말에 혹하는 표정을 짓다가, 갑자기 고개를 휙휙 저으며 우물쭈물해서 하더니, 무어라 중얼거렸다.
"자, 갑자기 팔이 무거워진다. 팔이 무거워진다."
"우악!"
임나연의 말에 나는 꼴사납게 비명을 지르며 땅으로 엎어졌다.
"뭐, 뭐야!"
"와, 미친. 진짜 걸린 거야?"
"나 진짜로 걸린 사람 처음 봤어!"
"무거워지지 않는다? 괘, 괜찮아, 시우야?!"
내 혼신의 연기가 통했는지 임나연이 내게 오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 어. 괘, 괜찮아. 방금 뭐였지?"
얼떨떨해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임나연에게 물었다. 주위에 애들이 푸하하 웃으며 내게 설명해줬다.
"너 방금 최면에 걸렸었어."
"최면?? 그런 거에 걸릴 리가 없잖아."
아까 최면에 당한 척했던 애가 나한테 말하자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주변 애들이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런.
연기가 너무 과했나. 그렇게 속으로 혀를 차고 있었을 때.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임나연이 열망 섞인 눈으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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