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8/98)

 7화.

 “그 대가로 보낸 하룻밤이었.”

 쾅―! 핸들을 내려치는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경적이 텅 빈 주차장을 찢어 갈랐다. 움찔 솟아오른 어깨가 순간 작게 파들거렸다.

 “윤다경. 너 돌았어?”

 경적의 흔적 뒤로 원망 어린 다그침이 날카롭게 따라붙었다.

 “10년 사이에 머리가 어떻게 된 거야? 화대? 하룻밤 대가?”

 곱씹을수록 기가 찬다는 듯, 그가 뱉은 말 끝에 허탈한 코웃음을 쏟아냈다.

 도하가 터뜨린 울분이 뻔뻔하게 앞만 향하여 있는 옆얼굴을 아프게 데워왔다. 하지만 다경은 이번 역시 꿋꿋한 어조로 제 할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래. 그게 나한텐 화대고 대가였어.”

 그날 밤 도하가 제게 베푼 호의는 제 안에서 화대와 대가라는 단어로 명명되었다.

 그렇게라도 생각해야 살 수 있을 것 같아 제 마음속에 그리 정의를 내렸던 밤이었다.

 아마 그마저도 없었다면 저는 온전히 숨조차 쉴 수 없었을 테니까.

 위선임을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무치는 죄책감 속에서 저를 지켜내기 위해선, 그리 합리화를 하는 것 말곤 방법이 없었다.

 “안 주겠다는 거 억지로 뺏은 것도 아니고 너도 동의해서 준 돈이었잖아.”

 부러 무정하게 말하는 입술 끝이 가늘게 떨린다.

 “그 돈 때문이라면 더는 너한테 이런 추궁 받을 이유 없어.”

 뱉는 어조와는 다르게 파들거리는 신경들을 다잡으며 서둘러 안전벨트를 풀었다.

 “그럼 할 말 끝난 걸로 알고 그만 내릴.”

 “씨발, 다경아.”

 도망치다시피 문 쪽으로 돌아서던 몸을 거친 온기가 잡아챘다.

 “개소리 좀 작작해.”

 도하의 입을 뚫고 흘러나온 싸늘한 일갈이 스칠 듯 가까이 대치하고 있는 입술 위로 난폭하게 쏟아졌다.

 등골이 오싹 움츠러들고 입술이 말라왔다. 조금만 바르작대도 살결이 닿을 것만 같아, 다경은 미약한 저항조차 할 수가 없었다.

 “이거 놔, 권도하.”

 차분하게 읊조린 말끝이, 그럼에도 가늘게 떨렸다.

 “난 너 그렇게 사라지고 10년을 병신처럼 살았어.”

 놓아주긴커녕 시트 쪽으로 더욱 다경을 짓누른 그가 상처 입은 짐승처럼 낮게 으르렁거렸다.

 “어디서 소리소문없이 죽은 건 아닌가. 살아있으면 연락은 주겠지. 그렇게 전전긍긍하면서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고.”

 그래. 그건 지옥이었다.

 누군가 화대의 대가라 가벼이 지칭한 그 밤이 제겐 10년째 떨치지 못한 악몽이었다.

 얼마 되지 않는 돈 같은 건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건 윤다경의 존재 여부였다.

 살아는 있는지.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하루에도 수십 번씩 걱정했다가 분노했다가 그 지랄을 떨며 미친놈처럼 다경을 찾아 온 하곡 바닥을 헤맸다.

 그러다 결국 그 꼴을 보다 못한 부모님의 손에 끌려 강제로 유학을 가야 했고, 그러고도 좃같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10년째 윤다경이 아닌 다른 여잔 안지도 못한 병신이 바로 저란 놈이란 말이다.

 그런데.

 “그런 내 앞에 10년 만에 멀쩡한 몰골로 나타나선 뭐? 그 돈은 화대라고 쳐? 대가로 보낸 하룻밤? 씨발, 좃 까고 있네.”

 부정당한 진심이 기가 찼다.

 대체 제가 뭐 때문에 그간 그토록 병신같이 살아온 건지 돌이킬수록 어이가 없었다. 다경을 마주치고 잠시나마 안도했던 그 마음이 구차했다.

 그러니까 결국, 순정을 다 바친 그 밤이 윤다경에겐 그저 돈만 주면 누구라도 살 수 있는 하룻밤 대가였다는 건데.

 “권도하. 이거 좀···.”

 다경이 집착하듯 조여오는 손아귀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를 불렀다.

 “그래, 그럼 그건 화대였다 치고.”

 단념 어린 말과 함께 그가 아플 만큼 잡아 누르던 어깨에서 차갑게 손을 떼어냈다.

 “내 화대는 어떡할래?”

 “···뭐?”

 저 나름의 계산을 마친 도하의 물음에 다경의 말끝이 일순 높아졌다.

 “나 먹고 버린 네가 치러야 할 화대는 어떻게 계산할 거냐고.”

 도하 분의 화대를 치르라니. 생각도 못 한 반문이라 다경은 도저히 표정을 다잡을 수가 없었다.

 “너, 지금 무슨···.”

 “10년 이자 붙여 받으면 되나? 네가 그때 화대랍시고 받아간 돈이 오백이니까, 10년 셈 쳐서 오천만 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조금 전 제가 가벼이 입에 올린 단어들처럼, 어마어마한 액수를 너무도 가벼이 내뱉은 도하의 입술이 일순 사악하게 휘어졌다.

 “어때? 계산되겠어?”

 다경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오천이라니. 그런 돈을 제가 줄 수 있을 리 없었다.

