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 01. (89/98)

 외전 01.

 복귀와 동시에 회사는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갔다. 신차 출시가 임박해 오면서, 새로 시작한 프로젝트 진행에 속도가 붙은 탓이다.

 때문에 하루하루가 피곤함과 긴장감의 연속이었으나, 정작 다경의 피곤함을 가속화시키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미애, 다경! 시간 좀 남는데, 우리 1층 카페 들러서 차나 한 잔씩 하고 갈까?”

 “좋죠, 티타임! 오늘은 제가 쏠게요. 뭐 드실래요, 두분?”

 “난 너 지난번에 먹은 자바칩 프라푼가 뭔가 하는 거.”

 “프라푼가 뭔가가 아니라 프라푸치노요, 과장님. 대리님은요?”

 “···.”

 바로 앞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에도 집중 못 하게 만드는 어떤 한 사람의 나쁜 손 때문이다.

 “대리님?”

 식사를 마치고 1층 로비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 타인의 시선을 피한 아래쪽에서 아슬아슬하게 감겨오는 손짓에 다경의 귀끝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어쩌려고 이러는 거야, 정말.

 여기서 옆이라도 돌아봤다간 행여 누가 눈치챌까 싶어 섣불리 고개를 못 돌린 다경이 자꾸만 은밀하게 감겨오는 마디 굵은 손가락을 피해 등 뒤로 손을 옮겼다.

 ‘누가 눈치라도 채면 어쩌려구!’

 상황에 집중하지 못하고 어지럽게 굴러가는 눈동자에 당혹감이 가득했다.

 그럼에도 집요하게 쫓아오는 짓궂은 손은 기어이 다경의 손과 깍지마저 끼곤, 엄지 끝으로 손바닥을 슥- 긁었다.

 힉, 간지러움이 주는 야릇함에 숨이 급히 목아래로 당겨진다.

 어디 한번 뿌리치고 싶으면 뿌리쳐보라는 듯, 은밀하고도 노골적인 그만의 유혹.

 “저기, 대리니임-.”

 “···아, 어?”

 야릇한 감각에 휩싸여 정신이 나가 있던 다경이 화들짝 놀라 미애가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미안. 미애씨. 방금 뭐라고 했어?”

 “점심시간이 좀 남았는데 1층 가서 차 한잔하고 가면 어떨까하구요.”

 “아···.”

 미쳐, 정말.

 다경이 낭패감이 어린 얼굴을 폭 아래로 숙였다. 엄한데에 정신이 팔려선 동료들이 하는 말조차 못 듣고 있었다는 사실에 얼굴이 녹아내릴 것처럼 뜨거워졌다.

 “좋지. 차···.”

 다경이 어색하게 웃으며 다시 시선을 정면으로 돌렸다. 그러자 다경에게 닿아 있던 미애의 눈이 이번엔 그녀의 옆자리에 서 있는 장신의 남자에게로 향했다.

 “팀장님께서도 같이 드실래요? 오늘 건 제가 쏠 건데.”

 “아, 전 괜찮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내내 정신이 어딘가를 헤매는 다경과는 달리, 도하가 단정하기 이를 데 없는 얼굴로 미애의 말에 답했다.

 “식후에 차 종류는 별로 안 땡겨서 말이죠.”

 “아, 그럼 아쉽지만 오늘은 저희 셋만.”

 단정한 답 뒤로 또다시 허리춤 뒤에서 도하의 손끝이 얽혀왔다.

 ‘아, 제발···.’

 뿌리쳐도 다시 쫓아오는 온기에, 다경이 행여 누가 볼까 싶어 살짝 엘리베이터 벽 쪽에 몸을 붙였다. 그러자 벽에 눌린 그의 손이 의도치 않게 엉덩이에 닿고 말았다.

 으앗!

 깜짝 놀란 다경이 부리나케 다시 몸을 떼어냈다.

 “풉···.”

 옆자리에서 터진 바람 같은 소리에 반사적으로 돌아보자 그가 입을 가린 채로 웃음을 삼킨다.

 정말이지 너무 웃겨서 안 웃곤 못 배기겠다는 얼굴로.

 저게, 진짜.

 날카롭게 그를 한 번 흘겨본 다경이 도로 시선을 정면으로 향했다.

 그를 돌아보지 않으면서도 온통 도하에게 향한 신경은 그가 뱉는 숨소리와 손짓 하나하나에 한껏 곤두서 있었다.

 “그렇게 딴 곳 보면 뭐해.”

 그때, 꿋꿋이 정면만 보고 있는 다경을 향해 그의 고개가 슬쩍 기울어졌다.

 “얼굴이 나 떨려 죽겠어요, 하고 빨개져서 난린데.”

 짓궂은 바람 같은 숨결이 나른하게 귓바퀴를 스친다.

 이 못된···!

