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1화 (82/98)

 81화.

 “안녕하쎄요오!!!”

 에이프런 착장을 마친 도하의 눈이 문을 가리킴과 동시에 우렁찬 음성이 좁은 골목식당을 터트릴 듯 울려 퍼졌다.

 덕분에 깜짝 놀란 다경이 소스라치듯 뒤를 돌아보았다.

 “여기가 그 소문난 국밥 맛집이라면서요!!”

 반갑게 양손을 흔들며 들이닥친 익숙한 인영들이 순식간에 식당 안을 시끌벅적하게 만들었다.

 “···송 과장님?”

 “저희 왔어요, 대리님!!”

 선두에 선 송 과장의 뒤에서 빼꼼 얼굴을 내민 말간 얼굴이 작고 귀여운 다육 화분을 흔들며 인사했다.

 “미애씨···.”

 “나도 왔어요, 윤 대리.”

 그 뒤로 우직하게 선 다감한 목소리의 주인도 다경을 보곤 싱긋 웃었다.

 “박 과장님···.”

 “우리도!!”

 다음은 부장님부터 순서랄 것도 없이 들이닥치며 어안이 벙벙한 다경을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다경은 눈앞에서 보면서도 어안이 벙벙해 선뜻 다가서지 못한 채 입술만 벙긋거렸다.

 도하가 식당 일을 돕겠다 나설 때부터 정신없던 머릿속이 갑작스레 들이닥친 팀원들로 인해 뱅글뱅글 돌 지경이었다.

 “뭐가 이렇게 시끌벅적···, 에구머니나!”

 때아닌 소음에 밖을 내다본 엄마의 눈도 터질 것처럼 휘둥그레졌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저희 윤 대리 직장 동료들이에요!”

 “안녕하세요오!”

 조용하던 식당 안이 순식간에 기분 좋은 소란으로 가득 찼다.

 빈 테이블을 찾아 알아서 자리에 앉는 회사 사람들을 보며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데, 등 뒤에서 나지막이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넘어왔다.

 “봐, 내가 정신없이 바쁠 거라고 했지?”

 장난스럽게 소곤거린 도하가 붙박인 듯 멈춰 있는 다경을 회사 사람들 쪽으로 툭 밀쳤다.

 대체 이게 다 뭐야?

 당황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자, 정작 본인은 주방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사장님! 여기 국밥 열두 그릇에 수육 다섯 접시요!”

 그런 도하를 바라보는 다경의 입에서 뒤늦은 헛웃음이 터졌다.

 이거였어? 나더러 본인이 일 도울 테니 손님 응대하라 했던 게 바로···.

 “와, 우리 권 팀장님은 어쩜 슈트에 앞치마를 걸쳐도 저렇게 섹시할까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식당 안.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다경의 뒤에서 미애가 설렘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럼 뭐해, 임자 있어. 이것아.”

 꿈 깨라는 듯 미애의 팔꿈치를 툭 친 송 과장이 도하를 향해 번쩍 손을 치켜들었다.

 “어이, 권 알바님! 여기 이슬이랑 카아스도 몇 병도 쫙 돌려주세요!”

 “네, 네!”

 마치 몇 년은 이곳에서 일한 것처럼 도하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다른 이도 아니고 무려 권도하가, 앞치마를 둘러매고 회사 사람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 위로 술병을 나르다니.

 도무지 상상이 안 되는 그 이질적인 광경을 눈앞에서 보는 다경의 입가에 결국 패배를 인정하는 웃음이 번지고 만다.

 아무래도 난, 이대로 영영 너에게서 벗어날 수 없으려나 보다.

 * * *

 “세상에, 우리 윤 대리가 대체 누굴 닮아 이렇게 이쁜가 했더니 어머니를 그냥 빼다 박은 거였네요!!”

 호들갑스러운 목소리가 테이블 위를 간드러지게 굴렀다.

 “호호. 그런가요? 내가 소싯적에 누구누구 뺨친다는 소리 많이 듣긴 했지.”

 송 과장의 프로펠라 덕에 천장 높은 줄 모르고 붕 뜬 엄마가 그녀가 건넨 소맥 한잔을 홀짝 들이켜며 새침하게 대꾸했다.

 살살 좀 달리셨음 좋겠는데.

 국밥과 수육으로 식사를 마치자, 메뉴엔 없는 각종 튀김에 해물전, 과일까지 깔아놓은 테이블은 어느 술상 부럽지 않게 걸게 차려져 있었다.

 덕분에 아예 간판 불까지 꺼버리고 제대로 술판을 벌이기 시작한 식당 안은 작은 동네가 떠나가라 시끌벅적했다.

 “아니, 저희가 진즉에 어머니 하시는 식당 와서 한 번 갈아드리자고 했는데 윤 대리가 당최 초대를 해야 말이죠!”

 “어머, 우리 다경이가 왜 그랬을까? 매상이고 뭐고, 그냥 모시고 와도 되는데.”

 “그르니까요! 그래서 윤 대리도 쉰다고 했겠다, 이참에 확 들이닥쳐 버리자! 그러고 권 팀장님이랑 얘기해서 팀원들 끌고 와버린 거예요. 잘했죠, 어머니?”

 시작부터 소맥을 말아 드시는 것 같더니, 텐션이 한껏 올라간 송 과장이 엄마의 팔에 팔짱까지 껴가며 갖은 너스레를 떨었다.

 “잘했다 마다! 차린 건 없지만 어서들 드세요, 어서!”

 “차린 게 없긴요. 완전 맛있는데. 아까 먹은 국밥도 너무 맛있더라구요! 우리 회사 앞에다 턱 하니 옮겨놓고 싶네, 아주.”

 “그럼 이참에 아주 이전을 해버릴까?”

