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화 (38/98)

 37화.

 깜짝 놀란 미애가 저도 모르게 소리를 높이고 말았다. 동시에 줄곧 대화에 관심 없던 다경도 같이 눈길이 향했다.

 미애의 목소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정확히는 은영이 언급한 차 본부장의 출신 성분 때문이다.

 “텐프로라니. 술집 접대부 출신 같은, 그런 거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렇다니까.”

 “세상에···. 문제될 만 하네요.”

 텐션 높은 미애도 슬쩍 목소리를 낮추었다.

 술집 접대부 출신 어머니라니.

 다경은 저도 모르게 입술이 마르는 듯해, 괜스레 입술을 안으로 감쳐 물었다.

 지금 직원들의 입을 통해 거론되는 말이 저와 전혀 상관이 없음에도, 과거의 어느 순간들이 떠올라 문득 속이 울렁거렸다.

 “능력 있음 뭐해, 출신이 그런데. 물론 외가에서 못 받쳐주더라도 본인 능력으로 극복할 수도 있다지만, 그래도 웬만해야지.”

 쯔쯧, 혀를 차는 소리가 제 뒤통수를 툭툭 차는 것만 같았다.

 다경은 불편한 마음을 감추려 피하듯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 잊고 있던 눈동자와 눈이 마주쳐 덜컥 심장이 아래로 꺼져버렸다.

 “···!”

 이 대화가 얼마나 제게 불편할지 알고 있을 회사 안의 유일한 한 사람, 권도하.

 “그러게요. 웬만큼은 해야 하는데, 접대부는 좀 그렇다.”

 “사실 나도 그래. 그냥 가정 파탄자도 싫은 마당에 접대부는 좀···. 자긴 어떻게 생각해, 윤 대리?”

 송 과장이 카운터에서 가져온 커피를 앞에 놓아주며 다경에게 물었다.

 “네?”

 갑작스레 제게로 향한 질문에 다경이 사색이 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뭘 그렇게 놀라? 보는 내가 더 깜짝 놀라게.”

 “아···.”

 그러다 뒤늦게 제 반응이 비정상적이었음을 깨닫곤 재빨리 표정을 가다듬었다.

 “잠시 딴생각하고 있던 중이어서요. 죄송한데, 뭐라고 하셨어요?”

 “아니, 차 본부장님 모계 말이야. 접대부 출신은 좀 그렇지 않냐고.”

 옆에 있던 은영이 다시 한번 질문의 이유를 설명했다.

 하필 이런 질문이 제게로 돌아온 게 운명의 장난 같았으나, 어쩔 수 없었다.

 더는 수상한 반응을 보일 순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아무래도···.”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달싹이며 다경이 씁쓸하게 덧붙였다.

 “접대부 출신은, 좀 그렇긴 하죠.”

 그러곤 파르르 떨리는 입가를 감추려 재빨리 아메리카노의 빨대를 입에 물었다.

 “에휴. 재벌가 시끄러운 집안일이야 딴 세상 얘기고, 우리는 커피나 마시자!”

 송 과장의 유쾌한 목소리에 다들 깔깔대며 커피를 마셨다.

 초점을 잃고 응시하고 있는 눈앞이 어지럽게 일렁거렸다.

 쓰디쓴 아메리카노가 매섭게 위장을 훑는다. 잔을 거머쥔 새하얀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 * *

 “욱···!”

 숨죽인 토악질 소리가 비좁은 칸막이 안에 떠돌았다.

 휴게실에서의 대화가 끝나자마자 화장실로 온 다경이 점심때 먹은 걸 다 게워내는 소리였다.

 “흡··· 욱!”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프고 가슴이 묵직한 돌덩이에 짓눌린 듯 답답했다.

 위액까지 다 게워내고도 좀처럼 편해지지 않는 속 때문에 온몸이 다 흔들리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접대부 출신은 좀, 그렇긴 하죠.’

 아무것도 모르고 묻는 사람들을 향해 가증스레 내뱉었던 제 대꾸가 돌이킬수록 역겨웠다.

 ‘제 엄마 닮아 걸레 같은 년.’

 어렸던 그 시절.

 ‘그러니까 주제를 알아야지, 이년아. 어디 다방 마담 딸년 주제에.’

 맨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갖은 욕설들이 어지럽게 귓가를 떠돌았다.

 그토록 그들을 원망했으면서. 이유 없는 비난이라 처절하게 울부짖었으면서.

 행여 사람들이 눈치챌까 두려워 맥없이 동조하고만 제 입이 가증스럽고도 수치스럽다.

 한때는 그 애꿎은 괴롭힘에 뻔뻔할 만큼 당당하게 굴었던 저인데, 어쩌다 이렇게···.

 “흐, 흡···.”

 혹시나 제 흐느낌이 문밖으로 새나가기라도 할까 봐, 다경이 양손을 들어 입술을 꽉 틀어막았다.

 두려움에 속수무책으로 흐르기 시작한 눈물이 뺨만으로도 모자라 손등까지 축축하게 적셨다.

 ‘사람은 원래 제 분수에 맞게 사는 거야.’

 저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던. 하루도 잊은 적 없는, 가장 처절했던 날의 기억이 눈물로 흥건히 차오른 눈 안에서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흔적 남기지 말고 이 동네에서 떠나요.’

 사람이 얼마나 무섭고.

 ‘딸도 댁 인생처럼 살게 만들고 싶지 않거든.’

 쉬이 믿어선 안 되는 존재임을 일깨워 주었던 10년 전 그날의 기억.

 다경이 터질 것 같은 울음을 혀끝으로 꽉 누른 채 숨죽여 흐느꼈다.

 그러니까, 난 절대 말할 수 없다.

