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화 (25/98)

 24화.

 ― 다경아?

 “응, 별거 아냐. 진짜로···.”

 뒤늦게 그리 대답하곤 급히 입술을 깨물었다.

 가까스로 신음을 참아낸 눈가가 열기로 발갛게 젖었다.

 자꾸만 숨이 흐트러지고 시야가 뭉개졌다.

 위아래로 지속되는 자극에 다경은 금방이라도 신음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 조심 좀 하지. 칠칠맞지 못하게시리.

 “어. 엄마, 저기 미안한데··· 내가 지금 좀 바빠서.”

 결국 쥐어짜듯 목소리를 내뱉어 엄마와의 통화를 갈무리했다.

 ― 에휴, 그놈의 회사는 어제부터 정말 왜 그런다니. 일단 알았어!

 퇴근하면서 연락하라는 말을 끝으로 비로소 전화가 끊어졌다. 그와 동시에 줄곧 할 말을 참던 입에서 외마디 비명이 터지고 말았다.

 “이게 무슨 짓이야!”

 휴대폰마저 내던져버린 새하얀 손이 매섭게 그의 어깨를 내려쳤다.

 “그러다 엄마가 듣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소리는 들키면 안 되는데.”

 “앗···!”

 한 손만으로 다경의 두 손목을 가벼이 제압한 그가 짓궂게 되물었다.

 “통화 중에 이렇게 되는 건 괜찮은가 봐?”

 “그건, 흣···.”

 네가 자꾸 야한 짓을 해서 그런 거 아니냐고 반박하려 했으나, 보란 듯이 자극을 이어가는 손짓에 뒷말이 삼켜지고 말았다.

 “그게 뭐?”

 “흐, 네가 자꾸 이러니까···.”

 “내가 자꾸 뭘 어쨌는데.”

 타액에 젖은 살결을 질척하게 눌러 비비며 그가 뻔뻔하게 물었다.

 “말해 봐. 네 여기가 왜 이 지경이 됐는지.”

 은밀함을 조장하듯 부러 나직이 읊조리는 음성이 그래서 더 짓궂었다.

 “아냐··· 아···.”

 “이게 좋았나?”

 턱턱, 손끝을 치대며 그가 간밤의 흔적으로 울혈 진 살결을 세게 흡입했다.

 그것도 아니면 이렇게 동시에 해주는 게 좋으냐고, 귓속이 더러워지도록 음란한 소리에 다경이 참다못해 목소릴 높였다.

 “제발 그런 말 좀 그만···.”

 “왜, 누가 들을까 봐 겁나?”

 사악하게 입꼬리를 당긴 그가 귓불을 빨며 나른하게 덧붙였다.

 “근데 그건 아는지 모르겠네.”

 “흐···.”

 “내 목소리보다, 너 자지러지는 소리가 훨씬 더 크고 야한 거.”

 “흡.”

 뒤늦게 신음을 죽인 다경이 그에게로 몸을 기울인 채 발발 떨었다. 행여 제 목소리가 이 비좁은 차 밖으로 새어 나가기라도 할까 봐 심장이 조여왔다.

 그러면서도 그 순간마저 달아오르고 마는 제 몸이 어디 내버리고 싶을 만큼 수치스럽다.

 “왜, 더 예쁘게 울어보지.”

 짓궂은 손아귀가 얌전히 앉아 있는 허리를 탐욕스레 움켜쥐었다.

 “소리만 참으면 뭐해, 다경아. 이 아래가 못 참아서 안달인데. 응?”

 신음을 참으려 제 어깨에 입술을 묻는 다경을 보며 그가 짓궂은 웃음을 흘렸다.

 변태 같은 자식.

 발갛게 열 오른 눈동자가 울 것처럼 그를 노려보았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치운대도 이 정도로 사악할 순 없을 것 같았다.

 어쩜 이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는 건 의미 없는 짓이었다.

 저를 놀리는 데 재미를 붙인 이 나쁜 놈은 그러면 그럴수록 저를 궁지로 몰아갈 테니까.

 “차라리.”

 거침없이 움직이는 손을 붙잡아 제지하며 다경이 읊조렸다.

 “호텔로 가.”

 화를 내는 걸로는 통하지가 않으니, 회유밖엔 방법이 없었다.

 “좀 늦어도 돼. 방금 엄마랑 통화했으니까.”

 “아니.”

 여기서 이러지 말고 다른 데로 가자고, 저 나름의 타협점을 제시했으나 그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서 바로 할 거야.”

 애원에 가까운 부탁을 뿌리친 그가 거칠 것 없이 욕망을 드러냈다. 어둠 속에서도 선명한 위용이 느껴졌다.

 “···안 돼, 여기선.”

 금방이라도 파고들 것 같아 반사적으로 숨이 당겼다. 잡아 뜯긴 스타킹 사이로 닿는 그를 피해 몸을 물리며 다경이 애원했다.

 “못 해. 제발···.”

 “못 하는 건 없어. 다경아.”

 하지만 그는 도무지 물러서 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기억 안 나? 간밤에도 안 된다면서 세 번이나 뒹굴어놓고.”

 못되게 키들대는 소리가 귓바퀴를 비릿하게 감싼다.

 “권도하, 너 정말 이럴 거야?”

 정말 이대로 할 작정인 걸 깨닫곤 절망감에 휩싸인 눈이 눈물로 넘실거렸다.

 그가 대체 왜 이렇게까지 억지를 부리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째서 여기서 꼭 제게 이래야만 하는 건지.

 물론 못된 말로 그를 자극한 건 저였지만, 그렇다고 굳이 이렇게까진.

 “그러게.”

