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다경이 바들바들 떠는 손을 옮겨 치마의 지퍼를 내리고 있었다.
울 것 같은 얼굴을 꾹 참은 채 치마를 벗고 티셔츠마저 벗어 올렸다.
그래놓곤 차마 제 손으로 다는 못 벗겠는지 망설이듯 떨궈진 눈길이 꼴에 지나치게 청순했다.
하여간 예나 지금이나, 쓸데없이 예뻐서.
“그쯤하고 올라와.”
결국 제 욕망과 다경의 망설임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으며 그가 명령했다.
까닥, 시트를 눈짓한 눈이 욕정을 숨기지 않은 채 음험하게 빛났다.
막 후크 쪽으로 옮겨가던 손이 그 순간 툭 아래로 떨어진다.
체념 어린 갈색 눈이 잘게 흔들린다. 다경이 결국 포기하듯 침대 위로 올라왔다.
* * *
“흡···.”
두 손으로 틀어막은 입에서 연신 숨결이 흐트러졌다.
애타게 울부짖는 몸이 뒤틀릴 듯 들썩였다.
어설픈 짓은 관두고 올라오라는 그 말이 이런 뜻일 거라곤 감히 상상도 못 했다.
이렇게 음란하고 야한 짓을 할 줄이야.
“그만···.”
다경은 몇 번이고 점멸하는 천장을 보며, 그의 머리를 애원하다시피 부여잡았다.
“하, 말이랑 몸이 다르잖아.”
자비 없는 입술이 갈증 난 짐승처럼 살결을 흡입했다.
고통에 가까운 쾌감에 다경이 작살에 꿰인 물고기처럼 몸을 펄떡였다.
어떡하면 좋아.
허리 밑이 어디론가 쏙 빨려 들어가는 느낌에 온몸이 휘어지도록 바르작거렸다.
그럴수록 허벅지를 부여잡고 당기는 손은 더욱 억세졌으나, 오감이 저려와 그것 말곤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흐···.”
사지가 발발 떨리도록 찾아온 절정이 수도 없이 그녀를 스쳤다.
맛도 야하다며, 질 나쁜 웃음을 지은 도하가 그의 손끝에 척척하게 엉겨 붙은 흔적들을 느릿하게 빨았다.
그걸 보는 다경의 얼굴이 귀까지 붉게 달아올랐다. 손가락 사이를 넘나드는 붉은 혀의 놀림이 요사스럽기 짝이 없었다.
어쩜 저렇게 야할 수 있는지.
10년 전 권도하와는 비할 수 없이 외설적인 행태에 머릿속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10년째 다른 여잔 안지도 못했다더니 대체 어디서 저런 야한 것들을 배워온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니면 원래 타고나길 야한 건가. 예전에도 어렴풋이 싹이 보이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벼, 변태···.”
다경이 도망치듯 발끝을 당겼다.
“그 변태 새끼 손에 자지러지는 넌 어떻고.”
기민하게 뻗어온 손에 다시금 발목이 잡아채이고 말았다.
“흣, 싫어.”
“아까부터 자꾸 말이랑 행동이 안 맞잖아.”
이런 몸뚱어리로 양심도 없이 지껄인다며, 그가 책망하듯 다시 그녀를 자극했다.
소리만으로도 제 몸의 상태가 훤히 보이는 듯해 다경은 수치심이 배가되었다.
“엄청 야해, 윤다경.”
속삭이는 음성은 한없이 다정한데 아래를 드나드는 손길은 혼이 나가도록 무자비하다.
“시, 싫어···.”
“거짓말.”
좋아 죽으면서, 하고 코끝에 입을 맞추는 얼굴이 놀리는 데 재미를 붙인 악동처럼 짓궂다.
마치 다 잡은 물고기를 낚싯줄에 매단 채 농락하는 얄미운 낚시꾼 같았다.
탐욕을 담아 꽉 움켜쥔 손아귀 밖으로 발긋한 정점이 삐져 나왔다. 행위의 시작부터 자극당한 살결이 그가 닿는 족족 찌릿거렸다.
“흐으.”
부끄러운 줄 알면서도 입을 빠져나오는 소리를 도무지 막을 길이 없다.
“원래 이렇게 예민했나?”
가볍게 쥐었다 펴는 손길에 숨넘어갈 듯 헐떡이는 다경을 보며 그가 속삭였다.
아님, 그간 딴 새끼들 손을 타서 더 야해진 거냐며. 그가 발갛게 열 오른 귀 끝을 혀로 핥고선 더운 숨을 쏟아냈다.
너야말로 대체 무슨 수를 썼기에 이토록 야해졌느냐는 물음이 목구멍 앞까지 차올랐지만 다경은 말할 수 없었다.
괜한 소릴 해봤자 본전도 못 찾을 게 뻔했으니까.
“허리는 또 왜 이렇게 가늘어.”
부러질 것 같은 몸을 내려다본 채 도하가 쯧, 하고 낮게 혀를 찼다. 여태 무작스럽게 굴 땐 언제고 뒤늦게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안색을 살핀다.
‘씨발, 윤다경. 너 이러다 아프면 어쩌려고.’