 의도 파악을 마친 다경의 눈매가 날카롭게 당겨 올라갔다. 그러자 남들이 눈치챌까 봐 뿌리치지조차 못하던 손이 커다란 손아귀에 꽉 붙잡혔다가 놓였다.

 웬일로 순순히?

 다경이 경계심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끼며 그가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그때, 피식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은 입술이 느른히 열렸다.

 “아무래도 차는 두 분이서만 마셔야겠는데요.”

 다경에게 닿았던 시선이 방향을 틀어, 송 과장과 미애에게로 향했다.

 “네?”

 “윤 대리는 프로젝트 건 때문에 저랑 좀 미팅을 가져야 할 것 같아서.”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다경이 포커페이스가 완전히 무너진 얼굴로 도하를 올려다보았다.

 “무, 무슨···.”

 “티타임은 나중으로 미루고 계획서 가지고 넘어와요. 윤 대리.”

 답지 않게 권위적인 음성이 서툴게 토를 다는 말을 단호히 잘라낸다. 그러곤 이내 몸을 기울여 다경에게만 들릴 만큼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덧붙였다.

 “내가 더 못된 짓 하기 전에.”

 남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알 일이 없을 악랄한 입술 끝이 뻔뻔하게 휘어진다.

 정말이지 권도하는 못되고 또 못된 상사였다.

 * * *

 “너 정말··· 읍!”

 쿵, 들어오자마자 입술이 덮쳐졌다.

 “흡··· 잠!”

 뭐라 말할 새도 없이 벽까지 몰아세운 그가 미처 다물지 못한 점막을 뚫고 아릿하게 살결을 빨아들였다.

 정신없이 혀와 숨결이 엉켰다. 벽에 떠밀린 몸을 진득하게 팔안에 감아 당기며 그가 깊숙하게 혀를 밀어 넣었다.

 “하, 흡··· 응!”

 두툼한 살덩이가 여린 속살을 어지럽게 헤집었다. 고개의 각도를 트는 바람에 더욱 깊어진 접촉에 숨결 하나 제 맘대로 뱉고 삼킬 수가 없었다.

 도망갈 곳을 잃은 작은 머리통을 힘주어 당기며, 그가 난잡하게 혀를 얽어맸다. 선뜻 그를 안지 못하면서도 맥없이 응하고 마는 여린 혀를 씹어 삼킬 듯 빨아댔다.

 “하··· 존나 달아, 네 입술.”

 움직이기에 갑갑한 듯 메고 있던 넥타이를 좌우로 당겨 늘인 그가 맞붙은 입술을 사이에 두고 저속하게 속삭였다.

 이 틈만 나면 발정하는 호색한!

 탁,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도하를 밀어낸 다경이 숨죽인 목소리로 외쳤다.

 “이게 무슨 미팅이야! 이 변···!”

 “그러다 밖에 다 들린다, 너.”

 하지만 뻔뻔한 짐승은 물러서긴커녕 도리어 어울리지 않는 경고를 하며 다시 몸을 붙였다.

 “이 안에서 너랑 내가 지금 뭔 짓을 하는 중인지.”

 “하!”

 그걸 신경 쓴다는 인간이 여기서 이래?

 “너 진짜!”

 “나야 타고나길 뻔뻔한 놈이라 괜찮지만, 넌 아니잖아. 응?”

 제 입으로 직접 뻔뻔함을 인정한 도하가 비긋이 입술 끝을 당겨 웃었다.

 대체 어쩜 저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순간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자, 그가 다시 다경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잠깐··· 앗!”

 잠시 할 말을 잃은 사이, 능숙하게 옷깃을 파고든 더운 손과 함께 목덜미로 그의 입술이 내려앉았다.

 흣, 질척하게 살결을 핥고 지나가는 습기에 그의 어깨를 붙잡은 손이 파르르 떨린다. 그가 여린 살갗을 욕심껏 지분대며 간지럽게 속삭였다.

 “그러게 그냥 어제 보자고 했을 때 그냥 봤음 좋았잖아, 다경아.”

 “아···!”

 “그럼 내가 이렇게, 여기서, 이 지경으로 발정도 안 났을 테고. 응?”

 옷깃 속으로 파고든 손이 이내 브래지어째로 와득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흣··· 뭐?”

 아릿한 통증과 함께 귓전을 스치는 그의 말에 달뜬 얼굴 위로 때늦은 당혹감이 스쳤다.

 그러니까 지금 그 말은, 어제 자고 가라던 제 말에 그냥 돌아갔다고 이랬다는 거야?

 그제도, 며칠 전에도··· 연달아 제 집에서 자고 갔는데?

 “너 어쩜···.”

 도하가 이유랍시고 덧붙인 말에 어이없어 하는 와중, 단정한 펜슬 스커트가 위로 확 걷혔다.

 “앗!”

 “그만 튕기고 좀 벌려봐.”