 10년 전 그에게 오백만 원이란 돈을 받고 도망쳤어야 했을 만큼 바닥이었던 제 인생은 지금도 그때와 크게 변하지 않은 상태였다.

 아니, 애당초 그게 가능했다면 이렇게 뻔뻔하게 굴 일도 없었을 테다.

 늦게나마 번듯한 직장을 갖게 되어 그때보다 갚아낼 여력이 생긴 정도일 뿐, 결코 상황이 넉넉해진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제 몫의 화대를 내놓으라니. 그것도 오천이란 거금을.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뱉을 돈도 없지만, 그 돈을 줘야 할 이유 또한 제겐 없었다.

 “···억지 부리지 마, 권도하.”

 “그게 왜 억지야.”

 차가운 조소가 밀폐된 공기를 날카롭게 긁는다.

 “원금에 피해받은 내 정신까지 보상 받으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지. 안 그래?”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은 만큼 틈이 없는 얼굴이 다경을 향해 냉소적으로 되물었다.

 “계산은 똑바로 해야지, 다경아. 10년 전에 너 처녀였듯이 나도 동정이었어. 공평하게 내 화대도 지불 해야 계산이 끝날 거 아냐. 까놓고 말해서.”

 잠시 말을 멈춘 그의 동공이 다경의 시선을 깊숙하게 옭아맸다.

 “그때 먼저 자 달라고 매달린 건 내가 아니라 너였잖아.”

 혼란을 마주한 갈색 눈이 풍랑에 떠밀린 부표처럼 흔들렸다.

 “네 손으로 직접 내 물건에 콘돔까지 씌워놓고 이렇게 쌩까면 섭하지, 내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어제처럼 생생한 기억을 눈앞까지 끄집어다 놓으며 도하가 비릿하게 웃었다.

 다경은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 채 하릴없이 입술만 달싹였다.

 기억한다. 망설이는 도하의 바지춤에 손을 대며 절박하게 매달렸던 제 모습을.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제가 하는 짓을 정당화할 방법이 없을 것 같아 저질렀던 볼썽사나운 몸부림을.

 하지만, 그런 식으로 정의 내리긴 했어도 분명 진심이었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화대니 대가니 하는 말로 제 마음을 부정했지만, 이런 식으로 되돌려 줘야 할 밤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걸 열 배 되는 값으로 갚으라니.

 대체 이런 억지가 어디···.

 “돈으로 못 치르겠으면 몸으로라도 때워.”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다고 생각한 순간, 그보다 더한 소리가 다경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너 지금 뭐라고.”

 “뭘 그렇게 놀라. 10년 전에 이미 해봤으면서.”

 “그건!”

 “하룻밤에 오백. 열 번 해서 오천. 그렇게 계산하면 딱일 것 같은데.”

 순간 눈앞이 핑 돌며 모든 것이 아득해졌다.

 말도 안 되는 액수를 입에 올린 것도 모자라 그걸, 돈이 아닌 몸으로라도 갚으라니.

 “너 지금 대체 무슨 소릴!”

 “무슨 소리긴. 네가 좋아하는 논리에 입각한 제안이지.”

 대체 그 말 어디에 논리가 있다는 건지, 다경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기가 찬 나머지 헛웃음마저 터져 나왔다.

 미쳤어, 권도하.

 “못 해.”

 결국 무논리엔 대꾸할 필요조차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단호하게 읊조렸다.

 “너한테 그 돈 줘야 할 이유 없어.”

 도하의 원망을 받을 이유는 충분하나, 제게 그 돈을 줄 이유와 여유는 없었다.

 더는 그 억지를 받아줄 마음이 없다는 듯 차갑게 몸을 돌린 그때였다.

 “아니, 있어.”

 여유 넘치는 목소리가 막 차 문에 닿은 다경의 손을 멈춰 세웠다.

 “법적 근거는 없을지 몰라도 우리 사회엔 도의적인 책임이라는 게 있거든. 때론 사람들은 그걸 법보다 상위에 두고 누군가를 판단하기도 하고.”

 도의적 책임이라는 단어가 더없이 불길한 어감으로 심장을 건드렸다.

 “너···.”

 “회사 사람들이.”

 기습적인 언급에 다경의 눈이 걷잡을 수 없이 흔들렸다. 약점을 간파한 도하가 두 눈을 나붓하게 휘며 말을 이었다.

 “네가 10년 전 오백만 원에 하룻밤을 판 여잔 걸 알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날 것 냄새가 물씬 풍기는 비열한 미소가 비릿하게 동공을 핥았다.

 “그 사람들도 화대로 받은 돈이니 정당했다고 널 두둔해 주려나?”

 제가 쥔 가장 강력하고 비겁한 패를 보란 듯이 흔들어대며 여유로운 얼굴로 빈정거렸다.

 손목을 잡아 누른 체온이 올가미처럼 억세다.

 아냐. 아닐 거야.

 다경이 불길한 생각들을 억누르며 위태로이 호흡을 내뱉은 순간이었다.

 “정 그렇게 납득이 안 되면, 어디 한번 직접 물어보자고. 다른 사람들보다도···.”

 의미심장하게 웃은 턱 끝이 다경의 발밑에 놓인 종이백 속 재킷에 닿았다.

 “오늘 그 옷 쪼가리 덮어준 새끼 반응이 제일 궁금한데.”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가 기울이고 있던 몸을 바로 하며 그의 슈트 안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설마, 라고 생각한 찰나 액정에 뜬 눈에 익은 이름을 누르는 손이 거침없었다.

 이윽고, 벨 소리가 몇 번 가기도 전 박일호입니다, 하는 음성이 휴대폰을 뚫고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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