 내 출신이 이러해서 그런 건 괜찮다는 말 따위, 감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다.

 비굴해도, 역겨워도, 절대 말할 수 없다.

 그것이 사람들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 * *

 결국, 먹은 걸 다 게워내고서야 칸막이 밖으로 걸어 나왔다.

 새하얗게 질린 낯을 가다듬고 화장실에서 나오자,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윤 대리?”

 다경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발작처럼 돌아본 곳엔 생각지 못한 인물이 서 있었다.

 다름 아닌, 박일호 과장이다.

 “···안녕하세요, 과장님.”

 “괜찮아요? 급하게 화장실로 뛰어가던데.”

 그가 얼굴 만면에 걱정스러움을 짙게 깐 채 물었다.

 자연스레 일행에서 빠져나와 화장실로 온 터라 누군가 봤을 거라곤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 그의 눈에 띄었던 건가.

 “···괜찮아요.”

 혹시나 울고 나온 걸 눈치챌까 싶어, 다경이 얼른 고개를 떨구며 어색하게 둘러댔다.

 “밥을 급히 먹었더니 속이 좀 안 좋아서···.”

 “체했던 게 맞았나 보네. 이거 좀 먹고 들어가요.”

 차마 마주 보기 민망해 바닥을 향한 눈앞에 웬 작은 병과 약 봉투가 내밀어졌다.

 “이게···.”

 “낯빛이 영 안 좋길래, 먹으면 좀 낫지 않을까 해서요.”

 남자가 멋쩍은 얼굴로 말했다. 다경은 답하는 대신 그의 손에 놓인 것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가 건넨 것은 다름 아닌 소화제였다. 아주 찰나였을 텐데 제 상태가 좋지 않은 걸 알곤 약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그에게 뭘 들키기라도 할까 봐 잔뜩 경계하고 있었건만.

 “따로 사 오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종일 사무실에 앉아 있다 보면 소화가 안 될 때가 종종 있어서 갖고 있는 거거든.”

 작은 배려를 건네는 것조차 혹여나 제 맘이 상할까 노심초사하는 게 느껴졌다. 다경은 그의 생각지 못한 배려에 마음이 그나마 좀 유연해지는 것 같았다.

 ‘박 과장, 사람은 참 진국이잖아.’

 송 과장이 그에 대해 말할 때면 항상 붙이는 그 수식어가 문득 머릿속에 떠올랐다.

 물론, 그가 베푸는 이 배려에 같은 부서 직원으로서 챙기는 것만이 아닌 남다른 사심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 하여 모두가 이와 같은 마음을 쓰지는 못한다.

 참 다정하고 사려 깊은 사람.

 그런데, 이런 좋은 사람에게 여태껏 난···.

 “감사합니다, 과장님. 먹어볼게요.”

 다경이 은은하게 입가를 당기며 그가 내민 소화제를 기꺼이 받아들었다. 좀처럼 보기 힘든 다경의 미소를 보곤 긴장이 어려 있던 남자의 뺨에 옅은 홍조가 번졌다.

 “아, 고, 고마워요. 받아줘서.”

 혹시나 됐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 중이었던 모양이다.

 고마워 해야 할 건 저인데 도리어 받아준 것이 고맙다니.

 “과장님께서도 참. 무슨 그런 말씀을.”

 다경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손안에 든 소화제를 가만히 손에 쥐었다. 그걸 바라보는 남자의 얼굴에도 연한 웃음기가 감돌았다.

 그러다 뭔가 어색했는지 미처 거두지 못한 빈손을 얼른 당겨 바지에 문지르곤 다소 급하게 덧붙였다.

 “계속 안 좋으면 늦게라도 꼭 병원 가구요. 그럼.”

 순박한 미소를 지으며 한발 물러선 그가 서둘러 몸을 돌렸다. 돌아서는 그의 귀 끝이 발갛게 달아오른 것이 뒤늦게 보였다.

 그와 함께 불편한 마음이 다경의 양심을 확 짓눌렀다.

 정말 좋은 사람인데, 이런 사람에게 계속해서 애매한 태도를 보이는 건 아무래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박 과장님.”

 충동적으로 결심이 선 다경이 다급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 화장실 앞을 벗어나 사무실 쪽으로 향하던 그가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돌아본다.

 짧은 시간, 갈등과 망설임이 마음을 수없이 스쳤지만 다경은 늦기 전에 그를 향해 입술을 뗐다.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잠시 이야기 좀 나누고 싶은데요.”

 이제 그만, 책임지지 못할 마음에 대한 결론을 내려 줄 때였다.

 * * *

 “어딜 간 거야, 대체.”

 분 단위로 블라인드 사이를 내다보는 눈에 초조함과 걱정이 스쳤다.

 분명 직원들과 같이 올라가는 걸 봤는데, 다경만 아직 자리로 돌아오질 않고 있었다.

 “어디 처박혀서 질질 짜고 있는 거 아냐?”

 도하는 갑갑하게 조여오는 넥타이를 당기며 낮게 숨을 내뱉었다.

 조금 전 1층 카페에서 다경의 얼굴을 보고부터 시작된 불안이었다.

 하필 대화 주제가 그리로 연결돼선, 직원들이 무심코 던진 물음에 바로 사색이 되던 낯이 그의 뇌를 콱 짓눌렀다.

 그러다 저와 눈을 마주친 순간 어지럽게 떨리던 동공과···.

 ‘아무래도 접대부 출신은 좀, 그렇긴 하죠.’

 마지못한 답을 뱉으며 잘게 떨리던 손.

 특유의 포커페이스로 동요를 감추려 애쓰고 있었지만, 적어도 그의 눈엔 선명하게 보였다.

 다경이 그저 그런 불편함을 넘어선 짙은 공포를 느끼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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