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튼짓 해 줘, 도하야.’ 절박하게 되뇌었던 마지막 부탁, 그리고 그날 밤의 우리. 너와의 인연은 그걸로 끝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왜 그러고 있어요, 윤 대리?” 10년 만에 나타난 그는 태연한 얼굴을 한 채 눈앞에 있었다. “퇴근 후라 고민돼서 그러나? 이름이 나을지, 직책이 나을지.” 웃고 있음에도 뱀처럼 서늘한 눈이 파리해진 안면을 느릿하게 훑어내렸다. “뭐, 난 후자도 괜찮던데.” 애써 외면한 입에서 예상의 범주를 넘어선 말이 흘러나왔다. “그 입에서 팀장님 소리 나오는 게 나름 재밌기도 하고.”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동공이 낚싯줄에 채이듯 한 뼘 위로 올라섰다. “그래. 이제야 좀 제대로 보네.” 수려한 입가에 밴 명백한 조소가 비릿하게 동공을 핥았다. “꼬박 10년 만인데 눈 정돈 맞춰야지.” 굳어버린 입술이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버석하게 말라붙었다. 다시는 그때와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경고하듯 그의 눈이 선득했다. 우리가 이렇게 어긋난 이유는 뭘까. 열아홉, 너와 내가 서로의 인생에 끼어든 것부터가 이 불행의 시발점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