 원망을 실어 내려다보는 눈 위로 웃음기 가신 창백한 눈동자가 닿았다.

 “퇴근하고 보자는 네 문자 받았을 때만 해도, 나도 여기서 너랑 이러고 있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는데.”

 도하가 이따금씩 저를 약하게 하는 그녀의 연한 눈가를 엄지로 다정히 쓸어 눈물을 닦았다.

 번쩍― 옆을 지나가는 자동차의 불빛이 어둑한 음영이 진 도하의 표정을 짧게 스쳤다가 사라졌다.

 빛이 스친 순간, 찰나 간 비친 씁쓸함이 원망하듯 그를 노려보던 갈색 눈에 날카로운 파편처럼 박혔다.

 “그거 알아?”

 젖은 눈언저리를 쓸고 마른 뺨을 매만져준 더운 손이 다경의 턱을 붙잡아 그와 눈을 맞추게 했다.

 “오늘 너랑 근처 맛집에서 밥 먹고 가볍게 산책이나 할 생각이었던 거.”

 생각지 못한 도하의 고백에 커다래진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사실이었다. 먼저 연락을 줄 거라곤 꿈도 꾸지 않았던 다경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한 뒤 그가 계획했던 일정에, 섹스 같은 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마주 앉아 밥을 먹고, 미처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러다 가능하다면 나란히 보조를 맞추어 거리를 걷는.

 어젠 미처 하지 못한 그 지극히 평범한 과정을, 다경과 함께 하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퇴근하고 보자는 네 문자에 병신같이 들떠서 종일 너랑 뭐 먹을까, 어디 갈까 고민했었다고. 근데―.”

 그 모든 게 제 과욕이었다.

 “내가 이렇게 삽질이 심해.”

 끝까지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미련하게 헛물을 켰다.

 “우리 둘한테 있을 볼일이 이 짓 말고 뭐 있다고.”

 저를 보자는 그 용건의 이유가 제가 아닌 딴 놈 때문이라는 걸 알았을 때 밀려든 허무함과 분노를, 이 매정한 계집애는 죽어도 알 일이 없을 텐데.

 그러니 너완 마지 못해 잠만 자는 관계일 뿐 썸타고 연애하는 놈은 따로 있다는 잔인한 뉘앙스를 풍기고도, 이렇게 제 품에 안겨 예쁘게 신음할 수 있는 거겠지.

 10년 전.

 ‘오늘 나랑 허튼짓하자, 도하야.’

 뒤로는 하곡을 떠나기 위해 준비 중이었으면서도, 아닌 척 서툰 몸짓으로 유혹하듯 안겨들었던 마지막 그때처럼.

 피식, 이지러진 입매를 타고 자조 섞인 웃음이 번졌다. 하고 싶은 말을 삼키듯 어금니를 사리문 그가 인정 없는 손길로 가느다란 허벅지를 잡아 벌렸다.

 “요령껏 잘 해봐.”

 더 말해 봤자 부질없는 짓이었다. 뱉을수록 비참해지는 건 저뿐일 테니.

 “얼마나 빨리 끝나느냐는 전적으로 너한테 달렸으니까.”

 짓궂은 웃음기마저 씻은 듯이 거둔 채, 그가 비정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소리 없이 그런 그를 바라보던 다경이 울먹이듯 읊조렸다.

 “···나쁜 놈.”

 “아무렴, 너보다 나쁠까.”

 내 진심을 화대로 치부하고,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지금 이 순간의 끌림조차 계산이라 정의 내리는 너보다.

 구차함에 뱉지 못한 말을 목 아래로 삼키며 그가 제게 빨려 보풀어 오른 입술을 손끝으로 느릿하게 문질렀다.

 아무렴 너보다, 라고. 조곤조곤한 어조로 읊조리는 도하의 음성이 그래서 더 다경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나쁜 놈이라고, 거푸 욕했지만 사실 도하가 왜 이렇게 못되게 구는지는 그녀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를 이렇게 만든 게 저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그러면서도··· 이렇게밖에 도하를, 제 마음을 떨쳐낼 수 없는 스스로가 다경은 진절머리가 나도록 싫었다.

 이렇게 아플 줄 알았다면 그때 그러지 말 걸 그랬다.

 10년 전, 그날 그냥 그렇게 하곡을 떠나버릴 걸 그랬다.

 네 가슴에 괜한 비수를 꽂지 말고, 그냥 뒤도 돌아보지 말고 떠나버릴걸.

 괜한 원망으로, 괜한 미련으로, 내가 너한테 그래서.

 그래서, 네가 이렇게···.

 툭― 투둑, 더는 견뎌내지 못해 낙하해버린 눈물이 그의 셔츠 깃을 적셨다.

 “울지 마.”

 다경의 턱 끝에 달린 눈물을 혀로 핥으며 도하가 냉정한 어조로 읊조렸다.

 “울어도 안 봐줘.”

 차창 밖의 밤처럼 서늘하게 가라앉은 검은 눈이 시리게 가슴 끝을 그어냈다.

 “힘 빼.”

 덜컥, 몸이 흔들리며 비명에 가까운 신음이 터졌다. 흣, 질끈 감긴 눈꺼풀 아래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뜨겁고도 시린 물방울이 가슴골을 선득하게 그어 내려갔다. 뭉툭한 기둥 끝이 여린 살을 짓누르고 한계를 가늠하듯 파고들었다.

 “소리 참아.”

 품으로 무너져 파들대는 몸을 강건한 팔로 조여 안으며 그가 속삭였다.

 “다른 새끼들 귀에 네 소리 닿으면, 그놈들 고막을 다 찢어버릴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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