 “그러실래요? 내일 바로 자리 보러 콜?”

 깔깔깔, 뭐가 그리 재밌는지. 함박웃음을 터트린 엄마와 송 과장이 짠! 하고 또다시 잔을 맞추었다.

 “송 과장님 오늘 너무 오버하시는데. 우리 엄마도 그렇고.”

 맞은편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경이 걱정스런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그냥 두세요, 기분 좋으셔서 그러시는 거니까.”

 저라도 정신줄을 챙겨야겠다며 첫 잔 이후론 사이다만 홀짝대던 미애가 웃으며 말했다.

 “뭐가?”

 “오늘 이렇게 윤 대리님 얼굴도 봤고, 또 실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슬그머니 귓가로 얼굴을 기울여 다경에게 소곤거렸다.

 “오늘 완전 속이 뻥 뚫리는 일이 있었거든요.”

 속이 뻥 뚫릴 일이라.

 다경이 두 눈을 큼직하게 뜨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만요. 제가 직접 보여드릴게요.”

 가방 안에서 주섬주섬 휴대폰을 꺼내 드는가 싶던 미애가 SNS 계정으로 들어가 웬 영상 하나를 클릭해 다경에게 건넸다.

 “이게 뭔데?”

 “일단 봐 보세요.”

 미심쩍은 표정을 짓자, 미애는 우선 보라며 휴대폰을 아예 손에 쥐여주기까지 했다.

 대체 뭔데 이러나 싶어, 다경이 마지못해 화면 속으로 시선을 옮겼다.

 등장인물들의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된 영상 속에서, 회사 로비를 지나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인물들 주변으로 보이는 로비 풍경이 어쩐지 낯익다 싶은 순간, 쫙! 하는 소리와 함께 무리 속에 있던 한 여자의 고개가 홱 옆으로 꺾였다.

 “뭐야, 이게?”

 갑작스러운 인물 간의 대치에 다경이 깜짝 놀라 화면을 저만치 떼어냈다.

 “계속 보세요.”

 미애가 어쩐지 신나 하는 얼굴로 마저 휴대폰을 당겨 놓았다.

 이게 대체 뭐길래 이러지. 폭력과 욕설이 오가는 영상은 보기가 어쩐지 불편했지만 눈앞에 있으니 안 볼 수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화면을 보고 있자, 갑작스런 따귀에 이어 또 한 차례 뺨을 올려붙인 여자가 쓰고 있던 카플린과 선글라스를 확 벗어 던지며 상대를 향해 외쳤다.

 ― 누구냐고? 나, 너랑 붙어먹는 ‘삐―’이 마누라다!! 왜!!!

 ― 사, 사모··· 님?

 중간중간 묵음 처리된 인물들의 이름과 변조된 목소리 때문에 정확하지는 않았으나, 아무래도 주고받는 대화를 보아하니 바람난 유부남의 와이프가 회사 로비로 쫓아와 상간녀와 마주하여 뒤집어엎는 상황인 것 같았다.

 이어서 머리채마저 잡히는가 싶던 그 상간녀는 억울하다는 듯 목소리를 드높였다가 바닥으로 떨어진 사진들과 함께 할 말을 잃고 제가 매고 있던 가방으로 정신없이 얻어맞았다.

 과연 몸이 성할까 싶을 만큼 무차별적인 매질.

 바람피우고 큰소리까지 쳤으니 나쁜 건 맞는데, 종국엔 그럼에도 측은지심이 들 정도였다.

 “뭔데 이런 걸 나더러 보라고 그래.”

 보고 있기 불편한 마음이 들어, 다경이 영상이 끝난 휴대폰을 미애에게로 돌려주었다.

 “아이참, 대리님. 여기 어딘지 전혀 모르시겠어요?”

 미애가 답답하다는 듯 화면이 멈춘 영상을 다경에게로 들이밀며 물었다.

 “글쎄-, 낯이 익긴 한데 잘···.”

 “우리 회사 로비잖아요! 여기서 복날 개 잡듯 잡히는 이 상간녀는 김주미 씨구요!”

 관심 없다는 듯 건성으로 화면을 보던 눈이 이내 함지박만 하게 커졌다.

 이게 김주미라고? 그 김주미가 유부남 상사와 바람이 난 상간녀였다니···.

 “이거 오늘 점심시간에 우리 회사에서 찍힌 거예요. 누가 올렸는지, 모자이크된 영상이 SNS에까지 돌아서 지금 사내게시판 난리 났잖아요!”

 미애가 내친김에 김주미에 대한 글들로 도배가 된 사내게시판을 보여주며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게다가 더 충격인 건 뭔지 아세요? 이 영상이 돌면서 모자이크 필요 없이 신상 털리고 난리가 났는데, 그 아래 댓글들에 알고 보니 김주미가 중고등학교 때 그 동네 일진으로 유명했다는 내용도 달린 거 있죠? 왕따에, 폭력에, 패악질이 얼마나 심했는지, 동창이란 몇몇 사람들이 이거 보고 고소하다고 물개박수 치더라구요.”

 미애가 보여준 댓글에는 알파벳 이니셜로 지역과 학교 이름을 언급한 사람들이 김주미가 학생 시절 저질렀던 만행들에 대해 소상하게 나열하고 있었다.

 못된 짓이란 못된 짓은 다 하고 다닌 일진 우두머리며, 대학교 가서도 이 남자 저 남자 찔러보고 단물 빼먹고 버렸다는 연애사와 관련된 사적인 일화까지.

 일부는 1년을 같은 학교에 다녔던 저 또한 알고 있던 사실이었으나, 사람들이 꽃뱀이라 운운하는 일들까진 다경도 미처 몰랐던 터라 읽어내릴수록 경악을 금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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