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7/98)

 6화.

 “왜 그러고 있어요, 윤 대리?”

 굳어버린 입술이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버석하게 말라붙었다.

 웃고 있음에도 뱀처럼 서늘한 눈이 파리해진 안면을 느릿하게 훑어내렸다.

 “퇴근 후라 고민돼서 그러나? 이름이 나을지, 직책이 나을지.”

 좀 전의 제 외면을 직격으로 되받아치는 말이었다.

 한층 더 선명하게 비틀린 입술이 시야를 위압했다.

 10년 전의 풋내 따윈 찾아볼 수 없는 얼굴에선 눈빛만으로 사람을 주눅 들게 만드는 기운 같은 것이 엿보였다.

 표정을 굳힌 것도, 목소리를 낮춘 것도 아닌데 숨통이 통째로 죄어오는 것 같은 긴장감.

 ‘대체 어떻게···.’

 동요를 감추지 못한 눈이 결국 도망치듯 그의 턱 아래로 흘러내린 찰나였다.

 “뭐, 난 후자도 괜찮던데.”

 애써 외면한 입에서 예상의 범주를 넘어선 말이 흘러나왔다.

 “그 입에서 팀장님 소리 나오는 게 나름 꼴리기도 하고.”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동공이 낚싯줄에 채이듯 한 뼘 위로 올라섰다.

 “그래. 이제야 좀 제대로 보네.”

 수려한 입가에 밴 명백한 조소가 비릿하게 동공을 핥았다.

 “꼬박 10년 만인데 눈 정돈 맞춰야지.”

 고작 그런 수법으로 제 존재를 부정하려 들었냐는 듯 확연한 비웃음.

 손발 끝이 하얘졌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목전에 두고 있는 것 같아, 창백해진 안면 전체에 짙은 공포가 깃들었다.

 숨 막히는 정적 속으로 소란이 끼어든 건 그때였다.

 그의 어깨 너머로 퇴근 준비를 마치고 복도로 걸어 나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사방이 막힌 어둠 속에 한 줄기 빛이 드는 듯했다.

 이대로, 사람들이 이쪽으로 와준다면.

 “아무래도.”

 도망갈 곳을 찾던 다경의 손목이 더운 손아귀에 덥석 붙잡혔다.

 “본격적인 대화는 단둘이 있는 곳에서 하는 게 좋겠죠?”

 델 것 같은 열기가 가는 손목을 올가미처럼 움켜쥐었다.

 “잠···!”

 “보는 눈이 많은 상태론 피차 곤란할 테니까.”

 붙잡힌 몸이 힘을 써볼 새도 없이 열린 문 쪽으로 딸려 들어갔다. 단호히 뻗어 나간 기다란 손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닫힘 버튼을 누른다.

 가까워지던 빛 한 줄기가 야속하게 닫히는 문 너머로 사라지고 말았다.

 더는 물러설 곳도 도망갈 곳도 없는, 완벽한 밀실이었다.

 4. 그 밤의 정의

 “타.”

 줄곧 예의를 갖추던 목소리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자마자 싸늘한 명령조로 바뀌었다.

 다경이 열린 차 문의 앞에 선 채 경계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차는 왜···.”

 “그럼 여기서 얘기할까?”

 한 손으로 차 문을 잡은 그가 장신의 몸을 비딱하게 기울였다.

 “너랑 내가 10년 전에 뭘 했는지, 과거 얘기 한번 떠들어줘?”

 내려다보는 눈이 서늘하고도 비릿했다.

 “넌 이 회사에 아는 사람도 많고 썸타는 새끼도 하나 둔 것 같던데. 난 보다시피 쫄릴 게 없거든.”

 마른 손아귀를 꽉 움켜쥔 채 그를 마주 올려다보았다.

 썸타는 새끼라고. 아마도 박 과장을 두고 하는 소리인 듯했지만, 굳이 그 오해를 바로잡고 싶지 않았다.

 10년 만에 만난 그에게 제 시시콜콜한 인간관계까지 해명해야 할 이윤 없었으니까.