그게 꼭 10년 전 그날, 제가 다치기라도 할까 봐 걱정하던 얼굴과 겹쳐 다경은 괜스레 가슴이 울컥했다.
그런다고 이미 엉망으로 찢겨버린 이 관계가 다시 봉합되는 것도 아닌데.
“그냥 해.”
달떠 있던 목소리에 서늘한 체념이 깃들었다.
“뭐?”
“상관없으니까 그냥 하라고.”
죄책감에 몸서리치는 것보단, 차라리 제 몸이 아픈 편이 나을 것 같아 내린 결론이었다.
어차피 열 번만 감내하면 끝날 관계에 분에 넘치는 쾌감 따윈 존재해선 안 됐다.
아프면 아픈 만큼, 널 향한 내 마음도 홀가분해질 테니까.
“하긴. 처음도 아닌데 쓸데없는 걱정을 했네, 내가.”
차가운 조소와 함께 안을 간지럽히던 온기가 쑥 빠져나갔다. 체온이 사라진 몸 안쪽이 허전했다.
허전하긴. 이게 당연한 건데.
다경이 온기 걷힌 다리 사이를 모으며 외면하듯 얼굴을 돌리자, 그 옆으로 툭 뭔가가 떨어졌다.
“네가 해.”
둥근 윤곽이 비친 사각진 포장지가 눈에 잡혔다.
이건···.
뒤늦게 물건의 정체를 알아채곤 벌떡 몸을 세웠다.
“이, 이걸 내가 왜···.”
“뭘 그렇게 놀라? 그때도 네 손으로 직접 해 놓고.”
새삼스레 웬 내숭이냐는 듯 그가 대놓고 실소했다.
“10년째 사용 경험 없는 나보다야 네가 훨씬 익숙할 거 아냐?”
당연하다는 듯 되묻는 말이 당혹스러웠다.
그때야 자꾸 망설이는 도하가 어찌할 바를 모르기에 취했던 행동이었다. 그대로 뒀다간 절박했던 제 몸부림이 물거품이 될까 봐 행했던 선택.
결코 그런 짓이 쉽고 익숙해서 한 건 아니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익숙지 못한 건 그때와 마찬가지였다.
그날 이후, 관계는커녕 남자와 제대로 손조차 잡아본 적이 없는 저인데···.
“빨리해.”
덥석 붙잡힌 손에 포장지가 뜯긴 얇은 비닐 막이 강제로 쥐어졌다.
“권도하!”
“그냥 하라며.”
비어 있는 다경의 왼손을 끌어당기며 도하가 빙글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이걸 해야 하든지 말든지 하지. 아님, 그냥 할까? 난 그래도 상관없는데.”
장난스레 웃는 얼굴에 다경은 사색이 되고 말았다.
그냥이라니.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개구쟁이처럼 휘어진 눈엔 물러설 기미 따윈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당황하는 저를 보며 즐기는 것도 같았다.
‘이, 이 천하의 변태가.’
파르르 떠는 입술을 꾹 물고 마지못해 그의 뜻에 따랐다.
‘대체 난··· 얘랑 뭘 하고 있는 걸까.’
홧홧하게 달아오르는 뺨과 함께 짙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두 눈 뜨곤 못 볼 색정적인 광경에 자꾸만 헛손질이 반복됐다.
차라리 안 보는 편이 나을까 싶어 눈을 감은 순간, 픽 웃는 소리와 함께 손이 붙잡혔다.
“어떻게 된 게 그때보다 더 쑥스러워하냐.”
어찌어찌 가져다 대기만 할 뿐 제대로 닿지도 못하는 손등 위로 더운 손이 겹쳐졌다.
“꼭.”
“아···.”
그대로 아래로 쭉 끌어 내리는 손길과 함께 탄성 좋은 얇은 막이 완벽하게 덧씌워졌다.
“10년 만에 사내새끼 몸은 처음 보는 것처럼.”
나지막이 속살거리는 음성을 따라 당겨지듯 눈꺼풀이 올라섰다.
“아닌 거 알면서도 예쁘네.”
빙긋 휘어진 검은 눈과 뭉근하게 눈길이 엉키었다.
“꼴리기도 하고.”
한층 낮아진 저음을 끝으로, 그가 그대로 고개를 기울여 짧게 입술을 빨았다.
키스라기엔 가볍고 뽀뽀라기엔 짙은 접촉.
나른하게 흩어진 숨결이 코끝을 간질였다.
아슬아슬하게 멈춰 선 얼굴에 다경은 숨이 턱 막히는 것만 같았다.
이미 이보다 더한 짓도 다 해놓고 고작 감질나는 입맞춤 하나에 이토록 심장이 뛰다니.
미쳤나 봐···.
두근거리는 스스로가 어이없어 연신 두 눈만 깜박대자, 어깨가 붙잡히며 몸이 다시 뒤로 밀리고 말았다.
“누워.”
다리를 잡은 도하가 침대 위로 드러누운 몸을 바짝 당겨 안아 골반이 맞붙도록 몸을 겹쳐왔다.
“할 거야, 이제.”
심장을 철렁하게 만드는 선전포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