 흐트러진 다경의 아래로 무릎마저 꿇은 그가 스타킹을 찢고 그대로 속옷마저 끌어내려버렸다.

 서, 설마 여기서 진짜 하려는 거야?

 팀장실의 용도와는 맞지 않는 색정적인 장면에 얼굴이 타오를 듯 붉어졌다.

 “뭐 하는 거야, 너!”

 깜짝 놀란 다경이 아래 자리잡은 어깨를 툭 밀치며 뒤늦게 새된 비명을 내질렀다. 그럼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변태는 이윽고 거리낄 것 없이 갈라진 틈 사이로 손을 옮겼다.

 “흣··· 누가 들어오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런 걸 걱정하는 것치곤 이 아래가 너무 난린데, 다경아.”

 “무슨···, 아!”

 “쉬이··· 괜찮아.”

 난처할 일 없게 하나도 남김없이 다 빨아주겠다며, 그가 나직한 속삭임 뒤로 말릴 틈도 없이 입술을 붙였다.

 “으흣···.”

 간지러운 숨결이 내려앉은 젖은 살 위로, 이내 보다 노골적이고 습한감각이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쯥, 츳― 흡착판처럼 들러붙는 입술과 함께 온몸이 후들거리도록 저릿한 감각이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문도 잠갔고, 하··· 블라인드도 쳤으니까.”

 “으응···.”

 “분위기 이상하다 싶으면 알아서 피해들 가겠지. 응?”

 “하아···.”

 쓰러지지 못해 벽에 기대어 있는 몸이 발발 떨렸다. 아래가 송두리째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에 벽을 짚은 손끝이, 까득 손톱을 세운다.

 “그래도, 흣.”

 아득하게 몰려드는 쾌감과는 별개로 찾아오는 배덕감에 다경이 초조히 문 쪽을 돌아보았다.

 그 순간.

 “하···!”

 “여유가 넘치네, 윤다경.”

 잘근, 살점을 씹은 입술이 짓궂게 읊조렸다.

 “아래 빨리면서 바깥 걱정할 정신도 있고.”

 말이 끝남과 동시에 답싹 삼켜 무는 흡입감에 다경이 부리나케 입술을 틀어막았다.

 흐··· 어떡해.

 갈길을 잃은 손이 어지럽게 그의 머리카락을 헤집어 헝클인다. “달아, 네 여기.” 하며 도하야말로 믿기 어려울 만큼 여유롭게 은밀한 곳을 애무했다.

 “으응, 읍!”

 막힌 신음이 쉴 새 없이 손등을 타고 흐른다. 흔들리는 시야를 어찌할 수 없어 아래를 내려다보자, 이루 말할 수 없이 외설적인 작태가 눈에 들어왔다.

 난잡하게 걷어 올려진 스커트 아래 자리 잡은 단정한 등과 그완 어울리지 않는 아주 야하고도 음탕한 빨간 혀끝.

 ‘정말이지 해로워.’

 보다 못한 다경이 결국 입술을 틀어막고 질끈 두 눈마저 감아버렸다. 차단된 시야와 함께 까매진 머릿속에서 적색 경고등이 어지럽게 점멸했다.

 이러다간 프로젝트를 마치기도 전에 제 심장이 먼저 수명을 다해 버릴지도.

 못된 상사와의 연애는 정말이지 독약만큼이나 해롭고 또 해롭다.

 * * *

 간밤의 외면으로 인해 치르게 된 예기치 못한 정사 후.

 “···양심도 없어, 정말.”

 팀장실 한 귀퉁이에서 노곤하게 풀려 미동조차 못한 다경이 그의 옷을 덮은 채 원망하듯 중얼거렸다.

 그 옆에 나란히 앉아 옷매무시를 가다듬어주던 도하가 짓궂기 그지없는 얼굴로 반문했다.

 “그 양심 없는 놈한테 박히면서 좋아한 너도 못지않게 양심 없고, 그치?”

 다경이 야속함이 한가득 담긴 얼굴로 그를 쏘아보았다.

 “넌 나만 보면 매일 이 짓 할 생각뿐이지?”

 “설마.”

 그가 흐트러진 블라우스의 마지막 단추마저 꽉 채워주곤 여유로운 얼굴로 말했다.

 “이 짓 생각이 없다면야 거짓말이지만, 이 짓‘만’ 생각하는 건 아닐걸?”

 “그럼?”

 치, 네가? 하는 얼굴로 다경이 잔뜩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낮게 웃음을 터트린 그가 불퉁스러운 볼을 귀엽다는 듯 툭 건드린다.

 “말 나온김에 주말에 뭐 하고 싶은지 말해봐. 제대로 된 데이트 좀 하게.”

 데이트라.

 달콤하게 혀끝을 구르는 그 단어를 곱씹던 다경의 눈에 문득 이채가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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