 “저녁에 선약이 있어.”

 다경이 하나둘 주차장으로 걸어 나오는 사람들을 살피며 건조하게 덧붙였다.

 “용건만 간단히 해줘.”

 그런 뒤 포기하듯 조수석으로 올라탔다. 무표정한 갈색 눈이 뻔뻔하리만치 정면만을 응시한다.

 “용건만 간단히라.”

 그 모습을 보며 기막히다는 듯 짧게 실소한 도하가 이내 싸늘히 입가를 굳혔다.

 “그래. 간단히가 된다면 말이지.”

 의미심장한 목소리와 함께 탁, 소리를 내며 조수석 문이 닫혔다.

 * * *

 회사를 빠져나온 차는 근처 한적한 공원 주차장에 다다라서야 멈춰 섰다.

 시동이 꺼진 차 안에 쥐 죽은 듯 창백한 고요가 흘렀다.

 폐쇄된 공간 속 밀도 높은 공기가 숨통을 꽉 죄어오는 것 같다.

 아닌가. 정신을 차릴 수 없이 콧속을 파고드는 권도하의 향기 탓인가.

 “할 말 있으면 해.”

 다경은 언제부턴가 땀이 차기 시작한 손바닥을 스커트 위에 문지르며 먼저 말문을 열었다.

 속은 한없이 떨렸지만 애써 담담한 척 뗀 첫 운이었다.

 “할 말이라.”

 차에 탄 후로 한마디도 없던 옆자리에서 짤막한 실소가 터졌다.

 아마도 처음 마주치고부터 제가 보인 뻔뻔함에 기가 찼으리라.

 하지만 다경은 태도를 바꿀 생각이 없었다.

 공연히 약한 구석을 보여 봤자, 그에게 저를 물어뜯을 빌미만 줄 뿐이다.

 어차피 모든 걸 각오하고 저질렀던 일들이었다.

 외려 불쌍한 척하는 게 도하의 입장에선 더 가증스럽게 여겨질지도 몰랐다.

 ― 탁.

 한참을 핸들만 움켜쥐고 있던 그가 갑자기 운전석에서 내려섰다. 쾅, 소리가 나도록 문을 닫더니 곧장 담배 끝에 불을 붙였다.

 어딘지 착잡해 보이는 표정으로, 그가 입에 문 필터를 깊게 흡입했다.

 조금씩 저물기 시작한 노을빛 위로 붉게 일어선 담뱃불이 적색 경고등처럼 깜박였다.

 ‘다시 담배 피우나 보네.’

 검게 썬팅 된 창 너머로 그를 바라보는 다경의 눈이 옅게 흔들렸다.

 일찌감치 담배를 배웠던 도하는, 그녀가 너구리굴 같은 다방 때문에 담배라면 질색하는 걸 알곤 곧장 담배를 끊었었다.

 그렇기에 그가 제 앞에서 담배를 태우는 걸 보는 게 다경은 낯설었다.

 하긴, 10년의 세월은 사소한 것부터 변화를 만들어내는데, 새삼 그런 것에서 낯섦을 느끼는 게 오히려 더 우습지.

 다경이 자격 없는 씁쓸함을 삼키는 사이, 담배를 끈 그가 다시 운전석으로 올랐다. 인기척을 느낌과 동시에 갈무리된 시선이 꼿꼿하게 정면을 향했다.

 닫힌 문소리를 끝으로 다시금 정적에 휩싸인 공기를 가르며 그가 말했다.

 “10년.”

 묵직한 저음을 타고 언급된 햇수가 목을 턱 죄어왔다.

 “뭐했어, 너.”

 높낮이 없는 목소리는 그럼에도 어떤 다그침보다 거칠었다.

 다경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지그시 어금니를 악물었다.

 어떤 식으로 제 지난 10년을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다. 어떻게 말해야 너의 성에 찰 답이 될 것인지도.

 땀이 밴 손으로 옷깃을 꽉 쥐었다 놓은 뒤, 다경이 결국 담담히 입술을 뗐다.

 “보다시피야.”

 차마 옆을 돌아보지 못한 눈이 초점 없이 허공을 응시했다.

 “대학 입학해서 취업 준비했고, 알바랑 병행하다 보니까 입사가 늦어서 올해 겨우 대리 달았어. 그리고 오늘.”

 잠시 흔들릴 뻔한 숨을 다잡은 뒤 애써 태연한 척 말을 맺었다.

 “여기서 널 만난 거고.”

 간결하게 10년의 세월을 일축 시킨 입술이 굳게 다물렸다.

 여기서 구구절절 제 이야기를 풀어 놓은들 그 짓을 벌이고 떠난 절 가엽게 여겨달란 사정으로밖엔 들리지 않을 터였다.

 그러니 모든 게 쉬웠다는 듯이 말해야 맞았다. 널 만난 것조차 내겐, 흘러가는 삶의 흐름에서 맞닥뜨린 사소한 우연 중 하나일 뿐이라는 듯이.

 “하···.”

 또 한 번 한숨을 뱉은 입술이 굳게 다물렸다. 단정한 이마가 툭, 자동차 핸들 위로 떨어졌다.

 잠시 대화가 오간 공간에 다시금 고요가 내려앉았다. 꽈득, 핸들을 쥐었다 푼 그가 다시 느릿하게 고개를 들어 다경을 보았다.

 “그래, 잘 살았네.”

 결코 잘 살았다는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지만, 다경은 차마 아니라고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사라지고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사나 했더니 아주 잘 살았어.”

 네 존재가 내 가슴 한편에 묵은 짐처럼 남아,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는 소릴 감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술집에 팔려갔는지, 장기매매라도 당했는지. 누구는 노심초사하면서 살았는데 이건 팔자 좋게 직장도 잘 다니고 있고.”

 미안하다는 말로, 죄스러웠다는 말로, 네게 용서를 구하는 거야말로 너무나 뻔뻔한 짓이니까.

 차라리 무정하고 나쁜 계집애가 돼서 철저하게 경멸당하고 미움받는 편이 내 주제에 어울리니까.

 “다 네 덕분이야.”

 그래서 다경은, 차라리 더 담담하게 답했다.

 “내 덕분?”

 기가 찬 듯 돌아보는 시선이 느껴졌으나 그 또한 외면한 채 말을 이어갔다.

 “응. 빈털터리로 엄마랑 둘이 상경해서 하마터면 방 한 칸도 못 얻을 뻔했거든. 근데 그때 네가 도와준 덕에 다행히 몸 누울 곳이라도 구할 수 있어서···.”

 “아, 윤다경 네 사전엔 그런 걸 보고 도움받았다고 하나 보지?”

 한층 더 싸늘하게 바뀐 음성이 비수처럼 가슴을 찔렀다.

 “내 사전에선 뒤통수쳤다는 짓을 두고.”

 묵묵히 정면을 향하고 있는 눈이 어지럽게 나부댔다. 뒤통수, 라는 단어에 실린 냉기가 얼어붙은 공기를 가르고 폐부 깊숙이 스며왔다.

 애써 외면 중이던 죄책감과 두려움이 바로 턱밑까지 밀려들었다. 하지만 다경은 뱉은 말을 거두지 않았다.

 도하가 보이는 분노와 미움은 그조차 응당 제가 감당해야 할 몫이므로.

 “도와준 거 맞잖아.”

 동요를 지운 채 더욱 뻔뻔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그때 그 돈은 네가 나한테 준 화대라고 생각했는데.”

 여상한 어조로 절대 뱉어선 안 될 단어를 태연히 혀끝에 올렸다.

 “―뭐?”

 “돈 필요하다는 내 말에 네가 직접 줬잖아.”

 “윤다경.”

 이름을 부르는 도하의 목소리 끝이 거칠게 갈라졌다.

 “그 대가로 보낸 하룻밤이었.”

 쾅―! 핸들을 내려치는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경적이 텅 빈 주차장을 찢어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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